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아스팔트 위에서.
“사실은 외국어라더라.”
소미가 말했다.
“그렇구나.”
“뭐야, 알고 있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런 말은 여럿 있었다고,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시소라던가 댐이라던가. 그런 것들 때문에 지금 소미가 한 이야기가 별로 특별하다고 느껴지지 않아서.
“그저 그렇네.”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재미없게시리.”
소미는 볼멘 소리를 하며 고개를 돌렸다. 집까지는 아직 먼 길,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
순간 생각난 것이 있었다.
“차라리 뭐가 터부시되는 지 말하는 게 더 좋았을 거 같은데.”
“뭔 소리야, 갑자기.”
“아까 이야기.”
우측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무슬림들이 돼지 고기를 안 먹는 이유라던가.”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었길래. …아니, 누군지 알겠다.”
“그 사람이 맞을거야.”
상아 언니. 탐구 과목을 봐주는 과외 선생님.
“생존 경쟁이었대.”
“생존 경쟁?”
“응. 돼지는 물에 몸을 식혀야 한다는데 중동의 사막에서는 물이 귀하잖아. 한낱 가축한테 그런 걸 쉽게 내줄 수 없으니까.”
그것말고도 불결한 사육 환경같은 것이 금기 형성에 일조했다지만… 그 부분은 따로 말하지 않았다. 인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더럽기도 하고.
‘꽤나 현실적인 이유였다는 거야.’
세속적인 영역에 맞닿아 있다는 것이 중요할테니까. 언니도 부차적인 사례에는 신경쓰지 말라고 이야기했었다.
“신기하네.”
어딘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을 나와는 반대로 소미는 이번 이야기에 관심있는 투로.
“그럼 다른 종교의 금기들도 비슷하다는 거야?”
다른 것을 물었다.
“단언할 수는 없는데… 뭐, 그럴 거 같아.”
“하기사 사람 죽이거나 도둑질 하는 걸 누가 원하겠어.”
“십계명의 이야기?”
소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너희 집 크리스천이었지.”
“내가 교인인 건 아니지만.”
“뭐 그래도.”
언젠가 소미의 집에 찾아갔을 때, 나는 십자가를 보았다. 성경책을 보았다.
“요새 그렇게 독실하신 분은 찾기 어렵지.”
“아빠? 아니면 엄마?”
“어머님.”
“아, 아쉽네. 엄마는 이젠 집에 없어. 이혼했거든.”
모르고 있었다. 곧장 사과의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얼마 전 이야기라.”
그보다 한 발 앞 선 소미는 엷게 미소 지었다. …정말 괜찮은 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말을 꺼내기 힘들어진 분위기. 그 사이로 발걸음을 재촉한 우리는 어느새 천천히라고 적혀있는 표지판의 앞에 섰다.
“아직 한참 남았네. 날도 추운데.”
왼쪽으로 꺾어야 하는 곳.
“애매한 곳에서 멈추는 버스를 원망해야지.”
싫다는 표정을 짓는 소미와 함께 몸을 돌렸다. 다시 또 길을 걷는 와중.
“그런데 뭔가 허무하네. 금기라는 게 다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거면…”
소미가 입을 열었다.
“신비감이라는 게 없지.”
“맞아, 환상이 깨진 느낌?”
“그냥 부모님이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라고 말하는 거랑 다를 것도 없어 보이고.”
나름 좋은 뜻이 있다는 것도 비슷할테니까, 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너희 집은 그런 게 있어?”
“해봐야 늦게 자지 마라, 이 정도야.”
어느 누구라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
“별 거 아니네.”
“거창하게 말한 거 치고는… 그렇지.”
“나도 비슷해. 최근 들어와서 생긴 일이지만.”
소미가 말했다.
“아빠가 외박하지 말라고, 요새 들어와서 자주 그러셔. 전에는 그렇게 신경도 안 쓰시던 분이.”
“그렇구나.”
“전처럼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간다 그랬는데 막 뭐라 하시는 거 있지? 결국 허락은 해주시는데 마뜩치 않아 하시니까.”
시선은 나를 향한 채로.
“외동딸이잖아. 그만큼 걱정하시는 거지.”
이렇게 말하지만, 그 저의란 제 3자인 나도 알 것만 같았다. 뻔하게 비치는 마음.
“그런 이유는 아닐 걸.”
당사자인 소미는 내 말을 단박에 부정했다.
“뭐... 다른 이유라도 이해는 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무엇인가를 자세히 말하지도 않았다. 거기에 나도 따로 추궁하지 않았다.
이런 말을 주고 받는 사이로 우리는 어느새 갈림길에 도착했다. 큼지막한 표지판이 자리한 골목의 한 가운데.
소미네 아파트는 좁은 샛길을 지나 나오는 큰길의 옆에 있다.
“무엇이든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다 부질없는 것 같고.”
내가 몸을 누이는 곳은 다세대 주택의 한 구석.
“지금은 그냥 자기 신앙의 증명아닐까 싶어.”
“그까짓 우상 몇 개 정도는 집에 둬도 좋고 그런 거지. 예쁘잖아.”
그런 내 말에 소미는 가볍게 웃으며 뒤로 돌았다.
“맞는 말이야. 오늘 재밌었어.”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 어쩐지 나는 손을 들고 소미를 불렀다.
“왜?”
금기에 대한 이야기에 자극을 받은걸까. 부모님이 했던 말, 몇 개 정도는 어겨도 괜찮다고.
“아버지랑 어머니, 두 분 다 출장 가셔서.”
“그래서?”
그런 생각이 아니라면 단순한 호의일까.
“집에 놀러 오지 않겠냐고… 묻는거야. 전처럼, 어렸을 때 처럼. 자고 가도 되고.”
“멋대로. 너희 부모님이 싫어하실텐데.”
“그건 너희 부모님도 마찬가지잖아.”
소미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지 내 옆으로 걸어와, 나란히 서기만 할 뿐. 그런 행동이 대답 대신이라면. 살며시 올라간 입꼬리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그렇게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붉은 바탕에 흰색 선, 진입금지를 뜻하는 표지판을 지나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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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꿈을 펼쳐라 그것이 바로 문학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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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N] "터부시된다는 말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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