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   #학교  



띵동땡동~~


"아, 집가고 싶다."


경쾌한 종소리가 쉬는 시간의 끝을 알리자 절로 탄식이 새어나왔다. 수업이라니. 눈이 절로 감겨왔다. 주체할 수 없는 흐름에 몸을 맞기자 나는 한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몸이 수업을 전력으로 거부한다는 것을. 아무래도 어제 한 밤샘의 부작용이 하루 걸러 나타나는 듯 싶었다.


이어서 한 행동은 뻔했다. 상체를 둥글게 만 채, 묵빛 머리카락을 감싸쥐며 고개를 숙였다. 학교수면의 교본이라 자랑할만한 정자세였다. 이를 본 선생님들은 복창이 터질 노릇이었지만, 적극적으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는 건 스스로의 선택이며 성적은 좋으니 그냥 방임하길 선택했다. 참으로 글러먹은 사제관계라 볼 수 있다.


이제 한숨 자볼까 싶을 때, 아까 울렸던 종소리가 교내를 가득매웠다. 수면을 방해받아 불쾌해진 기분을 표출하듯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예비종, 씨이벌......"


불쾌함은 학교 수행평가와 꼰대 교원들을 싸잡아 욕하고 나서야 사그라들었다. 하여간 이놈의 학교란. 원래 자기 학교는 자기가 까는 것이 전국공통이더라. 학교의 명패를 내건 댓가는 10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조리돌림이다. 배움을 위한 곳은 엄격해야 마땅하나 그건 학생들이 알 바가 아니었다.


쉬는 시간은 짧고 수업시간은 길다. 배울맛이 뚝 떨어진다. 물론 같은 장소에서 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게 흘러가는 건 사실이다. 공부자체를 즐기는 이에겐 배움의 시간조차 아깝기 마련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나는 공자의 지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배우고, 때때로 익혀서, 즐거워 하는 족속이 아니란 말이다. 몰려오는 졸음은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있음을 증명한다. 종소리도 끝났고, 얘들도 조용해졌으니 이제 좀 잘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러게 빨리 좀 자질 그랬냐."


하필이면 신경쓰이는 놈한테 걸렸다.


옆에서 나불대는 저 녀석을 간과한게 실책이었다. 반듯한 자세를 자랑하는 저 녀석은 아까 말한 공자의 인재상에 들이맞는 모범생이다. 칙칙한 머리색, 그와 어울리지 않는 반짝이는 눈동자. 보더콜리를 의인화한 듯한 눈앞의 녀석은 나를 걱정하는 것처럼 속삭이면서, 동시에 햇살같은 미소로 나를 기만했다.


잠이 확 달아났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가슴 한구석에서 은은히 피어오르는 달짝지근함은 오히려 매스꺼웠다. 졸린 눈을 더 게슴츠레 감아 녀석의 시선을 피했다.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이 떠올라 속이 거북했다.


"헐? 걱정해줬더니만 자는 척이네."


"......"


허나, 10년 짬밥은 여전했는지 씨알도 안 먹혔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 일단 지금 저녀석 얼굴을 보면 표정을 유지할 자신도 없을 뿐더러, 얄팍한 속임수를 썼음이 들키면 배는 더 귀찮게 굴기 때문이다. 날뛰는 세한을 감당하는 건 내향적인 내게 있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정말 개같지 않나...참고로 욕은 아니다. 그냥 저녀석이 개처럼 활동적이라고. 견주는 이제껏 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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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푹신한 교복에 얼굴을 파묻곤 묘책을 궁리했다. 세한은 눈치가 빠른 편이다. 속이 시꺼멓다는 문구가 바로 저 녀석을 정의하는 말이다. 거기다 나하곤 10년 넘게 알아온 사이. 한마디로 내 담당 일찐이나 다름없다.


그것이 어느정도냐면, 고슴도치같은 담임선생님을 속여 여유를 만끽할 때 세한은 항상 내가 숨은 곳으로 찾아왔다. 보건실로 도망치거나, 체육관 구석탱이에 쳐박혀도 끝내 찾아내는 그 능력만큼은 영화에 나온 첩보요원 저리가라 한다. 


나만의 장소에 타인을 들이는 것은 분명 부담스러웠음이 틀림없다. 초기엔 생생히 타오르는 활기에 질려 세한과 잠시 담을 쌓았다. 


허나, 지난 세월이 무색하게, 내가 마음의 벽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보다 그녀석이 벽을 파해치는 속도가 빨랐다. 가끔식 휴대폰 거울을 쳐다보면 어느새 미소짓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더는 외롭지 않았다.


그렇게 기묘한 일탈이,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숨는 것은 내가, 술래는 세한이 맡았다.


내가 숨으면 세한이 찾고,

내가 숨으면 세한이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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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놀이는 어느새 일과의 한 부분을 꿰찼다.

그동안 우리의 역할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내가 도망치고, 세한이 찾는다.

나는 이것이 서로가 자신한테 잘 어울리는 역할을 찾아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 우리의 관계도 그러했으니. 

내말을 들은 세한의 얼굴은 마냥 밝다고 할 순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나는 오늘 아침에서야 들었다. 정확히는 깨달았다.


이 기묘한 술래잡기는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해가 저물어 노을이 드리울 때, 술래는 잡힌 그녀를 항상 놓아주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선 의아할 뿐이었다. 나를 잡아다가 선생님께 꼰지르면 수업시간에도 함께 있을 수 있을텐데. 유독 이 비밀스러운 범법행위에 맞들린 모범생의 진심이 끈질긴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러다 어제 저녁, 내 일탈엔 이토록 관대한 까닭을 물어보았을 때, 노을빛을 받아 볼가에 열꽃이 피어난 세한은 아리송한 답변을 줄 뿐이었다.


곤란하다는 듯 덥수룩한 뒷머리(개털같다)를 쓰다듬고 시선을 애매하게 튼 다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잘 모르겠네...'


허심탄회한 표정은 숨기지 못한 애환이 들어나 사람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의 머리칼은 붉그스름한 노을빛이 번져 애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영화의 엔딩씬에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그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간 내가 세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를 눈치챈 세한은 헛웃음을 흘리더니 의미심장한 탄식을 내뱉었다. 


'사실 술래는 내가 아닐지도 몰라.'


아기새의 지저귐처럼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허나, 유난히 고요한 하늘 아래서 오로지 한명에게 시선을 빼앗긴 내귀엔 똑똑히 들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이르어서야 그 의미를 알게된 것이다.


1교시 시작 전, 어김없이 엎드린 내 귓가에 세한이 속삭인 한마디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부끄러움으로 가득찬 머뭇거림, 침묵, 그 끝에 드러난 진심은 순박하기 짝이 없어, 듣는이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좋아해."


그리고 이어진 부탁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이제 네가 술래가 되어줘"


그렇구나, 너는 기다리고 있던 거였어. 

술래가 바뀌기를. 내가 너를 찾아주기를.


뒤늦게 깨달은 나로선 가슴이 미어졌다. 


기쁘고 미안한 마음이, 스스로에게 분노하면서 서로가 품은 깊은 연정에 행복해 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복잡한 감정은 이슬이 되어 검은 풀잎 끄트머리에 맺혔다. 고개를 돌려 이제 막 떠오른 태양을 바라보자, 작은 무지개가 보였다. 세한의 눈웃음을 쏙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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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돌아와 현재,


오늘 아침과 똑같은 자리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금 차오르는 감정을 진정시키며 차분해지길 한창, 머릿가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늘 아침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반신반의. 망설이는 추임새와 어색한 숨소리의 반향은 세한의 심정을 솔직히 드러낸 것처럼 보였다. 눈을 감아도 그의 행동과 표정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의자가 뒤로 끌리는 잡음이 낮게 깔렸다. 다른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희미해져갔다. 


무심코 소맷자락을 잡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봄의 따스함을 품은 남자의 발걸음이 한걸음씩 다가올수록 혈액이 역류하는 듯한 열기가 몸을 데웠다. 결심한 것은 저 녀석이고 기다리는 입장은 난데, 되려 내가 긴장되는 까닭은 무엇이랴. 


'...아, 그렇구나...이런 거였어...'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네가 나를 본 심정이 이러했다는 사실을.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져 어느새 지척에 다다랐을 때, 묵묵히 닫혀있던 세한의 입가가 요동치기 시작했을 때,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고개를 살짝 돌려 세한과 눈을 마주보았다. 내가 일어나있는 것에 당황했는지 그녀석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정말 오랜만에 본 동요였다. 순해빠진 모범생의 흔들림을 보자 중요한 순간임에도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 기세 그대로 힘입어 세한의 고백에 대한 또다른 고백을 전했다. 


팔을 뻗어 그의 새하얀 손을 깍지끼고, 베시시한 미소를 띄우면서.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애정을 여과 없이 전했다.


"잡았다!"


내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세한의 볼가가 서서히 붉그스럼해졌다. 내 얼굴도 덩달아 붉게 물들었다. 


한 쌍의 잘 익은 토마토가 된 우리둘은 그렇게 한참을 마주보았다. 그러다 동시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술래잡기의 끝을 고했다. 


""나랑 사겨줄래?""





- 이거 웹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하실 분 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