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꿈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켠의 거울을 바라본 나는 내 자신이 도마뱀이 되었음에 경악했다.


밋밋하게 눌린 콧대는 길게 찢어진 콧구멍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눈은 보통 사람의 배로 커져 오묘한 색을 띠었다.


털이 부숭하던 배는 어느새 비늘과 배갑으로 뒤덮혀 말랑하던 살결은 더이상 찾아 볼 수가 없다.


엉치뼈 위에 돋아난 꼬리는 전에 느껴본 적 없는 야릇한 기분을 내 척수에 전달해 주고 있었다.


놀라는 것도 잠시, 나는 내가 혼자 산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바퀴벌레로 변한 한 남자처럼 내 모습을 가족들이 봤다면 나도 변사체 꼴을 면치 못했으리라.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안정되자 내 손발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알록달록하던 세상이 무채색의 회빛으로 변한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이 어둑한 밤이 아니라 해가 화창한 낮이라는 사실도.


끔찍한 일이다.


평생을 색 속에서 살던 사람이 흑백의 세상에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오’ 라고 말하겠다.


좌절감에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내 시야는 어제와 같지 않았다.


키마저 줄어든 것이다. 벼락맞을!


다시 천천히 거울로 다가가자, 내 혐오스러운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불쾌감을 풍기는 몰골에 나는 벽을 붙잡고 구토를 하려 했으나, 비대해진 혀가 기도로 말려들어가 숨이 막혀 켁켁댔다.


애초에 아무것도 먹질 않아서 토를 한다면 위산만 잔뜩 역류할게 뻔했다.


배가 고팠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어쩔 수 없이 나는 모자가 달린 옷과 헐렁한 바지로 몸을 가리고 먹을것을 사러 갔다.


마스크와 색안경까지 끼자 살짝씩 드러난 비늘 빼고는 꽤나 그럴듯한 모습이었다.


눈에 띄지 않게 살금살금 편의점으로 걸어가 삼각김밥을 집었다.


도마뱀이 되면서 느끼는 미각과 위장 구조까지 바뀌지 않았음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계산을 하려 점원에게 제품을 내밀자…비늘에 뒤덮인 손톱이 긴 손이 튀어나왔다.


점원이 보기 전 황급히 손을 넣긴 했지만, 그가 내 얼굴을 똑바로 봐버렸다.


“1200원입니…으헉!?”


수치심과 당혹감에 나는 김밥도 집지 않고 그대로 뛰쳐나와버렸다.


꼬리가 바지에서 빠져나와 달랑거렸다.


빌어먹을 다리는 우스꽝스러운 각도로 휘어져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이 지금 날 본다면 분명 동물원에 잡아 넣겠지.


점원이 뒤에서 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집에 돌아왔다.


공복에 달려서인지 배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팠다.


그때 방 한켠의 쓰레기 더미에서 벌레가 튀어나왔다.


나는 소리를 지르려 해봤으나, 도마뱀이 빼액거리는 귀여운 소리만이 나왔다.


평소 나는 벌레를 극도로 혐오했다.


잘 움직이지 않는 편임에도 벌레만 나오면 기겁하며 잽싸게 잡아왔다.


하지만 오늘따라 벌레가…맛있어 보였다.


삼각김밥과 편의점에 들어선 인스턴트 식품을 보면서도 식욕은 돌았지만, 저건 차원이 달랐다.


맹수가 먹잇감을 볼 때의 기분이 이해될 지경이었다.


나는 빠르게 기어가 벌레를 입에 털어넣었다.


사람이었다면 느껴지지 않았을 감칠맛과 고소함이 느껴졌다.


포만감마저도 느껴졌지만, 나는 이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속을 게워냈다.


아마 내 생각대로라면 나는 이대로 살게 될 것이다.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햇빛에 몸을 데우며 벌레나 집어먹으면서 살아남는 비참한 짐승의 삶을 살 수능 없다.


나는 생각했다. 도마뱀이 아가미로 숨을 쉬나?


숨을 참아 아님을 알게 된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이 작아져서 줄을 매달려면 의자 위에 책을 쌓아야 했다.


눈을 감고 밧줄 고리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곧 편안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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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빌라촌이 간만에 북적였다.


경찰 수사대가 한 빌라에 들쑤시며 수사중이었기 때문이다.


동네에 둘뿐인 편의점의 한 점원은 영문도 모른 채 취조를 당했다.


그는 몇일 전 가게에 찾아온 수상한 손님에 대해 증언했다.


경찰은 신고가 들어온 호수를 찾아 문을 따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시체가 목을 매단채 썩고 있었다.


시체의 얼굴에는 각질과 피부질환이 무성했으며 다리는 오랜 시간 영양분이 부족해서인지 밖으로 휘어 있었다. 각기병이었다.


남자는 오랜 시간 밖에 나가지 않은 것으로 보였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약들로 미루어 보건대 오랜 시간 편집증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남자의 부고소식은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다.


다만 그의 가족만이 그를 추모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