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소이다!"


"그래도 믿어야 하오."



쿵-!


때는 바야흐로 조선 건국 이래 20년.


어느 주막에서 일어난 일이렸다.


한 선비, 대화 중에 분개하여 식탁을 내려치니

주막 사람들 시선 한곳에 모였도다.


맞은 편에 앉은 이가 눈치를 주나

선비는 무시하며 말을 이을 뿐이었다.



"농담을 할 속셈이라면 짜임새 있게 하시오 김대감!"


"진실로 한낱 농담에 그쳤다면 박대감은 어찌 그리 열불을 토하는 게요?"



박대감이라 불린 선비가 흠칫 놀라니

이는 방금 애꿎은 식탁에 분풀이를 가한 선비였다.



"동요하는 모습을 보면 대감도 실은 알고 있는 것이 아니오?

이 김창문金創問이가 읊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그마안! 듣기 싫소!"



박대감 호통치며 허리 세우니

벗어뒀던 갓이 어느새 제 손이라.


언제 팔을 뻗었는가 기묘할 따름이고.



"보시오. 한치의 과장이 없구려."



주위는 신기해하지만 김대감, 아니 김창문은 오로지 통달한 미소를 띄웠다.


뭐라 말을 쏘아붙이려던 박대감에게 점소이가 다가오니 이리 말하였더라.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대감?"


"계산은 김대감이 한다했느니라."


"아니 이 놈의 양반이 치사하게...!

더치페이로 한다고 하지 않았소 박대감!"


"... 쯧, 얼마인가 점소이."



꾀죄죄한 얼굴의 점소이가

식탁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암산을 이리 하고 저리 하니

밥값이라고는 십의 자리가 0에 일의 자리가 7이었다.


점소이, 가만히 고심하다가 혀를 차고 답을 했는데.



"나시고랭 한그릇에 가츠오부시를 얹은 까르보나라 한그릇이니

도합 7... 아니, 14달러 되시겠습니다 대감."


"박대감이 먹은 것이 14달러라고? 7달러가 아닌 겐가?"


"14달러입니다 대감."


"어허! 양반 되는 사람이 어찌 까르보나라 따위를 먹겠나! 그건 김대감이 먹은 것이라네."



박대감의 지적에 점소이가 영수증을 바라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죄송합니다 대감. 제가 여기 일한 지가 얼마 안 되어서...."


"허허, 미숙하다면 실수야 할 수도 있는 법이지. 일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


"알바 5일차입니다 대감."


"어쩐지 낯선 얼굴이라 싶더라니만!"



박대감이 탄식했다.


알바 5일차라!


대감의 깐깐한 이해심으로도

그 경력이라면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렸다.



"하여 얼마인가?"


"예예 대감.

민트초코 국밥 한그릇과 마요네즈를 얹은 육개장 라면, 후식으로 참기름 아이스크림을 드셨으니

17달러 되시겠습니다."


"카드도 되겠나?"



박대감, 점소이에게 네모 반듯한 조각을 넘기니

점소이가 자판기를 이리저리 두들겼더라.


예까지 본 동네 장정 하나가 김대감에게 고요히 다가갔으니

이 자의 성은 장씨요, 이름은 개똥이라 하더라.



"이보시오 대감."


"음? 네 놈은 천민이 아닌가?

어찌 천민 따위가 양반과 말을 섞으려 하느냐? 무례한 것."


"천민이라니 무슨 말씀이시오 대감.

내 양반은 아니라도 천민이 된 기억은 없건만."


"그 복식이 천민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수드라요. 멀리 동쪽의 아틀란티스란 나라의 계급이외다."


"어허. 물 건너 온 사람이었나."


"바로 그렇소. 조선 땅 밟은지는 한 20년 되었지만서도."


"그래, 내게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이오?"


"별 대단한 건 아니고 다만 호기심이 동한 것 뿐이라오.

박대감이 성질이 급하기로 유명한 양반이라지만, 더치페이 약속을 깨먹을 정도로 철면피인 사람은 아니오.

무슨 대화를 한 것이오?"


"무슨 대화라...."



김대감,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까지 그를 주시하는 열렬한 시선이 느껴졌더라.



"여기서는 안될 성 싶으니 자리를 옮기도록 하겠소."



김창문 대감이 부채를 펼치니 그 위에 새겨진 것이 웅장한 호랑이였다.


부채를 든 대감이 살랑살랑 부채질을 하니 호랑이도 따라서 몸을 흔드는 듯 보였다.


범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신묘한 광경에 장개똥이 눈을 못 떼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주변을 보니 주막은 간데 없고 산중에 와 있더라.


실로 호랑이 기운이 솟아날 듯한 기이함이로다.



"이게 무슨 일이오? 내 한평생 괴력난신 따윈 믿은 적이 없는데!"


"요술이오. 들어는 봤소?"


"요술도 부릴 줄 알았소?"


"도사인데 요술을 부리지 못하면 되겠소?"


"허어!"



기가 찬 장개똥이 김창문의 용모를 다시금 돌아보니

과연, 전설 속 도사들의 풍모와 닮은 점이 있구나.



"도사 양반, 그러면 여긴 꿈이오? 아니면 생시요?"


"생시요. 백두산이올시다."


"백두산이라 하였소?

거 요술이 신통하긴 하구먼."


"그럼 자리도 옮겼으니 마저 설명하겠소."



김창문이 언질을 해주고서야

비로소 장개똥, 잊고 있던 용건을 떠올렸는데!



"그래. 박대감과 나눴던 이야기가 대체 무엇이오?

무엇이길래 이런 괴이한 요술까지 부려가며 인적 드문 곳을 찾은 게요?"


"그전에 일러두어야 할 것이 있소. 우리 도사들의 요술의 근원을 아시오?"


"내 어찌 알겠소. 요술이랑은 담을 쌓은 필부이거늘."


"요술의 원리란 건 쉽게 말하자면 말장난인데... 붓이라도 없으시오?"


"붓은 없고 크레파스는 있소."


"크레파스라! 선비적으로 옳은 필기구로구려."



개똥이가 품에서 크레파스를 넘기니 김창문 도사가 크레파스를 들고 돌연 창을 하였는데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그 말을 뱉는 품새란 청산유수였다.



"크레파스란!

일찍이 안료(顔料)를 왁스와 연질유를 섞어 굳힌 막대 모양의 미술도구였도다.


정식 명칭은 오일 파스텔, 혹은 왁스 오일 크레용(wax oil crayon)이로다.

'크레파스'라는 명칭은 특정 업체의 등록상표명이 유래일진대 1926년 일본의 사쿠라 상회에서...."



김창문 도사가 말을 멈추고 크레파스를 퉁기니

"사쿠라!"

라는 말 한마디에 도사의 주변에 멋들어진 벚꽃나무가 한그루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도사가 뒤돌아 개똥에게 물었다.


"어찌, 알 것 같으시오?"


"영 모르겠소."


"그러니까... 물건에는 연관된 개념이란 게 있지 않소?

도사들은 그 개념을 통해 원하는 요술을 발현시키는 게요."


"이해가 잘 가지 않소."


"사과를 보고 동그랗다, 과일이다, 달다 라는 개념을 떠올리고

거기서 다시 수박을 떠올리면

요술로 수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오."


"거 기이한 술법이구려그래."


"달리 요술이겠소?"


"하면 방금 크레파스에 대해 주절주절 나불거린 것도?"


"인살어로 벚꽃을 뜻하는 단어, [사쿠라] 라는 개념에 도달하기 까지의 중간 과정이었소.

그러한 과정이 없으면 요술을 쓸 수 없지.

우리 도사들은 주문이라 부르지만."



개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컨대 스마트폰 [水魔頭本] 의 자동완성 시스테-무 [時水太-無] 랑 비슷한 원리의 주문이란 게 있고

그 주문 도중 걸리는 개념을 임의로 선택하여 요술로 실체화 시킬 수 있단 것이오?"


"바로 그렇소. 역시 천민이 아니라고 한 만큼, 이해력이 빠르구려."


"요술에 대한 것은 잘 알았소. 한데 왜 이 얘길 한 것이오?"


"그야 지금부터 언급할 종말의 징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오. 저 수평선 보이시오?"



개똥이 멀리 손끝을 보니

옳아, 수평선이 반듯하더라.


개똥이 고개를 갸웃하며 도사에게 물었다.



"이곳이 산중이 아니었소? 어찌 수평선이 보이는 것이오?"


"그건...."


"혹여 그대의 요술이었소?'


"아니, 저게 종말의 징조이오."



도사가 흙을 한줌 쥐고 뭐라 주문을 외자 어렴풋이 보이던 수평선이 도로 사라졌더라.



"물체끼리의 구분이 사라져가는 것이라오.

이번 경우에는 산과 바다의 구분이 옅어진 게요."


"그게 왜 종말이오?"


"바다와 산의 구분이 흩어져서

액체가 된 산에 산사태라도 나면 큰일이지 않겠소?"



도사가 방금 썼던 부채를 보이니

과연, 부채 속 호랑이에게도 처음과는 달리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무언가와 섞인 듯한 모습이었다.



"요술은 본디 물체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것이 본질이었거늘

세상에 요술이 너무 많아졌소.

이제 그 많은 요술을 부담하지 못한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이오."


"하지만 방금 막았지 않소?"


"저런 게 근래에는 조선 땅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소.

내 발견하는 족족 해결하고 있지만 동족방뇨凍足放尿에 그치지 않소.

소문으론 왜倭나 서역에서도 닮은 현상이 나타났다 하였고."



동족방뇨.


해를 자로만 본 이가 제 구석에서 바다를 논하느 라는,

꾸란의 한 구절에서 따온 사자(LION)성어.


어리석은 사람의 어리석은 계책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임시방편이란 게요?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소?"


"있긴 하오만...."



이 도사, 일전까지 떠벌떠벌 잘도 주절거리던 그 입은 어디 갔단 말인가?



"그게 그러니까...."



예까지 와서 이 사람, 도통 말을 않으니

그저 푹푹 한숨만 쉬는 모양이렸다.



"이보시오 방도가 없는 것이오?"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럼 어떤 것이오? 있는 게요?"


"있기야 있다고 보아도 되긴 할지 모르겠지만서도...."


"아이고 이 놈의 양반 속 터지게 구네!

어떤 것이오! 있는 게요, 아님 없는 게요?

없으면 없다고 하고 있으면 그 방도란 놈을 응당 밝혀보시오!

양반이란 사람이 어찌 그리 심성이 배배 꼬였소?!"



김대감 그 말에 멋쩍게 입을 여니

"거, 듣고도 도망 않을 자신 있소?"

라 했더라.


개똥이 얼른 머리를 끄덕이니

그제서야 김대감이 뭐라뭐라 일렀다.



"이렇게 하면 되긴 하는데..."


"... 그 방법이면 되는 거요?"


"못 믿겠소?"


"숨김 없이 말하자면, 그렇소.

그런 간단한 행위가 그런 파급력을 지닌다니.

꼭 거짓말만 같소."


"간단하지만 누구도 쉬이 하지 않는 짓이 아니오?

거짓말만 같다는 건 요술이 으레 그런 법이고."


"체면도 부쩍 깎이는 일이 아니오?"


"하면 어쩔 수 없겠구려. 그대의 요술 재능이라면 될 거라 믿었거늘.

얌전히 종말이나 받아들여야지."


"그 종말이란 건 그러고보니 언제나 온다는 게요?"


"한 1년 남았겠구려.

괜찮소. 1년이면 여생을 정리하기엔 나쁘지 않은 기간이니."


"아, 알았소. 하면 될 것이 아니오!"



그 말에 김창문이 얼굴에 활짝 웃음꽃을 피우며 품에서 옥패를 하나 주었더라.


개똥이가 어디에 쓰는 물건이고 물으니 김창문이 답하기를

"이 옥패를 지니고 내가 말한 행위를 하면 세상의 종말이란 걸 막을 수 있을 게요."

라 하였다.



"김대감은 같이 안 가는 게요?"


"나는 또 다른 곳에서 사람을 섭외해야지 않겠소.

한명의 손이라도 필요하지만, 한명의 손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라오."



김창문이 부채를 휘두르니 첩첩산중은 사라지고 주위는 도로 주막이더라.



"그럼 가보겠소.

이 부근의 종말은 그대에게 맡기겠소!"



*



다음날 개똥이가 일어나보니

한점 구름 없는 하늘에 햇빛이 창창하여

실로 김창문의 요구를 이행하기에 모자람 없는 날씨렸다.



"하나둘, 하나둘."



장개똥이가 행동을 나서기에 앞서 몸을 푸니

어젯밤의 피로가 아직 남아있구나.


움직임에 어색함이 있었다.



"아아. 나는. 나는."



발성에 앞서 목을 푸니

이 또한 어젯밤의 피로가 남아있더라.


성대가 여느 날 같지 않았으니.



'당장에라도 쉬고 싶지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보게 개똥이. 자네 뭘 하는 겐가? 시장 한복판에서."


'사내대장부가 한번 뱉은 말을 쉽사리 거두어선 아니 되지.'


"이보게나 개똥이. 자네 어제 하루종일 사라졌던데 무슨 일 있었나?"


'옛말에도 남아일언중천금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보게 개똥이, 왜 말을 안하나?"



개똥의 기묘한 움직임을 눈여겨본 개똥의 벗들이 다가와 물었으나

개똥은 묵묵부답으로 몸풀기를 계속할 뿐이었다.



"나느으으은!"



개똥이

허리를 펴고 그제서야 창을 시작하니

성발산기개세聲拔山氣蓋世,

소리는 산을 울리고 기세는 세상을 덮을 수준이라.


후일 동네 사람들 사이에

마을 명물이라 불리게 된 행위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빡빡이다!

나는 빡빡이다!!

나는 빡빡이다!!!"



결론적으로

개똥의 행위가 종말을 막기 위해 일체의 도움을 주었는지 어땠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전해지는 것은

개똥이 그날 만난 김창문이라는 도사는

평소 환술로 장난치기가 취미인 짓궂은 양반이었단 것 뿐이다.


*

더 많은 대회 참여를 바라며 쓴 백일장 겸 릴레이.

헌사니까 수상에선 제외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