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절대 뒤돌아보지 마세요."


 목소리가 장난스럽게 웃었다는 것을 한상수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의 목에는 무언가가 닿아있다.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방울진 액체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름이 짧게 돋았다 사라졌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앞만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시간이 잠시 흐른 후에도 한상수는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를 대신해 움직인 것은 땀방울 뿐이었다.

 한상수는 뒤를 흘낏 돌아보지도 않았다. 의미없고 과도한 긴장이 몸을 덮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일어날 법도 하다고 생각한 일이었다. 그러나 막연한 것에 불과했다. 학창시절 매 학기마다 써냈던 여름 방학 계획서보다도 모호했다. 영화를 자주 본 폐혜 다웠다. 차라리 그 계획서에는 고다희와 함께 있기 라는 무조건 적인 계획이 하나 정도는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 하기에는 알맞지 않는 농담이었다. 그러나 목적대로 긴장을 조금 푸는 효과는 있었다. 그의 눈이 방황하다 바로 앞의 것을 잡아챘다.

 그는 출구와 가까이 있었다. 그의 앞에는 문이 있다. 적어도 여섯 걸음이면 닿는다. 잠겨 있으나 이 곳은 그의 집이다. 한상수는 문을 어떻게 여는 지를 알고 있었다. 비밀번호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아직 까지도 그의 목에서는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그리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는 모른다. 그것은 뒤를 돌아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상수는 이 때 뒤를 돌아보면 후회할 것이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때와, 기다림이 필요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요."


 등 뒤에서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동시에, 목 주변의 잔털이 떨렸다. 가깝다. 문과 그가 떨어진 거리보다도 가까웠다. 두 세 걸음 정도의 거리였다. 발소리도 그 쯤에서 들려왔고, 이따끔씩 더 가까워 질 때도 있었다.

 현실감이 슬슬 되돌아 오면서, 서서히 실감이 났다. 이것은 그의 일생을 뒤흔들만한 일이었다. 그는 신중해야만 했다. 한상수는 그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준비했다. 어떻게 움직이고, 말할 지 계획이 세워졌다.

 예민해진 코 끝에 파라핀 냄새가 잡혔다. 촛불이 켜진 것이다. 두꺼운 초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붉은 색 무드 초라던가. 그럴것이다.


"자, 이제는 뒤를 도세요! 한 번 봐봐요. 마음에 들어, 응? 생각했던 것보다 낫지?"


 한상수는 그제서야 뒤를 돌았다. 앞에 펼쳐진 것은. 붉었다.

 오랜지 빛 조명의 아래. 따뜻한 느낌의 붉은 초들이 타오르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사랑한다 라는 문구가 있었고 로맨스 장면에서나 볼 법한 장면의 주인공은 그였다.

 한상수는 프로포즈를 받고 있었다. 예상을 했음에도 그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슬퍼서가 아니다. 너무 기쁘고 놀라면 눈물이 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손이 목에 대고 있던 꽃다발을 꼭 쥐었다. 물방울이 한성우의 손에 떨어졌다.

 상자를 든 고다희가 그의 앞에 섰다. 옅게 퍼지는 웃음. 그 웃음은 고다희만 지은 것이 아니었다.

 타는 촛불이 일렁이는 동시에 기억이 떠올랐다. 일생 가장 행복한 기억들이었다. 그러니까 고다희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기억이 영화를 빠르게 감듯 보였고, 생생할 정도로 선명했다. 그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계획에는 이렇게 얼빠진 채로 있겠다는 항목이 없었다. 기껏 세워 놓았던 계획들이 흩어져 버렸다. 그것은 고다희가 웃는 모습을 본 순간에 그랬다.


"응,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행이다."


 계획에 없던 말을 했다. 느끼는 그대로의 감상을 뱉었다. 고다희가 웃었다. 그는 그것을 보았다. 이 때 할 말은? 입이 저절로 열렸다. 말을 더해 볼 새도 없이 진심만 나왔다.


"고마워."

"어허, 아직 시작도 다 안 했어."


 고다희가 한 손가락을 흔들었다. 장난스러운 웃음이 걸리다 상자를 든 채로 초들의 가운데에 선 순간 사라졌다. 대신에. 진지한 표정이 떠올랐다. 조금전의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긴장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의 앞에서 무릎을 끓었다.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반지가 상자 안에 있었다. 한상수는 고다희를 바라보았다.


"있잖아, 나 진짜로 너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할 수 있어.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입 발린 소리는 안 할게. 대신에 최대한 노력할게. 받아줄 수 있을까?"


 무언가를 더 말해보려는 듯 입이 달싹였지만. 그녀는 더 말하지 않았다. 거짓말도 없고, 꾸민 말도 없으며, 진심이라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냥 알 수가 있었다. 마법 같다면 마법같고 바보같다면 바보같게도. 사랑은 마법 같다고도 불렸고,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는 말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말하려던 것을 다 말하지 못한 것이다. 바보가 된 것처럼.

 그는 답을 알고 있었다. 바보가 된 것 같았지만, 바보 특유의 무모함으로 일컬어지는 것 때문에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진심이 일치했기 때문에 그는 입을 열었다.


"당연히."

 어쩌면 언제까지나라도.

 후회 때문에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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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되게 스릴러물 느낌이 나잖아. 그런데 반전으로 프로포즈 준비하고 있으니까 뒤돌아보지 말라는 생각이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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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에 닿은 차가운 것: 칼 아님. 꽃다발. 물 묻으면 그럭저럭 차가움. 진짜로.

 방울진 액체: 피 아님. 물방울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