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활동 말인가?"


금발 금안의 황금빛 털로 뒤덮힌 구미호, 야쿠모 란, 환상향의 주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경계요괴의 식신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예, 들리는 풍문에 란님께서는 삼도천의 폭을 계산해내셨다고 하더군요. 저 같은건 상상만해도 눈이 돌아가는 정신없는 일인데, 한번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서요."


"흠, 역시 외래인 출신들은 가볍게나마 이런데에 흥미를 가지기도 하는군. 하지만, 삼도천같은 경우는 순수하게 물리적인 요소가 아니라 신비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하기에 너에게는 그리 흥미있는 주제는 아닐텐데?"


"아유, 그래도 제가 여기 산지 벌써 몇 년인데, 대충은 그런거에 적응 했습니다~"


"정말인가? 생물이 지금까지 쌓아온 악행의 무게를 삼도천의 넓이로 변환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오시리스의 천칭 원리, 십계명이 가리키는 바늘, 카르마와 액의 보존량 이론에 대한 싶도깊고도 학술적인 대화를 나눌준비가 되었는가?"


"죄송합니다. 주제도 모르고 제가 나불대었군요."


"훗, 그것보다는 좀 더 물리적인 측면의 계산 취미가 하나 있는데, 이거라도 한번 들어볼텐가?"


"오, 대단히 흥미로운데요 저도 나름 이과 나부랭이였던지라 꼭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걸어본거죠."


"그래, 요 수십 년 동안 진행하는 계산으로는… '환상향 전체를 뒤덮으려면 안개 입자가 얼마나 필요한가'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지."


"어라? 스케일은 큰데, 어째 생각보다 단순한 주제네요? 근데 그걸 수십 년 동안 붙들고 계셨다구요?"


"뭐, 확실히, 이미 정확한 수치 도출은 끝난상태라네. 근데 짐작하다싶이 단순한 주제이지 않나? 그래서 이래저래 곁다리를 붙여나가다보니 어느샌가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가 돼버렸다네.

확실히, 시작은 단순했지. 환상향의 부피야 대결계가 돔처럼 뒤덮는구조이니, 중심으로부터 뻗어나가는 영력의 세기로부터 유효 반지름을 역산하든, 그냥 직접 결계 끝에서 끝까지 지름을 측량하든, 굳이 돌아가겠다면 결계의 곡률로부터 도출해내든 하면 그 안의 반구의 부피는 자명하게 얻어지지.

또한, 적당히 안개가 많이 낀 날에 밖에 나가 유리병에 한가득 안개를 담아 밀봉하여 무게를 재고, 맑고 건조한 날에 빈 병의 무게를 재면, 그 차이가 안개의 무게이고, 아보가드로 수, 물 분자의 몰당 질량도 알려져 있으니, 자연히 단위 부피당 안개입자수 역시 얻어지지.

이 정도는 백 년도 전에 이미 다 끝냈다네. 하지만 자네도 알겠지? 여기에는 수많은 변수와 왜곡 요인이 존재한다는 걸."


"당장 저 거대한 요괴의 산이 부피 일부를 잡아먹고, 수많은 언덕의 지형지물, 각종 건축물, 나무와 생물들이 있고, 심지어 고도에 따라 안개의 밀도가 달라지기까지 할테니 확실히 오래 걸릴 계산이긴 하겠네요."


"아니. 단지 그 뿐이라면 그것도 이미 끝냈지 오래라네. 내가 누구인가? 이 환상향의 어머니이신 유카리님을 모시는 식이라네. 당연히 환상향의 지형·지적은 완벽하게 파악된 상태이고, 언덕 하나하나 일일히 계산하는 것 쯤 일도 아니라네. 나무도 밀도에 따라 여러 구획을 설정하고 각 구획별로 적절한 계산만 해주면 아무 문제 없고, 가옥이야 나무보다도 더 쉬운 계산이었다네.

그런데, 의외로 고도에 따른 안개 밀도가 복병이더군. 경신년 6월 12일 새벽5시경의 안개 정보는 완벽하네만, 거기서 하루만 바뀌어도 고도에 따른 밀도 방정식이 완전히 뒤집히더군. 이건 내가 직접 샘플을 채집해서 측정한 결과이니 확실하다네. 

그래서 환상향의 기상 통계를 기록하기 시작하고, 바깥세계의 대기·기상학의 수식을 도입하고 계산하여 이제는 내가 직접 일기예보를 계산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네. 이 통계를 기반으로 온도, 습도, 절기별 환상향의 안개 모델을 세웠지만, 완벽하지는 않더군. 그래서 꾸준히 통계를 누적하고 발전시키는 중이라네. 흥미로운건 바깥에서는 얼마 전에 발명된 '딥러닝'이라는 계산기법이 대단히 넓은 분야에 적용된다고 하더군. 나 역시 지금까지의 통계 정보가 한가득이니 이것을 접목하려고도 몇번 시도해봤다네."


"잠시만요, 방금 제가 뭘 들은거죠 딥러닝의 무식하기 그지없는 막대한 계산을 직접 하셨다고요?"


"생각보다 별거 아니더군. 그리 복잡하지도 않은 계산을 그저 반복적으로 빠르고 병렬로 수행하면 되는거 아닌가? 원래 식신이 그런것이니 놀라운건 아니라네. 

그리고 이쯤 되니 통계를 쌓는 시간이 아까워서 말이야, 기존에는 산 하나하나, 언덕 하나하나 내가 직접 지적도를 기반으로 단순계산했지만, 지금은 정해진 구간에 대해 훨씬 간결하고 빠르게 계산하도록 하는 수리학적 지형 모델을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네. 즉, 단순히 필요한 안개 입자수를 한번 구하고 끝내는게 아닌, 언제 어느 시점에든 어느 지역만큼을 뒤덮는데 필요한 입자 수를 구하는데 적용 가능한 수리학적 모델과 계산기법을 개발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는거지. 참, 단순한 계기가 이렇게 거대한 개발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탄생한 여러 모델들이 여기저기에 적용되어 가끔씩 도움이 되다니. 참 신기하지 않나?

덧붙여서 지난 홍무이변때 만들어진 안개 입자 수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마력 총량 역시 계산해봤는데, 생각보다 별로 안들더군? 다른 녀석들은 뭔가 커다란 변화가 환상향에 불어닥치니 홍마관을 꽤나 두렵게 여기는 모양이던데, 실제로 계산해본 결과 적어도 그 붉은 안개만큼은 별거 아니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