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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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영원히 배가 고픈 남자


며칠 후, 셋은 화염의 산에 도착해 마누엘과 만나고, 어느정도 재건된 도서관을 둘러본 뒤 다시 마누엘까지 합류한 채 감시의 해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끔찍하리만치 더운 길을 움직이며, 아인이 물었다.


“마누엘, 그래서 그곳에 ‘감시의 해안’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있나요?”


“있고말고! 300년 전 거인들이 쳐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알린 요새가 거기에 있었거든. 그리고 그 근처가 바로 ‘황금빛 반도’이기도 하고. 황금빛 반도는 우리 드워프 제국의 유일한 식량 생산지라서 오크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곳이지. 그래서 감시의 해안이라 불리는 거야.”


다음날, 아인 일행은 감시의 해안에 도착했다. 해안, 이름만 들어도 시원한 기분이 드는 지명이건만 감시의 해안은 그와 정 반대였다. 재와 용암이 흐르는 대지 너머의 만(灣)은 원래라면 푸른 바다와 새하얀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겠지만, 아인 일행이 보는 해안은 붉은 바닷물이 몰아치는, 투명한 유리들이 번쩍이는 곳이었다. 잔이 물었다.


“그래서 아인, 네가 말한 그 용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어디 있어?”


“이 근처에 있는 요새에.”


“그럼 저쪽이구만. 조금 더 북쪽으로 가야 하네.”


그 말대로 아인 일행은 조금 더 북쪽으로 움직였다. 마누엘이 말했다.


“이런 해변이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어도 해변에 맨발로 들어가지는 말게. 모래의 반은 유리조각이라 맨발로 걸었다간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애초에 엄청나게 뜨겁고 말이야.”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해안가에 모래사장이 점점 작아질 무렵, 넷은 요새를 발견했다.


“저기야. 저곳에 용으로 가장 의심되는 이가 있어…”


요새 입구에 도착하자, 아인이 소리쳤다.


“카이저 드레곤베인의 명을 받아 이곳에 온 아인 바… 아니, 아인 폰 발터입니다. 문을 열어 주세요.”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문이 큼지막한 삐걱 소리와 함께 열렸다. 곧이어 요새 안에서 병사들 몇이 나와 아인의 앞을 막아섰다.


“당신이 진정 카이저의 명을 받고 왔다면 그 증표를 보여주십시요.”


아인이 카이저의 인장을 보이자 그들은 아인의 앞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진짜 카이저님의 사자시군요!”


“당신을 정말로 기다렸습니다!”


반응에 당황한 아인이 물었다.


“뭐… 뭣 때문에 이렇게 반기시는 건가요?”


“일단 들어오시죠. 안에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병사들의 인도를 받아 요새 내부로 이동하는 동안, 마누엘이 속삭였다.


“아인, 자네도 뭔가 느끼지 않았나?”


“네, 확실히 이상하군요.”


마리가 물었다.


“미안하지만 잘 안보여서 그런데 뭐가 이상한 거야?”


잔이 대신 설명했다.


“요새에는 기본적으로 전쟁을 대비해 소나 돼지 같은 가축도 어느정도 길러 놓고 있어야 하고, 방금 분명히 주방 근처를 지나왔는데 음식 냄새조차 나지 않으며, 요새 그 어디에도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있잖아.”


아인과 마누엘 둘 다 그 말을 하려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이 말했다.


“분명히 뭔가 있어.”


넷은 병사의 인도에 따라 연회장에 도착했다. 병사가 말했다.


“곧 영주님께서 오실 겁니다.”


그리고, 병사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영주님은 인간이 아닙니다. 반드시 놈을 죽여주세요!”


병사는 그 말만 남기고 연회장 밖으로 도망쳤다. 잔이 말했다.


“연회장 주변으로 환각마법이 걸려 있어. 아무래도 제대로 월척을 낚은 모양이야.”


잔이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우자, 연회장 주변을 감싸고 있던 마법이 풀리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인 일행이 앉은 자리 앞에 있던 작은 입구는, 사실 어마어마한 크기의 통로였고, 아늑한 연회장은 군데군데 균열과 이끼가 낀 폐허 직전의 상태였다. 아인이 말했다.


“모두 전투 준비. 조사한 결과가 맞아 떨어지고 있어.”


곧이어 연회장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하자 아인 일행 모두가 무기를 고쳐 쥐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통로 안에서… 비대한 체구의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황당해 하는 동안, 남자는 자기 몸집만한 고기덩어리를 물 마시듯 삼킨 뒤 입맛을 다셨다.


“자네들이 카이저님의 사자들인가?”


“그렇습니다.”


아인은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180cm에 달하는 아인의 2배를 훌쩍 넘는 키에 뱃속에 아인 일행 네 명이 전부 들어가고도 남을 것 같은 거구를 가진 남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길다란 닭다리를 개걸스럽게 뜯어 먹었다.


“신기하구만. 카이저님이 이런 변방 요새에 사자를 보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내가 지난 3년간 여기 있으면서 한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그때, 아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니 폰 페어만 백작.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순순히 대답하는 것이 좋을 거요.”


“흠… 자네가 그 ‘푸른 방패의 소년’이로군. 그나저나 내가 자네보다 나이나 계급이나 반말을 들을 위치는 아닌 것 같은데?”


“전 카이저님의 명령을 받고 온 사자로서 이 상황에 한정해 당신을 하대할 권리가 있습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군, 무례를 용서하게. 젊었을 때 저주를 받아 영원히 배가 고픈 저주에 걸리고 말았네. 그래서 음식을 항상 달고 살아야 하지.”


“제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시죠. 첫째, 분명 카이저님은 3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사자를 보내왔는데, 왜 백작은 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둘째, 당신은 그렇게 풍족하게 먹고 있는데 왜 요새에는 가축 하나 없이 이런 꼴입니까?”


대니 백작이 아무런 말도 없이 시선을 피하자, 아인은 칼까지 뽑아 들고 더 강하게 나갔다.


“당장 대답해. 대답하지 않으면 적으로 취급하겠다.”


결국 대니 백작은 입을 열었다.


“나에게 저주를 건 놈… 그 놈이 용이네. 잘 익은 보리 같은 색깔의 비늘을 가진 용… 3년 전 내가 이 요새에 발령 받았을 적에 놈이 나에게 찾아와 저주를 걸었지. 그리고 암시를 걸었네. ‘내 명령대로 군사를 조직하고 요새를 키워라.’라고. 날 살려줘, 아니 부하들 만이라도 살려주게.”

잔이 말했다.


“용이라고?! 놈이 뭘 원하는 거죠? 여기서 자기 세력을 키워 카이저나 드워프 황제를 치려는 건가요?”


“아니, 그런 게 아닐세. 놈의 진정한 목표는…”


그때,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만! 역시 네놈을 진작 없애 버렸어야 했다. 네놈은 나를 실망시킨 것도 모자라 내 비밀을 원수에게 발설하려 했다. 이제 죽어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대니 백작의 비대한 몸이 더욱더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대니 백작!”


“놈의… 목표는… 북쪽…!”


대니 백작은 그대로 폭발하고 말았다. 피와 살점, 그리고 내장이 아인 일행에게 후두둑 튀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끔찍한 모습에 구역질을 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경악과 동시에 격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그 문 뒤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이 나타났다.


“놈은 쓸데없이 올곧은 놈이라 말이다. 돈으로는 넘어오지 않더군. 그래서 저주를 걸었다.”


또 용이었다. 잘 익은 보리 같은 색깔의 비늘을 가진 용이 아인 앞에 나타났다.


“나 패이머스, ‘예언의 4기사’, ‘토트’ 님의 충복. 방금 토트 님에게 네놈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렸다. 네놈들의 목숨도 거기까지겠지.”


아인은 검을 고쳐잡으며 말했다.


“글쎄…? 토트인지 하는 놈이 와서 발견한 건 또 자기 부하의 시체 뿐일걸?”


그 순간, 거대한 얼음 창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패이머스에게 날아들었다.


“그럼 지금 당장 죽이자고!”


잔의 공격이 놈에게 날아가는 순간, 패이머스가 입을 벌리더니 입 속에서 기묘한 연기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와 얼음 창을 감싸자 얼음 창은 빠르게 작아지더니 자그마한 구체가 되어 패이머스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패이머스는 입맛을 다셨다.


“마법사의 마력은 언제나 그렇듯 감칠맛이 나는군.”


잔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내 마법을… 삼켰어?!”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일어나라! 나를 위해 싸워라!!”


요새 주변에 괴성과 함께 진동이 일자 마리가 소리쳤다.


“아인, 뭔가 있어!”


마누엘이 말했다.


“역시나, 놈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여기 죽치고 있던 건 아니었군!”


“그래,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여기 있는 줄 알았나?”


괴성이 더욱 더 커지자 잔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지팡이를 잡고 가볍게 휘둘렀다. 지팡이 끝에서 새하얀 빛 기둥이 일더니 요새의 벽이 순식간에 증발하며 아인 일행이 있던 자리는 순식간에 야외가 되었다. 잔이 말했다.


“오래 전에 잔뜩 죽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많이 남아 있을 줄이야…!”


아인도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3마리도 겨우 죽였는데…”


마누엘은 경악한 얼굴이었다.


“요제프 폐하 맙소사…!!”


두 눈을 가린 마리조차 느낌만으로 모든 것을 느꼈다.


“비룡이라니! 그것도 이렇게 많을 줄이야!”


“지난 3년간 요새의 병사들을 하나 하나씩 비룡과 바꿔치기 했다. 네놈들은 이미 늦었어, 우리의 계획을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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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