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막 16:15)

 

 

“...울아, 바울아.”

 

꿈인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메아리치듯 굵은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바울아, 일어나거라.”

 

종을 부르는 듯한 말투의, 애처로운 남성의 목소리가 흔들어 깨우듯이 나의 이름을 부른다.

 

바울아!”

 

목소리는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한 번 소리치고는 사라졌다. 그에 맞춰 꿈에서 깨어났지만, 아직도 귓전에 그 목소리가 울리는 듯하다. 찡그린 눈, 흐릿한 시야 가득히, 새파란 하늘과 유난히도 눈부신 햇살이 스미어 들어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예전에, 아프리카 오지에서 교회를 짓고 복음을 전하던 한 목사님을 본 적이 있다. 사바나의 햇볕을 원없이 맞고 살갗이 다 탄 목사님은,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며 아프리카에서 배운 부족말을 우리에게 몇 마디 소개해 주었다

 

성경 말씀대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라며, 팔 곳곳에 난 흉터를 드러내며 열변을 토하던 목사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였던지, 그때부터 내 꿈은 줄곧 목사였다

 

목사 안수를 받기까지 쉼없이 달렸고,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어릴 때 보았던 그 목사님처럼 언젠가 내 손으로 오지에 예수님의 땅을 일구고 싶다는, 그리고 성도들의 박수갈채를 한몸에 받고 싶다는 야먕을 꿋꿋이 바라보며 달려온 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시야를 가득 채운 푸른 하늘에는, 사바나의 땡볕 못잖은 두 개의 태양이 맹렬하게 빛나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전도서 8:17)

 

 

사람이 한 수를 내다볼 때 몇 수 앞의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이라지만, 그래서 가끔은 하나님의 뜻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묵묵히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기독교인의 숙명일까. 어쩌면 내가 이 낯선 땅에 뚝 떨어진 것도 하나님의 계획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내가 이 곳에서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 것일까. 설마 오지로 가겠다는 그 청을 이렇게 들어주신 것일까? 사람들과 말조차 통하지 않는 오지. 자동차 대신 말이며 인력거를 끌고 다니고, 아스팔트 대신 말쓱한 대리석 도로가 깔린 곳, 말도 통하는지 모르는 이곳에서 뭘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한 시간 전만 해도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마침 말씀의 주제도 복음 전파였다. 한창 열변이 무르익는 와중에 눈앞이 침침하더니, 다시 눈을 뜨니 하늘에 해가 두 개 뜬 이세계였다. 가운도 못 벗고 실려왔지만, 신기하게도 성경과 십자가는 손에 쥐어져 있었다. 휴대전화야 터질 리가 없었고, 나는 그대로 이곳에 갇힌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이곳에 버려두실 리는 없을 테다. 손에는 십자가와 성서, 그것도 찬송가 합본 성서까지 쥐어서 여기에 보내신 이유가, 설마 정말로 오지 선교라는 청을 들어주신 것일까? 주님의 뜻이 그렇다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