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알 농장에 도착하자 쨍한 오전의 햇살이 나를 비추었다. 


나는 키를 돌려서 트럭의 시동을 끄고, 차문을 연 뒤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맑았고, 잔잔한 순풍이 불었다. 바람을 타고 향긋한 시체 냄새가 내 몸을 거쳐 전해졌다. 저 멀리 드넓은 농장에서는 무언가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한 손에 찬 시계를 확인하고 약간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예약 시간까지 몇 분 남지 않았다.


내 트럭이 주차된 부지를 넘어서자, 농장의 전체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농장의 오른쪽 끝부분에서 잘 자란 눈알들이 약한 바람에 흔들거리며 눈꺼풀을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는 커다란 2층집이 있었는데, 추측하기로 오늘 내가 시술을 받기로 한 곳 같았다. 가장 왼쪽에는 커다란 화물트럭 몇 대와 매립지, 작은 차고 하나가 있었다.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포장도로 몇 갈래가 나뉘어져 이곳과 저 멀리 어딘가, 그리고 농장을 빙 둘러 뒤편으로 이어져 있었다. 도로 위에서는 정겨운 흙내음과 부패한 동물 사체 악취의 중간쯤 되는 냄새가 났다. 


여치 한 마리가 도로 아래에서 튀어나와 내 앞에 멈추어 서더니, 나를 향해 잠깐 더듬이를 까딱거렸다. 내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여치는 펄쩍 물러서더니 다시 눈알들의 숲으로 사라졌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2층집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2층집은 지붕이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집 곳곳에 거대한 창문이 있었다. 사실, 집 단면에서 외벽보다 창문이 더 많이 보였다. 거실과 안방과 부엌, 2층의 침실까지 모조리 투명한 창문으로 분리되어 안쪽을 훤히 볼 수 있었고, 시술실로 추정되는 작은 방 하나만 안쪽이 커튼으로 가려져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농장 주인은 자신의 농장 경치를 어지간히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문 옆에 있는 보라색 벨을 꾹 눌렀다. 낮고 웅장한 벨소리가 집 안에서 퍼져나가는 것이 들렸다. 이윽고,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정문이 열렸다.


현관은 어지간한 방 하나와 비견될 정도로 넓었으나, 신발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현관 바닥은 가지런히 정렬된 구두와 샌들, 하이힐, 부츠, 장화로 가득했으며, 혹시나 싶어서 열어 본 옆쪽의 신발장도 온갖 종류의 신발과 구두약 상자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순간 안쪽으로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신발을 문지방에서 벗은 후 까치발로 신발들 사이를 걸어서 현관을 넘었다. 그리고 내 신발을 꽉꽉 들어찬 신발더미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집주인의 신발 위로 내 신발 밑창에 있던 먼지가 묻었다. 


나는 흘긋 뒤를 돌아보고는, 집주인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신발을 그냥 그대로 놔두었다. 어쨌든 먼지가 묻는 건 내 신발이 아니니까.


현관을 벗어나자 깔끔하게 정리된 대합실이 나를 반겨 주었다. 편안한 가죽 의자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으며, 그 옆에 작은 정수기와 티백 상자가 보였다. 헬스 잡지와 신문 몇 가지가 플라스틱 가판대에 꽂혀 있었다. 신문의 1면에는 최근 떠들썩한 실종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나는 맨 끝에 있는 의자에 외투를 벗어서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후, 정수기로 다가가 종이컵을 뽑았다. 걸어오는 동안 먼지를 마셔 건조해진 목을 조금 축일 생각이었다. 내가 막 컵을 냉수 버튼에 대고 누르려는 순간 누군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쾌활한 남성의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밝은 갈빛의 머리카락에 오렌지빛 눈, 비정상적으로 큰 키를 가진 그 남자는 한 손에 눈알 줄기를 든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띄워져 있었으나, 그의 눈은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무심하게 내 뒤쪽의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두 걸음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오늘 예약하신 손님 분이신가요?”


“네, 맞아요.” 나는 그의 눈을 쳐다보지 않으려 조심하며 말했다. 이미 여러 번 교체되었을 것 같은 그의 두 눈가에는 눈알을 뽑고 다시 집어넣느라 생긴 잔주름이 끼어 있었다. 농장 주인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지금 마무리 작업을 해야 할 게 있어서, 잠시만 이곳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농장 주인은 홱 뒤로 돌아서더니, 한 손에 들고 있던 눈알 줄기를 조심해서 들고 옆쪽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눈알 장거리 배달을 위한 방부 처리 시설 같았다. 


나는 종이컵으로 물을 가득 받은 뒤, 티백 상자에서 하나를 꺼내 그 안에 넣고는 외투 옆에 털썩 앉았다. 종이컵 속으로 인공 차의 녹색 원액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나는 티백 줄을 손가락으로 꼬아서 안을 휘휘 저으며 창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창문 밖으로는 수많은 눈알들이 녹색 줄기에 열매처럼 매달려서 바람에 까딱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대개 하늘을 향하고 있었으나, 몇몇은 땅바닥이나 이 집을 바라보기도 했다. 눈알들 중 하나가 시선을 하늘에서 돌리더니, 순간적으로 창문 너머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것의 색깔은 내 눈알과 같은 검정색이었다. 나는 그것을 쳐다보았다. 그 눈알은 잠깐 나를 바라보더니, 곧 흥미를 잃었다는 듯 다시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창문에서 고개를 돌리고 차를 한 입 마셨다. 의외로 맛이 있었는데, 티백이 꽤 고급진 물건인 모양이었다. 나는 차를 천천히 홀짝이면서 신문을 훑어보았다. 실종 사건 외에 딱히 더 볼 만한 뉴스는 없었다. 나는 신문을 다시 접어서 내려놓았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익숙한 목소리가 대합실 저편에서 다시 들렸다. 나는 농장 주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이제 특이하게 생긴 앞치마를 입고 한 손에 진료 차트를 들고 있었다. 그의 다른 손에는 아마도 내가 입을 용인 것 같은 더 작은 앞치마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뇨. 농장 경치가 꽤 좋네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농장 주인은 웃으면서 말하더니, 내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종이컵 안에 남은 차를 단번에 삼켜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달콤쓸쓸한 뒷맛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나는 종이컵을 내 외투 옆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농장 주인의 뒤를 따랐다.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작고 천장이 높은 방 안이었다. 방 한켠에는 시력 검사표가 매달려 있었고, 그 곁에는 넓은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는 갖가지 전문적인 기구와 작은 손전등, 긴 막대, 종이 더미가 쌓여 있었다. 농장 주인은 익숙하게 책상의 의자에 앉더니 내게 작은 숟가락을 건네 주었다. 


“왼쪽 눈을 가리고, 제가 가리키는 게 무엇인지 답해 주면 됩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바닥에 그어진 선을 따라 검사표 앞에 섰다. 농장 주인은 맨 위쪽의 문자를 막대기로 가리켰다. 


“C.” 내가 답했다.


농장 주인은 세 줄 밑의 문양을 가리켰다. 


“나비.” 내가 답했다.


농장 주인은 두 줄 밑의 가운데 문자를 가리켰다. 내 시력의 한계점이었다. 


“아마 U?” 내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농장 주인은 뜻모를 미소를 지으며, 같은 줄의 오른쪽 끝에 있는 문양을 가리켰다. 나는 그것을 보고 멈칫했다. 평소에 보던 문양과 무언가 다른 점이 느껴졌다. 나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시체인가요?” 내가 물었다.


농장 주인은 대답 대신 막대를 치우고 진료 차트에 무언가를 기록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짓으로 이번에는 오른쪽 눈을 가리라고 했다. 나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지으며 숟가락을 바꾸어 오른쪽 눈에 댔다. 


저게 직접 만든 시력 검사표라면, 농장 주인은 대단히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입을 열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시력 검사를 진행했고, 나도 딱히 그것에 대해 묻지는 않은 채 그의 지시에 따랐다. 


시력 검사가 끝나자 그는 차트에 무언가를 슥슥 기록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한 손에 있는 작은 손전등을 켜더니 내게 지시했다.


“불빛을 따라서 눈동자를 움직여 주세요.” 그는 손전등을 내 눈에 대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나도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손전등을 따라 움직였다. 


농장 주인은 곧 손전등을 끄고, 진료 차트에 또다시 뭔가를 열심히 적더니(볼펜이 클립보드에 부딪히며 또각거리는 소리가 묘하게 신경을 자극했다) 다시 책상에 앉아 펜대를 굴렸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고객 분. 이건 순전히 제 호기심인데,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뭐죠?” 내가 물었다. 약한 불안감이 뒤통수를 타고 스멀스멀 흘렀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고객님의 예전 의료기록입니다만,” 농장 주인이 책상에서 낡은 종이 하나를 꺼내면서 말했다. “고객님은 근시/난시도 없고, 백내장이나 녹내장 징후도 없으세요. 방금 검사에서도 시력이 감퇴된 증후도 보이지 않았고요. 왜 안구를 교체하려 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힌 기분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농장 주인은 내 표정을 보더니, 손을 휘휘 저으며 다시 이야기했다.


“물론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고객님께서도 고객님만의 이유가 있으실 테니까요. 제가 선을 넘었다면 사과하죠.” 그가 말했다.


“아...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그런 말이 있잖아요.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농장 주인은 내 말을 들으며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생각해요. 내 눈이, 그 너머에 비치는 마음이 너무 낡아 보인다고요. 그래서 이참에 창을 한 번 바꿔 보기로 한 거에요.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마음을 한 번 환기해 보는 거죠.” 


나는 말하면서도 스스로 바보 같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혔지만, 농장 주인은 다만 잔잔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좋은 이유네요.” 그는 더 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나에게 작은 앞치마를 건네주고는, 책상을 뒤져서 투박하게 생긴 원예용 가위를 하나 꺼냈다. 나는 앞치마를 입고 뒤쪽의 매듭을 묶은 후 농장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손짓으로 방 밖을 가리킨 후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뒤를 따랐다. 왜인지 마음속으로 저 농장 주인이 조금 더 친근해진 듯한 기분이 잠깐 들었다.

 

우리는 곧 2층집에서 나와 농장으로 향했다. 눈알 부지의 초입에 들어서자, 나는 처음으로 눈알들을 가까이서 살필 수 있었다. 그들은 땅바닥에서 진녹색 줄기를 뻗고 삐져나와, 내 키의 반만한 크기까지 자라서 한 쌍의 눈알들을 맺었다.


눈알들은 시신경으로 줄기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가끔 벌레가 갉아먹거나 강한 바람 때문에 시신경이 버티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 눈알들도 보였다. 


그것들은 서서히 썩어가는 채로 우리를 보며 격렬히 눈알을 깜빡였으나, 농장 주인은 무심하게 그들을 발로 쓱 밀면서 계속해서 나아갔다. 나는 그의 뒤를 바짝 붙어 따르며 눈알들을 훑어보았다. 나무줄기에 매달려 눈꺼풀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보는 그들은 꽤 기괴해 보였다.


“여기는 시력 1.5인 눈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갈림길에서 몸을 왼쪽으로 틀며 농장 주인이 말했다. “현재 고객님의 시력과 비슷하죠. 다양한 색상들이 있으니, 적당히 둘러보시다가 마음에 드는 눈알이 있으면 저를 불러주십시오. 그리고 너무 깊게 들어가면 안 됩니다.”


“길을 잃을 수 있으니까요?” 내가 물었다.


“아뇨. 근처에 입이 하나 돌아다니고 있거든요.” 농장 주인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는 들고 온 원예용 가위를 탁탁 치더니, 근처 눈알숲 속으로 쑥 들어가 너무 작거나 짓물러진 눈알들을 가위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고, 천천히 고랑을 거닐며 눈알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눈알들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일제히 시선을 집중했다가 멀어지면 다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나는 눈알들을 보면서 어떤 색상이 내게 가장 잘 어울릴지 마음속으로 골랐다. 


오드아이나 청록색 같은 밝은 계열은 아무래도 시선을 너무 끌 것 같아서 별로였다. 검은색은 지금 내 눈색이니까 별로 끌리지 않았고, 푸른색은 그녀의 눈빛이라 차마 내가 고를 수 없었다. 갈색이나 보라색 같은 적당히 어두우면서도 정감 있는 색깔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고랑의 끝부분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왕복하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적당한 눈알 한 쌍을 골라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밝은 갈색이었으며, 홍채 부분에 묘한 이채를 띠고 있었다. 눈알이 매달린 줄기는 다른 줄기들보다 좀 더 커서, 거의 내 어깨만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갈색 눈알은 나를 보며 격렬하게 눈꺼풀을 깜빡이고 있었는데, 그게 좋다는 뜻인지 싫다는 뜻인지는 잘 몰랐다. 어쨌거나 나는 고개를 돌리고 농장 주인을 소리쳐 불렀다.


“저 정했습니다!” 


짧은 시간 후에, 커다란 눈알 줄기들 틈새에서 농장 주인이 튀어나왔다. 그는 한 손에 시들어진 줄기들을, 다른 손에는 원예용 가위를 잡고 내게로 다가오더니 내 앞쪽의 밝은 갈색 눈알을 바라보았다. 갈색 눈알이 깜빡임을 멈추었다. 농장 주인은 눈알을 가볍게 한 번 쓰다듬었다.


“예쁘네요! 이걸로 하실 건가요?” 그가 물었다.


“네.” 내가 대답하자, 그는 씩 미소를 짓더니 내게 시든 줄기들과 가위를 건네주었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자 그는 한 손으로 눈알 바로 밑쪽의 줄기를, 다른 손으로 줄기 밑동을 잡고는 기합과 함께 들어올렸다.


흙 파편이 앞치마에 튀었다. 나는 농장 주인의 뒤편에서 뽑혀져 나온 눈알의 뿌리를 구경했다. 그것은 밝은 선홍색의 뇌였는데, 뇌에서 잔뿌리가 뻗어져 나와 위쪽의 줄기와 눈알로 연결되어 있었다. 농장 주인은 그것을 품에 안아들고 내게 턱짓을 했다.


“빨리 가죠. 신선할수록 이식이 더 쉽거든요.” 그가 말했다. 그의 품안에서 갈색 눈 한 쌍이 발작하듯이 눈꺼풀을 깜빡였다. 


나는 가위와 시든 줄기들을 마찬가지로 품에 안고서 그의 뒤를 따라 2층집으로 돌아갔다. 뒤쪽에서는 뇌가 뜯겨져 나간 구덩이에 남은 흙더미들이 조금씩 떨어지며 사락거리는 소리를 만들고 있었다.


이식은 빠르고 따끔하게 진행되었다. 농장 주인은 나를 시술실로 이끌었고, 나는 원예용 가위와 줄기들을 방 한켠에 내려놓고서 각도 조절 의자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농장 주인은 작은 세면대에서 두 손을 꼼꼼히 씻더니, 수건에 손을 닦고 푸른 라텍스 장갑을 낑낑거리며 손에 끼웠다. 그리고 그 옆의 금속제 플레이트에 준비되어 있던 작은 가위를 꺼내 그가 가져왔던 밝은 갈색 눈알에게로 향했다. 


섬뜩한 서걱 소리와 함께 눈알이 줄기에서 분리되었다. 격렬하게 깜빡거리던 그것은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곧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농장 주인은 눈알을 플레이트에 담은 후, 이번에는 아이스크림을 퍼내는 도구와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를 들어올리더니 그 안에 눈꺼풀로 덮인 눈알을 넣고 조심스레 돌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살가죽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갈색 눈알이 눈꺼풀과 분리되어 플레이트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핏방울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다른 쪽 눈에도 같은 과정을 반복하더니, 이번에는 플레이트에서 펜치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꺼내 내게로 다가왔다.


“자, 숨 들이마시시고. 살짝 따끔할 거에요.” 그가 말했다. 


나는 주먹을 꽉 쥔 채로 심호흡을 하고, 이를 악물었다. 곧 왼쪽 눈에 이물질이 들어오는 느낌이 나더니, 우두둑 소리와 함께 눈알이 깔끔하게 시신경과 분리되어 튀어나왔다. 


수십 년 동안 함께 해 온 내 검은색 눈알은 미련 없이 내게서 떨어져 나와 농장 주인의 손에 안착했다. 텅 빈 안구에서 핏줄기가 흘러나와 내 얼굴로 이어졌고, 나는 무언가가 바늘로 내 뇌를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농장 주인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그것을 받아 플레이트 위에 던져 놓고, 눈꺼풀을 분리한 갈색 눈알을 내 왼쪽 안구가 있던 자리에 밀어넣었다. 무언가가 눈 속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더니 곧 왼쪽 눈의 감각이 돌아왔고, 나는 감은 눈꺼풀 너머로 뚫고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뜨시면 안 돼요. 이제 오른쪽 눈도 하겠습니다.” 농장 주인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며 펜치를 오른쪽 눈에 들이밀었다. 


나는 황급히 숨을 들이마시고 의자 팔걸이를 꽉 쥐었다. 그는 오른눈 역시 제거한 후에 갈색 눈알을 내 안구에 밀어넣고는, 잠깐 상태를 점검한 후에 두 눈에 안대를 조심스럽게 둘렀다. 부드러운 천이 머리에 둘러지며 어둠이 나를 감쌌다. 나는 몸을 떨었다.


“다 됐어요, 다 됐어.” 농장 주인은 잠깐 어딘가로 걸어가더니, 곧 따뜻한 온수 팩을 가져와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비닐의 물렁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걸로 안대 너머에서 지혈하다가 피가 멎으면 그때 한 번 봅시다. 잠시 기다리고 있어요.” 그는 그 말과 함께 내 옆에 있는 작은 스톨에 털썩 걸터앉았다. 나는 온수 팩을 안대 너머로 조심스럽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고통을 낮추었다. 


놀랍게도 눈에서 흐르던 피가 곧 멎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상태로 5분쯤 있다가 온수 팩을 눈에서 떼고 안대를 살짝 눌러보았다. 아프지 않았다. 


“다 된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옆에 있던 농장 주인이 다가와 내 안대를 살펴보더니, 곧 안대를 풀고 내 눈꺼풀과 그 옆의 피딱지를 살펴보았다. 그가 말했다.


“좋아요. 눈 뜨시고, 거울 드릴 테니 한 번 보시죠.”


나는 그 말과 함께 눈을 떴다. 처음에는 세상이 흐릿한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눈꺼풀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주변 풍경은 점점 또렷해지더니, 끝내는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약한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내 손에 무언가가 쥐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작은 손거울이 있었다. 농장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며 거울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과연 바뀌었을까. 과연 내가 원하던 모습이 저 속에서 보일까?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들고서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얼굴로 가져갔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거울 너머에는 내가 있었다. 단, 눈 색은 바뀐 채였다. 낯선 갈색의 안구가 거울 너머에서 나를 응시했다. 그것의 홍채가 시술실의 전등의 빛을 받아 기이하게 빛났다. 내가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그것은 내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나는 눈썹을 들어올리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눈을 세게 감았다 떠 보았다. 갈색 눈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어떠신가요?”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농장 주인은 스톨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에는,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죽 그랬듯이, 모호하고 뜻모를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나는 그를 잠시 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네요.” 내가 말했다.



***



나는 농장 주인과 작별 인사를 하고 외투를 입었다. 그는 달라진 게 없다는 내 말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렇게 될 것이라는 듯한 미소를 띄운 채로,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았을 뿐이다.


나는 우울한 기분으로 돈을 결제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선선한 바람이 나를 감쌌다. 나는 터덜터덜 비포장도로를 걸어가, 내가 타고 왔던 트럭에 도착했다. 트럭의 창문 너머로 내 모습이 보였다. 밝은 갈색의 눈알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차키를 돌려서 트럭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 옆의 조수석에는 두 눈알이 뽑힌 여자의 시체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원래 생생하게 빛나고 있던 푸른 눈알이 있던 자리는 이제 텅 비어 있었고, 방부제를 쏟아부어 미라화된 그녀의 시체는 바싹 말라서 마치 종이조각을 쓰다듬는 듯했다. 


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백미러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갈색의 눈을 한 내 모습이 있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고, 눈빛은 그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 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트럭의 시동을 걸었다. 트럭은 탈탈거리며 다신 엔진을 굴리기 시작했고, 나는 트럭을 후진시켜 농장을 빠져나오는 쪽 도로로 들어갔다.


눈알을 바꿔도, 이 빌어먹을 살인자의 눈빛은 바꿔지지가 않나 봐. 나는 입술을 깨문 채로 천천히 악셀을 밟았다. 백미러 너머로 눈알 농장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 입에서 대합실에서 마셨던 차의 달콤씁쓸한 맛이 갑자기 맴돌았다. 


나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내 몸과 그녀의 시체를 감쌌다. 나는 그 상태로 계속 운전하다가 무의식적으로 백미러를 보았고, 눈을 크게 떴다.


백미러에는 농장 주인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는 한 손에 원예용 가위를, 다른 손에는 내가 뽑아냈던 갈색 눈알의 뇌를 든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더니, 나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의 뒤편으로, 수많은 눈알들이 줄기에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며 기묘한 소음을 만들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체는 이제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다가, 쓴웃음을 짓고 트럭의 속도를 더 높였다. 


눈알 농장의 풍경이 빠르게 멀어져 갔다. 나는 나지막하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비포장도로를 빠져나와 익숙한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내 갈색 눈알에서 눈물이 한 줄기 떨어졌다. 나의 눈물인지, 갈색 눈알의 눈물인지, 아니면 우리 모두의 눈물인지는 잘 몰랐다. 그러나 백미러에 비친 나의 눈알은, 계속해서 엷은 눈물 한 줄기를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