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투르의 구획이 번지에서 구로 바뀌기 이전, 9번지, 그러니까 현 23구에는 레일라라는 마녀가 살았다.
넉넉하고 포근한 푸른 로브를 뒤집어쓴 것을 제외하면, 다른 옷가지를 일절 걸치지 않아 적나라하게 드러난 창백한 살갗에는 발바닥부터 목까지, 온몸을 휘감아 올라오는 듯한 담쟁이 문신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누군가 그것에 관해 물어보거나 하면 말없이 쳐진 눈꼬리를 휘어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녀의 집은 뾰족하게 지붕이 솟은, 다락을 포함하면 4층 정도 높이의 주택이었는데, 협소해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생각보다 공간이 있는 편이다. 삐걱거리는 나무 문에는 상점의 그것처럼 작은 종이 달려 있었는데, 손님이 문을 열 때마다 따릉, 차갑고 경쾌한 소리를 내곤 했다.
다락문을 열고 나오면 보이는 옥상의 정원과 한 평 남짓한 뒤뜰에는 사시사철 꽃이 피어있곤 했다. 3월의 어느 봄날에는 푸르슈나를, 그러다 또 6월쯤 되면 한껏 피어난 샛노란 금묵화가 화려한 물결을 자아냈다.
그녀의 마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눈동자를 통해 정신에 침투하는 것이었으리라. 자의식이 강하거나, 정신계 마법의 파훼법을 알고 있다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