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계 저편에서> 에피소드 I: 과거로부터의 메시지

<Across the Galaxy> Episode I: The Past is the New Present



SEFS 됭케르크 임무 18일째

GMT AM 06:28


아직 공식 일과 시작 시간이 되지 않은 지금, 함내는 조용하다. 됭케르크는 세이건-178 행성계에 도착하여 첫 번째 인류 거주 가능 행성인 세이건-178a 행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자 탐사대를 파견했고, 지상 착륙 지점은 두 시간 전에 해가 떴을 터이니 지금 한참 분주하겠지만 그만큼 함내에 남아 있는 인원들에게는 무료한 나날이었다.


됭케르크의 함장, 제임스 해리슨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처음 사흘 정도는 의욕에 취해 부여받지 않은 일까지 알아서 처리했지만, 작심삼일이라 하지 않았던가, 곧 함내 승조원들을 따라 때때로 들어오는 위탁 임무만 처리하고는 방에 틀어박혀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지금은 그 또한 다른 승조원들처럼 곤히 자고 있었다.


여섯 시 반이 되자 알람이 울렸다. 함내 모든 곳에는 스피커가 구석구석에도 설치되어 있었고, 함장의 침실 또한 예외는 아니었기에 사방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젠장, 저 알람소리 좀 바꿔달라고, 일어날 때마다 저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기분 잡치면서 하루를 시작하잖아, 라고 투덜대며 해리슨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함내 인공 중력 덕분에 우주선 안에서도 지구와 같은 생활 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우주 공간에서 무중력 상태로 떠다니던 모습은 이젠 엣날 영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술의 진보는 좋지만, 그래도 무중력 상태란 걸 경험해보면 재밌을 거 같은데 말이야, 라는 생각이 해리슨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해리슨은 옷장에서 제복을 꺼내 입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대충 정리했다. 그 후 방문 앞으로 다가서자 자동으로 문이 열리며 분주한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개같이 지루한 하루의 시작이구나. 다 똑같이 생긴 복도를 이리저리 돌아 몇 분 정도 걸었을까, 어느새 익숙한 문 앞에 서 있었다. 

"제한 구역입니다. 접근 권한 확인을 위해 음성 인식을 시작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사람 목소리와도 거의 구분이 불가능한 컴퓨터의 목소리가 문 옆의 보안 콘솔에서 들렸다.

"제임스 해리슨 함장이다."

"신원 확인 완료. 좋은 하루 되십시오, 함장님."

이놈의 대사는 몇 번을 들었더니 꽤 지겨운데, 인공지능이 있다면서 왜 이런 데에다가는 적용을 안 하는 거지,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하다 문이 닫힌다는 경고음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함교에 들어섰다.


함교에 들어서니 이번에도 해리슨이 꼴찌로 도착했다. 제일 위의 함장석만 비어 있었고, 그보다 한 층 아래에 있는 운항 장교 자리들은 모두 꽉 차 있었다. 

"모두들 좋은 아침이군. 행성 사령부의 상태는 어떤가?"

목청을 가다듬은 해리슨이 말했다. 그러자 함장석 바로 왼쪽 아래에 앉아 있던 통신 장교가 일어서며 말했다.

"현재까지 모두 정상입니다. 지구로부터도 들어온 소식이 없습니다."

"아주 좋군. 나는 내 집무실에 가 있을테니, 돌발 상황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도록."

어차피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을 테지, 어제 보다가 만 <스타 트렉>이나 마저 봐야겠어. 참 신기하군, 어떻게 20세기에 이 미래를 다 예견했을까? 물론 외계인을 만난 적은 없지만 말이야.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며 해리슨은 함교를 벗어났다.


약 두 시간 후, 함교.


함교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아무리 화면을 뜷어져라 쳐다봐도 수치에 변동은 없다. 아무리 시스템 점검을 돌려도 정상을 벗어난 것은 없다. 아무리 통신창을 주시해도 들어오는 통신 신호는 없다. 그렇게 다시 무료한 하루가 지나가나 했다. 그 순간.

"어... 여기 이상한 통신 신호가 잡히는데? 분명히 지구 우주선의 식별 번호인데, 이 공역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지 않아?"

침묵을 깨고 통신 장교가 말했다. 돌발 상황에 함교에 있던 인원 전부가 통신 장교 주위로 몰려들었다.

"봐봐, 이 행성계의 행성에서 발신되는 신호 같은데, 분명히 신호 송신 방식은 우리 방식이란 말이지."

"그러면 통신 채널을 열어 봐."

주위에 있던 장교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그걸 시도 안 해 봤겠어? 근데 연결하려고 하면..."

그 말과 함께 통신 장교는 '통신 채널 오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는 '지원되지 않는 단말: 에러 코드 0x77FF' 라는 표시만이 떴다.

"그리고 이 에러 코드가 뭔지 검색해보면 뭐가 나오냐면..."

통신 장교는 통신 채널 화면을 잠시 옆으로 밀어내고 함내 시스템 레퍼런스 화면을 띄워 에러 코드를 검색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화면이 떴다.


D.C.S.E.F. System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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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러 코드 0x77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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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러 메시지: '지원되지 않는 단말: 에러 코드 0x77FF'


이 에러 코드는 함의 통신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에러 코드입니다. 이 에러 코드의 발생 원인은 통신을 연결하고자 하는 단말이 DGR 암호화 방식을 지원하지 않아 보안 연결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함내 보안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해당 단말을 교체하지 않는 이상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저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게 DGR인가 뭔가 하는 암호화 방식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민간 함선인가?"

다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아니, 모든 우주선에 DGR 암호화 방식의 채택을 의무화하는 국제적 법안의 발효가 80년도 더 전 얘기야. 그러니까 이 우주선이 어디 소속이던 적어도 80년은 지구에 돌아온 적이 없다는 얘기지."

통신 장교가 대답했다.

"뭐야 이거, 좀 지루한가 싶었더니 꽤 큰 골칫거리 아니야?"

"그동안 이 공역을 순찰한 함선이 몇 척일텐데 왜 아무도 보고하지 않은 거지?"

"근데 저 행성에는 아무도 간 적이 없잖아? 이 행성계에 유인 탐사대를 보낸 거도 초대 엔터프라이즈 이후 우리가 처음일 거라고."

"어라 잠만 그러네. 야 누가 함장 좀 불러와 봐."

함교에는 여러 장교들의 중얼거림이 뒤섞여 분간할 수 없는 소음만이 가득했다. 그 때, 함교 문이 열리더니 해리슨이 들어왔다.

"자, 뭐가 그렇게 난리인지 좀 보자고."


3분에 걸친 설명 후 해리슨은 상황을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 신호를 보내고 있는 우주선이 뭐가 됐든 80년도 더 전의 물건이다... 환장하겠군 진짜. 통신 연결이 안 된다고?"

"네, 함장님. 보안 시스템이 막아버린 거라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자자, 줘봐. 내가 해결해주지."

해리슨은 통신 장교의 자리에 앉아 뭔가 여러 화면을 띄워가며 분주하게 작업을 하더니, 다시 처음의 통신 채널 화면을 띄운 다음 '통신 채널 오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전과는 다르게 통신 채널의 오픈 작업이 수행되기 시작했다. 놀란 얼굴로 쳐다보는 장교들에게 해리슨은 우쭐하며 말했다.

"시스템 가지고 장난치는 건 꽤 괜찮은 취미야. 재미도 있는데다 시간도 빨리 가거든. 다음에 시간 나면 다들 한 번씩 해보는 걸 권하겠어."

통신 채널 오픈은 상대방의 응답 대기 시간 초과로 실패했지만,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상대 단말에 대한 정보가 전송된 것이다. 

"좋아, 이게 대체 무슨 함선인지 보자고."

해리슨은 '상세 정보 보기'를 눌러 꽤 긴 텍스트 파일을 열었다.

"넘기고, 넘기고, 이거도 넘기고... 좋아 이거구먼. 함선 이름..."

함선의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해리슨의 표정이 싹 변하더니 힘없이 함장석에 주저앉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자 다들 확인해 봐. 왜 내가 이런 표정을 짓는지 알게 될 거야."

해리슨은 자신의 스크린에 표시된 텍스트 파일의 해당 부분을 함교 전면 대형 스크린으로 넘겼다. 그러자 함교에 있던 장교 전원의 표정이 붕어빵마냥 똑같이 변했다.


소속: DCSEF 민주 국가 연합 우주 탐사대

등록 번호: MEM-001

함선 이름: SEFS 디스커버리


250년 전의 망령이 우주의 외딴곳에서 기습해 왔는데,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그 어디에도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