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주인공 이미지 참조용 AI 그림)

*




산타클로스를 언제까지 믿었는가 하는 이야기는 실없는 잡담거리도 안 될 정도로 시시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하나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마법소녀다.


분명히 마법소녀 였을 터다.



"똑바로 들어. 왜 그리 힘이 없어."



당나귀를 연상시키는 갈색의 긴 귀와 찰랑이는 긴 머릿결.


위아래로는 나와 똑같은 여성용 산타복.


잔소리꾼 시아 선배가 짜증을 부렸다.


이쯤 되면 저 사람은 사실 내가 싫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괜찮냥? 힘든 거 아니냥?"



귀여운 고양이가 공중에 반쯤 떠서 걱정해줬다.


우리 사역마는 참 심성이 곱단 말이지.



"네가 그렇게 오냐오냐 하니까 애 버릇이 나빠진 거 잖아."


"너야말로 신입한테 너무 빡빡하게 구는 거 아니냥? 그러다 미움 받아도 난 모른다냥."


"난 그딴 거 신경 안 써."


"신경을 쓰란 말이다냥! 이제부터 둘이 팀이라고 몇번 말했는데!"


"애초에 왜 이런 애가 온 건데. 난 분명히 비행 능력 베테랑 마법소녀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근데 온 건..."



선배가 날 한번 째려보고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떨어지는 눈송이 사이로, 선배의 따뜻한 한숨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저런 걸 끼고 일을 하라고?"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다냥."


"볼까?"



선배가 스태프를 놓으셨다.


마법 지팡이가 선배가 놓은 자세 그대로 두둥실 떠올랐다.


선배는 내가 들고 있던 선물꾸러미를 가리켰다.



"야 신입, 우리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읊어봐."


"그게..."


"봤지? 일 해야하는 이유도 모르는데 처음이라고 봐주고 자시고가 어딨어."


"하지만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 걸요... 우리가 왜 선물이나 나눠주고 있어야 하는 거에요?!"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착한 어린이들이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는다는 날.



"우린 마법소녀잖아요.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고!"



그래.


마법소녀에게서가 아니라, 산타할아버지에게 말이다.



"전 이런 심부름 센터 같은 일 싫어요."



한데 왜 오늘 우리의 임무는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 나눠주기가 된 거란 말인가.



"어디 가냥 틋순?"


"집 갈 거야. 차라리 집에서 잠이나 자고 말지."



뒤에서 코드네임을 연신 외치는 사역마와

한심한 눈길로 노려보는 선배가 신경 쓰였으나

이런 일이나 하자고 마법소녀를 택한 건 아니었다.



"마법소녀는, 마수라는 위험에서 사람들을 지키는 존재가 아니었냐고..."



'미안하다냥... 네 부모님을 죽였다는 그 마수는 놓쳐버리고 말았다냥.'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재미도 없는 일이 멋대로 떠오르는 게 불쾌하다.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변신해제."



허리 주위로 붉은 빛의 구슬이 나타났다.


몸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저 붉은 구슬이 빨아들이는 것이다.


옷도 평상복으로 변하고 있다.


마법소녀의 옷도, 오늘 한정으로 유니폼이 된 산타 옷도 아닌

마력이라곤 일절 없는 순수한 면 티셔츠.



"... 어?"



변신이 풀린 이후의 느낌은 늘상 상쾌했다.


사라졌던 하반신의 [남자] 와의 조우, 무겁던 상반신의 [여자] 와의 작별.


상쾌한 기분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그랬을 텐데...



"뭐야. 왜 없어."



없다.


나의 소중한 '성검' 이 없다.


복장만 평상복이고 신체가 여자 모습 그대로다.


그대로 머리색이 은발이다.

어지간한 중학생보다 작달만한 키도, 귤 한알도 고작 잡을 정도로 작은 손도 그대로다.


왜지? 뭐지?



"크르르르..."



달갑지 않은 혼란의 와중이었다.


등 뒤에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수의 울음소리였다.



*



"선배애애애!!"



시아 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집에 가겠다고 한지 30분 만에 돌아오다니.


줏대 없어 보일 수 있단 점은 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는 걸.



"흥, 돌아올 거면서 그렇게 툴툴거리...?"


"시아야, 지금 바가지 긁을 때가 아닌 것 같다냥...!"


"선배애애! 괴수, 괴수가!"



선배가 말을 하다 끊었다.


괴수는 고릴라를 닮은 외형에 우락부락한 덩치를 하고 있었다.


선배도 놀란 눈치였다.



"뭐 저렇게 커? 예상과는 차이가 너무 나는데?"


"큰 놈 한두번 보냥? 어서 마법진 전개해라냥!"



위이잉-.


과부하가 온 CPU의 쿨러 소리.


날 쫓는 마수의 머리 위로 하늘색 마법진이 서너개 생성됐다.



"쏟아져라."



내가 선배 옆까지 온 것을 보고 선배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선배의 주문에 호응하여 마법진에서 자잘한 얼음 조각들이 쏟아져나왔다.


뾰족한 조각들이 마수의 몸에 꽂혔다.


마수의 등허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얼어라."


"그륵, 그르르륵..."



이번엔 다른 마법진이 냉기를 뿜어냈다.


냉기에 직격당한 마수의 몸이 파랗게 변색되었다.


스치기만 한 나도 핏줄이 끊어지는 것만 같은 한기를 느꼈으니 저걸 맞은 마수는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것이다.



"내리꽂혀라."



가장 큰 마법진이 빛났다.


주변으론 마법진이 수용하지 못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선배의 필살기인 모양이었다.



'칙 치칙, 치이익...'


"... 어?"



다만

그렇게 빛을 내던 마법진은 채 발동도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 내리꽂혀라."


'우우웅... 칙 치칙, 피식...'


"어떻게 된 거에요 이게?"



다시금 주문을 외웠지만 이번에도 마법진은 기대를 배신할 뿐이었다.


선배는 어안아 벙벙한 표정이었다.



"상급 마법이 나오지 않아. 다른 건 잘만 작동되는데."


"네? 상급이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잘 됐어. 이럴 리가 없는데..."


"어쩌면 그거 혹시..."



사역마가 사뭇 심각한 표정이 되었지만 고민을 들을 여유는 없어보였다.



"정신 차려! 온다!"


"크르륵... 캬아아악!"



한줄기 포효와 함께 괴사한 괴수의 신체가 생기를 되찾았다.



"막아라."


'푸쉬이...'


"이것도 안 된단 말이야?"



되는 게 없네!


선배가 성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라 나와, 나오라고!"



내 상황은 더 심각했다.


중급 마법조차 제대로 부릴 수 없는 상태.


위력을 낼 만한 기술이 하나도 발동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키이익!"



괴수는 한순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괴수는 선배를 한손으로 쥐고는 그대로 바닥에 내다꽂았다.



"시아, 시아야 괜찮냥!"



고릴라가 그렇게 근력이 좋다던가.


바닥에 박힌 선배 주변으로 작은 구덩이가 생겼다.


인식방해결계가 부숴져도 이상하지 않은 위력이었다.



"우끼이이."



마수는 선배를 잡고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선배는 당하는 와중에도 마법진을 전개해서 저항을 하려 했지만 마수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몇번을 더 맞았을까.


선배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실신해버렸다.


선배가 기절했으니 다음은 내가 될 터였다.



"타올라라, 타올라! 왜 안 되는 거야!"


"마법 그만 써랴냥! 발동도 안 되지 않냥!"


"하지만...!"


"도망치는 게 우선이다냥! 해 뜰 때까지만 시간을 벌어라냥!"



선배가 졌는데 내가 이길 리가 있나.


나도 선배처럼 강한 마법을 쓸 수 없었던 건 똑같은데.



"... 바람의 정령이여. 내 앞길을 이끌어다오."



꽁지 빠져라 도망다니던 나였지만

결국은 노력이 무색하게 나도 놈의 손바닥 안에 들어왔다.


마수의 크고 우락부락한 손이 내 머리를 짓눌렀다.



"아, 아아, 아으으윽..."



두개골에 가해지는 압력이 굉장했다.


그대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뿌드득 하는 소리가 머릿 속에서 나기 시작했다.


그때 저만치에서 밝은 빛이 보였다.


일광이었다.



"키이익..."



마수는 햇빛을 싫어한다.


타이밍은 어찌어찌 맞은 모양이었다.


벌써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수는 얼굴을 한가득 찌푸리더니 나를 내동댕이쳤다.


내 머리도 성의 없게 땅에 내던져졌다.


마수는 그러고는, 재빨리 달아났다.


응달의 방향이었다.


물론, 쫓아갈 기운은 없었다.



*



"'꿈과 희망을 전하는' 이잖냥."



고양이가 열심히 회복 마법을 쏟아부으며 말했다.



"계약 규정은 엄격하다냥."


"무슨 말이야?"


"규정이 지켜지지 않아서 힘을 못 썼던 것 같다냥."


"'희망을 전하지 않아서' 라고?"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그게. 말이 애매하잖아. 유치하고."


"나도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처음 봤다냥."


"구체적으로는 시기를 감안해봐야겠지."



잠자코 듣고 있던 선배가 일어났다.


사역마의 회복 마법이 잘 들은 모양이었다.



"어제가 크리스마스 이브. 오늘은 크리스마스.

거기에 꿈과 희망. 뭐 떠오르는 거 없어?"


"... 산타클로스?"


"굳이 요정계에서 애들 선물에 신경을 썼던 건 그런 의미겠지."



마법소녀들한테 일괄적으로 내려왔다는 임무가 그런 의미였구나.


그래서 복장도 산타옷으로 바뀐 건가.



"매년 하면서도 이유는 딱히 생각 안했는데 골치 아프게 됐네."


"그럼 상급 마법이 안 나간 이유가 선물 안 나눠줘서... 란 거에요?"


"쪼잔하지만 그렇겠지. 나도 혼자선 돌릴 수 있는 한계가 있어서 어제는 손 놓고 있던 참이었으니."



설마 변신이 해제가 안 되던 이유도 같은 맥락인가?



"그런 게... 무슨 마법이 성과급도 아니고..."


"그 말대로라면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냥."



사역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이브는 지났다는 거다냥. 지금부터 선물 나눠줘도 한참 늦었다는 거다냥."


"늦으면 어떻게 되는데?"


"지금 상태가 고정되겠지냥."


"아니면 더 악화되거나."


"안 되요 그럼!"



지금 상태로 고정?


선배는 상급 마법이 안 나가고

나는 계속 여자 모습으로 살고?


아찔한 마음에 순간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성탄전야는 1년에 1번 뿐이다냥."


"아, 안 되요, 안 돼! 포기하지 마요! 그... 그래, 지금부터라도 돌리면 어때요!"



선배와 사역마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요정 왕국에선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라고 배웠어?"


"기존의 마법소녀가 모종의 일로 약화되었으면 새로운 마법소녀를 뽑으라고 했다냥.

본래 상태까지 회복하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그 편이 빠르다냥."


"계약은 해지하고?"


"놔둬도 점차적으로 힘이 빠져나갈 거라고 들었다냥."


"뭐야, 그럼 너하고 만나는 것도 여기까지네? 그간 고마웠다."


"나야말로냥. 밤 중에 우유 데펴주던 거 고마웠다냥."


"뭘 훈훈한 분위기를 잡고 그래요! 전 이대로 헤어지면 안 된다고요!"


"아 지지배... 왜 난리야. 시끄럽게 진짜."



왜라뇨,

이대로라면 진짜로 '지지배' 가 되니까 그렇죠!



"선배 손 좀 빌려주세요. 아직 새벽이잖아요. 착한 아이들은 잘 시간이에요."



선배의 고운 손 위에 내 말랑말랑하고 아기자기한 손이 얹어졌다.



"지금부터 선물을 나눠준대도 늦지 않을 거에요, 네?"


"싫은데. 난 슬슬 현생이 바빠졌거든. 현생에 집중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



이 양반... 마법소녀로서 요정계에서 내려온 일은 해내는 게 철칙이라고 할 땐 언제고!!



"선배 제발요. 저 한번만 도와주세요!"


"네가 원래부터 이렇게 일에 진심이었나?"


"그, 그럼요! 마수 잡는 건 언제나 즐거운 걸요!"



남자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단 얘긴 쏙 빼놓고 설득을 했다.


마수 잡기가 즐거운 건 거짓말도 아니었으니 괜찮다.



"그리 소원이라는데 어쩔 수 없지 뭐..."



내 열변을 이기지 못한 선배는 마지못해 수락했고



"한번 입은 패널티는 지우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들었는데냥..."



사역마도 떨떠름해하며 도왔다.


들를 집은 많은데 손은 부족한 상황.


말 그대로 고양이 손까지 빌려가며 작업했지만 시간이 빠듯한 건 매한가지였고

우리는 흩어져서 일을 하기로 했다.



"11세 남아, 공룡 인형 원함... 얘 맞겠지?"



한 집.



"7세 여아, 비즈 장난감. 비즈 장난감은 선물꾸러미 아래에 깔려있던가?"



한집.



"18세 여아, 신사임당 세장... 18세? '아이들' 의 범위가 너무 넓은 거 아니야?"


또 한집.




목록에 있던 가구는 거의 다 순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한 집만 남은 상황이었다.



"보자. 깨지 않게 조심해서..."



창문을 조심스레 분해했다.


나갈 때 마법으로 복귀시키면 감쪽 같겠지.


침상에는 사춘기가 막 온 듯한 나이대의 남자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울며 잠든 걸까. 뺨에는 눈물자국이 어렴풋이 보였다.



"15세 남아, 제일 원하는 건 성적 향상... 이건 안 될 테고. 두번째로 원하는 건..."


"으음."



아차, 너무 크게 말한 걸까.


소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은신 도구가 분명 주머니에...



"어?"



없다.


오다가 떨어뜨렸나?


어디서 떨어뜨린 거지?


기억이 안 나는데?


당황하는 사이에 소년이 내 옷소매를 붙잡았다.



"누구... 누구세요."



특이사항으로 열에 취해있다고 써져 있어서인지,

정신머리가 말짱해보이진 않았다.


놀라서 아무 반응도 못했더니 소년이 말을 이었다.



"옷, 모자... 산타...?"



아마 이것도 꿈으로 간주한 것이리라.


정상인의 입에선 나오기 어려운 말이니.


상황 판단을 마친 나는 편리한 착각에 편승하기로 했다.



"맞, 맞아 산타야. 오늘 지각해서 이제 온 거지."


"할아버지가 아닌데."


"할아... 할아버지는 감기에 걸리셨어. 그래서 손녀인 내가 온 거야."


"으으음..."


"진짜라니까! 그래 소원, 소원 말해봐! 바로 이뤄줄게!"


"소원... 따뜻하게..."


"따뜻하게? 손난로? 아님 이불을 바꿔주면 될까?"


"따뜻하게 항상... 대해줄.... 여친..."


"여, 뭐?"


"여친... 병간호도 해주고 아플 땐 죽도 끓여주고 할..."


"여... 다른 소원! 다른 소원은 없어?"


"말해도... 못 이뤄주는 거니까..."



그 말만 남기고 소년은 기절하듯 잠에 다시 빠져들었다.


내 앞에는,

이젠 텅 비어 쓸모도 없는 선물꾸러미와

남자로 되돌려주지도 못하는 스태프 하나만 남았다.



"여친? 여친이라고?"



머리가 아팠다.



"나, 난... 남자잖아. 여친...?"







그 날, 의외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끓이는 죽은 생각보다 맛이 별로였던 것이다.


병간호 용으로 썼더니, 환자가 먹다 뱉어낼 정도였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그건...


*

서반 연습 겸으로 썼던 거.
옆동네에 쓴 건데 일단은 창챈에도 백업.
원본은 아래에 달긴 했는데 굳이 다른 점은 없어서...
https://arca.live/b/tsfiction/61556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