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의 파란 가루들이 결집하기 시작한 것은 11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모인 게 아닌, 어딘가 신성해보이는 시뻘건 기둥에 밀려서 한 데 모여진 것에 불과했다. 모인 가루는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존재들이 사방팔방에 출현했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란 듯 웅성대며 저마다 혼란의 소음을 내뱉었다.

     극도의 혼란은 자신과 비슷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두려워한 일부 겁쟁이들의 선동에 의해 몸집이 큰 이들을 중심으로 한 폭력 사태로 진화하기 직전이었다. 그 때, 신성한 힘에 버금갈 정도로 큰 크기의 어떤 이가 등장했다. 다른 이들처럼 회색, 검정색이 섞인 불결한 색이 아닌, 순수하고 숭고한 파란색의 몸체 또한 괄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게다가 마치 자신의 값비싼 몸은 남들에게 함부로 보여줄 수 없다고 명언하는 듯한 종이 재질의 외투는 그 고상함의 대미를 장식했다.

     웅성대던 가루들은 자신보다 명백히 강한 이가 등장한 것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는 빠르게, 그러나 우아하게 걸어 나머지 모두가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도달한 후 이렇게 외쳤다.

     "이 자유롭고 드넓은 장소에서, 나의 파란 국민들과 함께 카스텔 왕국의 건립을 선포하노라!"

     그러나 자신들을 결집시켰던 그 시뻘건 힘과 같이, 그저 몸집이 클 뿐인 그에게서는 어딘가 신성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신으로부터 무언가 숭고한 임무를 받고 내려온 사자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말에 거역할 수 없어 그저 멍하니 그의 짧은 연설을 듣는 동안, 자유로웠던 파랑 가루들은 자신보다 더 몸집이 크고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생판 남에게 "파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예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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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텔 왕국에서 서쪽으로 20cm,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원인과 방법으로 세워진 펜텔 제국이 있었다. 두 왕국은 공통점이 너무 많아 서로 다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차이점이 없다시피 했다. 

     두 나라 사이에는 20cm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몇 분 간엔 교류가 종종 있었다. 생각해보라! 드넓은 대지 위에 올라서 있는 나라는 사실상 그 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교류가 생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 이유는 어찌 됐든, 사건의 발단은 그 교류 도중에 일어났다.

     어느 호기심 많던 파란 국민 중 하나가 서쪽으로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다 검은색 가루를 만난 것이 첫 번째 만남이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즉시 자신의 우두머리에게 알렸고, 카스텔 왕국의 더스트프리 왕과 펜텔 제국의 하이폴리머 황제는 각각 서쪽으로, 동쪽으로 측근들과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결국엔 그 두 나라의 어느 중간 지점 쯤에서 왕과 황제는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만났을 때 카스텔 왕국의 대신 중 하나가 지껄였던 혼잣말이 문제였다.

     "쟤네는 피부색 부터가 시꺼먼 게 속도 독같이 음침하고 기분 나쁠거야. 깜둥이들 같으니라고."

     그리고 정말 운이 나쁘게도 하이폴리머 황제의 측근 중 하나가 그 말을 들어버렸다. 그 사실이 하이폴리머 황제의 귀에 들어가는 데 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고, 결국엔 교류회는 고사하고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는데 서로가 서로를 원수처럼 노려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 쪽의 시퍼렇게 질린 국민들은 그렇게 처음 만난 사람을 모욕하는 게 옳다고 배웠소?"

     상당히 화가 나 보이는 하이폴리머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오. 짐이 이 자를 우리의 규칙에 따라.."

     그러나 더스트프리 왕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펜텔 제국의 대신 중 조금 몸집이 커 보이는 사람이 자신을 모욕했던 그 대신에게 달려가 목을 졸라 살해했다. 주변에 있던 카스텔 왕국의 다른 대신들은 그 광경을 두려움에 떨며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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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자신의 의지로 모인 것은 아니고, 모여 지낸 시간도 수십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상대편"의 중대한 범죄행동은 카스텔 왕국 국민들 사이에 없던 유대도 생겨나게 했다. 자신들이 행했던 모욕 따위는 지금 그들의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색깔과 종족, "상대편"이 "우리편"을 해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으로 뭉친 국민들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펜텔 왕국의 국민들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자신들은 아무짓도 하지 않았고,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교류회장에 참석했으나 봉변을 당했다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실만 모은 것으로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다. 게다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심각한 수준의 모욕적인 언사는 카스텔 왕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불과 수십분 정도 전에 처음 만난 남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이 상황이 탐탁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성가신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자신이 권력을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벌어지는 이 소란이 자신들의 평온한 생활 유지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고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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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국가의 지배자들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오른 바로 다음날, 카스텔 왕국의 더스트프리 왕은 자신의 부하 중 가장 힘이 세고 덩치도 큰 파버를 불러 설득을 시작했다.

      "파버, 여기 앉아보게. 내 자네에게 긴히 전할 말이 있어서 그렇다네."

     "예, 알겠습니다."

     "자네는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는 펜텔 제국이 정말로 천인공노할 짓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조금 농을 쳤다고는 해도 어떻게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에까지 다다를 수가 있습니까? 저로서는 그 야만적인 생각에 도저히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짐 또한 우리 왕국의 국민이 저 사악한 펜텔 제국의 악마에게 그렇게나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당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네. 우리의 무고한 국민이 희생당한 이 안타깝기 그지 없는 사태에 대해 짐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하겠네. 헌데, 짐은 만일 그 악마가 우리의 자랑스런 파란 국민들 사이에 교묘히 숨어들은 게 아닌가 의심스럽네. 짐 또한 짐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굴뚝같으나, 피아식별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짐이 나서봤자 이적 행위를 하는 것과 진배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 가장 신뢰하는 부하인 자네에게 숨어들은 악마의 척결을 부탁하고자 하네. 검은 악마가 아무리 사악하다고는 하나, 아마 그 피부 색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할걸세. 검은 피부를 가진 자, 또는 그런 빛을 띄고 있는 자를 중심적으로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네. 그리고 이 사실을 온 국민에게 알려 수색을 돕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이 천인공노할 야만적인 사태가 우리 파란 국민의 위대한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어찌 가능하겠는가!"

     "분부 받잡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덩치만 크고 머리는 잘 돌아가지 않았던 파버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국민들에게 그대로 전달해버렸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 수색에 협조하지 않거나 의심되는 이를 감싸주는 이들은 모두 검은 악마로 간주한다고도 엄포를 놨다.

     




아까 샘플로 올려달라고 하신 거 샘플 입니다.


2편 : https://arca.live/b/writingnovel/6761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