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으로 무르익은 산을 끼고 한바탕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늦여름 오후, 비구름은 맹렬했던 더위를 한 풀 꺾고도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드는 듯 그 기세를 더해갔다. 풀 섶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점점 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 보다 커질 때쯤 돼서야 나는 문득 편의점 차양 아래서 하늘을 올려다보고만 있던 걸 깨닫고 있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라면 값을 제한 500원이 들어있었다. 우산을 사기에는 턱없이도 부족한 금액이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소나기인 거 같아 그냥 멎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여름비의 장난은 늘 이런 식이다. 불현 듯 찾아와 자기 혼자 신나서 갈 때는 제멋대로다. 그 놀음에 장단에 맞춰주는 것만큼 바보짓이 없다. 지나갈 때까지 한 발짝 물러서 지켜봐야 했다. 편의점 장사에 방해가 안 되게 입구에서 빗겨난 곳에 자리를 잡고 멍하니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봤다. 어렸을 적엔 비가 멎기를 기다리는 거만큼 귀찮은 일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나름 이 짓도 요령이 생겼다. 두둑, 후두둑. 순서가 있는 건지도 모를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최면이라도 걸린 듯 점점 그 풍경에 몰입할 수 있었다.

 

비란 기약 없는 기다림을 강요하는 족속들이다. 오라고 사정을 하면 안 오고 오지 말라고 할 때는 귀신같이 안다. 요즘은 TV나 라디오만 틀면 날씨 정보를 알 수 있지만 절대 신봉하지는 않는 법이다. 비란 원래 제멋대로니까. 그저 올 거 같으면 대비하고 가면 다시 하던 일 한다. 어쩌면 날씨라는 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근엄한 신의 형상이 아니라 여린 마음을 가진 존재일 수도 있다. 기분이 좋으면 쨍쨍하고, 우울하면 흐리고, 울면 비다. 누군가에겐 경외하고 두려움의 대상인 하늘이 어쩌면 우리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장난꾸러기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사실 이렇게 때마침 비가 내리는 것도 하늘의 변덕일 수도 있다. 내가 곤란해하는 꼴을 보며 더욱 고소할 마음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이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야 하늘의 뜻을 모르니까. 당장이라도 이 비로 인해 우산을 팔게 된 편의점 점장은 어떤 미소를 짓고 있을까? 그거 또한 비가 내린 축복일까? 아니면 재수 없게 돈을 더 쓰게 된 어느 회사원에 대한 저주일까. 

 

기약 없는 기다림이라 표현한 몸일지라도 나는 비가 좋다. 이렇게 비를 기다리고 비에 대해 잠깐이라도 망상할 수 있는 여유를 준 건 하늘만이 할 수 있는 재주다. 하늘같이 푸르른 마음을 주고 사라진 어린 시절 소년이 수염 덥수룩 난 아저씨가 될 동안 하늘은 아니, 비는 내 있는 그대로를 봐왔을지도 모른다. 

 

요근래 잊고 있었던 값진 추억이었다. 옅어지는 빗줄기 속을 나는 그냥 뛰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