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안 오시네."


구슬픈 목소리. 듣는이의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미명이 탄식과 함께 솟구쳐오른다. 담긴것은 원망과 슬픔이다.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버린 탄식은 입가에서 갈마무리 돼 뿌연 안개로 치환된다. 한을 품었지만 그것은 뜨겁더라. 오뉴월에 내릴 서리는 어디로 갔나. 소녀는 얼어붙은 난간을 부여잡았다.


처음은 그저 차가울 뿐이었다. 뼛속까지 얼릴만큼. 서서히 엄습해오는 고통에도 소녀는 난간을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 없던건가. 무엇인가 마음에 들었는지 소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드리웠다. 지난 1년간 보지못한 태양을 닮은 미소다.


"아."


그것도 잠시, 소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도를 넘어서는 고통은 되려 소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제정신이든 듯,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선은 곧 아래로 향했다.


소녀는 보았다.


급격히 열을 빼앗긴 손은 무정한 금속과 한몸이 되어 잿빛세상에선 볼 수 없는 하늘의 색상으로 물들었다. 요컨대 동상에 걸린 것이다. 사태를 관조하던 소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이다.


-찌익!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알알이 들이찬 속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핏물에 흠뻑 적셔진 채로. 한방울씩 떨어지는 핏방울은 묘하게 정적이었다. 그리고 초침이 두어번 움직일 무렵, 피는 금새 멎었다. 빠르게 재생된 손바닥은 주머니 안으로 푹 들어갔다. 


"이짓도 언제까지 할려나."


소녀, 한세진 허탈한 어조로 회한을 내뱉었다. 




빙하기가 온 지구에서 홀로 살아남은 소녀(재생능력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