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저 어둠으로 수렴하는 깊은 동공에 몸을 맡긴다. 그러자 많은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소실 되어가는건 육체뿐만이 아니었다. 사건의 지평선을 지남에 따라 밖에서는 나라는 존재조차 더이상 관측되는 일 없이 소실되어 버리고 말겠지. 공간 그리고 시간마저도 단절되어 버린 세계였다. 


무한히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은 정체와 다름 없었다. 그 속에서 나의 의식은 끝없는 심연 속에 던져진 작은 횃불처럼 미약했고, 눈 앞에 보이는 것만 인식할뿐인 덧없는 아지랑이에 불과했다.


자의에 의해 그리고 타의에 의해 특이점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중력에 이끌려 내 몸은 가늘게 늘어지기 시작했고, 얼마뒤엔 실타래를 풀어 헤친것처럼 길고 가는 가닥이 되어있었다.


뇌마저 입자로 쪼개져 버렸으니 사고능력 또한 남아있을리가 없으련만. 


뇌에 남아있던 잔류 사념이 소실된 실체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묘한 상황 속에서 생각했다. 

 

나란 존재는 그저 인간의 모양을 하고있는 스웨터에 불과한 모양이야.


몸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완벽한 객관화를 거친 뒤에 자조섞인 웃음만이 의식 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도 그럴게 이미 몸은 입자단위로 분해되어 있었고, 거기엔 팔과 다리는 물론 중요 장기마저 남아 있었을리가 없었으니까. 그저 무한히 늘어나는 실타래를 보며 나란 존재의 실감조차 옅어져 버리고 만다.


정체된 시간 속에서 실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허무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금 생각한다.


언제가 되어야 1초가 흐르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