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떨린다. 그녀를 만나러 갈 때마다 나는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다. 얼마전, 나는 동네 미술관의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녀는 표정은 적었지만 그 모습, 난 그 모습에 반하고 말았다. 오늘도 그녀를 보기 위해 미술관에 와서 그녀 앞에 섰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난 용기를 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


그녀는 항상 말이 없었다.


"언제나 아름다우십니다."


"..."


"저, 제가 잘 아는 카페가 있는데 다음에 같이 가실래요?"


"..."


슬프다, 그녀는 내 말에 미소만 옅게 지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음에 봐요."


나는 쓸쓸하게 미술관 밖을 나왔다. 미술관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수근거리고 있다. 필시 나를 비웃는 거겠지. 집에 터덜터덜 돌아온 나는 슬픔에 약을 한가득 삼키고 벽에 걸린 그녀의 사진과 책상에 놓인 그녀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나는 그녀가 사는 곳도 알지 못했다. 약기운이 잠을 불러오자 나는 침대에 누워 아름다운 그녀를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나는 다시 한달음에 미술관에 찾아왔다.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


"혹시... 아이유 좋아하세요? 아이유 노래 들으시길래."


"..."


"솔직히... 아이유 닮은 것 같아요."


나는 빨개진 얼굴을 숨기며 급히 미술관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만 보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내가 한 말에 반응했다. 내가 한 말을 좋아했다. 분명히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 달려와선 매일 먹는 약을 한 줌 털어넣고 책상에 앉아 편지를 썼다. 내일 그녀에게 전해줄 것이다.

아니다, 도저히 그녀에게 편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몇 번이고 편지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창작자의 고통이란 이런 것일까, 마음이 찢어질 것 같지만 그녀를 생각하면 찢어진 마음도 다시 돌아왔다. 빨리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날이 밝았다. 편지는 끝내 쓰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러 다시 미술관에 왔다. '무인 미술관', 특이한 이름의 미술관에 있는 그녀는 인기도 많았다. 너무 늦게 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도저히 말을 걸기가 힘들어 몇 번이고 아주 작게 '다음에 또 봐요.'라고만 말한 뒤 돌아왔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 가면 대체로 혼자만 있었기에 그녀를 오랫동안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를 본 나는 황홀함에 잠겼다. 아침 햇살에 비친 그녀는 마치 여신과도 같았다. 심장이 터질듯이 뛰었지만 나는 한달음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햇빛이 참 따스하네요."


"..."


"혹시 눈부시진 않아요? 거기에 서 계시면 말이에요."


"..."


"저. 솔직히 좋아해요. 아, 아니, 그... 다음에 봐요!"


나는 다급히 미술관 밖으로 나와 구석에서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하지만, 그것 하나 만큼은 알았다. 그녀의 얼굴에 달아오른 홍조, 그녀도 좋아하고 있었다. 돌아가서 다시 그녀와 만날까? 아니다, 그녀도 또 날 보면 부담스러울 것이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를 택했다.


그날 밤, 나는 그녀가 그려진 포스터를 보다가 한켠에 적힌 글귀를 읽고 경악했다. 그녀는 내일 이곳을 떠난다. 나는 슬픔에 빠졌고, 이윽고 슬픔은 분노가 되었다. 분명 내 고백에 좋다고 반응했으면서, 날 가지고 논 거잖아.

나는 부엌의 식칼을 들고 미술관으로 다가갔다. 운 좋게 미술관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녀와 마주했다. 보름달이 뜬 오늘, 그녀는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사실이에요?"


"..."


"대답해요. 내일 떠난다면서요!"


"..."


"왜 내 마음을 가지고 놀았어요! 난 당신을 사랑했는데!!"


그녀는 여전히 미소만 지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그 미소는 비웃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냥... 그냥... 씨발!!"


난 칼을 휘둘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갈갈이 찢어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녀는 산산이 찢어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으아아아아!!"


그러곤 절규했다. 그녀의 찢어진 몸을 다시 맞추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이윽고, 나는 칼을 들었다.


"미안해요. 나도 따라갈게요."


칼은 그대로 내 목을 찔렀다.

미술관에서 20대 남성 사망


오늘 새벽 2시 30분 경, XX시 XX마을 미술관에서 20대 남성 김 씨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사망한 김 씨의 시신 주변에는 어재까지 전시되어 있기로 한 '하루의 소녀'가 칼에 찢겨 있었다. 경찰은 김 씨의 자택에서 편지를 발견했으나 편지에 쓰인 글이 지리멸렬해 의도는 파악되지 않았으며 정신병 경력으로 미루어보아 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측하고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하루의 소녀'는 유명 미술가 xxx의 그림으로 소녀의 전신을 그려 햇빛과 달빛이 각도에 따라 비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이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