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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써 봄. 몰아서 다 쓸까 했는데 점심시간 다 끝나서 있다가 와서 마무리 짓도록 함. 


-1-


 무릎이 바닥에 닿으며, 몸은 완전히 무너졌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육신은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큰 소리를 냈다. 바닥에 몸을 처박은 용사는 입가에 하얀 거품을 물었고,  바들바들 온 몸을 떨어가면서 눈가의 초점을 서서히 상실해갔다.  


".....는데."


 용사의 뒤에 서서, 홀로 말을 이어나가던  마왕은 그쯤에서 다시 뒤를 돌아 용사를 바라보았다. 뒷짐을 지며 이리 저리, 오고 가며 침이 튀기도록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용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더는 귀담아 들을 수 없는듯 싶었다.  자세를 낮춰 가늘게 몸을 떠는 것이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듯 했으니.   


"너도, 아니었나보군......"


마왕은, 씁쓸한 표정으로 턱을 벅벅 긁으며 그 아쉬움을 용사에게 전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그리고 말 끝을 흐리며 크게 실망한듯 고개를 내저었다. 해방시켜줄 사람을 줄곧 찾아 왔으나, 이번에도 또 실패한 것이었으니 마왕의 표정이 저리 아쉬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결국 다음 일을 생각 할 수밖에....."


 그리말하며 쓰러진 마왕은 쓰러져 숨을 헐떡거리는 용사를 바라보았다. 


 내심 부러운 표정이었다.  이렇게 죽음으로서 어떤 의미에서건 자신의 사명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이. 마왕은 그것이 너무도

부러웠다.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들끼리,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야만 했다. 남은 사람으로서 잠깐 만끽했던 이 일탈은 결국 끝이 

날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금 그 비통한 일상으로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아무튼 용사의 여정은 여기서 끝을 맺겠지만, 그래서 마왕의 여정은 다시 여기서부터 시작이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용사의 최후를

부러워 하는것은 마왕의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만했다.


"그래도, 짧게나마 수고 많았다. 간만에 덕분에 좀 쉬었다. "


그래도 확실히, 이 순간은 그에게 늘 큰 도움이 되었다.  길고 긴 왕좌 위의 삶과 비교 해 본다면, 찰나라 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이겠

지만, 그래도 이 짧은 자유는 그에게 다음번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즐거운 시간이었으니.  어떤 의미에서건 그에게

그런 시간을 선사한 이 용사들에게 마왕은 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떨리는 몸이 천천히 굳어갔고, 헐떡이던 숨결도 느리고 또 느리게, 먿어갔다. 마왕은 그런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 다시, 자리에 섰다. 뒤를 돌아 느린 걸음으로 몇 발자국 지나칠 쯔음에선 용사는 세상에 내뱉을 마지막 숨결을 앞선 그의 등 뒤로 고했다.  


 완전히 숨을 멈추었다. 용사의 일생이 그렇게 끝이나자, 그와 함께 마왕에게 잠깐이나마 멀어졌던 그 '비통한 일상'은 다시금 날아와 피부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


 오랫동안 견디어 온 격통이었지만, 아직도 매 순간이 낮설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이 고통, 이 악의.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견디어

왔음에도 여전히 그에게 있어선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다.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는 격통. 하마터면 자리에 주저앉아 쓰러질 뻔 했다. 하지만 마왕은 벌써 족히, 수십번은 더 해 왔을 이 다음

이야기를 위하여 능숙하게 어금니를 깨 물고 느린 걸음으로 본래 그가 늘 앉아있던 그 왕좌위로 터덜 터덜 올라갔다. 


 소름끼치는 딱딱함과, 골반 뼈 까지 시린 차가움. 빛 한점 비치지 않는 이 무광택의 길고 불편한 검은 의자. 마왕은 이 악의 권좌에 자신의 몸을 뉘이며 걸터 앉았다. 그와 함께,  의식의 곬이 크게 확장됨을 느끼며 마왕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2-


 시궁창은 모든 이들에게 혐오스러운 곳이다. 화려한 도시의 밑바닥, 아름답게 빛을 내는 사람들이 내던지고 떨쳐낸 수많은 더러움

들. 그것이 한 대 모여 고여있는 곳이 바로 그 곳이다. 


 그런 곳이니 윗동네의 사람들에게 있어 시궁창을 향한 혐오는 당연히도 피해 갈 수 없는 수순이었다.  기피하고, 멸시하며 모욕적인

언사나 경멸어린 저주를 퍼부을때 쯔음 예문으로서 사용되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궁창은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곳이다. 그것은 백번 설명 해도 부족할 따름이다. 


 내던지고 떨쳐내며 애써 부정하는 그 모든 더러움. 그런 것을 버릴 곳.  그런것들이 고일 곳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깨끗한 채로 나뉠 수 있는 것. 그렇기에 존귀한 인간을 고고한 한 인격체로서 세상 위에 세울 수 있는 것이었다. 부정한 기운을 모두 던져 낼 시궁창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무광의 칙칙한 의자는 시궁창의 가장 안쪽에 박힌 권좌라 할 수 있다.  저 멋드러진, 인류의 고매한 유산과 그 위

에서 찬란히 빛이나는 문명의 고고한 자태. 그 밑을 받치며 온갖 부정과 오물과 더러움을 받아내는 밑바닥의, 축축한 자리. 


 마왕은 자리를 지킨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부정과 악의를 받아낸다. 그것이 도시의 밑바닥, 시궁창의 역할.  그것이 처음, 

세상을 만들때 만든이와 처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한 최초의 약속.  


 그 이유로서 마왕은 언제나 세상에 존재 해 왔다.  인류의 뒷 편에서. 사람들이 쏟아내는 온갖 부정과 오물과 더러움을 받아냄으로서.



 때로는 그들이 던져낸 더러움이 너무도 많아, 한명의 개인으로선 더 이상 감당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 쯔음엔, 넓고 어두운 이 시궁창을 지천에 흘러 넘쳐 정화조 위 사람들의 세상쪽으로 스멀스멀 튀어 나가기도 했다.  그럴 때 쯔음엔 저 너머의 세상 사람들은 책임질 사람을 보내었다. 


 자신을 대신하여 오물에 몸을 적실 사람을.


 그  사람은 세상 밖으로 튀어 나올 그 오물들을  밀어내고 치워낸다. 그리고 더 이상, 부정과 오물을 받아 낼 수 없게 된 권좌 위의

사람또한 씻어낸다. 다시금 그 오물이 자신의 세계로 튀는것을  막기 위해서.


 하지만 치우고 치워도 오물은 떨쳐내는 위 사람들이 그대로라면  또,  흘러 넘치게 될 것이었다.  책임 질 사람은 늘 자리에 남아 있어야 했고, 더러움을 그대로 받아내기 위하여선 해치운 사람을 대신하여 누군가는 권좌 위로 올라야 했다. 그렇기에, 큰 뜻을 가지고 내려 온 그 사람들은 역류하는 더러움을 막기 위해 씻어낸 그 자리를 대신하여 자신이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흘러 넘친 물을 끝으로, 권좌 위의 마왕은 숨을 거두고 청소부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새로운 이름으로서, 내려오는 부정과 더러

움으로서 세례한다.  


마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그것이, 이 땅에 수천년간 이어져 오던 전설의 실체.  


내 놓으라 하는 이야기 속 용사들의 마지막이 늘, 흐릿한 결말로 끝맺는 이유.  


 마왕은 마지막 순간에, 깊숙히 찔러 오는 칼날의 통증을 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무언가 후련한 표정이었다.  드디어, 이 지겨운 일상

을 끝마치고 편안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즐거운 표정이었다.  


"......."


 편안한 최후를 맞이한 마왕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남자는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온  몸이 쭈볏하게 서고, 신경하나 하나가 

날 끄트머리에 걸려 잘려나가는 통증. 새로운 이름으로서, 새로운 임무를 이어 받고 새로운 세상의 앞날을 위해 지탱 해 나가갈

오래된 역할이었다.  


 남자는 그 쯤에서야, 처음으로 이 성의 입구에서 그를 마주하였을때 그가 자신에게 지은 미소가 어떤 의미었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의 그 순간, 위태로운 자신을 보고도 그저 웃으며 사라지던 그 이유가.



-3-


"그럼, 천천히 즐기시게.  이 먼 길 까지 걸어 와서 목숨을 걸고 사수하려던 그, 멋진 사명 말일세."


 마왕의 환영은 자신에게 그렇게 말 한 후, 사라졌다. 환영이 등장하고, 부상을 입은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 할 줄 알았는데. 그저 자그

만한 미소를 보이고 인사 한번 하고 사라졌다. 


 "......."


 굳게, 입술을 깨물며 남자는 사라지는 환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부상을 입은 어깨가 욱신 거렸지만 혹여 모를 환영의 마법 덕택에 베어 넘기지 않고는 참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칼이 벤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저주도, 함정으로 설치 해 둔 마법도 없는 순전한 인사인듯 싶었다.


"대체 왜......."


 남자는 혼자 말 하며 처음의, 마왕과의 그 조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문장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고, 자신은 생각을 너무 낮게

잡아 큰일이 날 뻔 했다. 아니, 마왕의 환영이 등장한 시점부터 이미, 마지막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큰 일이 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모든 일을 간단히, 바로 해치 울 수 있는 이 순간에 마왕은 생글 생글 웃는 모습으로 환영으로서 그냥 인사만 전하고 

떠나간 것이었다. 


마치 올라와 자신을 마주하기를 바란다는 듯이. 


 삿된 악의는 자신이 이해 할 수 없는 것이고, 이해 할 필요도 없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도리어 마왕의 이 교만하고도 오손한 행동

이 자신의 사명을 이룰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 하기로 했다. 자신의 강함을 몰라 본, 저 어리석은 마왕의 잘못된 선택이겠거니 받아

들이기로 했다. 


 남자는 그렇게 뇌까리며 성 문을 열고 한 층 한 층씩 올라갔다.


"좋은 수였네. 하지만 위에는 이보다 훨씬 강한 적들이 산재 해 있으니, 이번 싸움으로 충분히 성장했기를 비네."


"과감한 수였어. 하지만, 때로는 신중 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남은 두 명의 수하들은 그리 녹록치 않은  강자들이니,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일세."


"처음과는 비 할 바 없이 강해졌군.  이제 한 계단이 남았으니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게."



"......"


 한 층 한 층. 위기를 극복하고 다음 층으로 올라갈 때 마다 마왕의 환영은 자신을 독려하는듯이 말했다.  마치 스승처럼 자신에게 

한마디씩 조언 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저 교만이겠거니 싶었던 그의 행동이  진심을 다 하여, 꼭대기까지 올라오기를 

바라는듯한 모습으로 비춰지자 남자는 점점 더 궁금해져갔다.


 꼭대기에 서 있는 그는 대체 어떤 이이길래, 이토록 자신이 올라 와 주기를 바라는 것인지. 

대체 그 곳에는 무엇이 있기에 이리도, 올라와 자신을 대면하기를 희망하는 것인지.


 남자는 마지막의 마지막. 첨탑의 꼭대기 앞의 문을 힘을 주어 열었다. 낡은 문 경첩이 바닥에 긁히며 불협화음을 내며 문은 밖에서

안으로 천천히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