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Ludus World" 세계관을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세계관 설정집 보기}

└본 작품은 시간 순서대로 정렬했을 때 8번째 이야기입니다 (8/48)

└장르: 하드코어 누키게 비주얼 노벨 게임



4막

아타무스가 갇혀있는 곳은 보기와 달리 저택의 최하층부가 아니다. 물론 비교적 낮은 곳에 있긴 한데, 더 낮은 곳이 있다. 그 곳은 아타무스가 있는 방과는 처음부터 다른 경로로 가야 했기에, 나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 뒤 다른 계단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최하층 지하실의 대표적인 특징이라면, 머리카락이 꽤 많다는 점이다. 단순히 머리카락이 떨어진 게 아니라 바닥에 박혀 있다고. 그것도 양 끝 부분이 동시에 박혀 있어, 도대체 이 밑에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처음 본 사람이라면 당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 왔어."


"알고 있잖아."


"……."


오늘도 이 방 안에 갇혀있는 간섭과 참견의 정령 캘은 깜찍하게 반항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참견을 좋아하는 탓에 많은 걸 알고 있는 우리 귀여운 정령. 정말 오랜만에 찾아왔지만, 옛날과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 드래곤 때문인 거지?"


내가 한 번만 노려보면 바로 움츠러들면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바로 꼬리를 내리는 것도, 예전과 판박이다.


"잘 아네. 모르면 알려주고 했는데."


그렇게 한 번 말해주니까, 이번에는 그녀의 날개가 파박 하고 떨렸다. 물론 비행 기능 따위 훨씬 전부터 망가뜨려 놓았기 때문에 폭력행사는 커녕 날지도 못한다.


"저번부터 생각하던 건데, 아예 날개 잘라주면 안 돼? 네가 내 날개 쳐다보고 웃는 거 너무 소름돕고 무서워."


"평범한 미소일 뿐이잖아."


당연하다. 요즘은 흥미가 떨어졌다고 해도, 가끔 보면 재미있는 장난감을 멋모르고 해칠 정도로 나는 어린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고작 내 눈빛이 조금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팔과도 같은 날개를 잘라달라고 저 쪽에서 먼저 부탁을 하는것도 어떨까 싶지만 말이다.


"진짜, 정령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령이고 뭐고 넌 내 노예의 노예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럼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서, 뭐부터 물어볼까…그래."


아타무스의 데뷔 과정을 물어볼까, 아니면 아타무스가 어떻게 드래곤인걸 들켰는지를 물어봐야 하나. 



고민은 잠깐이었다.


"아타무스가 어떻게 데뷔했는지 궁금한데."


"………내가 너 뭐 좋다고 순순히 말해줘야 하는데?"


머리가 지끈거린다. 사실 이런 일 나도 하고 싶지 않은데, 이제 질려가지고 하기도 귀찮은데, 저런, 내 노예의 노예 따위나 되는 년이 저 지랄이나 하고 있다.


"캘아.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거 같애? 나 지금 일하고 있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캘한테 다가갔다.


"아니 씨발 적당히 반항하라며요!"


캘이 울부짖으며 소리치는게 온 방에 쩌렁쩌렁 울렸다. 순간 시끄러워서 귀를 막았다. 캘은 그렇게 한 번 소리를 거나하게 치고서, 어느새 방의 한구석으로 들어가 스스로의 몸을 감싸며 울먹이고 있었다.


"처음에, 진짜 처음에, 적당히 반항하는 게 재미있으니까 그러라고 했잖아요. 마음속으로 자존심이나 저항심 꺾여도 그거 티내면 죽여버린다고,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정도로 해주겠다고 하고.


그래서, 그래서 지금까지 억지로 반말 하고, 튕기고 그런건데. 마음 따윈 진작에, 한 달도 안가서 꺾였는데도 계속.


저도 주인님 오자마자 발바닥 핥으면서 환영해주고 싶어요. 주인님 위해서 창관에서 몸 파는 일도 할 수 있고, 화장실에서 똥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반항해야 해서, 반항하는 게 재미있다고 그래서…"


아, 생각해보니까 그런 말을 얘한테 한 적이 있긴 했다. 모든 노예들이 순둥순둥하게 말 잘듣는 친구들 뿐이면 재미가 없었지. 그래도,


"대답 먼저 하고, 불만을 말하도록 하자."


"모릅니다. 아타무스를 가르친 스승이 누구인지 같은 거나, 그녀가 어느 학교에서 다니고 있었는지는 베일에 쌓여 있습니다. 비슷한 자도 발견된 게 없습니다."


제아무리 간섭과 참견의 정령이라고 해도 극비사항까지 알 수는 없다는 이야기겠지. 하긴 그런 것까지 알아내려면 그야말로 지식의 정령이 필요할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대충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힌트를 얻었으니까.


그러면, 상황이 어떻게 됐든 귀중한 정보를 얻은 건 확실하니 정령에게 감사인사 정도는 하는 게 도리겠지.


"그래, 고마워. 이 은혜 잊지 않을게."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캘은 오히려 극심한 공포에 빠진 듯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지만, 더 이상 신경쓸 껀덕지는 없다.


일단 아타무스를 어떻게 괴롭힐지는 머릿속으로 구상이 끝났으니, 가장 기본적인 준비들부터 해야겠다. 


그나저나 내가 이제 이 노릇은 그만할 거니까 모아놓은 건 어떻게 처분하든, 갖고 있든 상관은 없다고 그랬는데, 페인 그 양반이 제대로 갖고 있을지가 조금 걱정되긴 하네.




5막

침을 꼴깍 삼켰다. 여전히 팔다리에는 마력 구속구가 있었다. 코즈베인으로 둔갑한 탓에 육체에는 근력이 깃들어있지는 않았다.


아타무스는 밖에서 두 명이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도록 맞거나, 강간당하겠지…'


확실히 예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둘 다 아는 얼굴이었다. 남자 쪽은 유명한 경제학자인 동시에 고문기술자고, 여자 쪽도 레크모드 연합의 높은 귀족의 딸이다. 아타무스 자신도 굳이 엮이려 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첩자로서 타지의 유력자는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각오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고문 기술자라면, 반드시 성한 채로는 나가지 못한다. 순결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음핵이 파열되거나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어떠한 고통이 오더라도 참아낼 작정이었다.


"안녕, 아타무스."


자신을 부른 목소리는 여자의 것이었다.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타무스는 여자 쪽을 노려보았다. 그녀가 알고 있기로 고문 기술자 피건제는 남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대신 다른 사람을 내보낸 건가.


순간, 뺨에 강한 충격이 달려오듯 왔다. 시야가 반전됐다. 고개도 힘없이 홱 하고 돌아갔고, 뺨에 얼얼한 느낌이 계속 남아있었다.


"대답 안 해?"


이번엔 턱을 잡혀 고개를 강제로 들렸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방금 자신의 뺨을 때렸던 여자의 눈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녀는 바로 아타무스에게 손찌검을 한번 더 했다.


"컥! 허억, 켁!"


이번에는 뺨이 아니라 관자놀이에 맞았다. 손바닥으로 맞은 것이긴 하지만 그런데도 정신이 일순간 날아갈 것 같은 그런 아픔이 번개처럼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숨이 안쉬어져서 헛기침까지 나왔다. 고통으로 콜록거리자 젤리는 마음에 든다는 듯이 웃으면서 아타무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타무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금방이라도 실신할 것 같았지만 기절하지 않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혹시라도 말할 생각이 있어? 듣자 하니 드래곤족의 스파이인 것 같던데. 혹시 알아? 정보를 순순히 불면 여기서 그만할지도."


"하아, 하… 내가 드래곤인 건 맞는데, 첩자는 좀 억울한 누명인걸. 당연하겠지만 드래곤인 몸으로는 악기 연주를 하기가 힘들어서 말이야. 혹시 악기 다뤄본 적도 없으신가?"


"하긴 그래야지. 순순히 불어줄 거라고는 나도 기대 안 했어. 여기서 항복하면 오히려 내 쪽에서 섭섭하지."


젤리는 뭐가 재미있는지 입꼬리를 비틀었다. 일부러 소리를 내듯 깔깔, 하고 잠깐동안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색한 채 아타무스의 목을 홱 잡았다.


"끅!"


한 손에 잡히진 않았지만 기도를 눌러 숨구멍을 압박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래도 30초, 40초까지는 어떻게 버틸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점점 상태가 심각해질 것이다.


"그냥 예의상 물어보는 거긴 한데 말야, 보지 젖었냐? 빨리 적시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덜 아파."


대답할 숨은 없었지만, 아타무스는 실감하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그녀의 음순은 벌써부터 촉촉했다.


강간이나 고문을 각오했다는 말은, 도리어 자신이 강간을 당하는 장면을 이미 상상하고 있다는 이야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구속을 당한지 만 하루가 되었으니 어떤 방식으로 강간을 당하게 될지, 그러면 어떤 정신력으로 버텨야 할지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어느 정도 마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역효과로 오히려 그녀의 속옷엔 벌써부터 윤기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자, 그럼,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으면 고문이 되지 않으니까."


젤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타무스의 팬티를 벗겼다. 그 때 젤리도 팬티 안쪽에 이미 얼룩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아타무스가 볼 때, 젤리는 별로 그럴듯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별로 안 젖었네."


젤리는 그렇게 나지막이 중얼거리고서 손을 들었다. 그 때부터 아타무스는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정상적인 애무나 출산 과정이라면 처음엔 손가락 한 개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 다음에 익숙해지면 두개, 세 개 까지 늘려가다가, 결국 때가 되면 그 구멍으로 자지도 들어오고 태아도 나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런 애무나 출산이 아니었다. 젤리는 바로 네개의 손가락을 아타무스의 음순 안에 욱여넣었다.


"자, 잠깐! 아직 안 젖었어!"


아타무스가 처음으로 느낀 건 쾌락 따위가 아니었다. 까마득한 고통이었다. 그런 고통 앞에 아타무스도 결국 고함을 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젤리가 하는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그럼 빨리 적시던가. 오, 그래 아까보단 잘 들어가네."


맞는 말이었다. 기분이 좋다 나쁘다 이전에 생물의 종족 보존의 본능이다. 질 속에 삽입한 뭔가가 들락날락 거리면, 그것의 왕복 활동을 더 원활하게 도와주기 위해 물이 나오게 마련이다.


고통은 생각보다, 각오했던 것보다 빨리 사라졌다. 어느덧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분할 것도 없었다. 섹스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역시 생물의 종족 보존 본능이다. 그걸 확실히 인식하고 나면 강간을 당한다고, 심한 짓을 당하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한들 자존심이 꺾일 일은 없는 것이다.


"고문을 하는 건데 기분이 좋아지면 안되지, 언니."


하지만 젤리의 고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손가락에서 끝나지 않고 주먹을 쥐었다.


"그래도 피지컬 적인 부분 때문에 한계는 있네. 난 여리여리한 여자 몸이라 팔뚝도 얇고 주먹을 쥔다 해도 그렇게 굵진 않아서 말이야. 그러니 이 정도는 당연히 버텨줘야겠지?


드래곤이잖아. 안 그래?"


그대로 들어갔다. 이미 젖어있어서 부드럽게 들어간 게 아니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무식하게 힘으로 들이밀어서 들어간 것 뿐이다.


"으으으윽!"


아타무스는 고개를 젖히고 이를 꽉 깨물었다.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팠지만 다행이었다. 진짜로 다행이었다. 미리 이런 상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 충격으로 꺾였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상상이라도 해서, 미리 이 악물고 각오라도 해서 정신이 나가지 않았다.


"역시 들어가기 힘드네. 하긴 들어가기 쉬우면 고문이 아니라 대딸밖에 안되잖아. 그렇지?"


대답할 정신 따위는 없었다. 비명이 새어나오지 않게 이를 악물어 참는 것이 다였다. 적어도 그녀의 보지가 주먹도 견딜 정도로 적셔질 때까지는 말이다.


"어, 슬슬 왔다갔다도 편해지네. 그럼 그만 해야겠다."


하지만 젤리의 고문 실력은 아타무스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한 수 위였는지, 주먹이 아프지 않을 정도가 될 만큼 충분히 적셔지자 즉시 주먹을 뺐다.


그래도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음순, 음핵, 질 등 성기의 모든 부분이 얼얼했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쾌락 때문이 아닌 고통 때문에 아타무스는 거칠게 숨을 헐떡거렸다.


"설마 여기서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직 고문 시작한 지 두 시간도 안됐어. 48시간 중에 고작 두 시간."


그렇게 말하고, 이번에는 발로 음순을 가격했다. 젤리는 비록 싸우는 게 직업은 아니지만, 실제로 뭐 레벨을 올린다면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다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호신용으로, 노예가 주제도 모르고 반기를 들 때 사용할 요량으로 무술을 겉핥기로나마 배운 적이 있었다.


빠르게 날린 발차기는, 날아가는 중간에 안쪽 허벅지에 스치는 일도 없이 가랑이 사이로 제대로 들어갔다. 젤리가 작정하고 날린 충격이 그대로 보지 안으로 전부 들어갔다.


"아, 악…"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정신이 나갈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머릿속에서 뭔가가 풀렸다. 정신을 놓친 건 아니라고 우기고 싶었지만, 아타무스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졌다는 증거는 바로 나왔다.


"뭐야, 내 발에 그렇게 오줌을 묻히고 싶었어? 남 앞에서 이렇게 흉하게 지리는 거야?"


젤리가 매도하던 말던 아타무스의 요도에서는 노란색 물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세차게 흘러나오는 것도 아니고 힘없이 흐르는 모양새라, 찌린내 나는 암모니아가 허벅지랑 무릎, 종아리를 타고 내려갔다.


기나긴 배출 활동이 다 끝나고, 아타무스는 몸을 몇 번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젤리는 마음속으로 유쾌한 듯 진심으로 웃었다.


"혹시, 기대하지는 않지만 항복 선언 할 생각 있어? 지금이라도 말하면 여기서 끝. 어떻게 생각해?"


그 말에 아타무스도 정신을 차렸다. 고문을 당하기 전에 비해서 훨씬 수척해졌지만, 그녀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벼…"


"뭐?"


"병신아. 나도 니 보지, 발로 깔 테니까 너한테도 오줌 나오는지 안나오는지 보자."


말을 끝내자마자 이번에는 배를 맞았다. 더 이상은 말할 힘도 나오지 않았다. 장기가 뭉개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주 그냥 더 맞고 싶다고 울부짖네 울부짖어. 아, 혹시 내 오줌을 마시고 싶었던 거야? 혹시 그런 취향이었어? 안 그런 줄 알았는데, 언니 소질 있었던거야?"


사실 아타무스가 눈을 까뒤집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계속 보면서, 젤리의 가랑이 사이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은 맞다. 타고난 기질이 있었던 젤리는, 상대방이 그런 표정을 짓고 고통에 움츠리는 것만 보도 흥분하고 있었다. 정말 조금만 더 하면 오줌도 나올 수 있을 정도였다.


상상만 해도, 젤리의 음순 역시 번들번들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6막

"역시 포탈 마법은 좋네."


본래 맨시츄크 수도에서 루나리그까지 가려면 중간에 산맥이나 언덕, 숲을 넘어야 하고, 빠른 말을 타고도 2주가 넘게 걸릴 만큼 절망적인 거리를 자랑한다. 하지만 포탈 마법을 쓴다면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사람이 지나가는 정도밖에 못하지만, 이 마법으로 각국의 무역품을 옮길 수만 있다면 세계 경제는 더욱 바삐 돌아갈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주축은 에벤 제국이 되겠지. 단순한 마력으로 따지면 에벤 제국의 황가가 제일 강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벤 제국과의 제휴 관계를 쉽게 체결할 순 없을 거다. 아무래도 그 에벤 제국과 제대로 대화가 될 나라는 전 세계에서 카람 왕국 정도일 거다.


모든 세계가 서로 평화롭게 지낸다면 참 좋을텐데.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피건제 님이 루나리그에 입성하셨습니다."


내가 엄청 탈권위주의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호명은 조금 부담스럽다. 이 목소리가 나한테만 들리는 거면 상관 없겠는데, 다른 사람에게까지 내가 왔다고 광고하는 꼴이니 골치아프다.


"저기, 혹시 피건제 님이시죠? 저는 지금 옐레닌 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니고 있는 젤로트라고 합니다. 혹시 잠깐 상담해줄 수 있으신가요?"


이런 식으로 들러붙는 사람들이 간혹가다 생긴다는 거다. 나는 자신을 젤로트라고 소개한 남자를 봤다. 내가 그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내가 고문 기술자로 밥 벌어 먹고 살았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없으니 말이다.


"아, 사례는 분명히 하겠습니다! 세계 제일의 경제학자님과 공짜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죠."


"미안하지만 내가 좀 바빠서."


더 이상 떠드는 그 인간을 냅두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사실 굳이 바쁜 건 아니었지만 루나리그에 놀러왔다는 생각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상한 데다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루나봇. 생물학자 페인에게 피건제 왔다고 전해줘."


"네. 피건제님."


카람 왕국의 루나리그는 이런 점이 편리하다. 도시의 대기에 음성인식 인공지능 상담원이 있어서 길거리에서 교수와 컨택을 쉽게 할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카람 왕국에서 학자라고 인정을 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이긴 하지만 말이다.


잠깐, 그렇다면 페인은 이 기능을 쓰지 못할 텐데. 아니다. 아무리 학자 자격이 없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해도 실제로 걘 박사 학위는 가지고 있으니까. 응.


"피건제님. 페인 님께서 곧 양동이 들고 오신다고 합니다."


루나봇이 이상한 말을 했다.


"양동이?"


"예. 양동이, 라고 확실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화상 화면 연결을 원하시면…"


이런 화상 미친 놈이 다 있나, 라고 생각하자마자 멀리서 페인은 나타났다.


"여어! 건제 잘 지내냐!"


여전히 가늠이 가지 않는 패션이었다. 일단 머리부터가 이상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저거더러 헤어스타일이라고 하면 스타일이라는 개념한테 실례다. 장발이긴 한데, 머리를 기르는 게 아니라 안 깎는 거다. 저 머리 상태를 '기른다' 라고 표현하려면, 공동주택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에서 파리를 양식하고 있다는 말이랑 동급인 억지겠지.


게다가 무릎까지 오는 초록색 장화에 흰 색 가운. 진짜, 학자라면 흰색 가운을 입어야 한다고 하는 그 신념은 몰라도 녹색 장화는 제발좀 버렸으면 좋겠다.


"뭐, 다 알고 있어. 이 양동이에 있는 거 보고 싶어서 온 거지? 맞지?"


저렇게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솔직히 뭐든 보고 싶지 않은 것들 뿐이라 어떻게 반응해야할지조차도 애매하다. 그렇다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내가 좋아한다고 착각이나 하고 있으니. 그러면 내가 도대체 뭘 해야 할까.




"하, 대답 안 하고 있는 거 보니까 역시 내 말이 맞는 거지. 좋아, 첫 번째는 거미인데, 털이 달린 거미야. 보기만 해도 징그럽지? 진짜 이 표본은 구하자마자 발기했어."


"…"


"아, 이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러면 이건 어때? 지네인데, 앞에도 뒤에도 꼬리가 아닌 머리가 달려있는 지네야. 완전 흉측하지? 아, 너무 매력적이지 않아? 내 좆을 박아넣을 생식기가 없단 게 유일한 결점이지. 마치 그림의 떡을 보는 느낌이랄까?"


왜 내 친구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이딴 성벽을 갖고 있는 걸까. 게다가 이 새끼 여자다. 그것도 지가 수술해서 남성기도 갖게 된 여자.


"아! 이건 좀 심심하다고? 그러면 이건 어때? 바퀴벌레인데, 럴수 럴수 이럴수가! 히드라처럼 머리가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물론 세 머리를 자른다고 해서 다시 솟아나지는 않는데, 아무렴 어때. 귀엽지? 섹시하지? 사실 말야, 나 얘로 오늘 한 발 빼고 왔어."


"…"


"아하! 이걸로도 좀 부족하다는 거구나! 그러면 뭐가 있을까."


페인은 양동이를 뒤적거리다가 이거다! 라고 말하고 자랑스럽게 뭔가를 집었다. 이제는 뭐가 나올지 차라리 기대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로바로~모기개미! 개미처럼 땅속을 기어다니고 군집 생활을 하는데 모기처럼 사람 피를 빨아먹지. 그것도 아주 많이 빨아먹어. 나도 천국 가는 줄 알았다니까.


아, 맞다. 너는 사디스트라서 별로 안 좋아하겠구나. 하지만 혹시 몰라? 노예를 조교할 때 이 친구를 이용하면 또 얼마나 재미, 꺅! 아, 아 미안. 장난 안 칠게. 원하는 거 뭔지 물어볼게. 그만 그만! 잘못했어 살려줘. 인간처럼 살고 싶어. 아, 아니 난 코즈베인이니까, 코즈베인처럼 살고 싶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머리채를 휙 잡았다. 그나저나 말투 자체는 여전히 나를 놀리는 그런 말투였지만 그렇게 세개 잡은 것도 아닌데 사시나무처럼 온 몸을 떨고 있다.


옛날에 많이 까불대길래 살짝 혼내준 것 뿐인데 그게 아직까지도 트라우마 같은 걸로 남아있나 보다. 그런데도 친구로 남아있는 점은 아무래도 고맙지만.


"꺅은 뭐냐 꺅은. 게다가 설마 내가 원하는 물건도 양동이 안에 있는 건 아니겠지."


"아, 아하하…진짜 죄송합니다. 죽을 죄를… 에헤…"


아무래도 양동이 안에 있나보다. 근데 뭐,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닌가. 페인의 머리채 잡은 손을 풀고 양동이 안을 뒤적거려서 캡슐을 꺼냈다.


"아, 이거 빌려갈 때마다 말하는 거 같기는 한데, 고맙다."


"그래."


"어."


그렇게 대충 인사를 하고 끝날 것 같은 타이밍에, 페인이 뭔가 걱정스러운 듯이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저기?"


"왜."


"이런 일 그만두기로 한 거 아니었어? 이젠 완전 질려서 돈 받고도 안 한다며."


순간 멈칫했다. 친구라면 그런 일까진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말했던 게 화근이 된 걸까. 그렇다면, 친구라고 하면 여기까지 말해줘야 하는 건가. 내가 왜 의뢰를 다시 잡게 되었는지.


아무렴 뭐 어때. 이미 비즈니스 관계인 젤리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다.


"첩자가 있어서. 정보 빼내래."


"어머, 혹시 그거 카람의 첩자? 그렇다면 이 사태를 간과할 순 없는데. 너한테 걸리는 건 진짜로 불쌍하거든."


"아니니까 걱정 마."


이번에야말로 대충 손을 흔들고 떠나갔다.



※삽화는 실제 존재하는 게임이 아니며, 작자가 렌파이로 만들어낸 연출임을 밝힙니다.


3만 글자로 안 될 듯. 4만 글자 완결로 갑니다...

이번 화에는 이상성욕이 살짝 나왔지만 아무래도 제가 만족하진 못하네요

마지막화에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보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