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어느 새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었고, 나비는 원통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부르짖는 애드립까지 선보이고 있었다. 쉽게 들을 수 없는 가창력에, 나도 리돌도 멍하니 노래를 감상할 수 밖에는 없었다. 아까 왜 리돌이 내가 온 것을 신경쓰지 않았는지 알 것 같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 리돌은 아까 그 예의 경기 일으킬듯한 포즈로 환호를 보냈고, 나 역시 터질 듯한 감정선을 추스리고서야 끊겼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 어쨌든 너 노래 잘 하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어디서 배웠느냔 말이지.” 


 “다른 건 없다. 이 집 지하에 있는 이 몸과 이 몸의 가족들의 보금자리에서는 언제나 이런 노래가 들려 왔었다. 나도 그래서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이 노래들을 외우게 된 거고.”


 어찌 된 영문인지 이제서야 감이 잡힌다. 우리 집 반지하에는 어르신 부부가 살고 계신다. 그런데 할아버지쪽이 귀가 어두우신데 노래 듣는 걸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가끔 1층에 내려갈 때면 트로트나 뽕짝소리가 그렇게 시끄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집주인하고 몇 번 싸우는 것도 보았고. 

 갑자기 든 생각인데, 이 녀석의 가창력이면 어디 경연대회 같은 곳에 나가더라도 상 하나는 우습게 따올 것 같다. 모자 안에 숨겨서 대신 노래를 부르게 하면... 관두자. 요새 리돌이 틀어 둔 영화채널을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어쨌든 이 태평한 녀석들 덕분에 아까까지 끕끕했던 기분이 다소나마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이 녀석들이 내 인생에 갖는 영향이 긍정적... 인건가? 모르겠다. 지금 그런 걸 계산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야기도 거의 끝난 것 같고, 무엇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한참이나 쌓여 있기에 나는 이 실없는 대화를 종료하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훠이훠이 새 쫓듯 내흔드는 내 손짓에, 나비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리돌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데, 리돌은 아직 할 말이 더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민재, 나는 또한 노래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리돌은 나비를 끌어안고서는, 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이 녀석이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있지도 않은 내 자식이 얼굴만 믿고 가수가 되겠다고 하는 것 같다. 


 “왜?”


 “나는 이 노래들을 부르고 싶습니다.”


 “아서라, 니가 부를 노래가 아니다.”


 지금 장래희망을 여류 트로트가수로 잡을 게 아니라면 말이지. 리돌은 살짝 삐진 표정으로 내게 반문하였다.


 “왜 내가 안 그래?”


 “니 나이대에서 부를 노래가 아니에요. 저런 건 아저씨들이나 부르는 거야.”


 “적절한 연령의 노래가 있습니까?”


 “있기야 있지.”


 “어떤 것입니까?”


 무언가 더 설명을 해 줘야 알아 듣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말 없이 이 녀석의 빨간펜 선생님을 깨웠다. 채널을 돌리자 마자 왠지 다 비슷비슷하게 잘 생긴 아이돌 군단이 단체로 칼군무를 추면서 무대를 휩쓰는 영상이 흘러 나왔다. 리돌은 TV의 전원이 들어오자 조건반사적으로 시선을 집중하였고, 나는 간단한 숙제를 하나 주고 신경을 더 쓰지 않기로 했다.


 “자, 이 중에서 맘에 드는 노래를 찾아 보세요. 그리고 나 오늘 할 거 많으니까, 나한테 뭐 더물어보지 말고. 알았지?”


 리돌은 나비를 쓰다듬으며 TV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방해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해 두었고, 이제 적어도 두세시간은 조용하겠지. 나도 핸드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고서는, 책상 앞에 며칠 전부터 펴 놓은 몇 장의 A4용지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모텔 일이 한가하다. 

 지배인의 말에 따르면 나들이가기 좋은 계절이면 시 외곽에 있는 모텔들이 잘 되고, 시내 한가운데 있는 곳들은 장사가 그냥 그렇단다. 특히 추석때는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휴일이 그렇게 긴데 왜 장사가 안 되냐고 물어 보았더니, 크리스마스와는 달리 설날이나 추석은 진짜로 가족들과 함께 하는 명절이라 그렇단다. 

 지금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프론트에서 청소 콜이 올라오지 않는다. 까쨔는 콜이 당분간 없을 거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그대로 옥상 숙소로 올라갔고, 덕분에 나와, 형우와 사샤 이렇게 셋은 계단 휴식공간에서 두런두런 농담을 따먹고 있었다. 흰소리를 먼저 시작한 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형우였다.


 “아, 드럽게 일 없네. 형님. 아무래도 우리 호텔 망할 것 같아요. 빨리 다른 일자리 알아 봐야 될 것 같은데?”


 사샤는 피식 웃으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여기가 안 되면, 다른 곳도 다 똑같다.”


 “형님 벌써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잘 아시네. 근데 이게, 만수 형님은 믿을만한 사람인데, 사람 사는 일이 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요. 훅 가는 거 한순간이에요. 지금 이러다가 모텔 망하면 우리 일자리는 누가 책임집니까. 형님, 우리 같이 장사 잘 되는 걸로 바꿉시다. 혹시 붕어빵 아세요, 붕어빵? 좀 있으면 겨울인데, 이게 한 철 장사하기 겁나 좋은데. 그 형님 고향에 혹시 길거리에서 핫도그 같은거 팔지 않아요?”


 “팔지.”


 “그럼 이거 붕어빵 먹혀요. 그 형님네도 날씨 추워지고 그러면 막 따듯한 거 생각나고 그러지 않아요? 오뎅 먹고 떡볶이 먹고 하듯이? 예전에 러시아 형님 한분 있었는데 그 분한테 겨울에 오뎅 길거리에서 파는게 어떠냐니까 눈이 번쩍 하더니 진짜로 일 그만 뒀어요. 그래서 만수 형님이 나보고 헛소리 그만하라고 그런 적도 있었는데. 그 분 장사 잘 되는지 모르겠네.”


 이 정도면 약을 파는게 아니라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주워 섬기는 수준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형우의 눈에는 자신감이 비쳐 보였다. 하지만 사샤는 형우가 제안한 한국식 사업 아이템에 회의적인 비전을 갖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한국보다 따듯하다. 겨울이 딱 지금 같아.”


 “어, 정말요? 그 러시아 붙어있는 나라들은 모두 다 추운 거 아니었어요?”


 “야, 붙어있다고 다 같냐? 무슨 충북 제천하고 강원도 원주하고 붙어있는 마냥?”


 형우의 쉴 새 없이 작렬하는 헛소리에 그만 나도 토를 달아 버렸다. 그러나 형우는 아직까지 자신의 끝장나는 사업 아이템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 추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도 그 동네서 누가 붕어빵을 팔아 봤겠어? 이런 거 뭐라도 갖다 내놓으면 팔린다니까? 일단 사람들이 안 해본거 부터 하는게 중요하다고 그랬어.”


 “갖다 팔기 좋은 거라면 있다.”


 갑자기 사샤가 대(對) 우즈베키스탄 무역사업에 무언가를 제시하려는 분위기를 풍기자, 나와 형우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모였다. 형우는 마치 강아지가 뼈다귀를 쫓듯이 대답을 촉구했다.


 “형님, 뭔데요, 뭐? 뭐 팔면 좋은데요?”


 “한국 핸드폰 잘 팔린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 갖다가 많이 팔고 그래. 우즈베키스탄, 기술 없어서 사람들이 한국 제품 좋아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꺼내 보여줬다. 한 3년 전쯤에 나온 구형 모델을.


 “이 정도만 되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새것 값 받는다. 사람들 다 좋아해. 전문적으로 한국이나 중국에서 갖다 파는 사람들 많다.”


 사샤의 낡은 핸드폰을 보는 형우의 눈빛은 마치 성배를 본 도굴꾼의 그것이었다. 형우는 갑자기 탐욕에 홀린 눈빛으로 사샤의 핸드폰을 낚아채었고, 사샤는 얼결에 핸드폰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으래요오?”


 형우는 마치 보석에서 결함을 찾아내는 감정사의 눈빛으로 핸드폰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사샤는 사람좋은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형우의 손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다시 찾아왔다.


 “내거 팔면 안된다.”


 “아, 그, 그렇죠. 당연하죠 형님. 제가 그런 도둑놈으로 보이십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형우의 눈빛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아까 형우의 마음은 이미 우즈베키스탄 입국심사대 앞에 가 있던 듯 해 보인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너 지금 말하는 거나 눈빛이나 형님 거 당장 우즈벡 중고장터에 갖다 팔 기세였어.”


 “아, 아냐 임마.” 


 형우는 ‘들켰다’ 라는 얼굴로 멋적게 창고 안에 있는 음료수를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자신의  표정을 가리려는 듯, 캔은 최대한 높이 들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