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전, 서울에서 자취하던 내게 본가로 급히 돌아오라는 형의 문자가 왔다.

난 의문을 품었지만 군말없이 몇 시간을 달려 본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곳엔, 온 가족이 모여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도 몇 있었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사촌동생도, 누나도, 형도.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우연인진 모르겠지만 때마침 입고 있던 검정 바람막이가 그들의 옷과 어우러졌다.

외삼촌에게 정장을 건내받았다.

옷을 갈아입고 난 후에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표정은 말이 아니였다.

오히려 읽기 힘들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나로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표정이였다.

분명 슬픈 표정이다.

하지만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띄워져 있다.

나중에 물어보니 좋은 곳으로 갈 어머니가 마음 아파 하실까봐 억지로도 웃어주는 거라고 했는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어머니의 묘에 꽃을 던지며 좋은 곳으로 가길 모두가 울며 기도했을때,

나 혼자 표정이 덤덤했다.

그 일로 장례식이 끝나고 고모부에게 꾸중을 들었다.

친모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눈물 한 장울이 나지 않냐고.

너에겐 네 목숨같이 어머니의 목숨도 그리 쉬운거냐고.


난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은 모두 죽기 마련인데,

아버지의 말 처럼 곧 올건데 굳이 울며 돌아가신 분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해야할까.

오랜만에 가족 친척들 모두와 본가에서 같이 자는 밤은,

참으로 묘했다.

예전 본가의 포근함이 사라졌다.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가 아니다.

확실히. 정확히.

사라졌다.

어머니는 유서에 나에 대해선 ‘열심히 살고, 행복해. 너의 목숨을 값없이 느끼지 마.’

이 한 문장만 남겨두셨다.

행복해.

행복해야해.

나는 행복을 찾기 위해 사는 것 인가?

내 삶의 목표가 뭐였더라?


사람이 죽고 나서야 삶의 방향을 돌리는 나라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