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짜리 후원에 메일을 봐달라는 요청.

 

당혹스럽긴 했지만 솔직히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자타공인 목소리가 좋은 여자 스트리머.

 

캠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돋구었고 그로 인해 많은 대쉬를 받았다.

 

그때와 지금상황과 액수 모두 다르긴 하지만 메일을 봐달라는 요구는 지금 와서도 살 떨리는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당장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백 메일을 받았었다.

 

방송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으니이제 방송 그만두고 자신과 교제해달라는 둥말로는 담을 수 없는 음담패설이 가득 담긴 메일이었었지.

 

...그건 고백이 아닌가?

 

어쨌든스트리머에게 있어서 메일함은 상당히 두려운 존재임이 확실하다.

 

저어혹시 어떤 일로...?”

 

지금 내 생각이 피해망상임을 알고 있기에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기에 조심스레 물었고.

 

그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괜히 더 무섭다!

 

-메일함 보자 메일 하나 보는 걸로 만원이면 개이득이지

 

내 복잡한 마음도 모르고 그냥 메일이나 얼른 열어서 확인하라 독촉하는 시청자에게 임시차단이라는 강력한 조치를 내린 후 심호흡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오면서 메일에 워낙 험한 꼴을 당한 적이 많다 보니 손발이 달달 떨린다.

 

만약 비즈니스적인 메일이라도 왔었다면 메일은 혐오와 공포로 범벅된 곳이 아니라 혐오와 공포 속 돈이 있는 장소로 인식되었을 텐데.

 

정작 나는 광고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상한 중국 게임 광고 제의는 오긴 했지만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방송을 주업으로 삼을 생각이라 방송의 수명을 깎아 먹을 저질스러운 광고는 싹 쳐냈었다.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광고 하나 해보지 못한 채이런 꼴이 되어버렸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게아니지.

 

일단 만원이라는 거금을 후원했으니 메일을 확인해 주긴 해야 한다.

 

내 두려운 마음과 달리방금 전 시청자의 말대로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양손으로 정신을 차리기 위해 뺨을 툭툭두드렸고.

 

이내 정신을 바짝 차린 후방송화면을 가리고는 메일함을 확인했다.

 

고작 나흘 정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메일은 200개 정도가 쌓여있었다.

 

그중 절반이 광고성 메일이었으니나에게 온건 100개 가량.

 

어떤 메일인지 찾는 건 쉬운 일이었다.

방금 전후원으로 봐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는 뜻은 그때 보냈다는 뜻.

 

메일의 제목은 무척이나 단순했다.

 

-스트리머 말랑님께.

-아이템매니아판 보드게임하고 혜택 Get 하러가자!

-AV배우 아오이 츠카사가 직접 몸으로 알려주는 제품 정보!

 

가장 최근에 온 메일중 가장 위에 있는 것을 눌러보았다.

 

내용이 무시무시할 경우를 대비하여 마우스 커서는 뒤로가기에 올려둔 채내용물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

 

이상한 내용은 아니었다.

 

살해 협박도 아니었고 강간 예고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자신과 교제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으며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메일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방송을 정말 잘 보고 있다.

내가 방송을 지원해줄 테니 방송을 포기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순전히 나를 위한 메일.

 

하지만 이상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지원해준다는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볼을 긁적이고 있자 채팅방이 난리가 나고 있었다.

그래봐야 고작 두 명 이서 반복적으로 채팅을 칠 뿐이었지만 말이다.

 

-무슨 메일임?

-주인장 어디갔어!

 

아니여러분 진정하세요저 어디 안 갔어요제가 여러분을 두고 어딜 가요.”

 

대충 헤헤바보처럼 웃어주며 채팅방을 달래주자 금방 잠잠해진다.

 

그나저나 이걸 말해도 되는 걸까?

 

나에게만 이야기를 하려 후원을 해가면서 메일을 보라고 한 게 아닐까.

 

채팅방에 후원자의 닉네임인 ririra를 쳐서 확인해보니 다행히 방송을 나가시진 않으셨다.

 

리라님이거 알려줘도 되는 거예요?”

 

허락을 해준다면 이야기하고 허락을 안 해준다면 그냥 넘길 거다.

어떻게 나를 도와준다는 건지솔직히 이야기해서 허세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그런 제안을 준거 아닌가.

 

만원이라는 거금까지 후원하면서 말이다.

 

-이야기 해도 괜찮아요.

 

2분 정도 기다리자 허락이 떨어졌고 나는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흔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리리라님이 내가 방송을 그만둘 기미를 보이자 지원해주겠다고 나선 것.

 

메일의 내용은 그게 전부였음으로 이야기가 길게 나오진 않았다.

 

담백하게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전하자 어느 순간 채팅창끼리 싸우고 있는 게 보였다.

 

-천원만 쏘면서 방송을 지원해준다고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 메일 봐달라고 할 때도 겨우 만원

-걍 급식아님?

-그래도 말랑님 생각해서 제안 한번 해본 거 같은데 귀엽긴 하네ㅋㅋㅋㅋ

 

이 녀석들이 뭘 잘못 먹은 건가.

 

여러분들은 그 천원도 후원 안 하면서 뭘 잘났다고 리라님을 비웃어요확씨.”

 

리리라님의 제안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나를 생각해서 해준 말임은 확실하다.

 

만약 나를 지원해주겠다는 메일에 직접 만나자거나 그런 단어가 섞여 있었다면 모를까.

 

리리라님이 나에게 바란 것은 그저 방송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것 아니었나.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후원과 메일을 준 리리라님을 누가 감히 비웃을까.

 

난 양손으로 컴퓨터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내가 화났음을 알렸다.

 

실제로도 화났다.

 

여러분은 제 채팅창에서 맨날 친목만 하면서 누굴 욕해요!”

 

시청자와 싸우는 건 스트리머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지만 이쯤 되었으면 기강을 잡을 필요가 있다.

 

이러다가 삐져서 친목하는 사람들이 전부 내 방송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고작 2~30명 방송에서 3~4명이 빠진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지 않은가.

 

맨날 내 방송에서 나만 모르는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를 하지 않나.

자기들끼리 생일 축하를 하고 있지 않나.

 

그런 꼴을 보는 것도 질렸다.

 

밥 먹을 때외로워서 방송을 키면 나와 연관된 이야기든 아니든 떠들썩해서져.

 

외로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줘서 즐거웠는데.

 

나를 위해 움직인 사람을 비웃고 있으니 이건 내가 참아선 안 되는 것 아닌가.

 

단순히 후원을 안 한다한다의 문제가 아니라 괘씸하잖아.

 

나는 시청자들이 무어라 대꾸도 하기 전 강제 퇴장을 눌렀다.

 

30분간 내 방송에 들어오지 못할거다.

 

...밴을 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나 역시 저 시청자들에게 약간의 정을 느껴서겠지.

 

고개를 붕붕소리가 날 정도로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는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리리라님... 죄송해요저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어요...”

 

진짜로 미안해요.

 

나는 마음을 담아서 사과를 표했다.

 

내 짧은 다리로 절뚝이며 일어나 실제로 머리를 숙였으니 내 진심이 조금은 전달되지 않았을까.

 

아무런 반응도 없는 채팅창에 힐끔다시금 리리라님의 아이디를 채팅창에 쳐서 확인해보자 이미 내 방송을 나가셨다.

 

...”

 

설마 상처받으신 걸까.

 

내 사과가 전해지지 않은 걸까.

아니면 내가 사과를 하기 전에 이미 나가 계셨던 걸까.

 

뭐가 되었든 마음이 편치 않다.

 

그냥 어떤 메일이었는 지입 꾹 닫고 있을걸.

 

괜히 말했다가 분위기만 무거워졌다.

 

에휴-”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자조적으로 웃어봐도 씁쓸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단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다들 말바!”

 

괜히 힘차게 인사를 건네고 방송을 종료하자 적막이 흐른다.

좁디좁은 원룸에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만 울린다.

 

“...어렵다.”

 

진짜 어렵다.

 

어떻게 하루하루가 맨날 어려울 수가 있는 거지?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잔뜩 헝클어뜨리고는 책상 한쪽에 놓인 달력을 집어 들었다.

 

3월달에 4, 11, 19, 24일에 X자가 붉게 표시되어 있었다.

 

면접에서 떨어진 날을 표시해 놓은 거다.

오늘이 25일이니까다음 면접은 앞으로 모레 후에 있네.

 

내가 눈이 높은 것도 아닌데다리를 절뚝인다는 이유로 뽑아주질 않으니 서글프다.

 

리리라님껜 미안하지만솔직히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하루에 천원씩 지원해주시는 건 정말 정말 감사하긴 하지만.

 

그걸로 생계가 꾸려지지는 않는다.

 

지금의 나에게 방송에 집중하라는 건 굶어 죽으라고 말하는 거랑 다를게 없지 않은가.

 

꼬르륵배가 밥을 달라며 보챈다.

밥을 먹은 지 고작 2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짧게 혀를 차며 배를 쓰다듬었다.

 

“...배고파아.”

 

소식을 하긴 하지만내 원래 먹는 양은 이게 아닌 걸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내가 소식을 하는 건 위장이 작아서가 아니라 식비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제육볶음 먹고 싶어상추에 잔뜩 넣고 우걱우걱 먹고 싶어...”

 

예전에 겪었던 소금 한꼬집과 설탕물 시절보단 상황이 낫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님을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괜히 먹고 싶은 음식을 입 밖으로 꺼내 칭얼거렸다.

 

눈 딱 감고 지출을 감수하면 배 터지도록 먹을 수 있기야 하지만.

 

지금을 위해 미래를 팔아버리는 짓은 하지 않는 게 현명한 처사일 거다.

 

“...배고파.”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