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았구나..



 가엽게도.."



"..!"



기억이 흐릿하다. 나..나는 뭐였지?



용기의 교단 1소대 소대장 리안. 그래.. 이 망할 전쟁에 반 강제적으로 참여한 교인이다. 



성 안을 방어하라는 임무를 받고 근무를 서던 중, 불시의 일격을 받고 기절했다.. 가 지금으로선 제일 정확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본다. 칠흑같이 어두운 안개와 심하게 훼손된 5구의 시체.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밖은 전쟁이 한창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개가.. 소리를 차단하고 있는 건가?"



확실히 위험한 곳이다.. 고 직감이 말했다.



 시야는 물론 소리까치 차단한다면 저 너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소대장으로서 소대원들을 찾는 게 가장 우선이었다.



"그런데 그 시체들이 만약.."



"..일단 소대원들을 찾는 것이 급선무겠지."



잠깐의 고민 후에 나는 어지럼증이 조금 가신 몸을 일으켜 팔을 휘저었다. 다행히 한쪽 손 끝에 벽이 닿았다. 



ㅡ저벅, 저벅.



한쪽 손을 벽에 의지한 채, 조금씩 조금씩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기를 한참, 



갑자기 머리에서 한 가지 기억이 스쳤다. 갑자기 생긴 안개..  그 속에서 무력하게 쓰러지는 전우들..



"윽.."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가 끔찍히 아파온다. 포기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



바람이 귀를 간지럽혔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무언가 아직 있다고 생각했다. 



기분 탓일까, 여기저기서 기척이 느껴진다. 허리춤에서 칼을 빼어들어 전투 태세를 취했다.



어둠 속 에서 무언가가 달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크르르.. 크왕!"



안개를 뚫고 쥐 모습을 한 마물이 튀어나왔다.



놈은 속력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나에게 돌진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칼에 그것을 베어냈다.



피가 터져나와 칼과 내 몸을 덮쳤다. 비릿한 냄새가 올라와 코를 자극했다. 



역한 기분이 식도를 타고 올라왔지만 참았다.



피 냄새가 난다는 것을 느꼈는지 다른 셋의 기척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빼어든 검을 집어넣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

.

.

.

.

.

.

.

.

.

"젠장.. 여기가 이렇게 넓었던가?"



꽤 오랜 시간을 걸었음에도 불구, 여전히 끝은 보이지 않았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벽 만을 의지한 채로 오랜 시간 동안 걷는 것은 실로 굉장히 지치는 일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벽을 등지고 거의 눕듯이 기대어 앉았다.



"키히.. 키히힛!"



"!"



기분 나쁜 웃음소리, 코볼트인 듯 했다.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빼 들었다.



의문이 들었다. 이런 마물까지 성 안으로 침범해 왔다는 것인가?



그러나 의문을 가질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 검은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키히히.. 키힛!"



땅딸막한 키에 어울리지 않는 다부진 근육, 붉은 눈에 손엔 조잡한 몽둥이를 든 괴물, 코볼트였다.



"젠장.."



코볼트들은 무리를 지어 다닌다. 분명 여기도 이 한 녀석 뿐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놈들의 그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놈인가..? 아니면 미끼..?'



"키히히!!"



내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놈이 마구잡이로 몽둥이를 휘둘러댔다.



으레 코볼트들이 자기보다 약하다고 판단하면 행하는 위협이었다.



땅과 몽둥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안개 속에서 울려 퍼졌다. 위험하다.



코볼트들은 필요에 따라 무리를 이룬다. 평소엔 따로 생활하지만, 사냥감을 발견해 위협하는 과정에서 이 소리를 듣고 모인다.



한시라도 빨리 놈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하앗!"



주저하던 나를 비웃으며 마구잡이로 몽둥이를 흔들어 대던 놈은 내가 돌진하자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놈은 당황해 몽둥이를 놓치고 미처 검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대로 놈의 몸이 양단되어 맥없이 땅에 퍼졌다.



"으르르.."



"이미 늦은건가.."



칠흑같은 암흑 속에서 붉은 안광이 여러개 나타났다. 



아마 놈들에게 세뇌된 들개일 것이다.



붉은 안광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서히 놈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두 마리 정도인가, 정말 귀찮은 것들만 꼬이는군."



일반적으로 들개는 성인 남성이라면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한 짐승이지만, 



놈들에게 세뇌되어 강화된 개체는 그 공격성과 덩치가 일반 들개와는 비교 할 수도 없이 강력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힘 만을 중시한 탓에, 실제로 구사하는 전략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먹잇감이 보이면 그 큰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수가 많아지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부족한 전략을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다행히 두 마리 정도 밖에 되지 않는군."



마침내 안개를 뚫고 놈들의 모습이 완전히 보였다.



"아우우!"



놈들도 나를 발견했다는 듯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곧 그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굉장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일단 하나..!"



"크왕?!"



놈들의 돌진에 맞춰 옆으로 비껴 선 뒤, 무방비 상태인 몸통에 깊숙히 칼을 꽂아 넣었다.



놈은 고통스러운 듯, 허공에 다리를 휘젓다 움직임을 멈췄다. 



놈을 둘러싸고 있던 불결한 마소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며 회색빛의 일반적인 들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다른 하나는 놀란 듯,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잡아야 한다. 동료를 부르러 가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놈은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안개 속에서 간신히 실루엣만 보였다. 



"헉..헉.."



놈은 이 시커먼 안개 속에서도 길을 잘 알고 있는 듯, 한번도 주저하지 않고 달렸다.



나도 정신없이 놈을 따라 달리고 또 달렸다. 안개가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았다.



서서히 주변 환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발이 멈췄다.



들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


 세미..! 



클로이..



에단..



...."



눈 앞에 펼쳐진 소대원의 시체. 



몸이 떨려온다. 두려웠다.



서서히 공포가 나를 잠식하는 게 느껴졌다.



불길한 생각들도 점점 흘러 들어온다.



나는 왜 살아있는가?



밖은 놈들이 낸 화재로 인해 하늘은 붉게 물들었을 것이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온 바닥에 흩뿌려져 있을 것이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생각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된다.



 아군과 적군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시체가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랑곳 않고 그들은 싸우겠지.



이윽고 성의 중심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최후의 보루를 준비하던 신을 살해할 것이다.



 이윽고 승리한 그들이.. 



"모든것을 파괴하려 들 것이다.



사방엔 마법이 날아들고, 날붙이들끼리 맞부딪히는 소리에 귀가 멀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상대에게 자비를 구하겠지.



살려주세요.. 부디 자비를.. 하고 말이다.



 하지만 모두 무참히 죽게 될 것이다."



어느새 발은 멈춰있었다. 온 몸이 경련 하듯 떨린다. 드디어 놈을 목도했다.



"자, 넌 어떻게 할 생각이지? 두려움에 떨며 나에게 자비를 구할 건가? 



 크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