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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죽어버린 것들을 사랑해야지.

 

나는 죽은 사람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아무리 못난 여자라도, 죽어버리는 순간 나는 그녀가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물론 내가 아주 돌아버린 사람은 아니어서, 막 시체만 사랑하고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확실히 시체가 된 사람에게 끌리기는 합니다. 나의 시체 선호는 그저 성적 취향의 일종일 뿐, 그다지 끔찍하거나 천인공노할 짓은 아니지요.

 

 

 

내가 이런 네크로필리아를 가지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나는 조용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엄했고 어머니는 차분했지요. 내가 갓난아기일 때, 아기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앞세운 어떤 애교에도 부모님은 도무지 웃질 않으셨지요.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도, 우리 가족은 어떤 수다도 떨지 않았습니다. 그저 식기를 달그락거리기만 했지요. 나는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아이가 되었지요. 나는 자연스레 매우 조용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조용한 것을 좋아합니다. 식물, 활자, 그림, 차분한 음악은 나를 편안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세상은 소음으로 가득합니다. 짐승이 컹컹대고, 사람은 깔깔대며, 기계는 웅웅댑니다. 나는 그 난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도저히 섞여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청소년기 때, 나는 세상에 조용히 손가락 욕을 하고 돌아섰었지요. 나는 세상을 미워했기에, 아주 혼자서 고독하게 살아갈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고독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외로움을 잘 타는 나약한 사람이었고, 나는 다시 세상을 찾아가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다행히도 친절한 사람들이 많아서, 나를 다시 친구로 끼워주었지요. 그러나 친구들이 왁자지껄 얘기를 할 때면,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쓸데없이 느껴졌고, 또 귀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내 친구들을 경멸하게 될 무렵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들을 떠나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소음에 불과하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외로웠습니다.

 

죽어버릴까, 라는 말이 입버릇이 될 무렵 나는 스무 살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갔고, 거기서 한 여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외로움이 지쳐 있었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과묵한 나를 좋아해주었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생긴 것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그녀 앞에서는 억지로 대화거리를 짜내 억지로 웃으며 얘기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카페에서 만나서, 그냥 서로 침묵하다, 간혹 잘 지내냐고 묻고, 다시 침묵하며 차를 홀짝이다, 집에 잘 가, 인사를 하고 헤어져도, 우리 두 사람 모두 행복했지요.

 

나는 그녀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녀는 세상 여자들처럼 경박하게 깔깔대지도, 허접한 소문과 험담을 주제로 떠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할 말이 없으면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침묵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녀가 여자친구가 된 뒤로 그녀는 점점 수다스러워졌지만, 나는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런 그녀에게 실망하게 된 일은, 그녀와의 잠자리를 처음 가졌을 때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평소 그녀답지 않게 조용하고 수줍은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더군요. 내가 그녀와 관계를 맺을 때 그녀는 아, 아, 소리를 지르더군요. 나는 참 그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사랑했기에 끝까지 참고 그녀에게 웃는 낯을 보였지요.

 

그러나 나는 이미 짜증이 난 상태였고, 그녀의 숨소리가 거슬려 잠을 설쳤습니다. 나는 날이 밝자마자 자취방에서 그녀를 몰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침밥을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는 피곤에 찌들어, 이제 일어나라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녀는 알아서 챙겨 먹겠다며, 발을 쿵쿵대며 나의 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내 인내심은 점점 한계에 달했습니다. 그 순간 그녀가 식탁에서 컵 하나를 떨어뜨렸을 때 날카로운 소음이 아주 크게 울렸습니다.

 

쨍그랑!

 

나는 정말 기절할 만큼 놀랐습니다. 나는 내 자취방을 ‘소음의 무균실’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자취방을 조용한 상태로 유지합니다. 나는 소음에 극도로 민감한 편입니다. 방음 스펀지를 온 집에 둘러놓고, 이중창을 꼭 닫아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지킵니다. 집 밖에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 시끄러운 소음에 잘 대응합니다만, 집안에서는 긴장을 푼 상태로 있지요. 그런데 그 집안에서 갑자기 소음이 콱 나를 덮쳤고, 나는 무방비한 상태로 소음에게 고막을 물리고 만 것입니다. 

 

나는 잠깐 침대에 누운 채 기절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여자친구는 TV를 보며 아침밥을 먹고 있었고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몰려오는 화를 억누르며 내 스마트폰을 이불 속에서 찾다가 대신 그녀의 스마트폰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에 그녀의 생일을 비밀번호로 치니 잠금이 풀리더군요. 나는 몰래 그녀의 사람들과의 대화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 그녀가 그녀의 친구와 대화한 내용을 보았는데, 내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그녀가 나를 지칭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벙어리 새끼.

 

글쎄, 여자친구는 내 험담을 하고 있더군요. 과묵한 나를 벙어리에 빗댄 것이었습니다. 근래 내가 그녀를 서운하게 한 적이 있긴 했지만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배신감을 느꼈지만, 이 상태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 봤자 상황은 나빠지고 내 집만 시끄러워질 게 뻔했으므로, 일단 그녀를 집 밖으로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차분한 상태에서 진지하게 이야기해야겠죠. 나는 그녀에게 이제 나가보자고 얘기했습니다.

 

여자친구는 그 말에 언짢았는지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내게 쏘아붙였습니다. 그리고 요새 내가 변한 것 같다며, 불평하는 말을 계속 기관총같이 내뱉는데, 나는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분명 사귀기 전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조용한 사람이었는데. 험담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아마 내가 그녀의 됨됨이를 잘못 안 모양입니다.

 

그녀의 말이 점점 커져 소음이 되었습니다. 나는 미쳐버릴 것 같아 당장 나가라고 그녀에게 소리쳤는데, 그녀는 그 말을 듣지도 않고 계속 큰 소리로 자기 할 말을 하더군요.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그녀의 목을 손으로 세게 졸랐습니다. 그녀의 목구멍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녀는 잘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쳤고, 나는 잠깐 그녀를 놓쳤습니다. 그러나 곧 나는 그녀를 바닥에 넘어뜨려 제압한 후, 마저 목을 졸랐습니다. 시간이 꽤 오래 걸려 손이 아팠습니다. 목을 조르던 중 그녀의 목에서 뚝 소리가 나고 그녀의 숨이 끊어졌습니다. 나는 격렬한 운동을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몹시 피곤해서 숨을 고르며 식탁 의자에 앉았습니다. 집은 조용해졌습니다.

 

나는 그녀를 죽였습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배신감과 분노가 나를 잠깐 지배한 것이었습니다. 식탁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여자친구의 누워있는 시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안히 눈을 감은 채 조용해진 그녀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소음에서 침묵으로. 추에서 미로. 나는 그 극적인 반전이 마음에 들어 그만 흥분했습니다. 나는 그녀를 안았고, 그녀의 몸은 아직 따뜻했습니다.

 

나는 기분이 꽤나 편안했습니다. 몸은 피로했지만, 그건 노동을 완벽히 마친 후의 만족스러운 피로감이었습니다. 나는 시체를 잘 처리했습니다. 여자친구는 여기저기 나뉘어 묻혀 사라졌습니다. 실종된 그녀를 찾던 경찰이 나를 의심했지만,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나를 어떻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무튼, 그때부터 나는 편안히 죽어버린 시체에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내 손으로 죽여야 됩니다) 아, 물론 내가 썩은 송장에다 박는 미치광이는 아닙니다. 그저 삶에서 죽음으로, 소음에서 침묵으로, 추에서 미로 가는 반전을 사랑할 뿐입니다. 나는 미친 사람은 아닙니다. 조금 취향이 독특할 뿐이죠.

 

 

 

우웅- 내 스마트폰이 울렸습니다. 여자친구를 새로 사귀었는데, 만나자고 연락이 왔네요. 나는 그녀가 눈을 감고 죽은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역시 사랑스럽네요. 이제, 나가야겠네요.

 

 

 

 

 

2

우-웅.

 

온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온은 그의 여자친구 샤한과 만나기로 했다. 온은 날씨가 꽤 추워졌음을 느끼며 회색 스웨터에 가디건을 걸치고 나갔다. 만나기로 한 카페에 도착하니, 카페 건너편 길에서 여자친구 샤한이 온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갈색 코트를 입고 붉은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온은 그녀의 인사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나 왔어!” 소리를 지르지 않고 조용히 손을 흔드는 것은 역시 배려심 넘치고 우아한 행위이다. 온은 기분이 상쾌했다.

 

둘은 나란히 카페에 들어왔다. 카페는 한적했다. 오후 4시라는 애매한 시간이어서 한적한 것이라고, 온은 생각했다. 둘은 카페 창가에 마주보고 앉았다. 샤한은 손이 시려운지 손을 자꾸 비볐다. 온은 샤한의 부산스러움이 신경쓰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 샤한의 손은 차갑고 얇았다. 

 

온은 말했다. “손이 차가워.” 온은 과묵한 편이었고, 말을 하더라도 짧게 했다. 그는 문장을 길게 늘여 말하지 않았고, 늘 홑문장 토막을 내뱉곤 했다.

샤한이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너 차가운 손 좋아하지 않아? 저번에 그랬잖아.”

“응.”

 

대화가 끝났다. 샤한은 약간의 무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샤한은 온의 손에서 온기를 느끼고는 기분이 괜찮아졌다. 샤한은 온이 겉으로는 무뚝뚝해도 속은 따뜻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샤한은 온을 쳐다보았다. 온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창가를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온의 침묵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온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키가 커서, 온이 입을 다물고 허공을 쳐다보고 있으면 고민하는 잘생긴 시인을 연상케 했다. 또 온은 종종 무심하게 손을 잡거나 선물을 할 때가 있었다. 샤한은 이것에 크게 감동받곤 했었다. 샤한은 온이 쑥쓰러워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만 표현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샤한은 온이 귀엽게 느껴졌다.

 

온은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온은 샤한이 마음에 들었지만, 무언가 마음이 어수선했다. 창밖에는 잠자리 두 마리가 웅웅대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온은 잠자리를 핀으로 꽂아 박제해 버리고 싶었다.

 

주문했던 커피가 나왔다. 온은 커피를 마셨다. 커피가 지독하게 썼다. 샤한이 일그러진 온의 표정을 보고 피식피식 웃었다. 샤한은 자꾸 온에게 말을 걸었다. 온은 그것이 피곤했다. 샤한은 너무나도 생기가 넘쳤고 온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갈을 물려 버릴까.


난잡하군.

 

샤한이 커피와 함께 나온 케이크를 한 입 먹었을 때 온은 그렇게 생각했다. 크림이 그녀의 입술에 묻어나왔고, 그녀의 혀가 뱀같이 날름거리며 크림을 핥았다. 그녀의 턱이 케이크 조각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샤한은 다시 날카로운 포크로 케이크를 뭉게어 자르고 한 입 다시 먹었다. 온은 불안감을 느꼈다. 샤한이 갑자기 미쳐버려서 저 포크로 내 목을 찔러 버리면 어떡하지? 목의 동맥이 잘리고 피가 분수처럼 쏟아나오면, 옷이 더러워질 텐데.

 

온은 아무래도 불안해 몸을 떨었다. 온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어린 온은 엄마와 함께 강변에서 놀고 있었다. 강에서 개구리가 펄쩍 뛰어 온의 팔뚝에 붙었고 온은 양서류의 끈적함에 기겁해 비명을 질렀다. 온은 울며 엄마에게 뛰어가 빨리 개구리를 떼어달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온을 차갑게 무시했다. 개구리는 천천히 팔을 따라 올라오다 온의 얼굴로 펄쩍 뛰어 붙었고, 온은 그만 까무러쳤다.

 

펄쩍. 모든 생명은 펄쩍펄쩍 움직인다. 개구리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칭찬을 늘어놓다가 펄쩍 험담을 시작한다. 선을 보여주다 펄쩍 악심을 품는다. 온은 생명체의 ‘펄쩍’을 많이 무서워했다.

 

그때 샤한이 온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해?”

온이 대답했다. “개구리.”

“크크, 갑자기 무슨 개구리야.”


샤한도 어쩌면 나를 경멸하고 있겠지.

 



온과 샤한은 잡담을 했다. 주로 샤한이 말했고 온은 들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둘은 밥을 같이 먹었다. 밥을 먹고 거리로 나왔다. 번화가에는 사람이 가득했고, 온은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다. “죽어 버릴까.” 온은 혼잣말했다. 조금 스트레스를 받으면 튀어나오는 온의 입버릇이었다. 저 사람들의 삶도, 물론 자신의 삶도, 그저 소음일 뿐이라고, 온은 생각했다.

 

온의 옆에는 샤한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샤한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온은 샤한을 데리고 작은 일본 술집에 들어갔다. 온은 사케를 꽤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아츠캉(데운 술)을 좋아했다. 안주로는 빙어구이를 시켰다. 온은 술을 마시자 몸이 따뜻해졌다.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 시야가 흐려져서 부산스러운 주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온과 샤한은 바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온은 샤한에게 키스했다. 온은 샤한의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녀의 심장 소리는 너무 컸다. 온은 그 심장 소리에 기분을 확 잡쳤다. 온은 샤한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온은 샤한을 사랑했지만 샤한을 믿을 수 없었다. 샤한은 어쩌면 온을 ‘펄쩍’ 배신해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펄쩍’은 생명체의 본능이니까. 온은 여전히 샤한의 심장 박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은 그녀가 생명임을 자랑하고 있었다.

 

샤한을 죽일까. 죽여서 곁에 둘까. 시체는 정숙하고, 배신하지 않는다. 사람과는 다르게. 온은 그래서 시체가 좋았다. 온은 샤한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샤한은 없는 집 출신이었고, 빈민가 근처 집값 싼 곳에 살았다. 온이 사는 국가의 경찰은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까지는 신경쓰지 않았다. 한 마디로, 죽여도 별 탈 없다는 것이었다.

 

온은 취한 척 샤한에게 뜨겁게 키스했다. 온은 자신의 집으로 가서 술이나 마저 마시자고 샤한에게 말했다. 샤한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지만, 좋다고 대답했다. 온과 샤한은 비틀거리며 온의 집으로 향했다. 온의 집 또한 빈민가 근처 작은 원룸이었다. 온은 열쇠로 현관문을 찰칵 열었다. 온의 집은 정돈되어 있었다. 샤한은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온에게 안겼지만, 온은 침착하게 술을 더 마시자고 말했다. 샤한은 온이 자신을 바로 덮치지 않는 것이 의아했으나, 온이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라고 기분 좋게 짐작했다.

 

샤한은 긴장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온에게 말했다. “잠깐 화장실 좀 쓸게.” 샤한은 온과의 잠자리를 한껏 기대하고 있었으며, 화장실에서 그녀의 몸을 한 번 확인해 보려고 했다.

“그래.”

온은 캔맥주를 꺼내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캔 맥주를 컵 두 잔에 따랐다. 그리고 치사량의 마약을 샤한의 잔에 털어놓았다. 하얀 가루가 살살 떨어졌다. 온이 찻숟가락으로 잔을 저은 후 곧바로 샤한이 식탁에 앉았다.

 

온은 술잔을 들고 가볍게 짠- 하는 몸짓을 취했다. 샤한은 웃으며 그녀의 잔을 온의 잔과 부딪혔다. 쨍-. 온은 소음을 참으며 맥주를 마셨다. 샤한도 마셨다.

 

샤한은 맥주를 마시고 바로 정신을 잃었다. 이제 편안하게 죽을 것이다. 온은 그녀가 고통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온은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사이코패스는 아니었다. 온은 그저 침묵을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삶의 가치에 회의를 느끼는, 지극히 평범한 현대인이었다. 온은 자신도 샤한처럼 죽는 것도 썩 괜찮을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샤한이 죽었다. 편안하게 죽었다. 아까까지는 살아 있었는데. 이제 죽었다. 온은 삶과 죽음이 이렇게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음이, 소름끼치도록 좋았다. 영화에서 멋진 반전을 본 기분이 들었다.

 

온은 아주 조용한 방에 샤한과 앉아 있었다. 온은 죽어버린 샤한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샤한은 천천히 의자에서 흘러내렸다. 온은 샤한을 그의 침대로 옮기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의 몸은 아직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