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은 골렘성이요, 검은 하늘 아래 가장 성스러운 곳은 니켈 교국이다. 산으로 둘러쌓인 이 작은 규모의 도시국가는 아리아 대륙의 종교 전체를 관장한다. 그러한 드높은 위치에 있다보니 최근에는 최고지도자의 호칭을 대주교에서 교황으로 격상하였다. 


아리아의 여제는 본디 아리아 전체를 다스리는 여제요, 브로켄 대공의 주군이고 잔의 아미르가 섬기는 술탄이며 봉화와 아사가 모시는 천자다. 그리고 니켈의 대주교를 임명하는 교황의 권력을 지니기도 했다. 이를 여제가 포기한것이였다. 그 교세가 얼마나 막강한지 알수있다.


그리고 최근 교국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교황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이다. 니켈의 대교황, 천으로 얼굴을 가린자, 대역죄인 오르톨랑이 어둠의 신의 자비를 받게된다는것이다. 수많은 교인들이 구슬프게 울고있었다.


오직 단 한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는 니켈의 추기경으로써 현재 교국 내에서 그 신앙심과 인망이 두텁기로 유명한 자였다. 그가 행하는 언령들은 그야말로 신이 보우하는것같으며 그가 행하는 기적은 그야말로 교국의 차기 계승자에 걸맞았다.  한 나라의 차기 계승자가 자신의 차례가 오는것을 기뻐하는건 당연하다. 권력의 승계는 과욕하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금욕해서도 안되는것이니까.


문제는 그가 니켈의 추기경이라는 위치에 있다는것이다.


"몬테오 추기경 각하. 수녀원장 예리시아께서 오셨나이다"


"아. 들어와도 좋소"


문이 열리자 검은색 갑옷을 걸친 기사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어린 수녀가 걸어왔다. 몬테오가 보기에 눈앞의 소녀는 천으로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움을 감추지 못하는 미모를 지닌 수녀일뿐이였다.


물론 눈앞의 소녀가 전임 수녀원장의 횡포를 참지 못해 끓는 수은을 입안에 들이붓고 양쪽눈을 총으로 뭉개버렸다는 사실만 몰랐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수녀원장이 되었다. 아마 전임 수녀원장을 죽인 그 순간에 행해진것이 기적으로 인정되었기 떄문은 아닐까. 아니면 그 망할 교황의 변덕때문인걸까. 알수가 없다.


"몬테오 추기경 각하. 수녀원장 예리시아가 각하를 뵙나이다"


"격식차릴필요 없다오. 우리 둘다 경건한 독실자로써 서로 가볍게 예기라도 나눠봅시다"


그때였다. 의자에 앉자마자 어째서인지 찻잔이 떨어진것이였다. 사기로 만들어진 찻잔은 요란하게 부서지고 그 조각들이 바닥에 나뒹굴러졌다.


"아 이런, 찻잔이 떨어졌구려. 손대지 마시오. 내가 치울테니"


"이상하네요"


싸늘한 목소리였다. 조각들을 치우던중 들린 목소리에 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으로 가려져있음에도 그 눈이 어떤상태인지 어느정도 짐작이 갔다.


"뭐가 이상하신지? "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나이다"


"그럴리가"


단호하게 말한다


"고아원의 아이들 목소리겠죠"


"그렇게 생각하실수도 있겠지만, 이상하네요?. 그도 그럴게 현재 고아원에는 갓난아기가 없답니다? "


설마 지금 의심을 하는건가 싶어서 나는 말하였다.


"수녀원장.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시나이까? "


"시험이라뇨 후후. 전 단지 의심을 했답니다"


"니켈에서 의심은 죄입니다"


"어머나, 전 의심이 아니라 불신이 죄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렇잖아요? "


그녀의 눈색이 보였다. 선명한 붉은색이였다.


"고위 이단심문관께서도 끊임없이 의심하시잖아요? "


"허..그분은 좀 특이하잖습니까. 저는 다릅니다. 저는 어떤 경우에서도 의심하지도 불신하지도 않습니다. '나를 의심하여 나의 돌길을 걷지 않는 자들은 내것이 아닌 정돈된 도로를 걸을지라도 끊임없이 넘어질 지어다'. 맹세컨데 저는 그 어떤 불신도 없나이다"


"추기경 각하. 전 여기서 고해성사를 하러 온게 아니랍니다. 하지만 각하께서는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말의 내용은 그반대지만요"


수녀원장은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이제 가려고하는것같았다.


"시간이 되었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충고를 해주자면"


그녀는 얼굴을 가리는 천을 손으로 조금 올려 눈을 보이고는 말하였다.


"이곳에서 그 어떤 아기의 죽음도 혀용되지 않을지니"


그러고는 문을 열고 갔다.


***


흔들침대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새근새근 잠자는 아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추기경이 서있었다.


"교황 성하. 임종을 맞이하셨군요"


스테인글라스로 된 창문너머의 풍경을 보면서 혼잣말하였다.


"이제 교국은 제가 잇겠나이다. 그리고 제가 죽으면 이 아이가 이을지니. 또 이 아이가 죽으면 그 자손이 이을겁니다. 저의 이름이 열쇠의 옥좌에 영원토록 새겨질겁니다. 신께 맹세코 저는 강성한 교국을 만들어 신의 뜻을 널리널리 전파하겠나이다"


"신의 힘 아닌가? "


몬테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기에 나는 땀이였다. 무언가가 이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칼들이 튕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닫혀라"


하자 모든 창문들과 틈새들이 닫혔다. 굳게 닫히고 굳게 잠겨져서 그 누구도 밖에서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것이였다. 이것이 언령의 힘일지어다.


"당신은... "


"우리는 신의 대행자. 독실자들의 손이요 이교도들로부터 수호하는 자들이며 이단과 배교자들의 처형을 집행하는 자들일지니. 성호 그려진 하늘아래에 우리는 스스로의 뜻으로 지옥에 가서 죽음의 끝까지 이단들의 목을 조르리라. 키르세"


마지막 단어를 읇자 그가 들고있는 검이 화염을 입었다. 검신에는 열선들이 성흔처럼 그려졌다. 추기경은 눈앞에 서있는자가 누군지 알수있었다.


고위 이단심문관. 산티 베케트.


"이단심문관...여긴 어쩐일이요? "


"지금부터 거짓을 고하지 말지어다"


그러자 공기가 무거워졌다. 언령이였다. 이단심문관의 신앙이 추기경의 신앙보다 강하기에 그 어떤경우에도 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저 아이는, 누구의 자식이느뇨? "


"...제 자식입니다"


"아이를 품은 목적은 무엇이느뇨? "


"저의 이름으로 승계되기 위함입니다"


"형벌의 명분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느뇨? "


"...하늘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전도하는 자들은 피를 전해서는 아니되니"


"이는 피로 이어진 길이 아닌 믿음으로 이어진 신의 길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니라"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추기경. 믿음으로 이어진 길에서 탈선했군"


"부디 자비를 내주시옵소서"


추기경이 엎드렸다.


"지금 용서를 구한다고 해도, 추기경의 자리에 오른 자가 자식을 품는건 죄이니라. 이를 어찌 극복하느뇨? "


"한번만..한번만 기회를.. "


"허면 내가. 두가지 갈림길을 내준다면 하겠느냐? "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이를 죽이거나, 아니면 네놈이 죽거나. 둘중 하나를 선택하거라"


"..어찌..어찌 그리 말씀하시나이까..아기를 죽이라니요? "


"허면, 네놈이 죽겠느냐? "


그리고 그 순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 자는 추기경이였다. 아기는 느끼지 못했고 일어서지도 못했다.


"네놈의 믿음을 보이고 싶다면, 언령으로 죽이거라. 신께서 허락하셨다는 뜻이 되어줄테니"


"나의 자식이여!. 나의 핏줄이여!. 나의 더러운 오물이여!. 신께서 명하시고 신께서 내밀며 신께서 하사하시니. "


그리고 그떄였다.


"죽으ㄹ"


추기경의 몸에서 장미 가시들이 솟아난 순간이


"끄아아아악!! "


"역시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군"


이단심문관은 웃음없이 말하였다.


"내 불신섞인 믿음에 말이야"


"어..어째서..? "


언령의 가장 큰 문제점. 두가지다. 하나는 신앙이 두텁지 않으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것


두번쨰는 그 언령을 신이 거부하는것. 이는 후자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순했다.


"이곳에서 그 어떤 아기의 죽음도 허용되지 않을지니"


이는 그들 모두 나의 뜻에 의헤서 생하였기 떄문이다


"안타깝게도 신께서는 너를 아버지가 아니라 위정자로 본것같도다"


"저...저는!. 저는 저의 권력을 공고히 할수있는 수단을 스스로 없에려 했나이다!. 다시 신을 진심으로 섬기려 했단 말이오!! "


"누구든지 제 자식의 피를 빨아먹는 자들을 조심하라. 너희들의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피빨림을 기억하라. 네놈은 말씀도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것이냐? "


"...자비를. 자비를 내주시옵소서"


"그대가 속한 이름에 자비를"


불꽃이 피어났다.


"그대만을 제외한 자비를"


신벌은 짧게 끝났다.


***


어두운 하늘 아래 그나마 밝은 곳에 세워진 정원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누군가가 발을 디뎠다.


"고아원에 어쩐일로 오셨는지요?. 산티 베케트? "


그에게 말을 건건 얼굴가린 수녀원장이였다. 궁금증에 의한 질문이지만 목소리는 이미 알고있음을 알려줬다.


"길을 걷던 도중 버려진 아기를 주웠소. 부모는 이 추위속에서 아기를 죽게 하려 한것같소. "


"안성맞춤이네요. 최근 교황 성하께서 이곳의 시설을 정비해주셨답니다"


"다행이군요. 설마 임종의 소문이 사실은 변비때문이였다니. 이거 신께서 아주 짖궂은 장난을 쳤나봅니다. "


이단심문관은 아기를 침대에 눕혔다.


"이만 가보겠나이다. 신께서 보우하시길"


"신께서 보우하시길"


그리고 한동안 평화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