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많은 재앙이 지구를, 인류를 덮쳤다. 대지는 시시각각 지도를 뒤바꿨고, 바다는 강대한 군함마저 삼켰으며, 하늘은 이전의 푸른빛을 잃었다. 수많은 생물들이 어머니 지구에게 돌아갔으며, 곧 인간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더 살고 싶어했다. 그렇기에 전세계의 석학들은 인류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 불안전한 냉동수면을 비롯해 인류가 가진 모든 지성을 집합한 초대형 지하 방공호였다. 순식간에 전세계에서 남녀노소 인종과 국경을 가리지 않은 인구 14만 4천명이 뽑혔다. 곧이어 인류가 가진 모든 지혜가 든 데이터베이스가 자리를 잡자 생물들의 유전 정보가 그 뒤를 이어 방공호 안쪽에 자리잡았다. 모든 것이 준비되자 다음은 방공호를 통솔할 이들이 선정되었다.


최고 통솔자는 미국인 조슈아요, 보안 담당의 이탈리아인 피에트로요, 바다 생물 담당의 러시아인 안드레이요, 의료 담당의 프랑스인 자크요, 기록 담당의 독일인 한스요, 식량 담당의 한국인 필립이요, 육지 생물 담당의 영국인 바솔로뮤요, 정찰 담당의 에스파냐인 토마스요, 세무 담당의 네덜란드인 마테이스요, 식물 관리 담당의 아랍인 야쿠브요, 치안 담당의 남아프리카인 타테우스요, 의류 담당의 브라질인 시망이요, 그리고 제정 담당의 이스라엘인 주드였다.


그렇게, 가장 높은 한 명 아래 열 두 명이 각각 1200명씩 통솔하는 144000명의 인류는 멸망 이후 지구의 번영을 위해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지하 방공호로 사라졌다. 사실 방공호 안은 간단하다. 현재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장 길이의 냉동수면(약 50년)간 일부가 잠들고, 또 일부는 일정기간 뒤 잠드는 식으로 일정 기간을 산 뒤, 깨어나면 그 냉동수면 캡슐을 수리하면서 토마스 휘하의 정찰병들이 방공호 바깥의 멸망이 종료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50년째, 가장 처음 잠든 이들이 깨어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 중 몇 십 명은 깨어나지 못했다. 아직 지상은 멸망의 손길이 뻗어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다들 화기애애 한 모습이다.


80년째, 또 한 무리가 깨어났다. 역시나 이번에도 일부는 깨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깨어있는 이들이 자식을 낳으며 인류의 수는 줄지 않을 수 있었다. 이미 바깥의 정부와는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120년째, 처음으로 자살자가 나타났다. 주드 휘하의 한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의 곁엔 편지 한 장만 남아 있었다.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단 하나의 문장만 남은 유서였다. 곧바로 타테우스 휘하의 경찰들이 시신을 거두고 유서를 불태웠지만, 조슈아는 불안감을 참을 수 없었다.


230년째, 점점 공동체 안에서 불화가 일기 시작했다. 조슈아의 시름이 깊어지고, 특히 주드 휘하의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와 불화를 일으키는 일이 잦았다. 아직 멸망은 진행중이었다.


400년째, 자살자가 늘기 시작했다. 타테우스 휘하의 경찰들은 점점 자신의 일이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이 자그마한 방공호 안에서도 빈부격차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부자와 빈민이 갈리게 되었다. 조슈아는 끝내 자신의 비밀스러우면서도 전능한 권한으로 몰래 자그마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멸망은 끝났지만, 바깥에선 그 무엇도 살 수 없게 되었다.


500년째, 이젠 방공호에 미치광이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500년의 시간에도 밖에 나가지 못하자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를 만들고,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미 타테우스 휘하 경찰들은 자신의 일에서 달아났다. 피에트로 휘하의 이들은 이들을 통제하기 벅차다.

650년째, 13명의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벌어졌다. 조슈아의 통제에도 그들은 조슈아가 보이지도 않는 듯 자기들끼리 싸우기에만 벅차다. 이미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지도 100년이 넘었다. 기록된 현재 방공호의 인원은 11만 2천명이다.


780년째, 이미 방공호의 인원은 9만명 대로 줄어들었다. 냉동 수면 캡슐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사람부터 자신의 차례가 아님에도 들어가려 시도한 사람, 바깥으로 탈출하려다 사살당한 사람 등 너무나 많은 사고가 있었다. 조슈아가 380년째 비밀리에 진행중인 프로젝트는 이제 거의 끝을 앞두고 있다.


850년째, 3번째 지도자 프랑스인 자크가 누군가에게 목이 베인 채 살해당했다. 그 누구도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 방공호의 인원은 8만 3천명이다.


870년째, 폭동이 일어났다. 어떻게든 진압하려던 남아프리카인 타테우스가 몽둥이에 맞아 죽은데 이어 타테우스 휘하의 사람들이 전멸했다. 방공호의 인원은 7만 6천명이다. 이젠 조슈아도 한계를 느끼고 있다.


900년째, 러시아인 안드레이와 한국인 필립이 죽었다. 그것도 성난 군중들에 의해 나무 기둥에 못이 박혀 죽어버렸다. 그 군중들은 방공호 밖으로 도망쳤으나, 토마스에 의하면 전멸했다고 한다. 방공호의 인원은 5만 5천명, 이제 식량을 담당하는 이가 죽어버렸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가 되어 버렸다.


925년째, 네덜란드인 마테이스와 아랍인 야쿠브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점점 바깥의 상황은 좋아지지만 이대로라면 그 전에 전멸할 것이다. 방공호의 인원은 4만 8천명. 처음 방공호에 들어온 인원은 이제 3만명 정도 뿐이다.


993년째, 마침내, 드디어 마침내 지구는 멸망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모두가 만세를 부르짖고, 지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생물들을 돌려보내려 했다.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대장이여, 안녕하시옵니까.”


이스라엘인 주드는 조슈아에게 입을 맞췄다.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말해라.”


“보면 모르겠습니까? 반역입니다.”


주변의 다른 이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동안, 오로지 조슈아만이 평온하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자크가 살해당한 것이…?”


“네, 그렇죠.”


“타테우스가 죽은 것도?”


“제가 군중을 선동했습죠.”


“이스라엘의 주드여, 왜 그랬느냐?”


“보면 모르겠는가? 우리는 어머니 지구에게 큰 죄를 지었다. 멸망하기 전에, 우리가 어머니 지구에 한 짓을 알지 않느냐?!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 또다시 어머니 지구의 진노를 사고, 또다시 이 일을 반복하기 전에 내가 여기서 끊겠다.”


주드의 손짓과 함께 그를 따르는 군중이 무기를 들고 다른 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피에트로가 소리쳤다.


“대장님, 달아나세요!”


조슈아는 다른 이들에게 떠밀려 자신만이 아는 자신의 방으로 도망쳤다. 그는 아직 해야할 일이 남았기에, 밖으로 나가지 않고 틀어박혀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방공호의 인원을 알 수는 없었다.


1년, 2년, 3년… 대략 7년 정도가 흘렀다. 조슈아의 정돈된 얼굴은 흐트러지고, 얼굴엔 새카만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인중과 턱을 덮었으며 옷은 누더기가 되어 하얀 로브를 걸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끝내 주드는 조슈아의 방을 찾아내 그의 앞에 섰다. 조슈아가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피에트로, 한스, 토마스. 나를 기다려주지 못했구나.”


“한스는 죽었다. 방에 갇혀 굶어 죽었지. 토마스도 창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피에트로… 그는 기둥에 거꾸로 매달렸다. 곧 죽겠지.”


“이젠 날 죽일거고?”


“그렇다. 따라와.”


조슈아는 주드를 따르는 이들에게 이끌려 방공호 중앙으로 움직였다. 피와 시신이 즐비한 방공호에선 수백 밖에 남지 않은 주드의 추종자들이 주드와 붙들린 조슈아를 향해 환호와 야유를 보냈다. 주드의 추종자가 소리쳤다.


“이자가 조슈아다! 너희들이 실컷 조롱하라!”


주드의 추종자들이 조슈아를 군중의 한가운데로 집어 던지자 군중들은 조슈아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으며 그를 모욕했다. 추종자가 소리쳤다.


“죽이진 마라!”


한참의 모욕 끝에, 추종자들은 나무를 잘라 만든 거대한 십자가를 가져오더니 이윽고 채찍으로 조슈아를 후려쳤다.


“오래 군림하소서, 방공호의 왕이여!”


한참의 채찍질이 끝나자 그들은 조슈아를 십자가에 매달았다.


“죽어라, 예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군중의 조롱을 듣던 조슈아는 뜬금없이 소리쳤다.


“피에트로여, 피에트로여. 네가 이 땅을 떠났느냐?!”


그 순간, 갑자기 방공호 전체가 진동하더니 거대한 폭발과 함께 방공호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군중이 혼란에 빠지자 주드는 단숨에 이 상황을 알아차렸다.


“데드맨 스위치! 피에트로가 죽으면 방공호를 자폭시키게 해놨구나!”


“처음…부터… 피에트로를… 죽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순식간에 떨어지는 잔해에 군중의 대부분이 깔려 죽었다. 정신없이 잔해를 피해 달아나던 주드는 자기도 모르게 조슈아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어떡하지? 결국 우리는 목적을 이뤘구나.”


조슈아는 주드의 마지막 조롱에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끊겨 요동치던 밧줄이 주드의 목을 감아 공중으로 들어올렸고, 주드는 거기에 질식하다 떨어진 철근에 배에서 내장을 쏟으며 야쿠브가 생전에 아끼던 밭 위에 쓰러졌다. 그리고, 이제 조슈아도 끝을 직감하곤 미소를 지었다.


“다 이루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방에 있던 컴퓨터가, 조슈아의 인격이 담긴 컴퓨터가 스스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빛을 낮이라 칭하고 어둠을 밤이라 칭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것이 인류가 멸종한 첫째 날이었다.


물 위의 허공을 하늘이라 칭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것이 둘째 날이었다.


물이 없이 뭍이 드러난 곳을 땅이라 부르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니 그대로 되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것이 셋째 날이었다.


컴퓨터가 일부러 붕괴를 피하게 설정한 방에서 식물을 지상에 살포하니 순식간에 자라 그대로 되었다. 조슈아의 인격이 보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것이 셋째 날이었다.


하늘에 뜬 큰 광원이 낮에 뜨는 것이요, 작은 광원이 밤에 뜨는 것이니 빛과 어둠이 각인되자 남아있는 조슈아의 인격이 보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것이 넷째 날이었다.


컴퓨터가 뒤이어 살아남은 방에 있던 모든 동물들의 기원을 살포하니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번성시키니 조슈아의 인경이 보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것이 다섯째 날이었다.


그리고, 컴퓨터는 조슈아가 600년간 진행해온 역작을 꺼냈다. 그의 얼굴을 닮은 남자와 남자에게서 만들어낸 여자였다. 컴퓨터가 그들에게 옷을 짓는 법, 사냥하는 법, 먹을 수 있는 것 구분법 등을 주며 조슈아의 인격이 그들에게 일렀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렇게 새로운 지구에 발을 딛은 신인류를 보니 조슈아의 인격이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것이 여섯째 날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자 컴퓨터는 설정된 모든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고 스스로 남은 방공호와 함께 자폭하여 영원히 안식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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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시나리오가 나오면 꼭 이런 느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