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챌린지 용으로 이렇게 먼저 글을 올린 다음, 수정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 보려 합니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도전이기에 퇴고라 할 건 딱히 없습니다. 어색하여도 감안하여 주셨으면 좋겠군요.

  각을 잡고 글을 쓰는 건 퍽 오랜만이라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올 해 겨울은 유난히 따듯해 눈이라곤 찾아 볼 수도 없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이미 옛 말이네, 누군가 푸념하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고 눈을 잠시 감았다 뜬다. 혹여 자는 사이에 잠깐 내리고 지나갔을까. 도로를 손톱의 두께만큼 덮고 금세 녹아버렸을까. 그렇게 너는 나를 스쳐 지나갔을까. 인연이 그렇게 쉽게 스칠 리 있을까.

  첫눈이 온다면 찾아온다고 했다. 그 말이 입에 발린 말이 되지 않게 만들 거라고 너는 약속했고, 그렇게 말하는 너를 잡을 권리는 나에게 없었다. 예정된 이별이었으며, 아마도 예정된 재회였을 것이다. 눈만 온다면. 너는 한 약속을 손쉽게 깨는 얼음만큼 매정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하루 더 눈을 기다리며 창 밖을 흘끗 바라보다 자리에 누웠다. 창문에 붙어 얼어버린 입김은 눈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결정을 이루고 있었다.


  작년 겨울, 아마 2월의 마지막 눈이 될 함박눈을 맞으며 너는 말했다. 자기는 눈이 좋다고. 포근한 하얀 빛이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라지만, 자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게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서쪽에서 춘풍이 불어오고 화단에 심은 동백이 그 꽃을 떨구기 전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한 번은 눈에 담을 수 있어서 좋다고. 약속을 지켜 줬기에 좋아 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는 비행기로 거진 하루 꼬박 걸리는 곳으로 떠났다 오겠다고 말했다.

  식은 것은 아니었다. 메신저에서 1이 사라지는 일 따위는 없었고 새벽 세 시에 걸려오는 전화라고 해도 벨 소리만 들으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바쁘다는 핑계로 못 만난 적이 손에 꼽았으니 둘 사이에는 눈송이 정도는 순식간에 녹여 버릴 훈풍이 맴돌고 있는 것은 명확했다. 단지 네가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 했을 뿐. 그걸 알았기에 나는 약속 하나만 믿고 이역만리의 너에게 갈 편지를 매일같이 썼다.

  네가 향한 곳에는 돌멩이보다도 흔한 것이 눈송이라기에, 그럼 내가 첫눈을 보는 날에 바다를 건너 너를 보러 날아가마 약속을 했다. 너는 고개 끄덕이곤 너를 위한 눈사람을 자기 키보다도 더 크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머리보다 더 큰 눈덩이를 치켜 들고는 몸통 위에 얹을 너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었고, 볼을 부풀리다 입 안의 공기가 새어나간 걸 듣고는 네가 더 크게 웃었다. 머리카락이 눈발에 젖고 바람에 얼어붙었지만 그렇게 춥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그리움이란 곱이었다. 매일 너와의 약속을 곱씹으며 새 꽃과 잎이 돋아나고 장대비에 꽃잎이 모조리 바닥으로 떨어지고, 이파리가 극채색으로 물들다 이내 잘 말린 찻잎의 색깔이 되어 바스러지는 동안. 눈이 온다면 가히 지구의 종말일 터겠지만 그럼에도 한 번씩 창문 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마음에 계속 1보다 큰 수를 곱했다. 언제까지 억누를 수 있을까. 네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찬 바람이 옆구리를 스쳐 지나갈 때면 헛것이라도 첫 눈을 보았다고 말하며 공항으로 달리고 싶었다.


  너도 첫눈을 기다렸다는 것을 목소리로 확실히 알았다. 눈보다 빨리 온 소식에 서둘러 답장을 써 내려갔다. 네가 보낼 답장도 내가 답장을 보낼 만한 편지도 오지 않겠지만, 이것이 네 소식에 엮은 답장이었다. 불긋한 편지지에 검은 펜으로 몇 장을 꽉 채워서 보내리라 손을 움직였다. 할 이야기가 하도 많아, 젖은 종이를 흘겨보며 한 번 더 옮겨 적어야 했다.

  봉투에 붙은 우표는 이 편지를 어디까지 보낼 수 있을까. 너와 같이 골랐던 우표는 모조리 붙였다. 겉봉을 한 번 감싸고도 남아서 우표 위에 다른 우표로 덮는 짓을 해야 했다. 분명 나라 밖까지는 닿을 테지만, 너에게 닿기에 충분할지는 잴 수 없어서. 이 땅에서 날아올라 멀리, 저 멀리. 지금쯤 하염 없이 내리는 눈에 모두 덮일 때까지.


  가끔이 아니라 너무 자주 생각이 난다. 어느 새 내 사전에서 첫눈이란 너였고, 그렇기에 몇 년이 몇십 년이 지나더라도 너를 그렇게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것이 기쁘고, 떠올리는 것이 오직 그 뿐이 될 것 같아 아쉬웠다. 세월에 기억이 바래더라도 첫눈이 오면, 첫눈이 온다면 추억 위에 쌓인 먼지와 같이 녹아 흘러내려 다른 색깔로 추억을 칠할 것만 같다. 그렇게 그 자리에 못 박히는 것이 바래고 말라 버려 바스라지는 것보다도 나은 선택일지. 지금의 나는 선택할 수 없어서 잊고 싶지 않다는 고집 하에 나를 맡겼다. 그렇게, 추억만 하는 쪽을 골랐다.


  어스름이 깔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내려오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추웠더라면 이 비는 첫눈이 되었을까. 그럼 약속을 꼭 지키는 너는 설국의 공항에서 두 팔 벌려 여독에 절어버린 나를 꼭 안아 줬을까.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이면 곧 별이 쏟아져 내릴 테지. 겨울의 밤하늘은 어느 때보다 화려한데, 같이 볼 사람이 옆에 없으니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재는 열기에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면 안에 쓰인 글자와 문장이 너에게 닿을까. 나지막이 말을 건네 본다.

  혹여 네게 닿는다면 첫눈을 내려 달라고. 온 세상을 덮고도 남게, 하염없이. 그렇게 너는 눈으로서 나에게 찾아와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