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주의*


보항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일으켰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때는 발전소가 지구의 표피를 자극했던 

것이라면, 이번에는 진피를 넘어 피하지방까지 자극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구는 성가신 모기를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었다.

 

*


세상이 망하니 사람들은 소위 일탈 행위들을 잔뜩하기 시작했다.

혼자서도, 둘이서도, 셋이서도 했다. 그 수가 너무 많아 자신의 욕망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기도 하였다.

한 남자는 자신의 집에서 그 광란의 순간을 훔쳐보고 있었다.


"아-멘"


남자는 자신의 목에 건 십자기를 보며 저러한 행위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아니, 사실을 동참하고 싶지만 두려워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자신은 저급하지 않다는 식의 우월성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그는 사실 그 누구보다도 욕망 분출에 목말라 있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따라 솔직하게 움직이는 그의 오른손이 그 증거였다.


시간이 흐르니 멸망은 일상이 되었고, 감성은 이성으로 되돌아갔으며, 욕망은 현실에 눌려버렸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돌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남자들 뿐이었다. 


*


멸망 이후,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뭉쳐 연합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경찰들을 매수하여 주변 지역을 점령하였고, '대한민국 육군'을 'OO기업 사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을 이용하여 수도, 가스, 전기 등 공익시설도 강제로 점거하였다. 그런 식으로 하여, 서울에는 여러 군벌들이 형성되었다. 그리고나서 낸 공고가 가관이다.


(전)대한민국 모든 여성 국민에게

나라가 망해서 많이 힘드시죠? 그런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저희 영토로 오십시오. 그러면 의식주는 물론 치안 등의 각종 복지 혜택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다른 조건은 필요없습니다. 여성이기만 하면 됩니다.

-OO기업 올림


이 공고를 보고, 많은 여성들은 회사의 영토로 들어갔다. 개중에는 영토로 들어가기 위하여, 그 가족을 죽인 여자도 있었다. 반대로 자신이 가족에게 죽은 여자도 있었다. 그 후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 길이 없어 소문만이 무성하였다.


그리고 이 기업들 덕분에 일반적인 방식으로 첫 경험을 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남자도 있었다.


남자는 자책하였다, 자신의 소심함을. 그는 '자신만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켰다'라는 것으로 자위하는 데에는 이제 이골이 났다. 이제 그는, 자신의 알량한 존엄성 따위는 개나 줘버리기로 했다.


*


"아이고 내 신세야, 정말 한 번도 해 보지 못하고 죽게 생겼구나."


탄식을 하고 나서 얼마 후, 창가로 비둘기가 날아왔다. 몸에는 비둘기 특유의 회색빛 광택이 구리스를 바른 듯 흘러넘치며, 목덜미에는 '하준이꺼♥'하고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다리에는 녀석이 적은 쪽지가 묶여 있었다.


마침 생일도 다가오고 말이야. 너에게 첫 경험을 어떻게 줄지 고민하다가 방법을 알아냈고, 준비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네. 하하. 이 글을 읽었다면 가능한 한 빨리 우리 집으로 오길 바라. -하준


녀석의 말, 별로 믿음직하지 않지만 믿져야 본전이다. 나에게는 별로 남아 있는 방법이 없다. 날이 갈수록 나의 에너지가 떨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세상이 멸망을 하고 나서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 노화도 빨리 오는 것이 몸소 체감된다. 


그리고 나는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빨리 녀석의 집으로 갔다.


"어어, 여기 와서 앉아"


우리는 앉아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서 방법은? 내가 개신교 신자라는 것을 빤히 아는 놈이 그때처럼 해병대는 어떠냐 뭐, 그딴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죽는 줄 알아라."


멸망하고 나서, 해병 문학 작가들과 이태원 게이들이 동맹을 맺고 해병대 부대를 습격했다. 몹시 당황한 해병들은 붉은색 각기 순면 반바지만 입고 민가로 도망쳤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동맹군은 부대를 쉽게 점령할 수 있었고, 해병대는 게이바로 개조되었다. 밤이면 밤마다 "따흐흑"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그때는 내가 미안했어. 그때는 네 종교를 깜빡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뭐디?"


"그게 말이야, 어, 저, 근데... 너 혹시 있잖아. 여성이 좋니 아니면 암컷이 좋니?"


여자와 암컷이라.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암컷 아닌가. 지금이 찬밥 더운밥 따질 때까 아니지만 고를 수 있다면... 암컷이지, 암.


"난, 여자보다 암컷이 좋아."


"그래, 그럼 잘 됐네. 내가 아는 형하고 몇 주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거든. 심지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녀석이 여자 여럿을 데려올 능력은 없을 터, 그렇다면 형이라는 인간은 이 초저여성비율시대에 여자를 여럿 데려오고 그들을 타락까지 걸 정도면 얼마나 능력이 좋단 말이냐. 대단하다. 빨리 그 형이란 작자를 만나 그를 본받고 싶다. 만약 내가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질 않았겠지.


"준비 됐지? 얼른 가자."


"OK"


*


그렇게 나는 친구를 따라갔고 그곳에 있었던 것은...


왈왈, 으르렁, 야옹, 캬아아악


유기견 보호소였다. 


난 너무 당황해서 화를 낼 수도, 욕을 할 수도, 거칠게 저항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거절할 기회를 잃고 그곳으로 끌려 들어갔다.


"형, 안녕하세요. 여기, 저번에 말한 제 친구에요."


"아, 네가 경험이 없다는 그 친구니?"


"...네."


"근데 형, 보호소 운영은 잘 되요?"


"멸망을 하고 나니 지원금이 끊겨서 동물을 향한 내 사랑만으로는 도저히 운영을 할 수 없었어. 그래서 무상으로 분양하던 것을 유상으로 바꿨어. 또, 죽은 동물 사체로 사료도 만들어서 파니 돈이 꽤 나와. 그래서 운영은 걱정 안 해도 괜찮아."


그런 식으로 사료를 만들어 팔아도 되는 것인가. 어차피 죽은 동물이었으니 그런 식으로 시체팔이를 해도 뭐... 상관은 없는건가? 남의 영업장에 딴죽을 걸기가 좀 그렇긴 하다만.


"근데 나라가 망해도 애견인, 애묘인은 여전히 꽤 있나봐요?"


"글쎄다. 이 아가들을 사가는 사람들이 모두 애견인, 애묘인은 아니야. 내가 궁금해서 한 번 물어봤거든? 동물 왜 사냐고. 어떤 사람은 강도와 같은 도적질을 방지하기 위해 번견으로 산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탕으로 끓여먹는다면서 큰 개를 달라더라. 그래서 내가 너무 크고 근육질인 아이는 고기가 질기다면서 한 마디 거들었지. 그리고 냥이를 데려가는 사람 중에서도 그, 나비... 탕 인가? 를 위해 사간다는 사람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그 왜 있잖아, 냥이가 주인을 위해서 쥐 같은거 잡아 오잖아? 그걸 이용해서 지속적인 식량 공급을 할 거라고 하더라."


"근데, 개, 고양이로 탕 끓여 먹겠다는 사람에게 얘네들을 팔면은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뭐, 나도 예전이라면 그렇게 했겠지만, 이제는 안락사 약물도 없으니 동물을 그냥 죽여야 하고, 그래서 어지간하면 동물을 쉽게 죽이질 못해. 그렇게 되니 케이스도 미어 터지고 한단 말이야? 그러니 차라리 사람의 든든한 한 끼라도 되는게 아이들 처지에 더 나을거야. 우리 아가들은 모두 천사라서, 자기 한 몸 바쳐 주인을 오늘도 살아가게 했다는 걸 기뻐할거야."


썅, 보자보자하니 못 들어주겠네.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냐? 동물주의자인 척 하는 인간주의자놈, 더러운 위선자 새끼. 


친구 놈의 눈을 보니, 이미 이 인간의 화려한 언변에 세뇌를 당했는지 "그래요 그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하겠죠?"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나도 여기 계속 있다간 이놈처럼 세뇌를 당할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밖으로 도망치자니 보신탕이나 나비탕, 혹은 아무도 모르게 죽은 후 개 사료가 될까 두렵다.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


*


"아, 맞다. 말이 길어졌네. 천사들이 저쪽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 들어가서 하나씩 소개해 줄게."


나, 친구 새끼, 친구 새끼가 형이라고 부르는 개새끼, 이렇게 셋이서 방으로 들어갔다. 벽은 화사한 프릴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방수 메트와 배변 패드가 있었다. 진돗개 한 마리, 도베르만 한 마리, 그리고 무슨 품종인지 모르는 대형견 한 마리가 숨을 헐떡거리고 침을 흘리며 나의 아랫도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 그냥 나갈ㄹ..."


딸깍. 친구 놈이 문을 잠궜다.


"여기까지 왔는데 빼겠다고? 아까 네가 여자보다 암컷이 좋다고 해서 얼마나 좋아했는데! 내가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네가 알기나 해?"


"하지만 난 그 암컷 그게 아니ㄹ.."


"씨발 닥쳐. 내가 널 위해서 뭔 짓까지 했는데."


아니, 누가 이런 걸 원한다고 했나?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개 세 마리 원하는 사람 있습니까?


"꼭 해라. 내가 두 눈 똑바로 뜨고 너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까지 전부 다 지켜볼 거야. 제대로 안 하면 너랑은 절교다."


'그건 내가 해야 될 말인데.' 같은 말이 나오려다가 진짜 맞아 죽든 어떻게 죽든 할 것 같아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놈아, 너 때문에 지금이 내 인생의 위기다.


"아, 할게할게."


형이라는 작자가 말을 시작했다.


"자 그러면 이제 아이들을 소개할게. 여기있는 진돗개는 호야, 암컷, 2세. 조이는게 엄청나서 한 번 해보면 푹 빠져들거야. 이 도베르만은 몽크, 암컷, 2세. 기술이 대단해. 여운이 엄청날거야. 여기 있는 카네 코르소는 채드, 수컷 3세. 얘ㄴ.."


"내가 아무리 그래도 수컷이랑은 절대 안할 겁니다. 여기가 해병댄줄 압니까?"


"워워, 내가 왜 채드를 데려왔는지 직접 보여줄테니 잘 봐봐."


끄-응차 


채드가 들어올려졌다. 두 다리 사이에는 내 다리 사이의 것보다 큰 것이 달려 있었다. 그 위풍당당한 기세에 나는 사로잡혔고, 순간 침을 삼켰다.


"허허, 입맛 다시는거야?"


"아, 아니거든! 아무리 그래도 수컷은... 수컷은 아니야."


내 속에서 딸꾹질처럼 나오려는 따흐흑 소리를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하고 형이 버터를 가지고 얘네들을 훈련시켰어. 그러니 특정 부위를 원한다면 그곳에 버터를 바르면 돼. 그려면 개들이 알아서 들이댈거야. 아, 그리고 버터를 너무 떡지게 바르지 마. 잘못하면 물리는 수가 있어."


흔들리는 나의 이성을 붙잡고, 멸망한 세상에서의, 미쳐 돌아가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꺼내었다.


"진짜 아닌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이거 동물학대 아닙니까?"


그러자 형이란 작자가 대답했다.

 

 "아니, 나는 동물학대라고 생각하지 않아. 왜냐하면, 있잖아, 저기, 아이들의 초롱초롱하고 그윽한 눈빛이 보이니? 네가 지금 지퍼를 내리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야. 나와 네 친구는 버터를 통해서, 그들의 성욕을, 단순히 '한다, 한다, 한다'의 상태에서 '인간이랑 한다, 인간이랑 한다, 인간이랑 한다.'의 상태로 교화시킨거야. 이종 간에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그 멀고도 험한 사랑의 벽을 우리가 깨버린거지!! 비록 임신은 불가능하지만, 어떻게 보면 신의 의도를 어겨버렸다는 점에서 우리는 바벨탑 신화를 넘었다고 할 수 있어.

그리고 이 작고 소중한 아가야들은 이러한 행위를 동물 학대라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가 그들에게 인간과의 언플라토닉한 사랑을 가르쳐 줌으로써 이제 이 아이들에게는 인간과의 언 플라토닉한 사랑, 즉 인간과의 육체적 사랑만을 사랑으로 느끼게 된 거야! 얘네들은 이제 이러한 사랑을 받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거고, 사랑의 굴레에 빠져버린거지. 낭만적이지 않니?"


이변은 없었다. 얘네들과의 대면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세상이 멸망하면, 개인도 멸망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한편, 이성으로는 거부하지만 나의 감성은, 눈치없이, 이 궤변이라 하면 궤변이라 할 수 있는 가당찮은 말에 요동쳤다. 


마지막으로, 사실 조임의 호야, 기술의 몽크, 거물의 채드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채드를 고르고 싶었다. 하지만 아까 내가 수컷은 안 된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었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러면 호야로 하겠습니다."


"좋아, 호야는 있잖아, 격한 걸 좋아한단다."


그렇게 나는 지퍼를 내리고 버터를 발랐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진짜 나 줘버리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내가 바로 진정한 '동물 애호가'인가 하고 생각했다.


*


몇 주가 흘렀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는 그들이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84개의 염색체와 46개 염색체의 만남은 언제나 새로웠다. 특히, '호야(몽크)-나-채드' 이 순서로 같이 하는 것이 제일 흥분된다. 멸망에서의 낙은 이것 뿐이다.


아 참, 채드는 우리 집으로 입양했다. 그는 우리 집의 경비견이자 마스코트이다. 목에는 개 목줄 대신 십자가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우리의 사랑은 끈끈, 아니 끈적하다.


아앗, 회충이 몸에 들어왔는지 항문이 가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