모음집


 배는 빠르게 물을 가르고 불이탄(不以炭)의 항구 마을인 재녹구(財鹿口)에 다다랐다. 나마의 말로 브리태인이라고 불리는 이 나라는 나마 땅에서도 상당한 힘을 자랑하는 나라다. 재녹구는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배가 드나드는 나마 땅에서도 손꼽을 정도의 거대한 항구도시다. 


 "관리가 되고자 하는 자식은 논대운(論大云)에 보내고, 부자가 되고자 하는 자식은 재녹구로 보내라."

 불이탄에 오랫동안 전해지는 격언이다. 이 격언대로 재녹구는 나마의 모든 땅에서 물건과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었다. 이는 곧, 다른 말로 하면 대륙의 온갖 뜨내기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말과 같다.


 그러한 사실을 방증하듯 배에서 내려 거리를 걷던 소협의 어깨를 누군가 툭하고 부딪쳤다.


 "아. 미안."


  금발에 벽안을 한 사내가 그렇게 정중히 사죄를 하고 지나가려고 하는 그 때, 소협은 사내의 어깨를 잡았다.


 "... 전부터 사부가 내게 항상 강조하던 말이 있었는데. 그게 뭔지 아시오?"


  금발의 사내는 당황한 기색으로 소협을 바라보며 말했다.


 "...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


 "사람이 많은 저자거리에서 절대 돈 주머니를 차고 걷지 말라. 그것이 가르침이었지."


 "허... 말하는 투나 얼굴을 보아서는 너 중원에서 온 사람인 것 같은데. 어깨 부딪혔다고 나를 소매치기로 모는 거야?"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소협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게 의심되면 몸 수색이라도 해볼래? 나는 그런 돈 보따리는커녕 아무것도 없으니까 당당하거든."


 자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사내를 노려보던 소협은 붙잡고 있던 어깨를 놓아주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벽력탄."  


 소협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어딘가에서 폭발음이 울려퍼졌다. 얼마 안 있어 건물 사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를 본 금발의 사내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걱정할 것은 없소. 기껏해봐야 기절한 정도의 폭발력이니까. 재수가 없었으면 화상 정도는 입었을지도 모르겠군."


 "무... 무슨..."


 "당신이 바람잡이. 저기 골목에서 나뒹굴고 있을 자가 주머니를 취하는 역할. 고전적인 방법이지."


 소협은 사내를 지나쳐가며 말했다.


 "배수(掱手)(각주. 소매치기)라고는 하나 의리 정도는 있겠지. 가서 구해주시오."


  그렇게 지나치는 소협을 금발의 사내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을 때는 이미 사라져 찾을 수가 없었다.


 "무슨..."


 금발의 남자가 아연실색하여 거리를 쳐다보고 있는 그 때에는 이미 소협은 그곳에서 120보는 족히 떨어진 건물의 종탑을 경공술로 올라가 있었다. 소협은 그곳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 보았다. 중원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형태의 건물들과 의복에 놀라는 것도 잠시. 소협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결국 나마나 중원이나 똑같은 하늘 아래의 세상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배수를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이야...'


 그렇게 생각한 소협은 삿갓을 매만지며 나마 땅에 온 목적에 대해서 되새겼다. 이 땅에 온 것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그것이 그의 모험의 목적이었다. 소협은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스승과 떠나기 전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 나마로 떠나겠다고?"


 "...네. 오래 전부터 하고자 했던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제자를 보며 스승은 말했다.


 "이제 겨우 약관(각주. 20세)의 나이에 들어선 네가 나마 땅에 가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놈은 무공은 아직 이 중원 땅에서도 그다지 내세울 것이 되지 못할 터인데, 나마의 요술이 목적이더냐?"


 "...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목적이더냐?"


 "뿌리입니다."


 "뿌리?"


 "제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스승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조용히 몸을 일으켜 근처의 집채만한 바위를 손으로 들어올려 그 밑에서 나무로 된 상자 하나를 꺼내 제자의 앞에 두었다.


 "열어보아라."


 그 말을 들은 제자가 조심히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검은 적삼과 삿갓. 그리고 수수하게 생긴 검이 하나 들어있었다.


 "이것은...?"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해 준비해둔 것이다. 나는 그때가 못해도 네가 이립(각주.30세)은 되어서야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만..."


 그리 말하며 스승님은 검을 잡으며 제자에게 말했다. 


 "이 검은 너를 숲에서 처음 주웠을 때, 네가 담겨있던 바구니 안에 같이 있던 검이니라."


 "...!"


 "... 여행길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낯선 땅.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며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막연히 싫어하는 이들과도 충돌하게 되겠지. 개중에는 네놈을 흔적도 없이 죽여버릴 수 있을 정도의 고수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이 아니면 안되겠느냐?"


 그렇게 말하는 스승의 눈빛에는 어딘가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 강호인으로써 스승에게 은혜도 갚지 않고 부모와 같은 분의 뜻을 거슬러 슬프게 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찾지 않으면 영영 저의 뿌리를 찾지 못한 채 그저 이 중원이라는 우물 안의 조금 강한 개구리로 살아갈 것만 같은 예감이 듭니다. 부디 허해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머리를 숙이는 제자를 보고는 스승은 호탕하게 웃고는 말했다.


 "누가 보면 네놈이 정파의 대제자라도 되는 줄 알겠구나. 네놈은 흑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파가 아니더냐. 그냥 네놈이 하고 싶은대로 하거라. 이 동굴은 나가는데 나의 허락 같은 건 필요도 없다. 내가 막는다면 그저 나를 죽여서라도 지나가면 되는 일. 그런 생각으로 행동하는 것이 사파가 아니더냐?"


 그렇게 말하며 마치 웃으면서 덤벼보라는 듯이 살기를 내뿜는 스승의 얼굴을 떠올리며 소협은 조용히 눈을 떴다. 소협은 품에서 스승님이 건네준 쪽지를 꺼내서 보았다. 그곳에는 나마어로 "싱클레어"라고 붓글씨로 쓰여있었다.


 "싱클레어를 찾아라..."


 소협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거대한 도시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싱클레어라고 하는 것은 불이탄 내에서도 힘이 강력한 귀족 집안의 성씨로 스승꼐서는 재녹구에 도착하면 그곳에 위치한 싱클레어의 분가의 저택을 찾으라고 하셨다. 그곳에 가면 스승의 지인이 편의를 봐줄 것이다.

 

 그것을 떠올리며 한참을 둘러보던 소협은 산 중턱에 커다한 저택을 찾아냈다. 온통 새하얀 그 저택을 향해 소협은 경공술을 사용해 단숨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건물과 건물을 뛰어넘어 어느새 저택의 대문 앞에 다다른 소협은 쇠로된 대문에서 소리쳤다. 


 "거기 누구 없소! 나는 이곳의 가주에게 볼 일이 있어서 온 자요!"


 그렇게 소리치자 얼마 안 있어 나마의 복식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노인이 나와 소협을 마주하고는 물었다.


 "어떤 분이시길래 저희 가주님을 찾으십니까?"


  "나의 스승께서 가주와 친분이 있었다고 알고 있어서 잠시 대화를 하고 싶어서 들렀소."


 알이 한쪽 밖에 없는 괴이한 안경을 쓰고 있는 단정한 노인은 그 말을 듣고는 미묘하게 굳은 표정을 짓더니 소협에게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그 스승님의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성은 특별히 없고 태산이라는 이름을 쓰시는 분이오."


 소협이 그 이름을 입에 담자, 노인의 얼굴은 방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굳었다. 그리고 소협이 얼마 안 있어 그 노인에게서 살기를 느꼈다. 느껴지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여섯... 아니, 조금 더 먼거리에서 이곳을 향해오고 있는 둘까지 합치면 여덟인가. 스승님이 의미없는 거짓을 입에 담으실 분도 아닌데, 이들은 왜 나를 공격하려고 하는가?'


 조금 고민하던 소협은 허리 춤에 있던 검을 뽑았다. 


 "도대체 무슨 오해가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한 사람을 둘러싸고 습격이라니 이것이 나마인들의 방식이요?"


 "닥쳐라. 더러운 동인놈이."


  노인은 순식간에 섬뜩할 정도의 기백을 내뿜으며 소리쳤다.


 "가주님을 죽여놓고 당당히 가주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다시 싱클레어의 정원에 발을 들이려고 하다니... 뻔뻔한 원숭이 놈들..."


 '...! 가주가 죽었단 말인가?"


 "네놈의 뼈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불살라 주겠다... 각오해라!"


  노인이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뻗는 순간 숲에서 한 사내가 누군가를 들쳐 업은 채로 나타났다. 


 "알버트! 마침 나와 있었네. 보가 좀 다쳤어. 치료를 부탁해도..."


 갑자기 뛰쳐나온 사내는 그제서야 옆에 있던 소협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어! 너는 아까 그! 이상한 동인!"


 "... 금발 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