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서로 마주친 두 사람 간의 어색한 대치 속에서 소협의 머리는 끊임없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저 금발 배수는 대체 정체가 무엇이지? 이 집의 고용인 중에서도 연륜이 있어보이는 저 노인의 이름의 격식없이 부르는 걸로 보아 이 집의 고용인은 아닌듯하고.  스승님의 말로는 가주에게는 일남이녀의 자식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럼 이 자가 새 가주라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소협은 천천히 전투를 위해 잡았던 자세를 풀고는 금발 배수를 향해 말했다.


 "그대가 이 가문의 새로운 가주인 것이오?"


 "...? 뭔 소리야. 가주는 베르니스 누나..."


 그렇게 말을 이어나가는 금발 배수의 앞을 노인이 막아서며 소리쳤다.


 "도련님! 친구분을 데리고 어서 먼 곳으로 도망치십시오. 이 자는 가주님을 죽이기 위해서 온 암살자입니다!"


 "뭐?"


 그 말을 들은 금발 배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협을 쳐다봤다.


 '저 동인이 암살자라고? 그렇다면...'


 배수가 소협을 노려보며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노인은 아까와 같이 손을 앞으로 내밀고 소협을 공격하기 위한 자세를 잡았다.


 "동인놈... 네놈은 여기서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소협은 그 살기등등한 노인의 모습을 보며 섬뜩함을 느꼈다. 이러한 느낌은 2년전, 스승님의 심부름으로 잠시 동굴을 떠나 화산으로 가다가 만났던 아사단의 살수와 대치했을 때의 그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사면초가... 말 그대로 사면초가군. 이렇게 된 이상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소협은 자세를 잡고 다가올 공격에 대비했다. 노인은 재빠르게 움직여 소협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빠르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소협은 가볍게 그 공격을 막아냈다. 노인은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전혀 놀란 기색도 없이 점점 속도를 올리면서 소협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권격을 날렸다.


 '가볍다. 주먹이 너무나도 가벼워. 내공이 담기지 않은 노인의 주먹이라 그런가. 더 이상 전투를 끄는 것도 의미가 없겠군.'


 그렇게 생각한 소협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공격을 준비했다.


 '일격에 끝낸다.'


 노인이 다시 한번 권격을 날리기 위해 소협에게 접근한 그 순간 노인에게 권격이 날아들었다. 단순한 동작. 기본적인 주먹 지르기에 불과해보이는 그 정권은 빠르고 간결하게 날아가 노인에게 꽃혔다. 노인이 주먹을 보고 피할 새도 없이 날아든 그 권격에 노인은 능히 십척은 날아가 나무에 쳐박혔다.


 "알버트!"


 날아가는 노인을 보며 금발 배수가 소리쳤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공은 담지 않았으니."


 그렇게 담담하게 말한 소협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아직 머리 위에는 매복하고 있는 이들이 다섯이나 있다. 이들은 왜 공격을 해오지 않는 지에 대하여 의문을 느끼면서 소협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노인을 향해 물었다.


 "이쯤하고 그만 하는 게 어떻소? 그 정도 실력으로는 나를 죽이기는 커녕 생채기도 내지 못할 거요. 무언가의 오해가 있는 듯 하니..."


 "닥... 쳐라... 이 멍청한 원숭이놈."


 날아갔던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중원에서 온 원숭이들은 자기 재주를 너무 믿어서 멍청하다더니. 실로 그렇구나."


 그러더니 노인은 왼팔을 자신의 가슴쪽으로 들어올려 무언가 잡아당기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실이 나타나 소협의 몸을 감쌌다.


 '...! 사술(絲術)인가! 아까의 가벼운 권격은 실을 깔아놓기 위한 포석...!'


 노인은 묶여있는 소협을 향해 말했다.


 "자. 스승이 어디에 있는 지 불어라."


 "내가 알려주면 중원 땅으로 넘어가서 스승님을 죽일 것이냐?"


 "싱클레어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찾아내 죽일 것이다."


 "푸웃!"


 소협은 참지 못하고 웃은 뒤에 얼마 안 있어 박장 대소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거냐!"


 그렇게 격노하여 묻는 노인의 외침에도 한참동안 웃던 소협은 겨우 진정한 후 여전히 웃음기가 남은 얼굴로 말했다.


 "아직 무를 제대로 익히지도 못한 나 하나 이기지 못하면서 네놈들이 우리 스승님을 이기겠다는 말이냐? 무량대수의 군대를 꾸려가서 덤벼도 스승님께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할 것이다!"


 "이... 어리석은...!"


 노인의 분노는 한계에 달하여 이미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했다. 처음에는 생포한 뒤 정보를 전부 캐내고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런 계획이 무색하게 노인은 소협을 감싸고 있는 실을 잡아 당겼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간단히 잡아 당기는 것만으로도 베여서 산산조각이 났을 정도로 노인은 실은 천잠사에 가까울 정도의 강력한 실이었다. 그러나 소협은 마치 바위와도 같이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노인은 당황하여 실에 흘려보내는 마나의 양을 급격히 올렸다.

 

 그러나 소협은 베이기는 커녕 천천히 팔을 움직여 단전에 손을 모으고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무슨... 괴물 같은 놈! 베이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그 실에 묶인 채로 몸을 움직이고 있다고!'


 노인은 급박하게 소리쳤다.


 "쳐라!"


 순식간에 나무 위에서 실의 설치를 도운 다른 고용인들이 튀어나와 소협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고용인들의 공격이 닿기 직전 한참동안 정신을 집중하던 소협은 이렇게 소리를 치며 몸에서 기를 뿜어냈다.


 "발!"


 순식간에 뿜어져 나온 기에 달려들던 고용인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으며 소협을 감싸고 있던 실은 끊어졌다.


 "흠... 너무 심했나?"


 소협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가 떨어진 고용인의 대부분은 기절해 있었으며 한 명 정도가 겨우 몸을 가누고 있었다. 노인은 기를 맞고 더 먼 곳으로 날아갔지만 왼팔을 부여잡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흐음... 출력을 조절했다고는 하지만 화산폭공(火山爆功)을 맞고도 몸을 일으킬 수 있다니. 귀족가의 호위 겸 고용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듯하군."


 "닥... 쳐라..."


 노인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천천히 소협을 향해 다가왔다.


 "... 기고만장한 실력은 되는 것 같구나."


 "칭찬 고맙소."


 그렇게 말하는 소협을 노려보며 노인은 싱클레어가의 사람들을 전부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모셔온 도련님, 아가씨들. 집안의 충성스러운 집사들과 하녀들. 그리고 돌아가신 가주님.


 '... 이 늙은이는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부디 이 싱클레어가에 가호가 있기를...'


 그렇게 생각한 노인은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전부 끌어올려 모으기 시작했다. 노인이 그렇게 해서 모은 마나는 그 일대를 지우는 것은 우습게 가능할 정도의 마나의 양이었다. 


 "싱클레어의 안전의 위협하는 모든 것은 배제하고 가문을 지키는 것이 집사의 일! 이 알버트 윌리엄스! 그 책무를 이 자리에서 다하겠다!"


 "!"


 소협은 그렇게 외치는 노인을 보고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그 위험도를 소협은 가늠하기 힘들었다. 마나와 기. 엄연히 다른 중원과 나마의 힘을 알아보는 것은 서로에게 힘든 일이었다. 소협은 스승님이 알려주셨던 마나의 특성과 이를 대비하는 법을 떠올리고자 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노야의 힘을 보아 그럴 겨를은 없어보였다. 

 

 소협은 미지의 힘을 그대로 받아내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해 빠르게 경공술로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노인은 동귀어진의 각오를 한 채로 이미 공격을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소협은 뛰어오르고 노인이 기술을 쓰려는 그 순간, 한 여인의 날카로운 외침이 날아들었다.


 "그만! 전부 멈춰!"


 그 외침과 함께 노인의 공격은 순식간에 멈추었다. 외침이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에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금발 배수와 흑색 장발의 단아한 용모의 여인이 들어왔다. 뛰어올랐던 소협 또한 그 여인을 쳐다보았다. 중원의 기준과는 조금 다를 지는 몰라도 확실한 미녀인 한 여인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당당하고 냉철한 눈빛으로 소협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까지다. 알버트. 그 마법으로 저택까지 죄다 날려버릴 생각인거냐?"


 아연실색한 기색이 완연한 노인은 힘빠진 목소리로 그 말에 대답했다.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가주님."


 그 말을 들은 소협을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 가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