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겪어보면 알까 싶어서 기근을 묘사하려고 3일 연속으로 밥도 굶어보고, 피로를 묘사하려고 5일 동안 잠을 안 잔 적도 있고, 전쟁에서 부상자들의 고통을 묘사해보려고 기둥에 미친듯이 발차기해서 다리몽둥이 분질러버린 적도 있는데, 그런 극약 처방으로도 더 이상 글이 나오질 않는다.


이제껏 글쓰면서 단 한 번도 내가 글쓰는 걸 고통스러워하게 될 거라고 믿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나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가족을 하늘 너머로 떠나보냈을 때, 짝사랑하던 사람의 럽스타그램을 볼 때, 키우던 토끼가 죽었을 때보다도 지금 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진 것 같고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루에도 몇만 자씩 뽑아내던 그 스퍼트가 그립다. 하루 종일 글을 써도 천 자 넘기기가 힘들어졌다. 상상하는 장면은 많은데 그걸 연결지으려니 손이 가지 않고 구상한 장면이나 대사를 넣을 때도 무거운 망치를 들고 힘겹게 이쑤시개를 치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나에겐 소설가로서의 자격이 없었던 걸까, 작가로서의 본분을 가질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 글쓰기란 나에게 그저 현실을 잊고 달아나려는 도피처였을 뿐일까.


이 한탄글을 쓰고 나서도 나는 달라지지 않겠지. 이 글조차도 결국은 인터넷 한구석의 메아리로 남을 것이다. 이제까지 내가 쓴 모든 소설이 그랬듯이.


나의 글쓰기는 이대로라면 아마 조만간 막을 내릴 것이다. 오늘 막을 내릴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나의 글쓰기는 오래전에 막을 내렸고, 그 이후로 내가 해 온 것은 그저 이미 끝난 일을 붙들고 부르짖는 잔상에 불과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