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라는 말을

들어보셨소, 


들어봤다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소, 


아방가르드,

이전엔 없었던 새로운 시도,

혁신을 추구하는 예술이라 하오 


불란서에서 온 말인데,

원래는 전장의 선봉에 서는

전위대를 일컫는다 하오 


내 뮤즈, 내 선조는

모두 아방가르드였소

항상 선봉에 서,

이름을 남겼소 


그러나, 그 모든 유산을 물려받은 나,

나는 아방가르드가 되지 못하고 있소, 


띄어쓰기를안해보겠소

이건 이미 누가 한 것이오 


무의식을 그대로 써보겠소,

심심해 심심해

힘들어 힘들어

배고파 배고파

이것도 이미 누가 한 것이오 


시를 꼭 글로 쓸 필요 없소

1 2 2 2 2 4 4 4 4 4 9 9 9 9

9 9 9 9 4 4 4 4 4 2 2 2 2 1

이것도 이미 누가 한 것이오 


내가 동경하고 양분 삼은

아방가르드는,

내게 온 이상 더 이상 

본디 그것이 아니었소 


나는 그것을 무지 동경하지만,

절대 그것에 닿을 수 없소 


그대여, 내가 하나만 묻겠소

그대는 내가 창작을 하고 있다 생각하오, 


나는 전혀 그리 생각하지 않소,

애석하게도 내겐 선대의 시인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할 능력이 되지 않소 


내 시를 잘 보시오,

내 시라는 것은 사실 모두 가져온 것들이오

어투는 이 시인,

주제는 저 시인,

단어는 이 아방가르드,

구조는 저 아방가르드, 


내가 만들어낸 게 뭐가 있는지

나도 참으로 궁금하오 


내 창작이라는 건,

그저 있어왔던 것의 편집,

편집에 불과하오 


그런데, 생각을 한 번 더 해봤소,

과연 내가 동경하던 선조들,

아방가르드들은 과연 창작을 했을 지,

궁금하지 않소, 


사실 그들도 창작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소

생각해보시오, 그들이 시인의 꿈을 갖기 전,

그들의 가슴을 뛰게 한 시인이 있을 것이오

어쩌면 그들의 창작 또한 그 시인의 편집일 수도 있소 


그 시인도 또한 그의 선조를,

그의 선조도 그의 선조를,

그의 선조도 그의 선조를,

다 다 편집하다 보면, 


결국 우리 창작은

이 세상 태초의 시인의 창작의

변주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되었소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편집을 진부하지 않게 하는 법을 터득했소

적어도 그들은 그들의 편집을 하였소, 


하지만 나는 무엇이요,

아방가르드의 편집은 결국 또 하나의

진부한 형식일 뿐이오 


나는 그 편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소,

아방가르드를 꿈꿀 수록

그것은 내게서 멀어져만 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