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프 할아범이 죽었다. 그것을 안 것은 봄이 한창일 무렵이었다. 겨울을 버티지 못한 할아범은 백골만 남은 채 명을 달리했다. 시체는 줄곧 치워지지 않았다. 소파에 고이 뉘여진 채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다. 할아범의 시체를 파먹은 구더기들은 이젠 할아범의 공방 곳곳에 널리 퍼져 자기들의 영역을 넓힌 참이다. 상업지구의 구석진 골목. 아무도 오지 않는 버려진 베르하르. 그곳의 마지막을 지키던 할아범은 그런 끝을 맞이했다.
 
 그의 공방에서는 더 이상 은은한 나무 향이 나지 않았다. 대신 고약하고 역겨운 시체 썩는 냄새만이 그 안을 가득히 덮었을 뿐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한때 기사단에 몸을 담았으며 죽기까지 여든다섯을 살았던 그의 인생은 겨우 말라죽은 나무 따위에 덮어질 정도로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할아범은 죽은 뒤에도 이토록 강렬한 냄새를 풍기며 자신이 여기에 살았음을 남긴 것이겠지. 다만 나로써는 할아범의 그 흔적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코를 찌르고 뇌리에 새겨지는 죽음의 냄새에 그만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 씨발 ... 이렇게 말도 없이 죽어버리지 말라고. " 
 
 삐걱대는 공방의 나무 판자를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나아가면 나아갈 수록 할아범의 죽음은 더욱 짙어진다. 고요한 공방에 퍼진 죽음의 향기로 폐부를 가득히 채우면 그제서야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자각한다. 지독한 채찍의 감각과 비릿한 혈향. 다시금 떠오르는 고통의 기억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나를 고통케 만든다. 실재하지도 않는 고통의 감각에 나약한 몸은 움츠러든다. 백골만 남아버린 할아범의 시체 앞에 다다랐을 즈음이 되면 나는 바닥에 웅크려 입을 틀어막는다. 미안해, 미안해 할아범. 일찍 찾아와주지 못해서. 나만 이렇게 살아남아서. 마지막에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해.
 
 그러나 이대로 계속 둘 수는 없다.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백골만이 남은 시체일지라도 장을 치르지 않으면 언젠가 거지떼가 들이닥쳐 할아범의 뼈로 국물을 우려먹겠지. 일찍이 명예로운 기사였던 할아범에게 겨우 그딴 결말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화장해주자. 백골만이 남은 신체일지라도 잿가루가 되어서 세상을 유랑한다면 할아범의 한도 그리 오래 가지 않으리라.
 
 할아범의 뼈를 집어담았다. 썩어버린 뼈를 삼키는 것은 할아범이 생전에 애용하던 망토였다. 떼묻고 너덜너덜한 망토는 세월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계속해서 백골을 집어삼켰다. 낡은 망토가 할아범의 뼈를 삼킬 때마다 죄악감이 치밀어올랐다. 뱃속 깊숙한 곳에서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나를 조금씩 좀먹는 죄악감은 역한 눈물로써 흘러넘쳤다.  
 
 망토는 머릿뼈를 집어삼키고서야 배가 부른 듯 싶었다. 나의 죄악감도 그제서야 배가 불렀다. 그렇게 할아범은 죽어서도 망토를 둘렀다. 이대로 불에 태워 날린다면 언젠가는 발할라에서 다시 태어나 영원토록 행군하겠지. 그러나 나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마녀는. 살점이 눌어붙은 백골의 끈적함을 평생 두 손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 ...... 용서해줘. "
 
 엉망진창으로 담긴 백골 더미 앞에 고개숙인 채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할아범은 이 세상에 없다. 할아범이었던 것만이 남아 망토에 감싸인 몰골로 불에 태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두 손에 묻은 구더기를 털어내고서 할아범의 뼈더미를 들었다.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지만 비릿하고 역한 눈물은 계속해서 흐를 뿐이다. 죽고 싶다. 차라리 이대로 나도 죽어버릴까. 할아범을 태우는 불꽃에 제 몸을 내던진다면, 그런다면 분명 할아범이 가는 길은 외롭지 않겠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밖으로 나섰다. 빗자루를 타고서 향한 곳은 도시 외곽의 초원이다. 할아범에게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부는 바람에 재를 날리기에는 이곳 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그리고 나의 눈물도, 미련도. 이 빌어쳐먹을 슬픔도. 이토록 난폭하게 부는 초원의 바람에 실려 저 먼 바다로 떠나리라.
 
 내려놓은 백골 더미에 불씨를 붙였다. 나의 가장 성스러운 불꽃. 다만 가장 순수한 불꽃이 할아범의 잔재를 좀먹는다. 짙은 갈색이 눌러붙은 뼈더미는 그렇게 회색의 재로써 바람에 실렸다. 그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타오르는 불꽃에 몸을 던지는 것도, 날아가는 할아범에게 축복을 걸어주는 것도.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한 채 웅크려 앉을 뿐이다. 그저 웅크린 채 비릿하고 역겨운 눈물을 흘리면서, 떠나가는 할아범을 배웅했다. 
 
" 다음에 또 만나자. " 
 
 나지막이 읊조린 말은 바람에 실려 흐려진다. 소리조차 흩어진 말은 눈물과 함께 저 멀리로 나아간다. 차라리, 이대로 멀리 나아가기를. 산에서 들으로, 들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흐르는 바람에 실려서 마침내 형태조차 없이 세상을 비스듬히 가로지르기를. 그렇게 다음에 찾아올 봄에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내게 찾아와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