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신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사람들의 꿈이 번지고 늘러붙어 만들어진 이 신들또한 마찬가지다. 어디에도 악신을 스스로 참칭하는 

이는없다. 


 만들어진 것이다.  불려지는 것이다. 


 누군가의 악의로, 누군가의 원망으로. 또 누군가의 한숨과 누군가의 눈물과 누군가의 슬픔.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만들어 진 것이었다. 꿈과 바램이 하나로 모여 만들어진 만신전의 주신들 처럼.   


 아이러니하다. 


 만든 아비와,  낳은 어미의 부정으로 이루어진 이 악신은 아비와 어미가 원하는대로, 그들의 원망을 몸소 이어 받으며 자신들의 

역할을 이어 나갔다. 존경하는 아비와 사랑하는 어미를 위해.  하지만 그럴수록 두 부모에게 아이는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 


 원하는 바를 이룰수록, 사랑에서 멀어진다. 사랑에서 멀어 질 수록, 태어난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아비가 바라고 또 어미가 기대한

자신의 역할을 좀 더 적극적이고 충실하게 이어 나간다.  그리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나 싶어서. 


하지만 그럴수록 두 부모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악신의 처단은 그렇게, 아이가 사랑에 목말라하며 부모를 세차게 부르짖을 때 쯤 이어지게 된다. 아이의 메아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며 세상 천지의 온갖 악행을 몽땅 뒤집어 쓴 그 시점에, 시작된다.  


 아이는 그때쯤에 이르러서야, 부모의 웃는 얼굴을 목도하게 된다. 등을 뚫고 나온, 찬란하게 빛이 나는 칼을 바라보며 환희에

젖은 부모의 모습을. 


 아이는 쓰러져가며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알 수 없다.  그래도, 솔직히 화는 조금 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죽어가는 

그 순간 까지도 자신을 낳은 부모의 웃는 얼굴에 기뻐하며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면 그것은 너무 가련하지 아니한가?


 

 어찌 되었건 상관 없다. 나는 여기서 이 악의 고리를 끊고자 한다.


 카르마의 구슬이 물드는 것은 모두, 스스로의 업보를 남에게 던져내려 하는 인간의 죄의식. 


 그것으로 말미암아 강림하는 악신들은 모두 인간의 자손들이다.  나는 누구하나 돌보지 않는 이, 어린 아이들을 위해 더 이상 인간이 스스로의 업보를 남에게 던지지 못하게 막아 설 것이다.  그것을 위해 때를 기다리며 아이들의 잔해를 뭉치고 두드리며 

그들의 염원을 담은 검을, 빗어내었다.


 출정식에 앞서 사람들은 칼집으로 뽑혀 나오는 성검의 위용을 몸소 체험하고자  광장에 모였다. 운명이 규정하는 시대의 목소리가

어떤것인지 듣기 위해서.

 

 용사의 손에서 뽑혀나오는 성검은 시대를 반영한다.


  문명의 불꽃이 사그라들던 시기, 용사의 칼집에서 튀어 나온 것은 태양보다 붉게 타오르는 성검이었다. 빛 한점 보이지 않는 암흑

의 시대에, 용사의 칼집에서 나타 난 것은 은은하고 차가운 달빛의 성검이었다.  


 규정하는 시대에 맞춰 사람들의 염원을 품고 나오는 용사의 성검은,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역으로 사람들에게 시대의 목소리를 

전하는 역할로서 사람들을 광장 앞에 세운다.  아둔하고, 또 우둔하여 자신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멍청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이 염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리기 위해 .


 칼집이 밀려나가며 칼이 천천히 그 모습을 바깥으로 드러냈다.  미쳐 다 들어난 칼은 쭉뻗은 여인의 나신처럼 아름다웠다. 천천히,

검은 스스로 울리며 사방으로 파문을 내었고, 파문은 광장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넋이 나간듯, 광장 위의 칼을 바라보던 대중들의 눈가에는 하나 둘,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무대의 중앙에서, 칼이 대중들에게 전달 한 것은 슬픔이었다. 


 하나 둘, 눈물 방울을 떨구어 내기 시작한 대중들은 이제는 아예 바닥에 손을 대고 오열하고, 엉엉 울고 있었다. 광장은 순식간에 

울음 바다가 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광장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비탄의 성검. 내가 건낸 칼을, 그들에게 그렇게 불렸다. 그들의 손에 죽어간, 또 나의 손에 빗어내어 진 아이들은 이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 할까?  나는 알 수 없다. 


 안타깝다. 나는 저 칼의 운명이 어찌 될 지 알지 못한다.  남은 사람들의 운명이 어떻게 이어질지 볼 수 없다. 왜냐면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간으로서, 모든 인간의 업보를 쥐고 두드리고 날을 세우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한번 한번이, 수명을 갉아먹고 목숨을 위태

롭게 할 생사의 위기였다.  잠깐 잠깐의, 이 순간이 이리 힘들었는데 인간에 의해 잉태되어 모든 악을 뒤집어 쓰고 죽어나간 수많은

악신들은 그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웠을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잘 버텨내어 주었다. 빗은 칼은 성검을 대신하여 용사의 손에 전해졌고, 용사는 스스로 저지른 죄에 의해 세상은 뒤집힐

것이다. 


 흐릿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고개를 쳐 들고 광장 위를 바라보았다. 슬픔이, 메아리처럼 뿜어져 나오는 저 칼을 보며.  


릴리트. 곧 당신에게 가보도록 할 게. 이만하면 잘 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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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꺼. 노인의 시점에서 써 봄. 좀 더 복잡하게 쓸 까 했는데 이것도 나쁘진 않은거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