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사냥꾼이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엽사이자 박제사였다. 덕분에 대부분 휘발되어 버린다는 어릴 적의 기억들은 아직도 내 뇌리 속에는 강렬하게 남아 있다. 온 집안을 물들인 박제용 방부제의 비린내음과, 그리고 그 안을 매캐하게 파고드는 화약의 짙은 탄내에 물든 그 기억들이. 

 아버지는 무척이나 실력 있는 박제사이셨던 것 같다. 산 중턱의 오두막 안에는 방부제의 고약한 냄새가 가득 차 있었음에도, 이 산골에 어울리지 않는 멀끔한 차림의 콧수염쟁이들은 달에 세네번은 찾아와 아버지와 박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말이 좋아 이야기였다. 손수건으로 코를 가린 그들이 거들먹거리듯 부탁인지 명령인지 모를 하청을 내린 후 혀를 차며 집을 나서면, 아버지는 언제나 굽실거리며 그들을 배웅하였다.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더럽다는 듯 그 뒤로 침을 뱉고선 집으로 들어와 엽총을 꺼냈다. 그리고선 내 머리를 쓰다듬고선 집을 나선 후 보통 하룻밤 정도 뒤에 피로한 얼굴로 등에 잡은 짐승들을 지고선 돌아 오셨다. 

 사냥한 짐승들의 뼈와 고기는 우리가 먹었다. 그리고 남은 가죽으로 아버지는 박제를 만들었다. 가볍게 몽둥이로 가죽을 두드린 후 방부제로 가죽 안쪽을 치대며 자세를 잡아 가면, 어느 새 살아 있던 것처럼 위풍당당하게 네 발로 서 있는 짐승의 모습이 다시 눈 앞에 나타났다. 

 특이한 점이라면, 아버지가 박제한 짐승들은 모두 눈이 감겨 있었다. 한 번은 그 부분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눈깔은 방부제로 덮어도 금세 썩어버리기 때문에 가짜 눈깔을 박아야 되는데, 난 그게 싫어. 목숨줄 끊어진 녀석들이 산 세상 보고 싶겠냐." 


어쨌든 그렇게 아버지가 박제를 완성시키고 나면 지겨운 일을 끝냈다는 듯이 작업대를 발로 차 저만치 밀어버리고선 하루 웬종일 잠을 청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렇듯 유년시절의 기억은 반복적인 아버지의 행보로 점철되어 있었고,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열 살 즈음이었다. 늦어도 이틀 안에는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일주일이 넘게 들어오시지 않았다. 겨울이었고, 갈무리 해 두었던 고기과 식량들은 모두 떨어졌다. 그렇게 굶기를 며칠, 기억도 없이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때는 산등성이에선 볼 수 없는 부드러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머리 맡에는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안쓰러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A라 하였다. A는 자신이 모시고 있는 귀족의 명령으로 아버지에게 박제를 부탁하러 왔다가,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선 마을의 의원까지 데려다 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기억은 정확하지가 않다. A의 말에 따르면 당시 조심스럽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내가 울부짖으며 난리를 쳤고, 그렇게 기력이 없어 쓰러졌다 다시 눈을 뜨면 그 짓을 반복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A는 내 생명, 아니 전 삶의 은인이었다. 그는 내 목숨을 구해 준 것 뿐 아니라 내가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도와 주고 오두막에 남겨진 아버지의 박제들을 자신이 알고 있는 귀족들에게 처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A가 건넨 묵직한 금화주머니에 아연실색하여, 그 중의 절반을 그에게 주려고 하였다. A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돈을 원했다면, 널 오두막에서 보았을 때 이미 안에 있는 박제들만 갖고 도망쳤을 거다. 너가 지금 잘 살아있는 것만 보아도 난 괜찮아. 대신 약속해주렴. 학교에서 잘 배워서 올바른 사람이 되기로."


 나는 그의 미소 띈 대답에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