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용 여주짤.

료챈 대회용이라서 하드한 SM 비슷한 분위기 나올 수 있음

폭행이나 유혈 묘사 같은 거 나올 수 있단 거임.

*






검과 마법의 세계에서의 슬픔은 여러 원인을 지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중 대부분은

검과도 마법과도 관련이 없는 놈이다.


이를 테면 '사랑' 같은 녀석들이 여기에 속한다.


거인이 어떻게 드워프를 사랑하고

인간이 어떻게 드래곤을 사랑할까.


자칫 데이트 도중 밟히지나 않으면 다행일 터이다.


이 환상적인 세상의 사랑은 그래서,

환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끝을 맺곤 한다.



"후우 뻐근하다."



비스트테이머인 료붕과 그의 사랑스러운 수인 파트너도 다르지 않았다.



"고생했어."



숫눈처럼 깨끗한 은발, 엄연히 성인임에도 조금 작아 보호욕을 자극하는 신장,

흰색을 바탕으로 초록색이 군데군데 섞인 가벼운 전투복.


거기에 머리카락을 닮아 새하얀 고양이 귀와 꼬리.


빙긋빙긋 웃는 게 기본상으로 자리잡은 이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비스트테이머 료붕의 파트너 되는 몸이시다.



"힘들었지? 잠깐만 기다려..."



작은 고양이 수인이 '둘만의 행복한 거처' 에서 이리저리 걸었다.


말이야 거창하지 실상은 길드가 관리하는 작은 방일 뿐이었지만.


책상 하나와 침대 하나, 옷장과 욕실 정도가 전부인 이 좁은 방은

다른 세계로 치면 고시원의 방 하나 정도의 크기를 겨우 가지는 셈이었다.


원하던 물건을 찾아낸 은발의 수인이 두손으로 조심스레 물건을 들고 파트너에게 다가갔다.



"웬 일이야 '비비' ? 평소엔 엄격하게 금지하더니."


"오늘은 큰 건 하나 따낸 경사스러운 일이잖아! 이런 날 술이 빠지면 섭섭하지!"



비비가 끙끙거리며 코르크를 뽑았다.


전투 도중이 아닌, 평상시의 수인은 그렇게까지 힘이 강한 종족은 아니었다.


하물며 고양이 수인이라면 더더욱.



"의외네? 술은 싫어하는 줄 알았지."


"평소엔 절약해야 하니까 그랬지."


"절약? 뭐하려고?"


"그야... 지금부터 돈을 모아야 히, 히히..."



비비가 제 두뺨에 손을 얹고 행복한 망상을 했다.


아직 파트너는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망상이었다.



"돈이 순조롭게 모여서 나중에 료붕이랑 결혼하게 되면 엄마랑 아빠랑... 에이미도 불러야겠지?

어쩌면 로즈랑 오랜만에 만날 지도 모르겠다. 기지배 결혼하고 나선 문자 한장을 안 보내네.

축가는 셰이한테 맡겨야겠다? 걔가 노래를 그렇게 잘 불렀는데."



망상.


망상을 잘하기로 비비는 수인의 마을에서 이름난 처자였다.


아직 료붕과 그녀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건만

비비의 망상은 끝날 줄을 몰랐다.


물론 이 또한 이 아담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의 매력이리라.



"뭘 그리 중얼거려?"


"아, 아무 것도 아니야 료붕아."


"그럼 다행인데... 괜히 방금 보스한테 맞은 게 곪기라도 했나 싶었지."



이 날 오전의 일.


료붕과 그의 파트너는 파티원들과 함께 던전 보스라 불리우던 특대급 오크를 하나 처치했다.


하나 난전 도중 오크의 매서운 곤봉이 비비를 향해 날아들었던 것이다.



"조심 좀 하지 그랬어. 다치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


"헤헤..."



나름 핀잔이랍시고 준 거지만

사랑에 빠진 수인에겐 걱정 한조각도 달게 느껴지는 법이다.


비비의 행복한 시간 사이로 옆방 모험가의 투정이 들렸다.



"에헤이, 테이머인지 뭔지 하는 놈 저거... 저래서 어디다 쓰나?"


"뭐 어때서? 난 걔 마음에 들던데. 싹싹하잖냐."


"싹싹 같은 소리하고 있네. 우리가 성직가냐? 인성이 왜 필요해."


"나도 그 말에 동감이야. 우린 모험가야. 모험가면 실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아무리 모험가라지만 인성도 중요하지. 실력으로만 너무 평가하면..."


"그런 점에서 걘 실격이야 실격. 혼자선 아무 것도 못하고."


"그 고양이 여자한테 맡겨놓고 본인은 뒤에서 놀기만 하니 원..."


"게다가 걔네만 돈도 두배로 가져가잖아. 입이 둘이라면서."


"그만들 해. 취했냐?"



'비스트테이머는 사역하는 동물이나 수인에게만 일을 맡기고

본인들은 놀기만 하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족속들이다.'


향간의 모험가들 사이에서 떠도는 풍문이었다.


료붕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비비가 얼굴을 찌푸리며 료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휴, 꼭 저런 애들 있다니까. 제 흉엔 관대하면서 남 흉은 잘 보는 애들. 너무 신경 쓰지 마 료붕아."


"그래도 약간은 사실이잖아. 너 빼면 파티에서 난 시체나 다름 없어."


"시체라니! 네 강화마법이 아니면 나도 제대로 위력을 발휘 못 하잖아! 그리고, 애초에 네가 아니었으면 난..."



난 인간 따위랑 엮이지도 않을 거라고-


비비가 말을 도중에 끊었다.


료붕에게 썩 와닿지 않는 위로여서 였을까.


테이머는 힘 없이 고개를 떨궜다.



*



"나가줘야겠다."


"네?"



파티의 회의실.


은밀하게 료붕을 불러낸 파티장의 말이었다.


파티장은 차마 료붕과 눈을 못 마주치고 바닥을 보고 있었다.



"누님! 내가 몇년을 굴렀는데 그런 말을 합니까! 나가라니, 내가 잘못 들은 거죠?"


"요즘 비스트테이머 직종 자체에 대해 평판이 안 좋아. 파티에 밸런스형 직종도 많이 들어오고 있고."


"'그 소문' 말입니까?"



파티장은 침묵했다.


묵묵부답은 긍정의 표시.


료붕이 열불을 냈다.



"누님, 진짜 나 모릅니까? 테이머가 얼마나 지대한 역할을 하는 지 몰라요?"


"알지, 아는데 파티 분위기가 그렇다."


"분위기고 나발이고 그냥...! "


"내가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



더 뭐라 책망하겠는가.


파티장의 입장에선 파티가 와해되지 않기 위해 한 고육지책일 텐데.


파티장과 자신의 친분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결단이었으리라는 것을 료붕은 알았다.



"하... 펜이나 빌려주십쇼."


"가끔씩 찾아갈게."



료붕은 말 없이 확인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이로서 탈퇴한 셈이었다.



"헛소문 좀 잦아들면 돌아올 수 있게 판 다 깔아놓을 테니까..."


"... 고맙수."



오랜 동료의 작별인사치곤 삭막했다.


료붕이 숙소에 기어들어간 것은 그날 밤 늦게였다.



"왜 이제야 왔어, 걱정했잖아!"



숙소의 문을 여니 료붕의 흰 고양이가 그를 맞이했다.


늘 자신을 지탱해주는 파트너.


파트너의 귀여운 얼굴을 보니 낮에 겪었던 서러움도 대번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비비..."


"어휴 술 냄새, 술을 얼마나 마셔댄 거야."


"비비... 우리 잘렸다."


"응?"



료붕은 사정을 토해냈다.


비비는 처음엔 믿지 못했지만 료붕의 태도에서 진실성을 유추해냈다.



"료붕아 그럼 우리..."


"어. 이제 빈털털이지. 거지야."



근 10년간 유례 없는 취업난.


그들의 마을은 취업난을 겪고 있었다.


새로운 파티에 들어간다는 것은 기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퍼렇게 질린 얼굴이었으나 비비는 사려 깊은 소녀였다.


자신 못지 않게 테이머의 상실감이 컸으리란 것을 이해하는.



"그... 너무 암울하게 생각하지 말자. 어떻게든 될 거야."


"그렇지? 그렇겠지...?"



하나 둘의 안일한 희망을 비웃듯

길드 벽보에서 퀘스트는 점점 자취를 감추어갈 뿐이었다.


그나마 몇개 남아있던 퀘스트도 대형길드에서 채가는 것들이 많아,

남은 것은 던전 보스의 레이드나 의뢰비가 눈물나게 적은 것들 뿐이었다.



"망할!"



결국 일도 없고 희망도 없는 료붕은 길드 회관에서 술이나 마셔대는 게 하루일과가 되었다.



"왜 내가 이렇게 썩어야 하는 거냐고오!"


"료붕아 이제 그만 숙소로 돌아가자, 응?"


"숙소... 그그그 숙소? 옆방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 뒷소문이나 돌리던 그 숙소오?!"


"너 너무 많이 마셨어. 일어나자."


"[지휘봉의 료붕이] 가 이렇게 썩는구나! 망할 놈의 세상!"



료붕의 추한 발악에 다른 모험가들이 혀를 찼다.



"쯧 또 저 모양이네. 취할 거면 곱게나 취할 것이지."


"요즘 테이머들 많이 힘들다곤 들었는데 저 정도일 줄이야..."


"저런 꼬락서니니 쫓겨난 거겠지."



흉담은 저렴하다.


흉담은 무료기에, 돈이 드는 행위가 아니기에 누구나 할 수 있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남용되는 것이다.



"너... 뭐라고 했어."


"료붕아 안 돼!"



료붕은 깨진 술병을 집어들었고

그대로 행인에게 내리긋던 병은 발 빠른 그의 파트너에 의해 막혔다.


비비의 팔에서 피가 떨어졌다.


엉겁결에 파트너를 폭행하게 된 료붕은 한순간 놀라는 눈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막냐아? 저 남잘 위해서 막아? 너도 나한테 질렸다 이거냐?"


"아냐 료붕아 그런 게 아니고, 여기서 그런 짓을 했다간..."


"하기는 그래애... 같이 있으면 배도 고프겠다, 허구헌날 술이나 마셔대는 놈이 뭐 좋겠냐... 어?!"


"료붕아 진정하고 내 말 좀...!"


"진정은 개뿔이 진정!!"



료붕이 비비의 뺨을 후려갈겼다.


이미 한번 피를 본 터여서인지, 그는 꺼리끼지 않았다.


사랑하던 남자가 자신을 친다는 것은 빈 말로도 흥미로운 경험이라 할 수 없기에

비비에게 있어선 남다른 충격이었지만.



"내가 진정하게 생겼냐? 어? 네 눈에느은... 내 꼴이 안락해보여?"



료붕이 부러진 병으로 비비의 배를 찔러댔다.


공포에 압도된 비비는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만 해댈 뿐이었다.


깨끗한 순백색 비비의 치마가 조금씩 붉은 빛으로 물들어갔다.


자꾸만 거리가 생기는 게 성에 안 찬 료붕이 한손으로 비비의 흉부를 움켜쥐었다.


다른 어떠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고, 단지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용도였다.



"하아윽..."



마찬가지로 비비가 입술을 깨물며 흘린 소리도

다른 어떠한 의미에서라기보단 고통에 대한 애도에 가까웠다.



"눈이 두짝이나 있고도 상황을 못 보면... 다 무슨 필요냐아!"



료붕이 술병을 치켜올렸다.


파트너의 눈에 피눈물을 선물해줄 모양이었다.


비비는 눈을 질끈 감았다.



*


료챈 떡 돌릴 거 준비 중인데
왜 하편이 안 써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