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누가 내가 쓴 소설 읽어보고 싶다고 해서(고어 로맨스를 보여줄 순 없으니..)

전에 쓴 걸 새로 정리한 김에 업로드




 

 이 달을 보는 곳


 

 

 경험 상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사실을 밝히면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얼음을 부은 것처럼 숙연해지는 경우다. 직전까지 술자리를 유쾌하게 끌어가던 타입이 그럴 때가 많은데, 흥이 너무 올라 조용해지는 그 잠깐을 견디지 못하고 구석에서 대충 잔을 훌쩍이던 내게 질문을 던지고 마는 것이다. 어쩌다 대학에 한 발 늦게 들어왔냐고. 그러면 나는 구태여 거짓말까지 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솔직하게 말한다. “얼마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요.”


 내 딴에는 당황하지 않도록 최대한 평탄하게 말하는데 듣고서 어쩔 줄을 몰라 할 때가 꽤 있다. 대부분 아직 신입생들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키도 크고 몸집이 좀 큰 편이라 그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지어는 듣고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여자도 있었다.(진짜다.) 나에게 그런 반응을 위트 있게 수습하는 능력은 없고 분위기는 심연 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두 번째는 반 쯤 무시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경우다. 좀 위태로운 경우도 있지만 “뭐어, 그럴 수도 있지.” 또 “요새는 정신과 치료도 외과랑 다를 게 없다면서.” 나처럼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 있다는 사촌의 친구의 엄마 친구까지 등장하고선 "소주나 한 잔 받아라." 하면서 쉽게 쉽게 넘어간다. 나도 이쪽이 편하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다음 날 내가 한 말이 온갖 곳에 퍼져있는데 출처를 짚어보면 항상 바로 그 넘어갔던 사람이라는 점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드물게 이 두 가지 경우에 속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면전에서 대놓고 “으, 뭐야. 너 좀 이상한 거 아니야?”하고 질색한 여자가 있었다. 나중에 그 애는 내 첫 번째 여자친구가 되었다. 애인이 아니라 그냥 최초로 여자인 친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걔는 레즈비언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 중에서도 극단적인 경우고, 아무튼 이 드문 타입의 사람들은 어쨌든 순진하게 입원 사유를 궁금해 하거나 정신병원이 실제로 어떤 곳인지 물어보곤 한다. 정말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그런 타입들은 친해지고 나면 다른 장소에서도 좀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하철에서 처음 보는 여자 앞에서 “와, 진짜 저 여자 예쁘지 않냐.”하고 다 들리는 줄도 모르고 말한다거나. 이 경우는 사실상 방백이다.


 하지만 내가 친해지는 건 어쩐지 이 마지막 경우일 때가 대부분이다. 나는 걔네들의 그런 점이 싫지만, 좋기도 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건 내가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성공적으로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케이스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들'은 술자리에서 대화를 계속한다.


 그래서 정신병원 생활은 어땠어? 좀 들려줘 봐라.

 

 그러면 나는 늘 곰곰이 새로 생각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병동생활이라는 건 기대와는 달리 그리 특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특별하지는 않다. 하지만 굳이 나와 얘기하려는 괴짜들 혹은 예비 친구들은 가만히 기다리고 나는 좀 더 생각해본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약간씩은 다르지만 보통은 내가 쓰게 된 공동 병실에서 시작하게 된다.


 302호실은 침대 세 개가 널찍하게 놓여있는 회색조의 병실이다. 옆방이 바로 관리실이었다. 다른 병실과 똑같이 복도 쪽의 창문은 가릴 수 없게 되어있고 출입문 옆에는 식단표와 매주 일정이 반듯하게 짧은 테이프로 붙여져 있다. (가장 안 쪽 침대를 쓰는 남자가 매일마다 테이프를 새로 붙였다.) 그리고 문을 열면 언제나 엷게 낡은 책 냄새가 떠도는데 그건 문청 씨의 침대 옆에 늘 낡은 책들이 쌓여있기 때문이었다.

 

 문청 씨?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문청 씨는 윗머리가 아주 살짝 벗겨진 30대 후반의 남자로 ‘문청’은 본명이 아니라 ‘문학청년’의 줄임말이다. 사실 문청 씨는 안쓰러울 정도로 비쩍 마른데다, 청년이냐 중년이냐고 한다면 아무래도 중년에 가깝게 느껴지곤 했지만, 다들 문청 씨라고 부르곤 했다.


 중앙 침대가 그의 것이고 문 앞에 있는 침대를 내가 쓰게 되었다. 가장 안 쪽에 있던 사람은 자기 이름이 요한이라고 했는데, 매일 잠만 자는 사람이어서 나도 마지막까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가끔 말없이 먹을 것도 주고 착하긴 했다.


 다시 돌아와 호칭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문청 씨는 늘 주위에 책을 두르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것도 대부분 종이가 누렇게 뜬 오래된 책들이었다. 내가 병실에 도착한 날에도 문청 씨는 책을 펴들고 얼굴을 가까이 붙인 채 침대 위에 양반 다리로 앉아 있었다. 그게 문청 씨의 기본 자세였다. 얼굴을 종이에 완전히 가까이 붙인 채 허리를 꼿꼿이 편 자세.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지만 함께 들어와 내 소개를 마친 간호사가 돌아가 버리자 나는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할 일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아직 약기운에 취해있었던 것 같다. 병원에 오고서 나는 이틀 동안 독방을 쓰면서 치료를 받았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먹는 약이 꽤 독했었다.


 아마 30분 정도 그대로 침대 위에 앉아 있는데 문청 씨가 내게 다가왔다. 여전히 얼굴 앞에 책을 펼친 채로 걸어왔는데 앞은 어떻게 보는지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내 펼친 다리 앞에 서서 말을 했는데, 앙상한 몸에 비해 지나치게 굵은 목소리는 둘째 치고


 “자네 박제가 된 천재를 알고 있나?”

 “네?”


 나는 물론 어리둥절했다. 문청 씨는 그제야 처음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이상 말일세. 이상. 자랑스런 문학가 이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어본 걸세.”


 나야……. 나는 눈알을 굴리다가 두어 번 깜빡였던 것 같다.

 문청 씨는 내 반응을 보더니 본인도 살짝 긴장했었는지 슬쩍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거 원. 젊은 청년이 돌아와서 기대했는데 안 되겠구만. 세코날에 반쯤 절어있어.”


 그리고 그가 불쑥 손을 내밀어서 우리는 악수를 했다. 으음, 그 때 꽤 오랫동안 손을 흔들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손을 쥔 채 가만히 있었고 서로 뺄 타이밍을 재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손을 쥔 채 한동안 침묵 속에서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봤다.


 “아아, 그렇지.”


 문청 씨는 갑자기 돌아서더니 허둥지둥 침대로 돌아가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이상의 단편집이었는데 낡았고 별로 무겁지는 않았다. “그래, 이걸 두어 번 읽어보라는 말일세.” 책을 내 손에 쥐어 준 문청 씨는 괜한 헛기침을 하면서 자기 침대로 돌아갔다. 그게 문청 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병실 안은 늘 무척이나 따뜻했다. 벽에 걸려있는 것 외에도 침대 맡에 커다란 스틱형 온풍기가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던 게 기억이 난다. 콘센트를 뺄 수 없는 안전한 물건이었다-다른 병동들과 다른 정신과 병동의 특징이라면 모든 게 안전하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뭉툭하고, 찌르거나 매달거나 삼키거나 묶거나 그을만한 것이 별로 없다. 샤워기도 천장에 매달려 쏟아지는 형태만 쓴다. 뭐, 그냥 그렇다는 애기다. 나는 그런 병실에서 이상의 소설책을 읽었다.


 내가 보기에 이상성님의 소설은 복불복이었다. 어떤 건 딱딱하고 잘 읽히지도 않는 반면 어떤 건 부드럽게 읽혔다. 아마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고 아니고의 차이가 아닌가 싶었다. 침대에서 책을 읽는 동안은 문청 씨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가끔 고개를 돌려보면 그도 앉은 채 자기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아니면 누워서 얼굴을 책으로 덮고 있던가.


그가 다시 얘기를 꺼낸 건 저녁을 먹고 혼자 양치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병동에는 공동 샤워실도 있지만 병실마다 작은 화장실도 달려 있었다. 거기서 씻고 있는데 문청 씨가 갑자기 벌컥 문을 열고서 물었다.


 “어때 이상에 대해 좀 생각해 봤는가?”


  나는 칫솔을 문 채로 돌아봤다. 문청 씨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고 어딘가 우스울 정도로 심각해 보였다. 그 얼굴을 가만히 마주 보다가, 나는 다시 칫솔질을 시작했다.


 “이쯤이면 <날개>는 다 읽어보지 않았는가?”

 “다음에 읽을 차례에요.”


 문청 씨는 내 얼굴을 살펴보다가 “그렇군.”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갈 때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좀 더 친해진 후에 문청 씨가 말했다.


 “나는 문학인을 만나면 늘 <날개>의 결말에 대해 질문하곤 한다네.”


 우리는 넓은 창문 너머로 쳐져 있는 안전 바 너머로 병원 주차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딘가 담배를 피워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병원 안은 금연일 뿐더러 실은 나도 문청 씨도 태어나서 담배를 피워본 적은 없었다. 가끔 문청 씨가 “아아, 글을 쓰려면 역시 담배를 피워야 하는가.”하고 괜히 읊조릴 때는 있었지만 말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많은 프리쳐(preacher)들이 그 장면을 새 희망을 향한 의지라고 말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네. 그건 좌절한 상태에서 외치고 싶은 한탄 같은 거야. 예전의 날개를 다시 달고 가짜 천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지.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이상 군과의 비밀스런 눈짓으로 알아왔다네……. 그 점을 볼 수 없다면, 결국 내 동료가 될 순 없는 게야.”


 문청 씨는 여전히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했는가?”


 나는 그냥 잠시 읽은 이야기들을 돌이켜봤다. 나는 뭐, 소설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그래도 <봉별기>를 쓴 사람이라면 굳이 희망을 찾았을 것 같진 않았다. <봉별기>는 <날개> 다음에 썼다는 이야기인데, 아내랑 헤어졌다 만났다 하는 소설로 마지막엔 완전히 헤어져서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이라면서 끝난다. 개인적으론 문청 씨가 준 소설집에서 제일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었다.


 내가 말했다.

 “모르지만, 그 사람이 별로 희망을 구했을 것 같진 않긴 하네요.”

 굳이. 라고 나는 덧붙인다. 문청 씨는 으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한참 후에 “그러고 보니.”


 문청 씨는 이어서 괜히 또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물어본다. “자네는 어쩌다가 여기 오게 된 거지? 나이도 한참 어려 보이는데.”

 나는 생각하다 그냥 솔직하게 얘기한다. 어머니 앞에서 목에다 식칼을 겨눈 적이 있었다고. 물론 내 목이다.


 “윽, 그건 좀 별론데.” 문청 씨는 여전히 창밖을 보며 질색하는 표정을 짓는다.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좀 별로죠.”

 


 나는 보통 술자리에서도 여기까지 들려주진 않는다. 그러니까 ‘내 사정’ 말이다. 그건 좀 더 친해지고 난 후다. 뿐만 아니라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계기를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친구 중에서도 드물다. 여기에도 적을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리 재미있지도 않고.

 게다가 문청 씨의 말처럼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건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니까.

 그래서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밀이 재산이라면 문청 씨는 병동 사람들 중에서도 꽤 부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와서 들은 대로라면 입원한 지 벌써 5년은 거뜬히 넘었다고 한다. 물론 의료진은 환자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문청 씨 말고 가장 오래 입원한 사람은 1년이 안됐으니 진짜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알코올 중독에 걸린 남자가 2년 전에 잠시 입원했을 때 그 때도 봤었다고 하니 일단 병동에서 가장 오래된 건 사실인가 싶었다.


 문청 씨의 병명은 알 수 없지만 겉보기에는 그리 증상이 심한 편은 아니었다. 그야 하루 종일 책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고 어쩌다가 한 번씩 뜬금없는 이상 이야기를 꺼낼 뿐이니까. 물론 밖에서도 그러면 직장 생활이야 어렵겠지만, 그래도 나는 문청 씨가 싫진 않았다. 점점 알게 되었지만 책 이야기는 그에게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았다. 알든 모르든 일단 몇 번 끝까지 들어주면 문청 씨는 속으로 '이 사람은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억지로 더 얘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청 씨는 이미 병원 사람들에겐 아주 이상한 사람, 적어도 굉장히 성가신 존재라고 도장 찍힌 모양이었다. 물론 다들 서로가 어느 정도 이상한 사람인 건 알고 있었으니 그 중에서도 이상한, 이상이상한 취급을 당했다고나 할까.


 “어쩌면 소아성애자 같은 걸지도 몰라.”

 “왜?”


 안경이 체스말을 옮기며 말했다. “음습하잖아.”


 “들어보면 이상한 책 얘기만 중얼거리고.” 내 옆에 앉아서 함께 체스를 배우던 녀석이 한 마디 거들었다.


 병동에 입원한 사람 중 갓 스무 살이 된 남자는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체스를 갖고 있어서 휴게실에 앉아 그걸 두곤 했다. (병동엔 바둑알은 안 되는데 체스말은 아슬아슬하게 통과였다. 삼키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그 중 체스를 가져온 게 바로 안경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룰을 가르쳐줬다.


 안경은 지금 생각해도 참 착한 녀석이었는데 신경이 좀 예민해서 가끔 체스판을 뒤엎어버리긴 했다.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럼 우리는 주섬주섬 체스말을 주워 담고 그러고 나서 그냥 판을 다시 이어서 둔다.


 “게이라는 소문도 있으니까 조심해.” 그런 안경이 말했다.

 “설마.”

 “원래 그런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거든.”


 거기까지 말한 안경은 갑자기 말을 싹둑 자른 것처럼 끊더니 입술을 꾹 다물었다. 우리는 체스를 계속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문청 씨는 실제로 게이인데다 아동 성애자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가끔씩 문청 씨가 흥분해서 막 내게 책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젊은 간호사가 똑똑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문청 씨, 종현 씨 너무 고생시키지는 마세요.” 살짝 난처한 미소를 지으면, 언제나 문청 씨가 얼굴이 붉게 익어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떠도는 여러 소문 중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은 어쨌든 집이 매우 부자일 거라는 추측이었다. 내가 있던 병동은 일단 대학병원 부설로 되어 있어 입원비가 비싼 편이었다. 거기다 시설도 좋다. 그런 곳에서 문청 씨는 계속 사람들 표현으로는 ‘투숙’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대기업 회장의 숨겨진 사생아라는 설도 있었다. 아무래도 그건 너무 간 듯 싶지만.

 


 그러고 보니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있던 병동은 형식 상 대학병원에 소속된 곳이었는데 그런 만큼 때때로 교수처럼 보이는 인물이 사람들을 끌고 복도를 거니는 경우도 있었다.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의 나와 별로 차이 나지 않을 것 같은 학생들이었다. 이제 막 하얀 옷을 처음 입어 본 것 같은 그들은 복도 쪽 창문 너머로 어딘가 안타까워 하면서도 느끼한 눈빛으로 우리를 지켜보고는 했었다. 남녀 모두가 그랬다.


 우리가 휴게실에 있을 때도 그랬는데, 그럴 때면 내 옆에서 체스를 두던 녀석이 갑자기 어깨를 부들부들 떨면서 의자 째로 뒤로 넘어지곤 했다. 정말이지 실감 나는 연기다. 그러면 보통 대학생들은 기겁을 하며 달려가는데 간호사에게 달려가 호출하고 난리를 피운다. 그때마다 우리는 혼났다. 하지만 나중에 모여서 다시 낄낄거리곤 했다.


 …사실 내가 있던 병동엔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심한 환자는 없었던 것 같다. 의료진들도 성의 있고 프로그램도 여럿 있긴 했지만, 치료냐 요양이냐고 한다면 요양에 기울어진 곳이 아니었을까. 의사도 내게 상담 때면 마음을 편히 먹고 스스로 문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하곤 했다. 내가 만약 직장에서 내가 번 돈으로 병원에 들어온 거라면, 마음을 편히 가지기란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비싸고 짧게 다녀가는, 그런 병동이었지만 듣기로는 문청 씨 외에도 일 년이 넘는 다른 환자들도 있었다. 주로 여자 환자들 중에서.

 여자 병실은 분리되어 2층에 있어서 밥 먹을 때나 집단 상담 같은 게 아니면 볼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친해져 볼 수도 있었다. 스무 살이 된 녀석들끼리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여자가 좀 무서웠다. 그 때도 그랬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래도 나는 이쯤해서 이어지는 말로 병동에서 본 여자 환자에 대해 얘기해준다. 다른 것보다 재밌기도 하고, 무엇보다 듣는 쪽의 시선이 (남자라는 가정 하에) 말똥말똥해지기 때문이다.


 먼저 별로 관심이 없는 내게도 눈에 띈 여자라면 40대 초반 쯤 되어 보이는 눈매가 억척스러운 아줌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히스테리 기질이 다분한 아줌마였는데 식당에서도 느닷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다. 하지만 들어보면 옆에서 옷이 쓸렸다는 둥 별 것 아닌 트집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마주 싸울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듣는 쪽은 대충 참는다.

 하지만 그럴 때면 대신 그녀의 맞상대가 벌떡 일어나 소리치곤 했다.


 “조용히 좀 해요!”


 무슨 강박증이 있다던가 하는 젊은 여자였는데, 늘 로션을 얼굴에 얼마나 발라 대는 지 윤기가 줄줄 흘렀다. 말이 윤기지 거의 물기 수준이었지만, 엄청 예쁘긴 했다. 말싸움이 붙으면 목소리가 엄청 찢어지는 게 특징이었다.


 나이 차도 제법 있었지만 두 사람은 늘 엄청나게 싸웠다. 나는 식당에서만 보게 되는데도 몇 번이나 보게 되었다.(아니면 식당에서만 싸우는 거였을까?) 늘 서로 소리치는 걸로 시작해 어떤 날은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는 단계까지 가는데, 재미있는 건 누군가 싸움을 말리려고 끼어들면 늘 갑자기 두 사람이 합심해 달려든다는 점이었다.


 나도 새로 온 남자 환자가 섣불리 끼어들었다가 곤혹을 치루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당신은 뭔데 또 이래라 저래라야! 어차피 똑같이 미친 년놈들끼리!” 두 사람은 합심해서 말한다.


 대부분 병원 사람이 오는 단계에서 정리되지만 아주 가끔 두 사람의 육탄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많은 사람들이 내심 마음을 졸이며 흘끗흘끗 쳐다보고는 했다. 다칠까봐 그런 것도 있지만, 실은 서로 옷까지 쥐어뜯는 경우엔 막 팬티까지도 벗겨지곤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정말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숨겨서 뭘 하겠나.) 그 마음을 졸이고 훔쳐보는 세력에 나도 포함되어 있던 건 물론이었다. 여자는 무섭다. 그렇지만 눈은 돌아가는 법이다.


 문청 씨는 처음엔 그런 일이 있어도 고개를 돌리는 법이 없었다. 밥을 먹을 때는 등줄기를 꼿꼿이 펴고 식사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기운이 우울할 때 같이 먹으면 좋았다. 아무런 얘기도 걸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문청 씨도 싸움이 벌어지면 매번 어디론가 눈길을 힐끔거린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싸움이 아닌 정 반대 방향이었다. 두 여자가 싸울 때마다 종종걸음으로 늘 말릴 사람을 부르러 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 여자 환자에 대해서도 말해 두려고 한다.

 


 그 사람은 30대 초반의 첼리스트다. 첼리스트라고 알게 된 건 그녀가 직접 얘기했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 말한 건 아니었고, 일종의 집단 치료 프로그램에서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의료진과 함께 동그랗게 둘러앉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으로 거기엔 문청 씨도 나와 한 그룹으로 묶여 있었다. 그러니 그 여자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닌 셈이었다.

 전까지는 식당에서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모습만 봐서 몰랐는데, 단아한 인상에 비해서는 굉장히 하이톤의 목소리를 지녔다.


 “자살하려고 했어요.” 첼리스트가 말했다. 그리고 양손으로 무언가를 목에다 거는 시늉을 한다. 그녀는 학교에서나 쓸 법한 반듯하고 네모난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자기는 행복했었다고. 크지는 않지만 유수의 지휘자가 맡고 있는 오케스트라에 속해있었고, 사랑하는 남편도 있었다. 4년 전에 그녀는 결혼을 했다. 행복한 결혼이었다고 그녀는 깔깔대며 말했다.


 모자라는 것이 없는 생활이었지만, 아이를 갖기로 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도무지 아이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함께 병원을 가 봐도 두 사람 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진단만 받았다. 그녀가 시술을 받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곧 다른 유명한 산부인과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남성의원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같았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의사는 조언한다. 그러나 그녀는 알 수 없는 조바심을 떨쳐내지 못했다. 나중에는 남편에게 하루에 두 번씩 관계를 ‘요구’했다고 첼리스트는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그녀와 함께 앉아 있던 노부인이 미친듯이 킬킬거렸다.


 여자는 무당집을 다니기 시작한다. 이전에 그녀에겐 종교가 없었다. 태어날 때 천주교식 세례를 받았지만 그 뿐이었다. 다만 그녀는 어떻게든 아이를 갖기 원했다. 왜 그렇게 아이를 갖고 싶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행복했었는데 하고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무당은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연화션녀님은, 같은 건물에 사는 처제가 문제라고 말했다.


 난임치료휴가도 끝나고 그녀는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기로 했다. (거기서부터 그녀는 웃지 않았다.) 천만 원을 들여서 부적을 받아오고 그보다 비싼 돈을 들여 받아온 어떤 물건은 침대 시트 아래에 놓는다. 남편은 그 냄새를 맡고 기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자는 점점 더 가까이 지냈던 처제에게, 나아가 남편의 모든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자주 자기를 안아주었다고 했다. 관계가 아니라 그냥 포옹이다. 그런데도 다시 성급해진 그녀가 관계를 요구하면 실망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고, 여자는 말했다. 노부인은 분위기를 읽지 못한 채 새로 키득 댄다. 첼리스트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그만하셔도 돼요.” 복지사가 말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부터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리였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얘기해야만 했을 것이다.


 결국 첼리스트는 처제의 어린 아들에게까지 신경질을 내게 되었다. 칭얼대는 아이에게 결국 손찌검까지 했다고,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처제와 크게 싸웠는데 도리어 시부모님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다가 그만 웃어버렸다고 했다. 남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그깟 애가 대체 뭐냐고. 그깟 애가 우리보다 소중하냐고 말하자, 첼리스트는 마구 소리 지른다. 그녀는 남편이 숨겨둔 여자가 있다는 식의 말을 한다.


 무당은 점괘를 보여주며 그 말이 일리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 때부터 그녀는 자주 웃기 시작했는데 남편은 기겁을 했다. 그런데도 관계를 매일 요구하자 여자는 결국 방에서 쫓겨난다. 새벽마다 그녀의 남편은 도망치듯 출근을 했다.


 마침내 무당은 첼리스트를 보며 한 번 이혼을 해야겠다고 말한다. 첼리스트는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결심을 했다. 그녀는 심지가 굳은 여자였다. 한 번 이혼한 후에 재결합을 하면 된다.


 자기가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내고, 그러기로 한 후 각자 방으로 들어갔을 때만 해도 그녀는 괜찮았다고 말했다. 모든 건 그들의 아이를 위해서였으니까. 그녀와 남편 사이의 소중한 아이. 그러나 문을 닫은 후 혼자 침대에 앉아 있던 그녀는 어느새 금줄을 묶어 천장에다 매달고 있었다. 침대 위에 서랍을 놓고 올라가자 장롱 위에 붙인 부적이 보였다. 그녀는 오래 망설이지 않는다. 첼리스트는 금줄로 목을 감은 후 눈을 질끈 감고 아래로 뛰어내린다.


 하지만 우습게도 목을 매단 줄은 천장에 붙은 전등과 통째로 떨어지고, 그 충격 때문에 남편이 쓰는 예비용 바이올린이 장롱 위편에서 얼굴로 떨어졌다. 음악의 신이 심판을 내리는 줄 알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소리를 듣고 들어 온 남편이 피투성이가 된 아내의 얼굴을 보고 허겁지겁 끌어안았다. 첼리스트는 그 때도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으로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기도 했다. 남편의 긴장한 얼굴을 올려다 본 그녀는 앞니 하나가 부러진 채 웃으면서 입을 열어 말했다.


 “여보, 나 병원에 가야겠어요. 우선은 정신과에요.”


 이야기를 마친 첼리스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아까부터 계속 깔깔거리던 부인은 여전히 낄낄대며 못 말린다는 투로 그녀의 등을 두드리고서, 계속 그 위치에 둔다. 부인은 크게 웃으며 그녀의 등에 대지 않은 손으로 다른 손을 꼭 잡았다. 첼리스트는 노부인의 손에서 손을 빼지 않았다.

 


 그 날 치료모임에는 문청 씨도 함께 앉아 있었는데 첼리스트가 얘기를 하는 동안에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모임이 끝난 직후 그녀에게 굳은 얼굴로 척척 걸어가더니 진지하게 악수를 건넸다. 내가 알기로 나 말고 그가 먼저 악수를 꺼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첼리스트는 조금 놀란 미소를 지었지만 악수를 받았고 그는 별 말도 없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가지.”


 그 날 점심은 양송이 스프와 큐브로 된 함박 스테이크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는데, 그 날 따라 문청 씨가 너무 말이 많아서 함께 앉은 걸 후회했던 기억이 난다. 주로 난 잘 알지도 못하는 이상의 첫번 째 부인에 대한 얘기였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에 말한 <봉별기>에 나오는 아내 금홍이었다.) 문청 씨는 입도 안 된 스테이크를 그의 몫까지 다 먹고 병실로 돌아올 때까지 나를 따라다니며 소설 얘기를 했는데 막상 침대에는 앉자마자 전원이 나간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러고는 비어있는 병실 벽을 멀거니 쳐다보면서 처음 듣는 말을 했다.


 “나는, 여기에서 못 나가.”

 문청 씨 답지 않게 굉장히 나이 든 것 같은 목소리였다.

 “왜요?”

 내가 물었다.

 “아빠가 못 나가게 하거든.”

 문청 씨는 입을 다물었고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에 대해 말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고 또 마지막이었다.

 


 이후로도 문청 씨는 원래대로 돌아와 환자들에게 책을 들이밀거나 소설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날 이후 어딘가 힘이 빠져있다는 느낌이 받곤 했다. 그런 얘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다고 했고, 그냥 예전부터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니 내 착각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곁눈질로 매번 첼리스트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내가 입원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의 일로 이제 내 이야기도 마지막 파트로 넘어가게 된다.

 

 언젠가 내 경험담이니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지 않겠냐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사실 병실에서는 하루하루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 생활에 대해선 딱히 더 해줄 말이 없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다만 먹는 약의 종류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그런 만큼 죽고 싶다는 생각도, 불현듯 턱 밑이 조여드는 기분이 드는 것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게 약물 덕분인지 상담 때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그리 특이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내가 혼자라는 뜻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그리고 어쩌면 아마 너무 많이) 있었다. 다들 사람들이다.


 그러니 솔직히 나에게는 병실 안의 생활과 지금 밖에서의 생활이 크게 차이 나진 않는다. 다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가진 문제는 확실히 종류가 좀 다른 것 같고, 또 병실에서와는 달리 지금은 공부든 일이든 계속해서 하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다.


 다만 아직도 병실을 생각하면 지금보단 더 따뜻한 느낌이 남아있다. 소맥을 타며 새벽까지 남아있는 술자리 보다는 훨씬 더 그렇다.


 병실에서 한밤중에 문청 씨의 책 냄새를 맡으며 불 꺼진 천장을 올려다보면 어딘가 모르게 충만한 기분이 드는 하루가 종종 있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던 건 아니었다. 병동에서 나는 책을 읽었고 엎어진 체스말을 주웠으며 문청 씨가 불러서 함께 밥을 먹었다. 식당은 자주 소란스러웠고 고함소리가 들리며 여자 둘이 머리를 쥐어뜯으면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입구로 달려가는 첼리스트가 있었다. 그 뿐이었다.


 그런데도 배부른 상태로 누운 채 돌아가는 온풍기 소리를 들으면 약 기운으론 설명할 수 없는 평온함이 이불 위로 내려앉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달빛이 천장을 타고 내려와 몸 위로 흐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물론 눈을 뜨면 어두컴컴할 뿐이었고 내일은 똑같은 하루였지만 말이다.


 별로 재미없지, 하고 말하면서 나는 턱을 긁적인다.


 그러면 친구는 말한다. 별로 재미있지는 않네.


 하지만 이상한 건 저런 말을 하면서도, 술을 더 따라 마시지 않고 내 말을 가만히 기다린다는 점이다. 턱을 괴고 있거나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다음 말을 기다린다. 뭔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기다려 줄 뿐이다.


 나는 턱 쪽을 한 번 더 긁적이고서 이어지는 얘기를 한다. 어찌되었든 이제 더 이야기할 만 한 건 하루치 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일들은 모두 작년 크리스마스 날 하루에 일어난 것들인데 나는 어쩐지 그 모든 일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심지어 내가 앞에서 말한 문청 씨의 사소하고 평범한 일들도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엔 늘 그 크리스마스 날 오전에 있던 작은 연주회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하게 된다.

 

 외출이 가능한 환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장기 환자들이나 나처럼 가족들과 사이가 시원찮은 사람들만 남아서 병동의 크리스마스는 늘 조용했다. 그래도 아침이 특식이 나와서 기분 좋게 쉬고 있는데, 방송으로 작은 이벤트로 휴게실 라운지에서 연주회를 연다고 했다. 이런저런 공연을 하는 건 공휴일에 가끔 있는 일이었는데, 평소에는 시큰둥한 문청 씨가 스피커를 빤히 올려다본다 싶더니, 연주한다고 들려오는 이름이 바로 그 첼리스트였다.


 연주회라고는 했지만 모아 놓은 의자는 조촐했고, 병동에 남은 사람들이 전부 온 것도 아니라 적은 자리인데도 드문드문 비어있었다. 그러나 별로 문제가 되는 건 없었다. 성탄절의 오전은 따뜻하고 상쾌했다. 밤사이 눈이 내렸기 때문이다. 닫혀있는 창문인데도 맑은 기운이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첼리스트는 무대 중앙에 몸 앞에 첼로를 얹은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 다른 악기를 쥔 사람들 셋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외투를 입고 있는 외부 사람들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건 첼리스트 한 사람 뿐이다.

 문청 씨는 말 잘 듣는 학생처럼 양손을 무릎에 둔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날 따라 얼굴도 유난히 차분해 보였는데 멍하지는 않고 그냥 차분해 보였다.

 그리고 조율이 시작되었다. 각자 자신의 악기를 그으면서 밝고 높은 소리들이 서로 얽혀서 들려왔다. 선율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날카롭지 않고, 조금씩 날갯짓을 하는 듯 가벼운 소리였다. 나는 사실 시작하기 전의 그 소리가 가장 인상 깊었다. 어째서였을까.


 그 날 오전의 연주회는 한 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동안 이어졌는데, 당연하게도 나는 음악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한 곡이 끝나면 박수를 치고 끝나면 박수를 치고 할 뿐이었는데 의외로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냥 소리를 들으며 앉아있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좋았던 건 첼리스트의 모습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앉아서 얘기를 나눌 때만 해도 평소와 똑같았던(좀 너무 웃고 정신이 없어 보였던) 첼리스트는, 처음 현을 긋기 시작한 순간부터 표정이 달라지더니 연주를 하는 내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손과 고개를 움직이면서 몸이 거칠게 흔들렸고 혼자 밤하늘 아래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눈을 뜬 채로 아래를 보고 있어도 바닥도 병실도 아닌 다른 어딘가를 혼자서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볼 수 없는 다른 무언가를.

 

 연주가 끝나고 문청 씨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박수를 쳤다. 이번에는 문청 씨는 악수를 하러 가지 못했다. 그녀의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 속에서, 첼리스트는 살짝 울었다.


 우리는 병실로 돌아가 앉았고 그다음엔 함께 3층 휴게실로 갔다. 그 후로 문청 씨는 무척 조용했는데 얼굴을 쳐다봐도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 별로 화난 것 같지도 않았고, 슬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책도 읽지 않았다. 나는 연주회를 본 감상으로 소설 이야기를 엄청나게 쏟아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창문 앞에 서서 눈이 쌓인 주차장을 내려다봤다. 마침 오전의 햇살을 배경으로 첼리스트와 그녀의 남편이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의 남편은 아까 전 연주회에서 바이올린을 켰다. 환자복 위로 두꺼운 검은 코트를 걸친 채 손을 잡고 거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두 번째 기억에 남는 일은 저녁 식사시간에 일어났다.

 평소처럼 밥을 먹고 있는데 늘 싸워 대던 두 여자 중 젊은 쪽, 그러니까 늘 수분크림을 얼굴에 처바르는 여자가 평상복을 입고 걸어 들어왔다. 식당에서 환자가 평상복을 입고 있는 경우는 두 가지다. 어디서 훔쳤거나 퇴원 소속을 끝마친 것이다. 입구 쪽을 지키고 있는 직원이 그냥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오늘 퇴원하는 거였다.


 그녀는 저벅저벅 걸어 들어와 앉아서 밥을 먹고 있던 중년 여자에게로 곧장 걸어갔다. 나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연 둘이 마지막까지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울 것인가 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앉은 채로, 그녀를 돌아보며 무언가 조용히 말하던 중년 여자는 일어나더니 활짝 웃으며 그녀를 부둥켜 안았다. 그러자 단발 여자가 그 품에 안겨서 엄청나게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소리는 작았지만 떨어진 곳에서도 어깨가 심하게 떨리는 걸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내 그녀도 자신의 팔을 들어 중년 여자의 몸을 안았다. 늘 쥐어뜯으며 잡고 있던 여자의 강박적으로 깔끔한 단발을 중년 여자가 쓸어주고 있는 손이 보였다. 이제는 단발이라고 부르기엔 어느새 많이 자라 있긴 했었다.


 서로를 배웅해주려는 건지 두 여자는 함께 식당을 걸어 나갔다.

 


 내 생각이지만 문청 씨는 아마 그 모든 사건들을 보면서 그 때 그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닌가 싶다. 크리스마스에 뿐만 아니라 이전에 봐왔던 그 모든 일들까지 포함해서다. 이를테면 첼리스트가 말했던 자신의 사연들. 문청 씨가 그녀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 속 여주인공을 대하는 것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문청 씨는 확실히 예전에 그녀의 사연을 들은 후로 자신의 책에 대해 갖고 있던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었고,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소설을 읽는 습관 그런 자신의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는 내 개인적인 느낌이 모두 맞은 건지도 모른다. 거기에 그 날 그녀의 연주가 무언가를 강하게 깨트렸고, 젊은 여자의 퇴원은 남은 것들을 모두 쓸어가 버린 것이다.


 아무튼 나는 식당에서 돌아온 후 문청 씨가 없는 사람처럼 조용해진 것도, 책을 엎어 놓은 채 침대 위에서 벽을 보며 가만히 앉아있던 것도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왠지 그럴 법 하다고. 심지어 불 꺼진 후에도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있던 문청 씨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심지어 문청 씨가 밤중에 갑자기 작별 인사를 하겠다며 나를 깨웠을 때도,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날 밤 문청 씨는 내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잘 있게나, 떠날 걸세.”


 나는 어쩐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차분했다. (그러나 이건 오래되어 내 기억이 바뀐 것일 수도 있다.)  


 “어디로요?”


 누운 채로 물어보자 그는 잠시 어둠 속에서 굳어 있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그 목소리는 정말 낡디 낡아서 문청 씨가 아니라 다른 어떤 남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인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악수를 하기 위해 그가 손을 내밀었고, 내가 몸을 일으켜 악수를 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을 열고 조심스레 밖으로 나갔다.

 그게 내가 본 문청 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무 미련도 없이 단호하고 거침없는 걸음이었다. 처음 병실에 왔던 날 내게 악수를 하기 위해 다가왔을 때처럼.

 


 문을 나간 문청 씨가 그 후로 무슨 수를 써서 당직을 서는 직원을 제치고 소리 없이 복도를 지나갔는지, 늘 잠겨있는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문은 어떻게 열었는지, 그 후로도 다른 모든 문처럼 겹겹이 잠겨있었을 옥상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문청 씨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나갈 준비가 되어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준비가 필요했던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문청 씨는, 다음 날 아침 옥상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환풍구 안에서 발견되었다.


 이렇게 적으면 변사체로...... 라고 써야 할 것 같은 분위기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문청 씨는 들어가는 구멍 바로 초입에서부터 볼썽사납게 끼인 채로 발견되었다. 환풍구는 비쩍 마른 사람인데도 통과 못할 정도로 좁았던 모양이다. 아마 그런 구멍이니까 사람들이 남겨두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병동 사람들은 그럴 거면 뭐 하러 옥상까지 갔냐고, 바보 같은 짓이었다며 다들 비웃었지만 내 생각에 문청 씨는 이곳이 아닌 곳이라면 정말 어디라도 좋았을 것이다. 그냥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대신에,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생각을 바꾼 것일 수도 있었다. 아마도 <날개>를 쓸 무렵 이상이 옥상 끝에서 그랬을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상에게도, 문청 씨에게도 직접 들을 기회는 없었으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문청 씨는 그 후 일주일 동안 독방에 갇혀 지내게 되었는데, 일주일은 그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이례적인 조치였다. 사람들은 병원 판단이 아니라 더 위쪽, 그러니까 병원장 위에 있는 사람. 그러니까 문청 씨 가족들 중 누군가의 판단일 거라고 짐작했다. 누군가는 의료진을 떠봤는데 정말 사실이었다고까지 말했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문청 씨가 게이였다, 소아성애자였다 하는 것처럼 헛소문일 가능성도 높았다.


 나는 문청 씨가 돌아오면 직접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어머니의 귀에 나와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가 일주일이나 독방에 갇혔다는 얘기가 들어간 것이다. 어머니는 마치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처럼 병원으로 찾아와 난리를 쳤다. 환자를 일주일씩이나 독방에 가두는 병원도 문제, 그럴 만한 환자를 나와 같은 방에 재우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문청 씨의 몸무게는 내 절반밖에 안 되는데 말이다.) 어머니는 한 두 번의 난리굿으로는 변하지 않는 편이었다.


 비록 어머니가 생각했던 대로의 변화는 아니었겠지만, 어머니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라고 보낸 병원에서 나는 변했다. 그래서 그냥 옆에 앉아서 가만히 있었고 그래서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다시 가만히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발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건 나나 문청 씨가 아니라, 어머니 쪽 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굳이 이야기하진 않았다.

 


 정신병원을 퇴원하고서 일주일 후에 다시 병실을 찾아가 봤지만 문청 씨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간 후였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어쩌면 옥상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고 조금 더 단단하고 딱딱한 곳, 병실마다 온풍기가 돌아가지 않는 곳일 수도 있었다. 그곳이 문청 씨가 가고 싶었던 곳과 더 가까운 졌는지, 아니면 멀어졌는지는 이제 혼자 상상해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돌아와서, 나는 대학에 들어오고서도 여전히 약을 먹고 있다. 먹고 있지만 그렇게 종류가 많지는 않고 (많이 줄었고) 완전히 멍해질 정도로 센 약들도 아니었다. 어쨌든 수업은 듣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 괴짜 같은 친구들은 수업 따위, 하고 말하며 웃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솔직히 아직도 대학이라는 건 잘 모르겠다. 실은 아직 사회도, 사회의 이면이나 그 너머에 있는 것들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곳은 병실과는 다르며 또 그 때 만난 사람들과는 전혀 달라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정도 뿐이다. 다들 이야기해 주듯이 나는 어수룩하다. 게다가 아마도 이상해서, 보통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 외에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다. 나는 그걸 문청 씨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 문청 씨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사람도 있는 게 아닐까.

 

 별로 이상하지는 않은데.

 

 그러면 내 앞에서 술을 마시던 친구는 무표정하거나, 가끔은 살짝 웃으면서 말하곤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나는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래도 아마 나는 모르는 것 투성이기 때문에, 가끔씩 옥상 위에 오른 문청 씨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되었다.

 

 날은 추운 크리스마스. 아주 먼 곳에서 도회지의 날카로운 불빛이 보인다. 아래에는 첼리스트와 또 혼자 병실을 나온 단발 여자가 걸어갔던 눈길이 어둡게 놓여있었다. 병실 안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일기예보 상 그날 밤은 그믐달이었다. 아주 가늘어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얇은 달. 하지만 전 날에 눈이 다 내린 후의 하늘이었기 때문에 아주 맑았을 것이다.


 올라 온 문청 씨는 추위에 덜덜 떨면서 그 달을 올려다봤을 것이다.


 옥상에 둘러 쳐져있는 높은 난간을 넘어선 다음이었을지도 모르고, 마음을 바꿔 몸을 환풍구 구멍에 집어넣은 후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달을 올려다보았을 것이다. 아무튼 달은 밝다. 가늘지만 아주 밝았을 것이다.


 검은 구름과 함께 무언가 알 수 없는 것들이 계속 흘러가고 또 지나가면서 문청 씨가 병동에서 책을 읽으면서 지낸 시간들도 끝났다. 어쩌면 이상이나 다른 작가들과 보낸 모든 시간도 끝나버렸을지 모른다. 지나간 것들은 지나 갔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그를 전혀 알 수 없는 곳으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곳으로 데려다 놓는 법이다. 자신이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와는 관계없이. 자신이 그곳에 이미 한참 전에 도착해 있다는 걸 알게 될 뿐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옥상은, 혹은 문청 씨가 그 이후로 새로 옮겨 갔을 새로운 정신병원조차도 병실이 아닌 전혀 다른 곳이었으니까. 그곳은 문청 씨가 원하는 장소에는 좀 더 가까운 위치였을 것이다. 그곳에는 달이 올려다 보인다. 지금 내가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전보다 좀 더 가까운 위치였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덩치에 어울리지도 않게 약을 먹고 약간 멍해진 머리로 하늘을 올려다볼 때가 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달이 뜬 하늘에는 머리를 정리해주는 무언가가 있고, 나는 내가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무엇이든지 생각해보고는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문청 씨가 서서 달을 바라보는 곳에 대해서 상상해 볼 수는 있는 법이니까.


 나는 문청 씨를 대신해서 한 번 글을 배워보기로 했던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