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인가."


 "전설은... 진짜였군요."


 조수는 마른 침을 삼키며 학자를 돌아 보았다. 학자는 대답 없이 고개만을 끄덕였다. 오랫동안 고고학을 연구해 온 그였지만, 역사를 눈 앞에 목도한 흥분은 쉽게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는 나이에 맞지 않은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유적의 벽면은 마치 고요한 물의 표면처럼 매끈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잔뜩 놓여 있는 이름 모를 장식품들, 모든 것이 금속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경탄을 금치 못한 채로 동굴 내부를 둘러 보았다. 아직도 손이 베일 정도로 날카롭고 반짝이는, 쇠 같지만 훨씬 가벼워 보이는, 본 적 없는 금속들. 대장장이 출신인 조수는 알고 있었다. 한 명 분의 갑옷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소요되는지를. 그래서 그는 자신의 눈을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반사광이 번뜩일 정도의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문명이 멸망하여 묻혀 버렸다니.

 

 "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세. 어서 이 곳에 뭐가 있는지 더 알아보세."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학자였다. 조수도 그의 말에 따라 다시 유적 내부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학자님. 그런데 정말 이곳에 '그것' 이 있을까요?"


 "분명히 그럴걸세. 내 한 평생을 고대인에 대해서 연구했지만, 지금 처럼 거대한 유적은 없었네. 아마도 이 곳이 맞을게야."


 "하지만 이 곳은 흡사 병장기를 연구하는 곳 같은데요."


 "그건 이제 확인해 봐야 하는 것 아니겠나. 일단 이 곳에서 연구할 것들만 챙겨가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수확이야. 자네도 일단 무언가 챙길 수 있는 것은 챙겨두게. 최대한 안전한 것들로."


 조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금속조각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하였다. 

 유적은 그리 깊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거의 45도 각도로 아래로 죽 꺾인 끝을 목도하게 되었다. 동굴 아랫바닥에는 문이 있었고, 그 문은 열려 있었다. 다만 그 안쪽까지 볼 수는 없었다. 문 위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무언가가 불길한 초록 빛을 내뿜고 있었고, 그 빛에 가려 내부는 어둡게만 보일 뿐이었다.

 

 학자는 조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 안쪽에 있는 것 같지?"


 "제가 생각해도 그렇군요."


 "밧줄을 좀 꺼내주겠나?"


 조수는 학자의 말에서 어떤 일을 하려는 지를 깨달았다. 이미 이 유적에 들어오기 전에 오랫동안 합을 맞춰 온 그들이었다. 조수는 묶을 만한 곳에 밧줄을 동여매고서는, 그 끝에 추가 될만한 쇳덩이를 매달았다. 그리고서는 쇳덩이를 문 안으로 던져 넣었다.


 툭


 무언가와 부딪히는 소리. 팽팽하던 밧줄이 느슨해졌다. 바닥에 닿은 모양이었다. 조수는 밧줄을 끌어 당겼다. 끝에 당긴 쇳덩이는 그대로였다. 딱히 함정은 없어 보였다.


 "내려가보세."


 너무 맨들맨들한 바닥 때문에 경사면에서는 제대로 발을 디디기 어려워, 조수와 학자는 그대로 벽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마치 외눈박이 괴물의 아가리에 삼켜지듯, 그들은 그렇게 문으로 들어갔다.

 밧줄로 이미 측정을 했던 부분이지만, 바닥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학자는 바닥에 발을 딛고서는 다시 횃불을 켰다. 

 눈 앞에는 무언가 새빨간 것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동굴에서 보아 왔던 것처럼 금속 재질인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겉면에는 고대 문자와 함께 불을 뿜는 새가 그려져 있었다.


 "학자님... 이것은?"


 학자는 무엇엔가 홀린 듯이 그 새빨간 물건을 집어 들었다. 겉에서 볼 때는 금속재질인 것처럼 보였지만, 생각보다 부드러운 그 재질에 학자는 흠칫 놀랐다. 그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학자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찢었다. 그 안에는 무언가 걸쭉한 것이 담긴 용기와, 그것을 담는 마치 뇌처럼 생긴, 쉬이 부스러지는 조각 받침이 들어있었다.


 "이거야... 이걸세! 우리가 찾던 물건은 분명히 이거야!"


 학자는 희열에 찬 눈으로 새빨갛고 자그마한 봉투에 담긴 액체를 바라 보았다. 


 "해내셨군요!"


 "고대 문헌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었지. 어떤 한 부족만이 만들어 내는, 먹는 이로 하여금 화염을 다루게 하고 다른 모든 부족들이 거친 말로 경고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분명 복용하는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어떤 형태인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다네. 하지만 분명 이 물약이 바로 그것일 걸세."


 그리고 학자는 주저없이 액체가 든 용기를 잡아 뜯었다.


 "학자님?"


 "만약에... 만약에 그 힘이 진짜라면, 진짜라면!"


 조수가 말릴 틈도 없이 작은 봉투에서 검붉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 학자의 입으로 들어갔다. 조수는 기세에 놀라 말리려던 손을 거두고 흠칫 뒤로 물러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액체가 학자의 목 안으로 넘어간 그 때,


 "크헉! 콜록, 콜록!"


 학자의 목 안에 고통이 피어 올랐다. 그것은 지금까지 겪어 본 적 없는 아픔이었다. 마치 몸 안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용암을 삼킨다면 이런 느낌일까. 머리 끝까지 열기가 솟구치는 듯했다.


 "윽!"


 그 때였다. 지금까지 겪은 적 없는 고통에 학자의 몸에 쇼크가 왔다. 학자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그의 입에선 피인지 방금 마신 액체인지 모를 것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학자님!!!"


 조수는 오열하며 그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미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린 학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Ep1. 조수는 그런 독극물이 세상에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였기에, 유적의 입구를 봉인하였다. 그리고 평생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Ep2. 하지만 숨겨진 것은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 몇 세기가 지난 후 고대 문자의 정확한 해석이 가능해 진 뒤, 또 다른 학자의 무리들이 다시 유적을 파헤쳤다. 그들 역시 동굴 끝 마지막 문에 도달하였고, 이 유적에 남겨진 유산의 이름은 '핵불닭볶음면' 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Ep3. 사실 매운건 고혈압에 좋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