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픔에 잠기려 하는 사람을 비웃었었다.



하지만 나는 슬픔에 잠긴 채로 다른 사람을 애써 헤아리려고 하는 나를 발견했고


사실 그 사람들은 슬픔에 취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자신을 위로할 방법을 찾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고민하는 나의 모습도 내가 싫어하던 감정에 치우친 사람들의 모습. 


사람과 마주하며 전에는 들지 않았던 이러한 생각이 드는 모습을 보고,  사람과 마주하는 사람은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은 내가 얼마나 대인관계에서 소홀했는지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다. 


왜일까. 



나는 그렇게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척을 하며 뒤에서는 나의 주관을 붙들고 싶다. 


이러한 감정들은, 대인 관계를 너무 피곤하게 한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 그렇게 굳어진 것들, 그것들을 끄집어내 조율하려고 하니 마음은 피곤해지고 지친다. 


어차피 할 수 있는 행동은 제한되어있다. 정해져 있다.



그럼 그러한 행동을 하는데 의문을 가져야 하나. 


내가 힘들더라도. 원하는 것을 지키려면 나 혼자의 조그만 희생은 아무것도 아닐까. 특히 남이 더 큰 희생을 했을 때. 


누군가 상처를 주었다 해도, 그 사람이 지금껏 해온, 그리고 앞으로도 할 희생에 비교하면, 정말 모든 것이 괜찮을까. 


결국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되었어도, 갑과 을은 언제나 정해질 수 있다. 


그리고 갑과 가까운 사이의 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뭘까. 갑과 을의 관계를 상기되었다는 것에 나는 상처받았다. 


갑과 을의 관계이면 안 되는 것일까. 풀 수 없는 인연의 사이에서는 그런 관계가 있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보기 좋은데.


하지만 어느 규모로 그 일이 커진다면, 결국에는 가족도 남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정의된 가족은, 하나의 암시와 같다. 그리고 나는, 정말, 이 지구에는 내가 기댈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느낀다. 


가장 깊은 인연의 울타리조차 불안전하고, 가장 단단해야 할 고리들은 서로 밀어내는데, 그 사이에서 매달린 나는 정말로 정말로 슬프다. 



마음의 배설물이 꾸역꾸역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