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코끼리가 있다.
그 코끼리는 너무나도 거대해서, 이 세상 그 누구도 제대로 된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귀의 일부를 본 사람들은 그것이 펄럭이는 동물이라고 말했고, 다리만을 본 사람들은 그것이 기둥 같은 동물이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본 코끼리의 모습만을 코끼리의 진짜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코끼리는 어떻게 생긴 동물일까? 사람들이 보았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모습 중, 과연 어떤 게 그 커다란 코끼리의 진짜 모습일까? 우리가 만약, 코끼리의 전반적인 외형을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것은 코끼리를 온전히 이해한 것일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그것의 모든 모공에 난 털의 갯수하며, 상아에 새겨진 세월의 흠집을 하나하나, 그 깊이까지 모두 측정한다 한들, 우리는 과연 코끼리의 진짜 모습을 봤다고 할 수 있는가?
어렸을 때, 나는 코끼리를 완전히 이해했다는 오만에 빠져 있었다. 조금 더 머리가 커서는, 내가 단지 코끼리의 아주 작은 일면만을, 심지어 그것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본 코끼리의 모습이 진짜 코끼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의 논쟁에 지쳐, 나와는 다른 모습을 본 사람들을 모두 죽여 논쟁을 종식시키는 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 스스로가 학살을 자행하거나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코끼리의 아주 작고 세세한 부분까지 탐구할 의지와 끈기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내가 바라보던 코끼리의 일부가 절대 코끼리의 전부가 아님을, 그리고 끔찍하게도 내가 주장하는 것의 허점을, 내 도덕과 논리의 결함을, 속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지지 않으려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만을 알아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웃기로 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이 멍청한 논쟁에 매달린 사람들을 동정하는 동시에 조롱하면서, 거대한 서커스 극단처럼, 가는 곳마다 가학과 피학, 그리고 자학으로 얼룩진 싸움을 몰고 다니겠노라고.
그러다 언젠가, 이 모든 것에 질려버리고 나면, 거대한 산을 불태우고 사라진 한줌의 담뱃재처럼, 나는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무덤조차 남기지 않고, 바다 한가운데에 가라앉아, 조용히, 조용히, 물고기들과 산호들의 먹이가 되어, 이 비루한 회담장에서 벗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