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이 사람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에서 특정 인종을 말살시켜야 한다며 정치가가 연설하고 국민은 그 연설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70여 년 전 이야기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정치가의 말 한마디에 목숨을 잃었고, 4년에 걸친 학살은 그 정치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서야 일단락을 맺었다.


 편견은 여전히 사람을 죽이고 있다. 푸틴은 네오나치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했다며 자신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국영기관은 ‘우크라이나의 나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러시아 정부의 특수 군사작전을 찬성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전쟁지지율을 68%까지 끌어올렸다. 반전을 외치는 몇몇 청년들과 달리 수많은 러시아 사람들은 여전히 전쟁을 지지하고 이 때문에 전쟁은 아직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 이 사회의 광기에 대해 적고 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혐오한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서로를 혐오한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혐오한다. 편견은 하나의 거대한 파도와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도는 커져만 간다. 제아무리 작은 물결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주변의 바닷물을 모두 빨아들여 거대한 파도를 만든다. 


 나 역시 그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적이 있었다. 지난 대선,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가진 적이 있었다. 우리가 스스로 그들의 페르소나를 만들고, 그 허상을 비웃으며 혐오한 적이 있었다. 도무지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었고, 그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수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절망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하루, 친구가 상대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정치적인 이야기를 수 시간 동안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바보가 아니었다. 서로가 알고 있는 정보가 다를 뿐, 나와 그 친구는 모두 자신만의 논리적인 방식으로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고 있었다. 


 내가 수없이 깔보고 비웃었던 그 허상의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단지 영혼 없는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그들을 알지 못해 만들었던 허상은 오히려 그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만들 뿐이었다.


 그 사실은 내가 그들의 모습에 확신을 가졌던 만큼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갖고 있던 정보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반대 의견은 엄격하게 관리되는 특정 정치인의 지지 모임, 이따금 인기 글로 올라오는 조작과 편향의 소지가 다분한 반대 진영 사람들의 모습. 나는 그 극단적인 환경과 허술한 정보에 갇혀 전혀 다른 신기루를 보고 있던 것이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얼굴 한 번 맞대보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욕하기 바빴고, 인터넷 너머로 꾸며진 모습 몇 번을 본 사람들이 그 연예인의 인생 전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왜 자신이 보지 못한 것에 강한 확신을 가지는 걸까. 그것은 아마 편견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질문일 것이다. 나는 그 이면에 불편함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마주하지 않은 것에 사람은 본디 불안감을 가지고, 그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들려오는 이야기나 이미지에 추측을 맡겨 허상을 만드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독일의 한 정치가가 특정 인종을 말살하고 러시아의 한 정치가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편견은 하나의 거대한 파도와 같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으면서도, 해안가를 만나면 서서히 사그라들다 이내 덧없이 픽 사라지고 만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쓰나미가 마을을 쓸어버린 다음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처럼, 편견은 자신의 내면을 마구 할퀴어놓고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렇기에 허상에 사로잡힌 인간은 그 순간을 두려워한다. 마침표를 두려워한다. 그 광기의 끝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그들 역시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계속해서 자신만의 편견 글쓰기를 써 내려간다. 이 글이 마침표를 찍고 나면 그걸로 끝인 것과 달리.

 




*



과제로 썼던 글이지만 여기에 올려봐도 괜찮을 것 같아 슬쩍 올려봅니다.


독자에 따라 해석이 너무 다양해질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고 고친 글인데, 다시 보니 여전히 안 고쳐진 것 같기도 하네요. 뭐 결국 저는 독자가 아니니 정답을 알지 못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