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오라니까, 뭐가 그리 급하다고 뛰어왔어?"




 석양이 천천히 깔리는 이른 저녁, 무릎에 두 손을 얹고 가쁘게 숨을 몰아내쉬는 채희의 모습에 현서는 '허' 하고 소리를 내면서 생수병 한 병을 건네주었다. 채희는 곧장 병뚜껑을 열어 벌컥벌컥 생수를 들이켰고, 페트병의 절반을 곧장 비우고 나서야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면서 겨우겨우 윗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오래 뛴 거야?"


 "글쎄요... 전화 드렸을 때부터?"




 허. 현서는 다시 한 번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었다. 당황할 만도 했다. 채희가 현서에게 전화를 건 시점은 자그마치 이십 분 전이었으니까.



 말뜻 그대로였다. 채희는 30도를 웃도는 더위에 이십 분 넘게 달려온 것이다.




 "그래도, 덕분에 지각은 안했잖아요?"




 잔숨을 가볍게 내쉬면서 채희가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서는 웃음을 터트렸고, 왔으면 어서 준비하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이 있는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밀린 일이 산더미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알지?"


 "제가 짬이 얼만데, 그 정도는 당연히 가능하죠." 채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실제로 채희가 이곳 보육원에서 일한 기간은 정직원인 현서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봉사 도중에 공백기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 년 동안 이곳에서 일했던 경험까지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 풍부한 경험 덕분에 정직원인 현서와 소정조차 가끔씩 채희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였고, 채희 역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거리낌 없이 현서와 소정을 부르곤 했다. 결국 이곳에서 채희의 입지는 단순한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동료 직원에 가까운 셈이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일개 직원 수준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채희는 이곳 보육원에 거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고, 채희 본인도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았다. 봉사 시간마다 초등생 수준의 아이를 도맡아 보살피는 봉사자. 단지 그 뿐이었다. 물론 초등생 수준의 어린 아이를 맡는 것도 평범한 봉사자가 맡는 일은 아니었지만, 채희의 경력을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처우였다.




 "요즘은 제때제때 잘 오네?" 빼꼼 열린 방문 사이로 소정이 고개를 내밀면서 말했다.


 "쉬었다 다시 시작하는 거니까,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보려고요."




 말하면서도 스스로 찔렸다. 채희에게 초심이라고는 삼십 분씩이나 지각하던 못된 버릇밖에 없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다른 표현으로 정정해볼까 잠시 생각을 해보았지만, 뒤이어 따라오는 소정의 반응에 결국 관두고 말았다. 느닷없이 던져진 초심이라는 단어에 소정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고, "우리 채희, 이제는 개그 캐릭터까지 욕심내는 거야?"라는 말과 함께 채희의 어깨를 툭 건들였다. 유감스럽게도 의도된 유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채희 역시 웃음으로 소정의 말에 화답했다.




 "정말이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사람도 채희같이 좋은 사람이면 좋을 텐데 말야."


 "아, 그 사람이요?"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보육원 청소 일로 스치듯 본 기억은 있었다. 그냥 다른 사람처럼 며칠 하고 관두겠거니 싶었는데, 아직까지 이곳에서 일하고 있을 줄이야.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이야기겠지만, 이곳 보육원에서는 봉사자들에게 함부로 아이를 맡기지 않는다. 상상과 현실의 괴리가 워낙 심한 봉사이다보니 그만큼 도중에 도망치는 사람도 많았고, 때문에 보육원에서는 쓰레기 청소 같은 잡일부터 시키면서 봉사자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관찰 끝에 이 봉사자가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는 비로소 아이들을 봉사자에게 맡겼다. 쉽게 말해 일종의 통과 의례 같은 셈이다. 채희 역시 이 과정을 거쳐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는 봉사자도 이 의례를 한창 거치는 중인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안 나갈 것 같아요?"


 "글쎄, 다들 나가기 전까지는 별로 티를 안 내는 편이라."




 아줌마가 눈치가 없는 거겠죠.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그동안 봉사를 해오면서 수많은 봉사자들을 만나봤지만, 의례를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오만상을 지으면서 봉사 기간 내내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경향이 있었다. 오죽하면 행동거지만 보고도 이 사람이 며칠 뒤에 그만둘지 예측이 가능할 정도였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은 과연 어떨까. 채희는 문득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정 역시 채희의 이런 마음을 알아챘는지 채희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궁금하면 소개라도 시켜줄까? 어쨌든 같이 일하는 입장이니 서로 얼굴 정도는 봐야 할 거 아냐."




 '좋아요'라는 말을 곧장 내뱉으려 했지만, 묘하게 웃고 있는 소정의 모습에 말을 삼켰다.




 "아니예요, 나중에 일 끝나고 시간 나면 그때 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 일단은 일 먼저 끝내고. 저어기 현서 씨 말로는 우리 채희한테 일이 엄청 쌓였다던데?"




 소정은 턱을 쭉 내밀어 아랫턱으로 현서 쪽을 가리켰다. 어느새 자신이 맡고 있는 고등학생 아이들 쪽으로 다가가 무어라 말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채희는 영혼없는 웃음을 내뱉었고, 묘하게 느껴지는 눈초리에 하는 수 없이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까마득한 천장을 바라보니 한숨이 푹 튀어나왔다.




*




 위쪽으로 기지개를 펴며 끄응, 하고 소리를 냈더니 때마침 뒤를 지나가던 현서가 "누가 보면 나보다도 늙은 줄 알겠어." 라고 낄낄거리며 놀렸다. 채희는 고개를 휙 돌아본 다음 현서를 째려보았고, 능글맞은 표정과 함께 "그러게요, 저도 누구처럼 늙었나봐요."라고 맞받아쳤다.



 물론 농담인 건 알았지만 그럼에도 그다지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암만 다섯 살 차이래도 나이의 앞자리가 다른 사람이다. 비록 채희 역시 이십 대의 끝자락에 걸쳐있는 스물 아홉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서른보다 스물이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채희였다. 가끔씩 몸 몇 군데가 삐거덕거리기는 해도 마음만큼은 여전히 이십 대에 머물러 있는 채희였다.



 다만, 가끔씩은 자신이 서른을 코 앞에 두고 있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다. 특히나 지금같이 힘든 일을 끝내고 날 때면 더더욱 그랬다. '삭신이 쑤시다'라는 표현은 더이상 글자로만 존재하는 표현이 아니었다. 긴장이 풀리고 나면 참고 있었던 통증들이 우르르 쏟아졌고, 한 번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보육원에서 꼬박 잠들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자질구레한 고충들에도 채희가 봉사를 그만두는 일은 없었다. 가끔씩 힘이 부칠 때도 중학생 애들을 도맡았던 옛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래, 그때에 비하면 훨씬 낫지"라며 스스로를 독려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 시절은 채희의 봉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기간이었고, 그렇기에 어리숙한 실수들 역시 가장 잦은 기간이었다.



 그때, 그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살갑게 굴었다면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채희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다. 이제 와서 마음을 다르게 먹어봤자 엎지른 물을 주워담을 수는 없다. 다만 깨끗하게 그 흔적을 지워낼 뿐이다. 그것이 채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리라.




 "저기, 채희씨?"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번에 새로 들어왔다는 그 사람이었다. 양손에 들고 있는 청소기와 물걸레를 보니 아무래도 이 방을 청소할 차례인 듯 싶다.




 "아, 네. 비켜드려야죠. 그런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알고 계세요?"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어떻게 이름을 알고 있는 걸까. 물론 현서나 소정이 그에게 채희의 이름을 알려줬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대뜸 채희의 이름을 알려주는 건 그것 나름대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알려주던데요. 한채희 씨 아니세요?"




 두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더 깜빡였다. 머리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이름을 들었다니, 어떻게? 분명 신입 봉사자라 아이들과 따로 마주할 시간이 있는 건 아닐 텐데, 설마 잠깐씩 마주치는 그 사이에 이야기를 들은 걸까.



 아니, 아니.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아이들에게서 채희의 이름을 들었다는 건 필시 그 아이들과 다른 화제도 주고 받았다는 이야기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채희는 곧장 그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쏘아붙이듯 말했다.




 "이름 말고 다른 이야기 한 적 있어요? 무언가를 사달라거나, 가져다달라거나ㅡ"


 "있었는데 거절했어요."




 역시나, 있었구나.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한편으로는 이 남자가 상황을 잘 넘긴 것 같아 안심했다.



 다소 어리숙해 보이는 봉사자를 만나면 보육원의 아이들 중 몇몇은 봉사자에게 온갖 부탁을 해대기 시작하는데, 보육원에서는 이런 부탁들을 들어주지 말라고 권고한다. 미수룩한 초보자의 빈틈을 파고드는 영악한 행동이기 때문에, 한 번 부탁을 들어주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거다.




 "잘했어요. 앞으로도 그런 부탁은 안 들어줘도 돼요. 필요한 건 보육원에서 전부 챙겨주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채희는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오른쪽 뺨과 마스크에 물기가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청소를 하다가 물이 튀었다기에는 유독 그 부분만 심하게 젖은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채희는 자신의 오른쪽 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남자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건 왜 그런 거예요?"


 "아, 애들이 장난을 조금 치더라고요." 그가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참으로 놀랄 일이었다. 그렇게 낯을 심하게 가리는 아이들이 저 남자에게 장난을 쳤다니. 아이들만 알아보는 요상한 친근감이라도 그에게 있는 걸까.




 "신기하네요."


 "네?"


 "원래 아이들이 낯선 사람한테는 장난을 잘 안 치거든요." 채희는 자신의 뺨을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켰다.


 "그건 그렇고, 마스크 안 찝찝하세요?"


 "찝찝하기는 한데, 여분을 안 가져와서요. 다음부터는 몇 개씩 들고 다녀야겠네요."


 "아뇨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그 정도는 저희가 드려야죠."




 채희는 손사래를 치면서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바로 옆에 있는 서랍을 뒤적거렸다. 자주 쓰는 물건만큼은 어디 있는지 꼭 기억해두라는 소정의 잔소리 덕분에 마스크 보관 위치 정도는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자, 여기요. 나머지는 더 필요할 것 같으면 그때 드릴게요."




 흰색 마스크 한 장을 건져낸 채희는 그대로 남자에게 마스크를 전해주었다. 남자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쓰고 있던 마스크를 갈아끼웠고, 채희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두꺼운 안경에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녀 몰라봤는데, 생각보다도 반반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본인도 자신이 잘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왜 굳이 도수도 안 맞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니는 걸까.



 생각해볼수록 특이한 사람이었다. 다른 봉사자나 현서, 소정만 봐도 가끔씩 덥다면서 마스크를 벗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이 남자가 마스크를 벗은 모습만큼은 지난 한 달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다못해 소위 마기꾼이라 불릴 정도로 하관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면 어느 정도 이해라도 할 텐데, 당장의 모습을 보면 콤플렉스는 커녕 오히려 벗고 다니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



 무언가 요상한 패션 센스를 갖고 있는 걸까. 아니면 특이한 컨셉이라도 잡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채희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지만 크게 와닿는 추론은 없었다.




 "아, 맞다. 저희 지금 통성명 할래요? 아직 제대로 인사도 안해봤잖아요."




 채희의 제안에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그는 두꺼운 안경과 커다란 마스크를 다시 착용하고 있었다.




 "일단 저는 한채희고요. 나이는 스물아홉이고, 본업은 에세이 전업 작가예요. 아, 그리고 이 보육원에는 삼 년 정도 다녔고요."




 삼 년이라는 말에 남자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언가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는 쑥스러웠다.


 그런데, 언제까지 저러고 있으려나.




 "소개, 안하세요?" 멍하니 서있는 남자를 향해 채희가 슬쩍 말했다.



 "아, 아, 그...윤준호고요. 나이는 스물여섯이고, 보육원은 다닌 지 겨우 한 달 됐습니다."




 겨우 한 달이라뇨, 한 주도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이 수두룩해요. 채희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준호를 향해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본업은 따로 없으시고요?"


 "네, 없습니다."




 그다지 믿음이 가는 답변은 아니었다. 양손에 잔뜩 배긴 굳은살과 흉터들은 한낱 취미생활로 생길 만한 흔적이 아니었다.



 무슨 막노동이라도 하는 걸까. 궁금증이 들었지만 따로 묻지는 않기로 했다. 본인이 밝히지 않은 걸 굳이 구태여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까의 질문에 어느 정도 대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준호는 무언가 이성에 관련된 문제 때문에 다니고 있던 직장을 잃은 게 아닐까. 그래서 막노동을 진전하다보니 굳은살과 흉터들도 새겨지고, 이성 문제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두꺼운 안경과 마스크로 철통방어를 하고 있는 거다.



 물론 어디까지나 채희의 문학적 소양이 가미된 소설일 뿐이었다. 하지만 채희는 스스로의 결론에 나름대로 만족했고, 당분간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소설이기는 해도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다. 채희 역시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준호에게 호감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나, 지금의 채희에게 있어 준호는 단순한 남자일 뿐이었다. 사람의 외양에만 속아 넘어가 20대 초반에 미혼모가 됐었던 채희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마음을 줄 수는 없었다.




 "좋아요, 일단은 이렇게 가볍게 통성명만 하고, 나중에 다 같이 모여서 정식 인사나 한 번 하기로 해요."




 채희의 말에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쪽에 기대놨던 청소기를 가져와 천천히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쉬고 싶다거나 대충 하겠다는 기색 없이 묵묵히 청소기를 움직이면서 "죄송하지만 잠시 나가주시겠어요?"라고 채희에게 말할 뿐이었다.



 저렇게 기계적인 사람이 대체 무슨 수로 아이들과 친해진 걸까. 도무지 정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무언가 마술이라도 부려 아이들의 관심을 얻은 걸까. 가능하다면 나중에라도 그 방법을 물어봐야겠다고 채희는 다짐했다.



 그렇게, 채희가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순간.




 "채희! 채희야!"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현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저 멀리서부터 쿵쿵 거리며 뛰어온 현서는 곧장 채희 앞으로 뛰어왔고, 가쁜 숨을 몰아내쉬면서 채희의 어깨를 덥석 집더니 다짜고짜 말하기 시작했다.




 "수호 못 봤어?"


 "네? 수호요?"




 채희는 눈썹을 치켜들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수호라면 분명 자신이 맡고 있는 아홉 살 짜리 꼬맹이 박수호를 말하는 것일 텐데, 수호는 이미 한참 전에 다른 아이들과 같이 침실로 이동한 상태였다.




 "봤어, 못 봤어?" 현서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다그치듯 물었다.


 "그게, 저도 일과 끝나고 침실 쪽으로 걸어가는 것만 봤어서..."


 "아씨..."




 일순간, 현서는 머리칼을 쥐어뜯으면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채희도 알 수 있었다.



 사라진 것이다.



 수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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