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가주라고?"


 소협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치자 가주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왜. 내가 가주라는 사실에 불만이 있나?"


 얼음장과 같은 시선과 말에 소협은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소협은 올라갔던 나무에서 빠르게 내려와 가주의 앞에 서서 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기분 나쁘게 해드릴 의도는 없었습니다. 부디 결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사죄를 하는 소협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가주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알버트를 향해 걸어갔다.


 "이게 무슨 난장판인지 설명할 수 있겠어? 알버트?"


 "가주님... 저 동인이 가주님을 뵙고 싶다고 하면서 자신의 태산의 제자라고 칭하여서..."


 "태산의 제자라고...?"


 그렇게 말하는 가주의 얼굴은 더 심하게 굳어갔다. 그 굳어가는 얼굴과 함께 점점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깬 것은 금발 배수의 한마디 외침이었다.


 "뭐? 태산 아저씨의 제자라고? 뭐야, 그런거면 정중하게 모셨어야지. 알버트. 나이 먹더니 적하고 아군도 구분하지 못하게 된거야?"


 "도련님..."


 금발 배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협을 향해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네가 그 태산 아저씨의 제자였다니. 자기 소개가 늦었네. 나는 아서 싱클레어. 이 가문의 장남이야."


 소협은 그렇게 내미는 손을 조심히 잡고는 인사했다.


 "소인은 천표하라고 합니다."


 "특이한 이름이네. 하긴 태산 아저씨 이름도 뜻이 무식하게 큰 산이라는 뜻이라고 했었나."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웃은 아서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가주를 향해 말했다.


 "누나. 정말로 바보같이 그 태산 아저씨가 아버지를 습격했다고 믿는 거야? 그 아저씨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누나도 알잖아?"


 그렇게 말하는 아서를 바라보며 가주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아서. 예전부터 감정적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고 계속 말했을 텐데 여전하구나."


 "그럼 태산 아저씨가 아버지를 습격했다는 증거도 없이 동인이라고 죄다 미워하는 우리 집 사람들의 행태는 이성적인 행동이고?"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는 아서를 본 가주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저택을 방향으로 걸어나가면서 얘기했다.


 "알버트는 쓰러진 고용인들을 깨워서 옮겨놓도록 해. 아서. 너는  저 시꺼먼 동인을 데리고 가서 하인들 목욕장에 가서 좀 씻겨. 오랫동안 배를 타서 그런지 소금 냄새가 잔뜩 나는군."


 그 말은 마친 가주는 저택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분부대로."


 "하... 정말이지. 예전에는 저렇게 딱딱한 성격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미안. 손님이 왔는데 대접이 이러니."


 "아니오. 이렇게 일을 소란스럽게 만든 소인의 잘못이 큽니다. 대공자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저잣거리에서 범한 결례도 부디..."


 그렇게 말하는 소협의 말에 아서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러 말을 끊었다.


 "그... 그 일은 되도록이면 언급하지 말아줄래? 내가 그런 짓을 했다는 걸 누나 손에 죽을 게 분명하거든..."


 그렇게 말한 아서는 표하의 손을 잡아끌어 빠르게 저택의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싱클레어의 저택은 확실히 중원에서도 보지못한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중 소협은 사용인들이 사용하는 목욕장으로 향해 적삼을 벗고 씻을 준비를 했다. 그곳에 뒤따라 들어간 아서는 그 몸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바위와도 같이 단단한 그의 몸 위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상처가 나있었다. 


 "흐음... 장난이 아닌데? 당신 나이가 얼마지?"


 "약관입니다."


 "...? 아니 그러니까. 몇 살이냐고."


 "그러니까 약관입니다."


 아서는 약간 어지럽다는 듯이 머리를 짚고는 기억을 더듬어 무언가를 생각해낸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태산 아저씨도 처음에 나이를 물었을 때, 묘한 소리를 했었는데. 분명 중원에서는 이상한 단어로 나이를 대체하는 법이 있다고 했나. 분명... 약관이 스무 살이었던가."


 "그렇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스무 살이라고 하면 되잖아."


 "죄송하군요. 아직 나마의 문화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는 소협을 바라보며 아서는 물었다.


 "그럼 그 익숙하지도 않은 나마에는 왜 온 거야?"


  왜 이 나마 땅에 온 것인가. 그 질문은 나마 땅에 오기 전에 스승님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런데 네놈. 만약 누군가가 나마에 온 이유가 뭐냐고 그 곳 사람들이 물으면 무어라고 대답할 것이냐?"


 "그거야. 뿌리를 찾으려고..."


 그렇게 말하는 소협의 말에 스승은 크게 혀를 차며 말했다.


 "멍청한 놈. 내가 네놈한테 딱히 학문을 가르친 기억을 없다만 그런 반푼이로 키운 기억도 없다."


 "무슨 소리이신지..."


 "네놈이 그렇게 말해도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만약에 네놈의 근간이 무언가 위험한 가문이나 인물과 연관되어 있어서 알아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어쩔 것이냐? 네가 하는 그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고 말했을 만한 정보를 꽁꽁 숨기게 될지도 모른단 말이다. 정말로 네놈의 근간을 찾고 싶다면, 누구한테 그것을 말해도 될 것인지 정도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그럼 거짓으로 기만술을 펼치라는 말씀이십니까?"


 스승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는 말했다.


 "정파 놈들도 기만술 정도는 능히 쓰는 것인데 네놈은 무슨 부처라도 되는 양 말하는 구나. 적당히 새로운 힘을 얻고 싶어서 왔다거나 하는 말로 둘러대면 되는 간단한 이야기 아니더냐? 사파라는 놈이 어찌 이렇게 앞뒤가 꽉꽉 막혔는지..."


 그렇게 말하는 스승의 얼굴을 떠올리며 소협의 천천히 몸을 씻으며 입을 열었다.


 "... 나마 땅에는 새로운 재주가 있다고 해서 그에 대해서 알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 역시 그런건가. 태산아저씨도 마법에 대해서 연구하겠다고 자주 들락날락하곤 했었지. 그런 목적이면 잘 왔어. 싱클레어가는 브리테인 뿐만이 아니라 나마 안에서도 손 꼽히는 마법사 집안이거든."


 "... 잘 됐군요."


 소협은 그렇게 대답하며 아서를 쳐다보았다.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이 남자는 전형적인 서인 미남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원시원하게 생긴 얼굴은 방금의 대화가 즐거웠는 듯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그 얼굴에는 어딘가 알 수 없는 어둠을 가지고 있었다. 소협은 아까 저잣거리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 이유 모를 어둠이 그런 짓을 하게 한 것일까.

 

 소협은 그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아서에게 물었다.


 "... 돈도 많고 유복한 집에서 사는 공자께서 어쩌다가 배수 일에 손을 대신 것입니까?"


 그 질문에 크게 놀란 듯 아서는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거 조금 부끄럽네. 그건 조금의 일탈 같은 거야. 저택에만 갇혀있으면 답답하거든."


 "그래서 하는 짓이 민초들의 주머니를 터는 짓이란 말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소협을 보며 아서는 다시 한번 크게 웃고는 말했다.


 "당신. 진짜로 그 태산 아저씨의 제자인거야? 태산 아저씨는 진짜로 자유롭게 사시는 분이었는데 당신은 조금 딱딱한 느낌이네."


 "... 일단은 강호인이니까."


 "나랑 내 친구는 무조건 나쁜 놈들을 표적으로 하거든. 나쁜 녀석들의 돈을 털어서 가끔씩 저택에 오는 거지들한테 돈을 나눠주곤 하지. 그건 좋은 일에 가깝잖아?"


  그 말을 들은 소협은 고개를 돌려 아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공자께선 내가 처음 봤을 때부터 나쁜 놈으로 보였단 말입니까?"


 "아. 음... 그건... 하. 이거 뭔가 미안한데. 아니. 그런 묘한 모자에 온통 새까만 옷을 입은 채로 칼을 찬 동인이 걸어다니면 누가봐도 나쁜 놈으로 보인단 말이지."


 "공자께선 좀 더 사람 보는 눈을 길러야겠군요."


 그 말을 들은 아서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 말이라면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감흥이 없네. 알버트도, 베르니스 누나도, 아버지도 그 말을 자주 하셨거든."


 그렇게 말한 아서는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밖에 기다릴테니까 천천히 씻고 나와. 나오면 누나가 있는 방까지 데려다 줄게."


 "저도 다 마쳐가니 길게 안 기다려 될 겁니다 ."


 그렇게 말한 소협은 온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씻고 나와 여분의 적삼으로 갈아입고 밖에 있는 아서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친구분은 괜찮으십니까?"


 "음? 아. 패스터 녀석 말인가? 그 녀석은 원래부터 재빠른 놈이라서 말이지. 특별한 상처는 없던데?"


 "흠. 다행이군요. 그 벽력탄 정통으로 맞았더라면 팔 하나 정도는 아작 났을 텐데."


 그걸 들은 아서는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시장에서는 분명 잘해봐야 기절할 정도라고 하지 않았나?"


 "적들을 분노하게 해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면 열에 아홉은 저와 싸울 생각은 안하고 그쪽으로 달려가더군요."


 "으음... 그런 걸 보면 영락 없이 태산 아저씨 제자네."


 그 둘은 한참동안  복도를 걸어서  가주의 방으로 향했다. 가주의 방은 항상 스승님이 묘사하고 했던 귀족의 방과 똑 닮아 있었다. 그 방의 한 의자에 흰색의 편해보이는 복장을 한 채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차가우면서도 기품이 있어서 어찌하여 아서가 아니라 그녀가 가주가 되었는지를 소협이 단숨에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앉아."


 그렇게 말하며 가주는 눈 앞의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소협은 그 말을 따랐다. 


 "아서는 잠시 나가 있어 손님하고 둘이서만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알았어."


 아서가 그렇게 말하고 물을 닫고 방을 나서자 가주는 손을 턱에 괴고 소협을 한참을 노려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길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 지금 우리 사이에 필요한 것은 신뢰. 그 정도는 이해하고 있겠지."


 소협은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통해서 좋네. 그럼 바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만한 일거리를 줄게."


 그렇게 만한 그녀는 책상 위의 지도를 그에게 전해주었다. 


 "이건?"


 "산적들이 살고 있는 동굴의 위치야. 최근 이 근처에서 사람들을 습격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우두머리가 불명예스럽게 제명당한 기사라는 소문이 있더군."


 "기사..."


 소협은 스승이 알려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기사. 불이탄에서 시작한 그 제도는 힘이 있는 무인들을 나라에서 거두어 직위를 주고 그들에게 의무와 혜택을 같이 준다. 그 종류와 수는 다양해 각기 다른 책무와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왠만한 평범한 사람들은 정식 기사 서임까지 받은 이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산적들은 이 근처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그들은 몰아내면 싱클레어의 명성도 높아지겠지."


 "직접 처리하시지 않은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그 말에 가주는 얼어붙을 듯한 눈으로 당신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그런 멍청이들한테 겁먹어서 손을 대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 죄송합니다."


 가주는 차가운 시선을 거두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무언가 답답한 마음이 담겨있는 듯 했다.


 "싱클레어가의 여성은 적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 그 힘을 마음대로 쓸 수 없어.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전대의 가주님이 돌아가시고 분가에 불과한 이 집의 위세를 크게 줄어들어 힘을 쓸만한 사람은 나이든 알버트 정도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지."


 그렇게 말하고는 가주는 몸을 일으키고 소협을 바라봤다.


 "그런 시기에 네가 왔지. 태산의 제자라는 네가. 만약에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너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그 무엇이라도 내주겠다."


 "... 약조하신 겁니다."


 이런 약속이 가주의 방에서 오고 가는 사이, 산적단의 산채는 방금 재녹구로 들어오던 수송 마차를 털어서 수많은 재물을 얻고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연회의 중간에 앉아 조용히 술을 들이키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를 큰 덩치의 사내가 꽉 움켜지고는 소리쳤다.


 "대장! 뭘 그렇게 쓸쓸한 얼굴로 앉아 있는 거요? 이렇게 크게 턴 날에는 좀 더 기뻐하며 마셔도 좋소."


 대장이라고 불린 사내는 조용히 말했다.


 "테디. 괜히 나를 귀찮게 하면 베어버린다고 했을텐데."


 언제 뽑은 것인지 모를 검이 이미 곰과 같이 커다란 사내의 목에 들어가 있었다.


 "허허. 대장은 농담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참 재미가 없단 말이오."


 그렇게 웃는 사내는 땅에 그를 내려놓았다.


 그때, 산채의 입구가 갑자기 시끄러워지고 얼마 안 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산채의 입구에서는 외침이 한 마디 들려왔다.


 "나는 자유기사 세드릭 밀러다! 산적놈들은 당장 나와 내 검을 받아라!"


 그런 외침을 들은 거구의 사내는 가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또 주제도 모르는 애송이가 덤비러 왔는 모양이구만. 대장. 내가 나가서 금방..."


 "가만히 있어라."


 "... 기사라서 그러쇼?"


 "내가 행동할 때 네놈한테 이유를 일일히 말해야 하는 입장이던가?"


 "아휴. 멋대로 하슈. 어차피 대장이 나가면 눈 깜짝할 새에 끝날 거니."


 그 말을 들으며 사내는 검을 뽑으며 천천히 산채의 입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