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writingnovel/52780164 


저번에 쓰던거, c에 대한 설정.




  박수와 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단상 위 남자를 위한 것이었다.  남자의 말은 오랜 기간동안, 바닥의 밑에서 허덕거리던 공화국의 사람들에겐 너무도

벅차오르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남자의 말에 단상 아래 모든 사람들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힘을 보일 시간입니다.   


 환호 소리. 개중에는 남자의 말에 경도되어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감동에 겨운 눈빛으로 단상 위를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예배하듯 두손을 꽉쥐고 경건히 기도를 올리는듯이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 그곳은 연설회의 장이 아니라 마치 살아 생전

 메시아를 두 눈으로 목격한듯한 예배당의 한 모습 같았다.  


"....."


  즐거워하고, 찬미하며, 경외하는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단 한 사람만이 먼 발치에서 이 장면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곰인형을 끼고 앉은 무릎에 닿을듯 자그만한 꼬마 여자아이 하나, 오직 그 소녀만이 다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번쩍 번쩍, 카메라의 플레시가 터지고 젠틀하고 댄디한 모습의 남자가 경외하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 나간다. 기자들은 그를 따르며

그의 모습들을 하나 하나 사진에 담아 간다. 뚜벅 뚜벅. 앞을 향해 걷는 남자. 소녀가 앉은 의자까지 와 소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 했다.



"가자, 우리 딸."


 매끈매끈한 남자의 손. 척 내밀어진 보드라운 남자의 손. 뒤의 신도들은 감히 잡아 보지 못해 안달인 그 손을 아이는 한참을 

무표정히 바라본다. 껌뻑껌뻑. 손을 바라보는 두 눈이 카메라의 플레시에 맞춰 감겼다 떠졌다를 반복했다. 


 환한 조명 불빛을 맞던 곰인형이 그녀와 같이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눈이 뻑뻑했다. 눈꺼풀은 주먹만해진 느낌이 들었다. 보라색으로 변색된 피부는 마치 홍역을 앓는 것 처럼 몸의 절반이나 늘러붙어

여기저기 그 상흔을 바깥에 내보였다.  피딱지. 살짝만 움직여도, 콧잔등을 베어  낸듯아려오는 콧등. 핏물이 눈물과 뒤섞여 콧잔등을 타고 흘렀다.


 소리를 내면 또 주먹이 날아올테지. 이빨을 꽉 깨물며 견뎌 보기로 했다. 체념하는듯이 다리를 벌리고 내리는 그녀. 멈춰진 그녀의 앞에서 그녀를 먹어 치우듯 게걸스럽게 소리를 내는 남자. 젠틀하고 댄디한 모습 뒤편의 추악한 짐승의 모습 이었다. 


 경외로운 연설회의 메시아로서의 모습과는 상반된 음울한 지옥 속 사탄의 모습. 동전 뒤집듯 바뀌어버린 남자의 모습 아래에 

가늘게 다리를 떨고 반쯤 헐벗은 모습의 소녀가 있었다.   


 달아 오르는 신음 속에서 귓등을 타고 만취된듯한 남자의 꼬인 발음의 단어가 그녀의 머리속으로 파고 든다.


"이런것도.....엄마랑 똑같네.  많이 닮았다.....정말."


 속삭이듯 작게 말한 말. 처음에 들었을땐 손톱으로 긁기도 해 보고, 이빨로 깨물어 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안다. 남자는 그럴수록

더더욱 흥분 할 테고, 고통스러워 지는것은 자기 자신일 뿐이니.  


 눈을 깜빡이던 곰인형. 곰인형의 짧은 다리를 타고 붉은 피가 콸콸, 쏟아져 내렸다. 깜빡이는 눈의 곰인형. 그 위로 어떤 이름 하나가

젖은 숨결 사이로 삐져 나왔다. 


 혜나.  혜나.... 혜나......


 한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이름을 외침과 함께 더럽고 불결한 액체가 피 흐르는 다리 사이로 튀었다. 폭발하듯이 터져 나온것은 피와 뒤엉켜 가며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모든 일이 끝이난 후, 건조한 바람결을 타고 코 끝으로 날아오는 땀냄새. 


 그날 공화국은 처음으로 왕국과 대치하던 전선을 넘어갔다. 대승이었다.  강력한 화력과 기계화 장비로 무장한 병력들 앞에서 마법

이건 영성이건 보잘 것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을 끝마치고 이마에 쪽, 남자의 입술이 닿았다. 볼살을 꼬집으며 사랑스러운 딸에게 무엇이던지 해 줄 수 있을듯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는 침대 위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침대 위에서 소녀는 작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벌벌벌 떨려가는 작은 손. 있는 힘것 다 하여 주먹을 꽉 쥔다. 

 



 나이가 들었다. 소녀의 몸도,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남자의 얼굴에도 여기 저기, 주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천년간의 통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공화국의 전사들은 너무도 쉽게 전선을 밀어 올렸다. 남자를 영접하던 예배당은 점점 커져나갔고, 곧 이어

모든 사람의 입 속에서 남자의 이름이 흘러 들어왔다. 


 소녀는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소녀는 그렇게, 숙녀가 되었다. 봉긋 솟아오른 가슴은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옛 시절의 어머니의 모습과 똑닮았다고 남자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 배 위에서, 걸쭉한 물이 튄다. 이제는 머리 결 사이, 희미하게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기세 좋게 밀고 올라가던 전투로 왕국은 완전히 와해됐다.  


 도망쳐 숨어 든 왕과, 몇몇의 극단적인 친 왕국파 세력만이 공화국의 손이 닿지 않는 나라의 끝자락에서 간헐적으로 투쟁 할 뿐. 

왕국의 대부분은 온전히 공화국의 것이 되었다.  최초의, 통일 공화국을 이룩한 수장으로서 남자는 살아 숨쉬는 메시아가 되었다. 


 그 누구도 공화국의 힘이 닿는 땅 위에선 그에 대해 함부로 말 할 수 없었다. 경외심 외에 그에 대해 표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숙녀가 된 소녀는 여전히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발버둥 쳐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쉽지 않았다.  힘을 이용해, 자기 자신을 이용하여 이 두 발로 걷는 신이 된 아버지를 떨구어

내려 애 써 보았지만 매번 시작도 해 보기 전 자신의 편이 모두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으로서 끝이났다.  


 몇번의 실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낳았다.  배를 마주치며, 남자가 죽기 전 까지 함께 이 짓을 해 나아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인듯 체념했다. 


 그렇게 끝 날 것이었다. 그렇게 눈 감을 운명인 줄 알았다. 저 살아 숨쉬는 굳건한 두발로 걷는 신을 도저히  떨쳐 낼 수 없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는데.....기적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보인 것은, 헬기의 조명에 비춰 진 날카로운 눈매였다. 피가 잔뜩 튄 얼굴과 들고 있는 칼 보다도 더욱 날카로워 보이는

그 눈쌀.  사람들은 그가 들고 있는, 영혼이 빠져나간 신의 육체에 경악했지만 그녀는 그 것에서 이루 말 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단 한번도 생각 해 본적 없는 꿈.   그저 발버둥이나마 쳐 보려 할 때에도 매번 손바닥 위에서 놀다가 끝이 난 그녀의 반역과는 

달리 완연한 모습으로서 공화국 신민들의 우상을 두 조각으로 땅 바닥 밑에 쳐박아버린 비슷한 또래 남자아이의 모습. 


 그녀는 거기서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피어오름을 느꼈다. 그 날이 C가 A를  처음으로 만난 날이었다. 물론 A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