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의무감과 부모님의 권유로 조부모님들을 뵈러 다녀왔다.

솔직한 말로, 나는 조부모님들을 뵙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분들이 안 좋은 분들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좋은 분들이셔서 더욱 그렇다.


 내가 씨앗을 겨우 벗어났을 때부터 그분들은 내 곁에서 나를 바라봐 주고 계셨다. 이제서야 그 시선이 나에게는 햇살과 같은 것이었음을 알았는데, 그분들을 뵐 때마다 그 햇살이 스러져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풍수지탄'이라는 말을 국어시간에 배웠었던 것이 생각난다. 효도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고 그렇게 가르쳐 주었었다. 그래, 그 말이 맞다. 시간이 정말 길지 않음을 그분들의 손아귀 힘에서, 거친 숨에서, 걸음걸이에서 느낀다.


 인간의 삶을 식물에 비유하면, 보통 씨앗에서 시작해 나무로 자라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좀 다르게 그려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씨앗에서 꽃이 되었다가, 가지가 되고, 뿌리가 된다.

지금은 뿌리이고 그전에는 가지였고, 언젠가는 꽃이었다가, 누군가의 씨앗이었을 나의 뿌리, 당신의 삶을 보면 그렇다.

아, 그렇다. 결국. 결국에는. 흙이.

...

분명 씨앗은 아닌 내가 뿌리를 올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만다.

그래서 나는 조부모님을 뵙는 일에 슬픔을 느낀다.


 나는 내가 흙이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내 나무가 흙이 될 것이 두려운 것일까.

여름밤의 공기가 무겁고 서늘하게 창문을 넘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