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경공술로 빠르게 빛을 향해 달렸음에도 소협이 빛의 기둥을 본 위치에서 산채는 삼십오 리(각주: 약 14km)나 떨어져 있었기에 경공술로 달려갔음에도 일 각(각주: 15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도착한 산채의 입구에 다다른 소협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흩뿌려져 있는 피들과 수습되지 않은 산적으로 보이는 시체들. 그리고 그 섬뜩한 광경 한 가운데에서 떨어져 있는 잘려나간 팔이 보였다. 소협은 잘려나간 팔을 들어올려서 살펴보았다. 


 '주변의 산적들이 하고 있는 무장과는 다른 나마 땅의 갑옷의 팔 부분인 것을 보아하니 이 팔의 주인은 적어도 산적들과 우호적인 관계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소협은 팔이 떨어진 곳의 주변을 살펴봤다. 빛의 기둥이 솟아오르고 있는 자리에서 근처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아 이 팔의 주인은 아마 이 팔이 날아가고 나서 무언가 임시방편의 요술을 써서 달아났을 것이라는 사실을 소협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챈 후 소협은 팔의 단면을 살펴보았다.


 '깔끔하군. 무쇠로 만든 갑옷을 입은 상대의 팔을 이렇게 단칼에 취하다니. 평범한 산적 두령의 실력이라기에는 역시 과하군.'


 그렇게 생각한 소협은 자신의 눈 앞에서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는 빛 기둥을 올려다보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이 요술이 어느 수준의 요술인지는 잘 알지 못하나. 확실한 건 이 팔의 주인은 아마 기사였을 것이고 상당히 요술의 귀재였을 것이다. 그런 자를 이렇게 손 쉽게 이겨낼 정도의 검술이라...'


 소협은 그렇게 생각하고 팔을 그 자리에 내려놓고 산채의 안으로 발을 옮겼다. 원래부터 동굴이었던 곳을 깎아내 산채로 개조한 티가 나는 곳을 걸어 들어가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잔치라도 열었는 듯 잔과 병이 바닥에 어지러져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기척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가장 안쪽의 방을 들어갈 때까지 소협은 무기나 보물조차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이미 자리를 뜬 건가..."


 자리를 빠르게 뜬 이유는 아마 산채 입구에 솟아오른 빛의 기둥 때문일 것이라고 소협은 짐작했다. 아마 기사들이 이 산채를 덮칠 것을 예상해 물건을 들고 도망친 것이겠지. 


 '역시 평범한 산적 두목의 그릇이 아니다.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만하지 않고 단체의 생존을 위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결단을 내렸다. 산적단의 규모가 그다지 작지 않다고 들었는데 일 각만에 장물을 전부 챙겨서 달아난 점만 보아도 이 산적단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산적의 두령에 대한 평가를 내리며 소협은 방을 나서기 전 저택에서 가주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럼 저는 당장 그 산적들을 치러 가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서려는 소협을 가주가 불러세웠다.


 "잠깐. 가기 전에 그 두목이라는 전직 기사에 대해 알려줘야 할 것이 있어." 


 소협이 뒤를 돌아 가주를 바라보자 가주는 말을 이어나갔다.


 "전직 기사. 호영. 심상치 않은 실력자야. 솔직히 산적 두목이나 하고 있을 실력의 남자는 아니지."


 그 말을 들은 소협의 의아하다는 투로 물었다.


 "이상하군요. 분명 이 나라의 기사들은 부와 명예를 보장받는다고 알고 있는데 그 자는 왜 산적이 된 것입니까?"


 그 질문에 가주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명예라. 그 자는 그 명예를 자기 손으로 버리고 기사 자리에서 박차고 나온 케이스야. 원래부터 부는 신경도 쓰지 않던 사람이고."


 "상당히 자세히 알고 계시는 군요."


 "그는 포악한 성격 때문에 유명했으니까. 몇 번 정도 수도에서 그가 검을 쓰는 모습을 보기도 했지. 검을 눕힌 채로 빠르게 휘두르는 검이었는데 그런 검술은 로마에서 본 기억이 없어 분명..."


 "중원의 무공... 해남파의 검인가...?"


 그렇게 말하는 소협을 가르키며 가주는 말했다.


 "그래. 옷도 당신과 같은 양식이었고 차고 다니는 검도 브리태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물건이었으니까 동인은 아니더라도 그곳의 무술을 배웠다는 사실은 확실하겠지."


 그렇게 말한 가주는 벌떡 일어나며 단호히 말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을 중원에서 온 당신한테 맡기는 거야. 해낼 수 있겠지?"


 "... 물론입니다."


 그 확신에 찬 대답을 한 순간을 떠올리며 소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전직 기사는 이미 이 산채에서 달아났고 어쩌면 이 지역에서 아예 벗어나 달아났을 지도 모른다. 


 '산적을 몰아낸다는 점에서는 이미 임무는 성공이라고 봐도 되겠군. 하지만 이대로 저택으로 돌아간다면 가주의 신용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빠르게 뒤쫓아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소협이 산채를 나서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그 순간, 산채의 입구 쪽에서 무거운 쇠가 절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소협 쪽으로 가까워져 왔다.


 '발소리다. 셋... 아니. 넷이다."


 가까워지는 발소리는 중간에서 나뉘어져 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방을 서로 흩어져 찾는 것처럼 보이는 발자국 소리는 하나씩 소협이 있는 방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단 하나의 발소리가 멈추지 않고 소협이 있는 방을 향해 걸어왔다. 

 

 그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다 소협이 있는 방의 입구에서 멈췄다. 방의 입구에 있던 빨간 색 암막을 뜯어버리고는 들어온 자는 인상적인 검은 색 갑주를 입은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나마의 중갑과도 괴리가 있는 갑옷 곳곳에 삐죽삐죽한 가시가 솟아있는 기이한 갑주를 입은 기사는 분노로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한 거냐?"


 자골한풍(각주: 벼를 깎는 차가운 바람)과도 같은 싸늘함이 느껴지는 그 한마디에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적개심이 강하게 느껴졌다. 소협은 말이 통하지 않을 상대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항복의 의사를 표하기 위해  빠르게 품 안의 검을 집어 땅에 떨어트렸다.


 그걸 본 검은 갑주의 기사는 잠시 조용해지더니 이윽고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며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검 없이도 나 같은 건 쓰러트릴 수 있다는 거냐? 쳐 죽일 놈..."


 소협이 그 의외의 반응에 놀라서 말 한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검은 기사는 등에 매고 있던 기이하게 생긴 대검을 꺼내들어 소협에게 휘둘렀다. 인간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울 정도로 거칠고 빠르게 공격하는 기사의 공격에 소협을 크게 놀라며 간신히 공격을 피해냈다. 200근(각주: 약 120kg)은 족히 되어보이는 대검을 마치 깃털처럼 휘두르는 무시무시한 무위를 보며 소협은 급히 소리쳤다.


 "잠깐 멈추시오! 이건 뭔가 큰 오해 있는 것이오! 나는 이 산채의 두령이 아니..."


 그런 소협의 외침은 검은 기사에게 들리지 않는 듯 공격은 전혀 멈추지 않은 채 점점 거세져 갔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상대하는 듯한 느낌을 느끼며 쏟아지는 무거운 검격을 피하던 소협은 방의 입구로 도망치기 위해 뛰어올랐다. 그 모습을 본 검은 갑주의 기사는 인간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괴성을 내지르고는 뛰어올라 소협의 다리를 붙잡았다.


 "?!"


 공중에서 다리를 붙잡힌 소협은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땅에 메다 꽂혔다.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에 기를 집중하지 못한 소협은 격통을 느꼈다. 기사는 그런 소협에게 숨을 고를 틈도 주지 않고 그를 휘둘러 입구 반대편의 동굴 벽에 소협을 던져서 꽂아버렸다.


 동굴 벽에 꽂힌 소협은 다시 한번 괴성을 내지르고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뛰어오며 횡베기를 날리는 찰나의 순간 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앞 뒤 가리지 않고 막강한 힘만 믿고 거친 공격을 휘두르는 이들에게 쓰기 좋은 공격 말씀이십니까?"


 "그래. 말해보거라"


 소협은 너무나도 당연한 물음에 의아해 하며 대답했다.


 "그거야 용소격(聳沼擊) 아닙니까."


 "그럼 그 용소격은 어떻게 쓰는 것이냐?"


 "그건..."


 소협은 날아오는 대검을 쳐다보며 그 방법을 되새겼다.


 '우선 그 공격을 흘려냅니다. 마치 물에 주먹질을 한 것마냥 공격이 빨려들어가듯 그 위세를 잡아 먹는 것입니다.'


 소협은 무시무시한 횡베기를 부드럽게 흘려내며 그 위세를 자신의 힘으로 삼았다. 마치 물에 빨려들어가는듯한 느낌에 야수와 같이 멈추지 않고 공격하던 검은 기사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 다음에는 그 위세를 그대로 몸으로 타고 흘려서 힘을 발하고자 하는 부위에 집중 시킵니다.'


 그 무시무시한 힘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옮겨서 집중시켰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위기 감을 느낀 기사는 공격을 피하려고 했지만 마치 깊은 물에 빠진 듯 몸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발해서 더 큰 공격을 날리는 그것이 바로...'


 "천리 용소격!"


 검은 기사의 가슴팍에 강렬한 위세의 공격이 날아들고 검은 기사는 방의 입구를 향해 날아가 나가 떨어졌다. 200근 대검의 강렬한 횡베기와 소협의 기공을 담은 용소격에 괴수와도 같던 검은 기사도 바닥에서 뒹굴며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나가떨어진 검은 기사의 앞에는 다른 기사들이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가 떨어진 검은 기사를 보며 밝은 갈색 머리의 남자 기사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어? 뭐야? 두목 쪽이 아니라 아도니스씨? 뭐야? 응? 어?"


 그렇게 과하게 놀라는  젊은 기사의 옆에서 지천명(각주 : 50세)의 나이 정도로 보이는 백발의 노기사가 말했다.


 "폭주하는 아도니스를 이렇게 제압했다니. 호영 그 녀석 실력을 더 키운 건가."


 그 뒤에서 서 있는 과묵하고 몸집이 커다란 실눈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들도 가세해야 할 것 같군요. 아도니스씨가 날뛰다가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좋다. 히브. 들어가서 적을 교란 시켜라. 루. 뒤에서 지원 부탁하지. 내가 중간에서 공격과 조율을 맡는다."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말한 기사들이 소협이 있는 방으로 들어와 소협을 바라보며 공격을 위한 자세를 잡자 소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나는 여기의 두령이 아니오."


 "우리가 본 산적 두목들 중에서 그 말은 하는 멍청이가 도대체 얼마나 많았는 지 알아?"


 밝은 갈색 머리의 젊은 기사가 비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호영이 아니오. 그 자는 이미 자신의 부하들과 이곳을 떴소."


 "그 딱딱하고 이상한 말투를 쓰는 놈은 동인의 기묘한 지식을 배운 호영 외에는 이 제노르크(각주 : 재녹구의 원래 발음)에 없지."


 노기사가 단호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소협은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정말 그 호영이라는 자라면 나 혼자 여기에 왜 남았단 말이오?"


 "그거야 호영이라는 자는 자기 실력에 대한 과신으로 똘똘 뭉친 건방진 인간이니까. 여기에 남은 건 우리를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겠지. 거기에다가 네놈이 이 산적 무리를 조직한 이유도 기사들을 죽이고 이 나라를 뒤집기 위함이었으니 우리랑 싸우려고 한 것도 당연한 일이고."


 소협은 그렇게 말하는 실눈의 사내의 말에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놀라면서 이들이 자신을 완전히 호영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협은 어쩔 수 없이 싱클레어에게 자신이 의뢰를 받았다는 사실과 이때까지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기사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그 웃음 속에서 밝은 갈색 머리의 기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싱클레어의 가주를 지금 동인이 죽였다는 소문이 이 로마 전역에 소문으로 퍼진데다가 싱클레어도 그 동인을 죽이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데 싱클레어한테 의뢰를 받았다고? 그걸 지금 거짓말이라고 하는거냐?"


 그렇게 말한 기사는 자지러지듯이 웃다가 겨우 진정하고 자세를 잡은 채로 소협을 쳐다봤다. 나머지 기사들도 각자 자세를 잡았다. 바깥에서 쓰러져 있던 검은 갑주의 기사도 네 발로 방으로 다시 뛰어 들어왔다. 그걸 본 갈색 머리 기사는 질겁한 표정으로 말했다.


 "로버트씨이이... 아도니스씨 상태가 심상치 않은 데요? 이거 괜찮은 거 맞죠?"


 그렇게 말하는 기사를 쳐다보지도 않고 로버트라고 불린 노기사는 소협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그걸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보다 눈 앞의 적에게 집중해라. 상대는 아도니스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다.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이해했나. 히브?"


 그 말을 들은 옅은 갈색 머리의 기사는 그 말을 듣고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짓고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으르르르르릉..."


 검은 갑주의 기사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방 안에서 울려퍼졌다. 로버트가 공격 신호를 내리려고 준비를 하고 소협 또한 그 공격에 대비하려는 순간, 갑자기 대치하고 있는 그 둘의 중간에서 파란색 빛이 뿜어져 나오며 공중에서 마법진이 떠올랐다. 


 "전송 마법...! 히브! 달아나지 못하게 달려들어라!"


 "네!"


 그 말을 듣고 기사는 주문을 외쳤다.


 "패스테 - 베라!"


  검은 갑주의 기사는 당장이라도 튀어올라서 소협을 덮칠 준비를 했고, 실눈의 사내는 오른쪽은 손을 앞으로 내밀고 왼쪽 손을 가슴 위에 내민 채로 무언가를 준비하려는 태세였다. 노기사는 여전히 소협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전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럼 갑니다!"


 히브의 그 외침과 함께 소협과 기사들이 충돌하려는 그 순간 마법진에서 나오는 빛이 더 강해지더니 그곳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그곳에서 떨어진 것은 바로 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