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여럿 있다.
영미권 학생들의 에세이, 대학교 레포트, 인문학적 고찰, 논리적인 설득문, 과학적 논문과 문예 소설 등.



인상파 화가가 자연의 순간적인 빛을 담아내기 위해 감각적인 색채와 형태잃은 물체를 사용하듯, 때로는 화려한 미사여구를 때로는 과감한 비문을 사용하면서 문장을 자아내고, 그 모습은 또한 낭만주의 음악가들이 틀에박힌 관습과 화성이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을 연주하던 모습과도 닮았다.



그러나 지나친 감상주의와 개인적이고 지엽적인, 심하게 말하자면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공감되던 화풍, 문체, 악상에 흥미를 잃어, 하나의 문장이 천하를 호령하고, 하나의 형식에 천지가 끼워맞춰지던 찬란하던 그 시절(벨 에포크)의 향수에 젖어 낡았다고 버려졌던 형식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신고전주의(네오클래식)가 주목받기도 하였다.



다만 인간의 상상력은 결국 거기서 거기라 과거의 형식을 답습하면서 틀에박힌 작품만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게 되었고, 문화가 정체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개인적인 감상주의를 추구하던 낭만파까지도 정형화된 기호로 감성을 담아내고, 그것에 훈련된 독자들은 공감이 아니라 해독을 통해 감상을 만들어내는 지경에 다달랐다.

그렇게 너무나도 정형화되어버린 형식들(클리셰)에 매몰되어 값싼 붕어빵을 찍어내듯 스낵컬쳐를 찍어내고, 질낮은 양산형 소설, 영상, 댄스 그리고 아파트단지와 사무실이 범람하기에 이른다.



이를 타파하고자 틀에 박힌 인간의 사고에서 벗어나 누구도 가보지 못한 세상을 가장 먼저 개척하고자 하는 첨병을 자처한 아방가르드 시조는 이제 대중의 공감을 완전히 시야에서 지워버리고 사고를 뛰어넘어, 현실을 초월하여, 질서잃은 혼돈으로 기꺼이 발을 내딛고, 발산적으로 떠오르는 순간의 착상을 마구잡이로 뱉어내려 시도한다.

그러나 천재는 둘이나 있을리 없기에, 그저 조금 뛰어난 자들은 어렴풋이나마 그들을 이해하고 모방하려 애쓰고 그 와중에 일부 전위예술은 후위로 물러나 주류 체제속에 흡수되기도 한다.
물론, 천편일률적인 흐름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목적은 달성한 것이지만, 사실 대중이 온전히 그것을 이해했는지 아니면 그저 군중으로부터 내팽겨쳐지기 싫었기 때문인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어쩌면 모른다. 자칭 천재는 그저 공부하기 싫어, 선현들의 방대한 가르침을 수집하고 이해하는 길고도 괴로운 과정이 귀찮아, 그저 귀를 닫고 자신만의 세상에 유폐된 채 내뱉기만 할지도.
그 모습을 보며 영감을 받은 이는 그저 식빵에서 예수의 얼굴을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그러다 이제 입씨름하기도 지쳤고 더이상 생각하기도 귀찮아진 인간들은 그저 너도 옳다 하며 전긍정의 축복을 누리고자 하나, 세상은 잔혹하여 무한한 자원이란 존재하지 않아 분배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누군가를 긍정하면 반드시 누군가는 부정할 수 밖에는 없는 법.

다시금 군중은 오와 열을 이뤄 그들의 법칙으로 완벽한 액자를 만들어 총천연색의 화폭을 찍어 튀어나간 부분을 잘라내어 직사각형 반듯한 캔버스로 박제하고자 한다.

그렇게 한 무리의 진보가 한데 뒤섞여 새로운 규범을 이루고, 새로운 규범이 주도하는 질서와 영광에 경도된 신민은 그 틀 밖의 것은 저질스럽고, 하찮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반동분자로 낙인찍고, 배격하고, 탄압하고, 숙청해 나가며 굳건한 신념을 보수하며 관철해나간다.

그렇게 개인은 집단에 말소되어, 억압된 욕망은 쌓이고 쌓여 다시금 개인주의와 다양성을 부르짖는다.

고전주의를 거부한 새로운 낭만주의자가 이제 새 시대를 선언한다.



작문이란 이렇게 실로 오묘할지니, 때로는 아프며 때로는 광적이기까지 하나, 이렇게 하나의 세계를 부수고 지배하다 무너뜨려버리고 다시 쌓아올리는 과정을 거친 성숙된 작가는 세상의 이치의 편린을 맛본 것이니, 이 과정은 필연적이며 또한 필멸자인 우리를 찬란히 빛내는 아름다운 운명의 수레바퀴이다.



그러니 청년이여, 세상을 부수어라.
그리고 견고한 성벽 앞에 무릎꿇고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퍼즐을 이해하려 해봐라.
혼자 지치면 동료와 선배들과도 머리를 맞대어보아라.
그렇게 쌓아올린 새로운 체계로 이제 낡은 벽돌더미를 무너뜨려라.
신세계 속에서 오만가지 운명과 시련을 마주하고 이겨내며 신념을 지켜내며 늙어가라.
그러다 평생을 진리인줄 알았던 새 체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이만 인정해라.
나 또한 틀렸노라, 나 또한 잊었노라, 나 또한 죽으리.




수필 전작
종묘, 현충일, 족보, 계보, 정통성
수필 다음작
인가를 책정하는 체계 (PSYCHO-PASS 모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