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인간이 별을 여행하게 된 시대는 나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빨리 다가왔다.

 

그게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낭만적이지는 않았지만.

 

"오늘도 별 보니?"

 

초저녁 즈음, 마당에서 천체망원경을 만지작거리던 나를 본 어머니는 그리 물어오셨다.

 

다른 날도 아니고, 오늘은 날이 날이었기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다시 천체망원경 조작에 집중했다.

 

워낙 세상이 좋아져서 휴대전화와 망원경이 연동되고, 화면에 들어온 밤하늘을 지정하는 것만으로도 별들의 흔적을 쫓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오늘은 녀석이 저곳으로 떠난 지 딱 10년이 되는 날이었으니까.

 

"너도 참 별난 애네."

"…약속했으니까요. 계속 지켜보겠다고."

"그럼 그냥 직접 찾으러 가지 그러니."

"……"

 

어머니의 그 말에 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처음 녀석이 지구로 접근하는 인류에게 적대적인 외우주 기원종 토벌을 위해 견습 승조원 자격으로 올드린 함대에 합류했을 때, 나는 약속했었다. 

 

매일같이 네가 있는 곳을 지켜보겠노라고. 

 

비록 답장을 받지 못하더라도 네가 외롭지 않게 매주 메시지를 보내주겠다고.

 

실제로 나는 지난 10년 동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도 녀석이 계속하고 있을 세이건 581 행성계를 향한 여정을 지켜보기 위해 대형 망원경을 구입할 때에도.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라 한 글자마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매겨 받던 스타 레터 서비스를 매월 이용할 때에도.

 

답장을 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10년 동안 메시지를 보냈던 옛 휴대전화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붙들고 있을 때에도.

 

나는 언제나 녀석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그런 내 모습이 어머니는 답답하셨던 거겠지.

 

"적당히 하다 들어와. 감기 들라."

 

자신의 반박할 수 없는 지적에 어두워진 내 표정이 못내 마음에 걸린 것인지, 어머니는 그 한마디를 덧붙이곤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더이상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은 그만하기로 하고, 막 렌즈 배럴에 결합한 아이피스에 눈을 가져다 대자, 지금까지 봐온 것들과는 또 다른 세계가 동공에 비쳤다.

 

데네브, 알데마린, 카프. 

 

언제 빛났을지도 모를 과거의 수많은 별빛들이 망원경의 렌즈로 모여들었고, 나는 그중에서도 세페이드 자리의 델타성 아래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작은 별로 초점을 맞췄다.

 

세이건 581. 

 

30년 전 있었던 세이건 미션 도중 발견된 G형 주계열성으로, 지구에서 3.5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그 별은 우리 인류를 위협하는 우주 괴수의 모성이기도 했다.

 

이미 한 세대도 전에 카르다쇼프 척도에서 현대 인류 문명을 제친 것으로 추정되는 그들 우주 괴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양계를 향해 수천에 달하는 군집을 이룬 채로 접근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존재 때문에 나는 녀석을 우주로 보낼 수밖에 없었고.

 

'있지, 내가 떠나고 나면, 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10년 전쯤이었을까, 언젠가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였다.

 

그때의 나는 그리 말하는 녀석의 처연한 옆모습을 쳐다보며, 무어라 답을 해주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의 부모님은 각각 올드린 함대 수반함의 부장과 군수참모였으니까. 

 

가족이 모두 지구를 떠나게 되었으니, 녀석을 개인적으로 기억해줄 만한 사람이 드물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기억할게.'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구제 불능일 정도로 현실감각이 없는 놈이었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그게 언제가 돼도 상관없으니까, 쭉 네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널 기억할게.'

 

그저 당장 불안에 떠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였던 것이었겠지.

 

그리고 바보 같이도, 나는 녀석이 기억하고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10년을 살아왔다.

 

그것이 비록 이미 지나버린 녀석의 뒷모습을 쫓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라 해도.

 

연심을 품었던 그때의 그 열일곱 살 난 소녀에게 돌아올 장소가 되어주겠다는 자기만족만으로도 충분했다.

 

"넌 지금도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까." 

 

대답을 들을 길 없는 질문을 밤하늘에 띄워 보내며, 나는 그날의 천체관측을 마쳤다.

 

 

 

1.

 

"아들, 빨리 일어나서 뉴스 좀 봐!"

 

다음 날 아침, 좀처럼 듣기 어려운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올드린 함대, 1년 5개월 전 세이건 361 행성계 부근에서 적 조우.'

'전투 승리했으나 피해 막심. 현재 사상자 집계 중.'

 

긴급 속보로 흘러나오고 있는 그 내용에 나는 졸음이 싹 가시는 것과 함께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TV에 얼굴을 비춘 앵커들의 말투는 다급했고, 자료 화면에서는 작은 점들의 집합으로 보이는 올드린 함대의 1년 5개월 전 모습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항상 이랬다. 

 

저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나면 이쪽은 항상 뒤늦게 그 소식을 듣게 된다.

 

3개월 전 있었다던 소행성 지대 통과 때가 그랬고, 1년 전의 항성 폭풍 직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선 각각 8년, 3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녀석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면 갈수록 상황 파악에 걸리는 시간도 같이 늘어났다.

 

우주 공간에서 열화되지 않고 빛의 속도로 메시지를 전송해 준다는 스타 레터 서비스를 이용해도 말이다.

 

물리법칙 상 그걸 뒤엎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분한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들."

 

지구에서 세이건 361까지의 거리는 1.4광년. 

 

뉴스의 자막이 말해주듯 이쪽에선 1년 5개월 전에 벌어진 일에 대해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들."

 

당연히 그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저곳에서의 시간은 계속 흘러갈 테고, 어쩌면 이미 상황을 수습하고 목적지를 향한 항해를 재개했을 수도 있었다.

 

물론 이것도 지나치게 희망적인 관측이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렇게 믿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김재원!'

 

어깨가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어머니의 고함이 귓전을 때렸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시선을 맞추니, 어머니는 걱정 어린 얼굴을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답도 안 나오는 문제를 가지고 나 혼자 과몰입 했었던 모양이다.

 

"괜찮아요. 잠깐 생각 좀 했던 것뿐이에요."

"미리 말하지만, 절대 안 된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생각이라는 단어에서 무얼 읽어낸 건지, 어머니는 얼굴을 싹 굳히면서 그리 답하셨다.

 

뭐 내가 이 나이 먹고 우주함대 모집병 지원이라도 한다고 생각하신 건가.

 

"어제하고 말씀이 다르시네요?"

"넌 이 애미가 하나밖에 없는 새끼 기다리다 혼자 늙어 죽는 꼴 보고 싶니?"

"농담이에요, 농담."

 

그래, 농담이다.

 

내겐 녀석과 같이 목숨을 걸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여행길에 오를 용기도 없거니와, 어머니의 말씀대로 하나 남은 가족을 남겨두고 떠날 각오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런 내가 대체 무얼 한단 말인가.

 

"그럼, 출근하러 나가볼게요."

"아침밥 먹고 가. 미역국 끓여놨어."

"밥 생각 없어요."

 

출근 시간까진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았지만, 아침부터 저런 뉴스를 본 마당에 입맛이 돌 리가 없었다.

 

대충 츄리닝에 깔깔이를 챙겨입고 대문 밖을 나서니, 초겨울의 쌀쌀한 아침 공기가 온몸을 에워쌌다.

 

내가 출근하는 곳이라고 해봐야 하루 여섯 시간씩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집 근처 편의점이 전부였고, 아마 이런 삶은 녀석이 살아서 지구로 돌아오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계속될 예정이었다.

 

물론 나라고 이런 비루한 삶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녀석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자 올드린 함대와 같은 수준은 아니어도 태양계 순환 근무나 외행성 유인기지 파견에 지원한 것만 스무 번이 넘었었으니까.

 

거기서 모조리 떨어진 뒤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군 생활을 방공유도탄 운용병으로 했던 걸 생각하면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온 셈이었다.

 

……그런 걸 녀석이 알아줄 길은 없겠지만.

 

"안녕하세요."

"오, 김 주임 오늘 일찍 왔네?"

"집에선 보일러 못 틀게 해서요."

"하긴 우리 가게가 따뜻하긴 하지."

 

돈도 더 안 받는데 일찍 출근해준 내가 어지간히도 반가웠는지, 카운터에 앉아 전기난로를 쬐던 사장님은 내 인사를 받아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김 주임.

 

말이 좋아 주임이지, 그냥 듣기 좋으라고 붙은 그 직책은 내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따라붙은 꼬리표와도 같았다.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하고 이른 나이부터 이런 생산성도 기술도 건질 것 없는 잡일이나 하게 된 놈에게 붙는 꼬리표 말이다.

 

"시재 이상 없네요. 먼저 퇴근하세요, 사장님."

"그래. 오늘도 수고 좀 해줘."

 

POS기 현금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사장님을 일찍 내보낸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카운터 구석의 TV를 켜 집에서 보다만 뉴스를 마저 보는 것이었다.

 

'UN 항공우주군, 이번 전투 사상자 최소 960명으로 전망.'

'올드린 함대 보고서 계속 도착 중이나 전파 열화 심해 정확한 상황 파악 어려워.'

'정부, 내년 상반기 출진하는 4차 외우주 원정함대 지원자 모집 앞당기기로 해.'

 

역시 뉴스에선 좋지 않은 소식들만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올드린 함대 총인원이 1만 명을 조금 넘었던 걸 생각하면 첫 전투에서 1천 명 가까운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목적지까진 아직 절반도 가지 못했는데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미지수고, 가장 가까운 지원전력인 가가린 함대와의 거리는 0.5광년이나 차이가 났다.

 

그러니 정부에서 다음 원정함대 지원자를 조기 모집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인류에게 있어 이 전쟁은 종족의 명운을 건 싸움이었고, 그런 만큼 다수의 보험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마일드세븐 팩으로 한 갑 주세요."

"만 오천 원입니다."

 

인근 공업단지 목재공장의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는 중년 남성에게 담배를 한 갑 쥐여주고 구겨진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건네받는다.

 

오천 원 지폐 한 장을 거슬러주고 다시 TV로 시선을 돌리니, 화면에는 이번에 국내 대기업에서 새로 출시한 휴대전화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류를 위해 고향을 떠난 이들이 차가운 우주에서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판국에 휴대전화 광고라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저런 걸 위해 녀석은 그 어린 나이에 자기 목숨을 걸고 지구를 떠난 건가.

 

"씨발……."

 

무의식적으로 말아쥔 두 손에 힘이 들어간 탓에 손톱이 살갗을 뚫고 들어가 피가 묻어나왔다.

 

대체 뭘 기억하고 지켜본단 말인가.

 

내가 여기 주저앉아 바코드나 찍고 있던 동안 그 녀석은 이미 진작에 우주의 먼지가 되어 흩어졌을 수도 있을 텐데.

 

‘♬♪𝅘𝅥𝅯♫’

 

어떻게 할 수도 없는 현실에 절망해 자괴감에 든 것도 잠시, 다음 순간 들려온 착신음에 나는 반사적으로 깔깔이 안주머니에 넣어뒀던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구입한 지 10년도 더 된 그 낡은 휴대전화의 화면에는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팝업창이 띄워져 있었다.

 

'UNSS Edwin Aldrin'

 

떨리는 손으로 잠금 화면을 풀고 메시지를 열자, 발신자 란에는 올드린 함대의 기함인 에드윈 올드린 함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버린 재원이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녀석이 보내온 메시지였다.

 

믿겨 지지 않았다.

 

스타 레터 같은 전 우주적 통신체계는 주력 함급이 아니면 탑재되지 않을 텐데.

 

더군다나 주력 함급에 탑재되는 그 시스템의 용도도 군사용이라 함대 사령관 정도가 아닌 이상 사적으로 그걸 이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것도 다른 게 아닌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그동안 내게 있어 생일 따윈 그저 녀석과 떨어진 시간을 체감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었다.


녀석은 그런 나의 생일에 의미를 부여해준 것이었다.


비록 몇 글자 되지 않는 짧은 글이긴 했지만, 그거로 충분했다.

 

그 몇 글자만으로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10년 간의 고독을 날려버리고도 남았으니까.


그리고 이제부터 내가 무얼 해야 할지 결심을 굳힐 수 있게 해줬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무래도 나는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구제 불능일 정도로 현실감각이 없는 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