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하나 정도 크기의, 한 섬나라에는 두 마을이 있었습니다. 

 


 섬을 동서방향으로 관통하여 흐르는 강을 기준으로 위쪽을 윗마을, 아래쪽을 아랫마을이라 불렀고, 강의 한가운데의 자그마한 인공섬에는 동물원과 관청이 있었습니다. 


 아랫마을과 윗마을 사이에는 이런저런 차이점이 있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애호하는 동물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혔습니다. 윗마을은 시베리아호랑이를, 아랫마을은 벵골호랑이를 극호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이러한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윗마을 게시판에서는,



 「속보! 배드스마일에서 시베리아호랑이 1/8 스케일 피규어 출시!!」

 “우오오옷 바로 5개 예약 간다ㅋㅋㅋ”

 “오 시베리아호랑이님이 마참내 스케일 피규어로 나오는 건가..!”

 “배드스마일 그들은 신이야!”



 「오늘의 소식! 시베리아호랑이 ‘시벌’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 ‘시벌쨩의 모험’ 애니메이션화 결정!!」

 “와.. 나 죽기 전에 이거 애니화될 줄은 몰랐음..”

 “ㄴ ㄹㅇㅋㅋ 이 카미망가가 드디어…!”

 “ㄴㄴ ㄹㅇ… 혹시 아직 원작 안 본 사람 있으면 꼭 보고 이미 본 사람들도 이참에 복습하자!!”

 “와 애니 제작진들 라인업도 지리네”



 이런 광경이 펼쳐졌고, 아랫마을 게시판에서는



 「아랫마을 뉴스! 신작 오리지널 RPG 게임 ‘벵고르단또르’ 2차 PV 공개!!」

 “아니 저 쪼꼬미는 이름이 뭐임ㅋㅋㅋ 개귀엽네..”

 “ㄴ쟤가 주인공 벵고르임ㅇㅇ 졸라 귀여움ㅋㅋㅋㅋ”

 “ㄴㄴ아 ㄹㅇ? 답글쓰니야 알려줘서 고맙다 ㄱㅅㄱㅅ”

 “니들 사전예약은 다들 했냐? 안 했으면 빨리 하셈>>>> ♚♚벵고르☆단또르♚♚사전예약시$$120회 무료 뽑기☜☜100%증정※즉시이동https://bengar-dantor.sumnara”

 “ㄴ안 했으면 간첩이지ㅋㅋㅋㅋ”


 「100% 극세사 원단으로 제작한 벵골호랑이 말랑인형 한정 판매 개시!! 한정 수량 100개!!」

 “우효wwwww 이것은 매우 부드러워 보이는www”

 “소장용 장식용 예비용 총 3개 구입완료~”

 “와 순식간에 매진이네.. 이거 평화나라 가면 구할 수 있으려나?”

 “벵골호랑이 말랑인형 양도합니다~ 원가의 두 배만 받을게요^^”



 이런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나라에는 호랑이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호랑이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그보다 작은 고양이는 있지만 호랑이는 없습니다. 단순히 이 나라에 서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가상의 동물인 것입니다. 

 어느날 누군가가 ‘고양이 보다 좀 더 크고.. 늠름하고.. 매력적인 동물은 없을까..?’라며 망상을 하다가 만들어낸 것이 시베리아호랑이와 벵골호랑이이고, 각각 윗마을과 아랫마을에 전파되어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는 모양입니다.


 하여튼 윗마을은 윗마을대로, 아랫마을은 아랫마을대로 각자의 호랑이 애호 활동을 이어가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흥냐옹 특별전: 호랑이 모습으로 치장한 고양이들을 만나보세요!」

 「중앙동물원 B구역, 모월 모일부터 응애응애까지 개최!」



 인공섬에 있는 동물원에서 특별 행사에 대한 공지를 올렸습니다. 특수분장을 통해 호랑이의 모습을 흉내낸 고양이들을 볼 수 있는 특별전시였습니다. 무려 살아 움직이는 호랑이(인 척하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굉장한 기회! 



 “사진 보니까 꽤 잘 꾸몄는데? 기획자가 호잘알인듯..”

 “오”

 “이번 주 토요일에 윗마을 노인정 앞에서 전세버스 타고 같이 갈 사람 모집 1/30”

 “ㄴ 나 좀 껴주셈”

 “ㄴㄴ 나도”



 “딱대ㅋㅋㅋ 아랫마을 최남단에서 간다ㅋㅋ”

 “아 근데 진짜 호랑이에 비해선 포스가 부족한듯…”

 “ㄴ 그렇긴 함. 「감동」이 모자라.. ”

 “ㄴㄴ 애초에 ‘진짜 호랑이’는 없자너ㅋㅋㅋ”

 “ㄴㄴㄴ 아ㅋㅋㅋㅋㅋ”

 “동물원장님 및 모든 관계자분들 존경합니다”

 “아니 티켓 예매 벌써 매진이네”



 윗마을 아랫마을 할 것 없이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대망의 전시 첫 날,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대를 품고서 동물원으로 향했습니다. 동물원으로 향하는 도로는 특별전시를 보기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자동차, 오토바이, 전세버스(호피무늬 랩핑) 따위로 가득찼습니다. 


 어렵사리 정체된 도로를 뚫고 동물원에 도착한 사람들을 맞이한 것은 끝없이 펼쳐진 줄… 전부 이번 특별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저 멀리 제일 앞쪽에는 텐트도 보이는군요. 이걸 보겠다고 밤이라도 샌 걸까요? 

 

 그렇게 호랑이(고양이)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은 입장시간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개장시간입니다! 관람객 여러분들은 순서대로 차례차례 입장해주세요~”

 대망의 특별전시 첫날의 개장시간이 왔습니다. 


 “아아 마침내…!”

 “텐션 아가루나wwww”

 “자 드가자ㅋㅋㅋㅋ”

 “벵고르쨩 내가 갈게!!”


 신이 난 사람들은 차례차례 입장하여, 전시가 진행되는 B구역으로 향했습니다. 


 전시구역에 도착하고 보니 유리창 너머의 왼쪽에는 시베리아호랑이의 분장을 한 고양이들이, 오른쪽에는 벵골호랑이의 모습을 한 고양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가서 유리창에 달라붙은 채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오오오오오오 이것이 시베리아!!! 이것이 시베리아호랑이!!!”

 “비록 진짜 호랑이는 아니지만 이녀석들도 꽤 볼만한걸.”

 “아니 미친… 저 줄무늬 농담 표현 좀 보셈… 지린다…”

 “ㅇㅈ 줄무늬 누가 그린거냐.. 상 줘야 된다..”

 “사육사님!!!! 한 마리만 주세요!!!!”


 시베리아호랑이 애호가들이 이러는 동안 한쪽에서는,


 “벵골! 벵골! 벵골! 벵골! 벵골! 뱅골! 벵골!”

 “앗… 평소에 봐왔던 벵골호랑이와는 다른 이 작고 귀여움… 나쁘지 않아…”

 “볼따구 빵빵한 게 존나 귀엽노”

 “이곳이… 천국…?”

 “아아… 이 귀요미들은 전국적으로 보급할 필요가…”


 벵골호랑이 애호가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호랑이(사실 고양이)들을 보며 한참을 하악대던 중. 


 어딘가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싸늘한 한마디. 



 “아니 근데 저쪽은 별로 안 귀엽지 않냐? 그닥 멋있지도 않고… 저딴 걸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



 “…….”



 “뭐?”


 “뭐라고?”



 왼쪽의 윗마을 사람들, 그리고 오른쪽의 아랫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노려보았습니다. 



 “지금 벵골호랑이를 무시한 거냐?”


 “아앙? 너희야말로 시베리아호랑이를 무시한 거 아니냐?”


 순식간에 험악한 분위기로 바뀌어버린 전시장. 


 그러나 정작 말한 이가 어느쪽의 누구인지는 모르는 상황입니다. 


 “아니 이사람들아. 기분은 나쁘겠지만 일단 누가 얘기했는지 확인해봐야 되는 것 아니냐?”


 “그래. 어쨌든 같은 호랑이 애호가인데 괜한 걸로 싸우지말고 잘 해결을 해보…”


 “시끄러워! 이건 아주 중대한 상황이야… 감히 우리의 벵골호랑이님을 모독하는 발언이 튀어나왔다고!”


 “그래! 시베리아호랑이님에 대한 모독은 용서할 수 없다!”


 분위기는 점점 더 험악해지고…

 

 “뭔 소리냐? 너희들이 먼저 벵골호랑이님을 욕했잖아!”


 “뭔 소리냐? 아까 그 목소리는 분명 그쪽에서 들렸거든?”


 “참나… 말이 안 통하네 진짜… 이래서 윗마을 놈들은 안 된다니까… 너네들이 좋아하는 시베리아호랑이처럼 덩치만 크고 머리에 든 게 없냐?”


 “아니 이 양반아. 뭐? 머리에 든 게 없어? 보자 보자 하니깐… 너 일로 와.”


 “야 쟤네 말려야 되는 거 아님?”


 “말리긴 뭘 말려 우리도 싸워야지 ㅅㅂ!!”


 “그래!! 당하고만 있을 거냐? 벵골호랑이님을 모독한 새끼들을 족치자!!!”


 “시베리아호랑이님을 모욕한 새끼들을 족치자!!!”


 그렇게 호랑이 애호가들의 꿈과 희망을 품고서 시작된 「어흥냐옹」 특별전은 첫날부터 시베리아 애호파와 벵골 애호파의 몸싸움으로 번지게 되었고, 동물원 직원들과 출동한 경찰들에 의해 몸싸움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씩씩거리며,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며, 또 누군가는 한숨을 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각자의 집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벵골새끼들이 이 사건의 시발점인.EU

 “저새끼들 진짜 내로남불 지리네”

 “솔직히 몸싸움 났을 때 벵골새끼들 다 족쳐야 됐다…”

 “벵고르단또르 매점매석 성공ㅋㅋㅋㅋ”


 “시베리아새끼들<<<지들이 먼저 욕하곤 인정안함ㅋㅋㅋ”

 “윗마을 애들이 선빵만 안 쳤어도 별 일 없었을텐데”

 “윗마을 게시판으로 테러하러 갈 애들 없냐?”

 “시베리아호랑이 피규어 선정성 민원 넣고 왔다ㅋㅋ”


 넷상 싸움으로 번지고 만 것입니다. 개중에는 상대측의 굿즈를 매점매석하거나 선정성을 명목으로 신고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싸움은 점점 더 과열되어, 서로의 게시판에 떼거지로 몰려가 상대방 또는 상대방이 애호하는 호랑이에게 육두문자를 늘어놓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보다 못한 동물원 원장 ‘권생’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연설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곳 섬에서 나름 현자로 추앙받는 그였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싸움을 잠시 멈추고 연설을 듣기로 했습니다.

 

 동물원 노천극장에 양쪽으로 나뉘어 모여 앉은 사람들. 무대 위 발언대 앞에 선 원장님이 입을 뗐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동물원 원장 권생입니다. 일단 이렇게 다들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동물원의 특별전시 도중 관객여러분들 사이에서 발생한 마찰을 계기로 작금의 상황에 이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는 것 같아 저또한 한 명의 호랑이 애호가로서 참담한 심정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소모적인 감정 싸움을 멈추고, 사건 당시 처음으로 상대방에게 비난을 한 이가 누구인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싫어하는 것도 자유라고 보지만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의 면전에 대고 비난을 하는 것은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처벌할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사과는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양 쪽의 사람들은 ‘흠, 듣고 보니 그런가’, ‘원장님 연설 정말 잘 하시네’ 등의 반응을 하며 듣고 있습니다.


 원장님은 연설을 이어갔습니다.


 “비록 애호하는 대상은 다르지만 벵골호랑이를 애호하는 마음이나 시베리아호랑이를 애호하는 마음이나 그 마음의 본질은 같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싸움을 멈추고 사건에 대한 조사에 협조해주시…”



 “아니 우리가 저딴 놈들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원장님의 말을 끊고 양 쪽 사람들이 모두 소리쳤습니다. 


 “옳소!!!”


 결국 문제해결의 장은 벵골파와 시베리아파의 각축장으로 변모되었고, 두 애호파 사이의 갈등 문제는 심화되었습니다. 



 며칠 뒤 이 사태는 사또님의 귀까지 들어가게 되어 이번에는 관청 마당에 양쪽 사람들을 앉혀놓고 사또님이 중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섬 중앙의 작은 인공섬. 그 인공섬에서도 가장 중앙에 위치한 관청에 윗마을 사람들과 아랫마을 사람들, 사또님과 관청의 관리들이 모여 있습니다. 


 “사또님! 저 간악무도한 시베리아호랑이 애호가들을 벌하여 주십쇼!!”


 “사또님! 저 벵골호랑이 애호가들이 감히 시베리아호랑이님을 모독했습니다! 부디 엄벌을!!”


 상충하는 양쪽의 주장을 들은 사또님은 고심에 빠졌습니다.



 ‘오늘 저녁밥은 뭘까…….’



 사또님은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습니다. 


 “관련 법령에 의하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창작물에 대해서는 사또의 주관에 따라 제재를 가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간부로 벵골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와 관련된 모든 창작물에 대한 창작 및 유통을 금지한다.”

 

 그렇게 말한 사또님은 의사봉을 세 번 내리쳤습니다. 


 땅 땅 땅- 


 “거 이제 해결된 것 같구만. 다들 돌아들가십시다!”


  관청의 아전들은 사람들을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순간 벙쪘지만, 무어라고 잠시 생각하더니 돌아갔습니다.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낸 뒤 사또님이 한 관노에게 말했습니다. 


 “쟤들은 뭐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우냐. 존재하지도 않는 호랑이 같은 걸로 왜 지랄이람.. 뭐 이제 조용해지겠지만. 아 맞다 개똥아, 오늘 저녁 메뉴는 뭐냐?”


 섬을 가르는 강이 유난히 넓고 깊게 느껴지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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