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Ludus World" 세계관을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세계관 설정집 보기}

└본 작품은 시간 순서대로 정렬했을 때 8번째 이야기입니다 (8/48)

└장르: 하드코어 누키게 비주얼 노벨 게임


9막

피건제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싫증을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생글생글대는 건지, 굳어있는건지 분간이 안되는 그런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뒤통수를 긁어대면서 눈알을 이리저리 돌렸다. 귀찮음이 몰려왔고 끝 없는 권태감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고, 피건제는 나름 이런 기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제길, 어깨가 아프네. 귀찮게.'


고문실의 문을 열기 전에, 피건제는 자신의 어깨를 깊게 파고드는 가방끈을 한 번 가다듬었다. 무게가 꽤나 나가는 가방의 존재는 그가 고문 기술자 활동을 그만두게 한 결정적 요인은 아니지만, 고문을 그만 두고 난 뒤 어깨 관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점 또한 사실이었다.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다, 라는 뜻이 담긴 한숨과 함께 기합으로 가방을 들춰매고 문을 열었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젤리는 예법을 충분히 익힌 숙녀가 가질 법한 성숙한 미소로 피건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웃음에는 자신과 피건제와의 이야기에서 자신이 승리했다는 자신있는 미소가 섞여들어 있었다.


"그래, 정보는 알아냈어요?"


"예. 물론이죠."


젤리는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건제의 반응은 영 뜻뜨미지근했다. 젤리는 그런 피건제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개를 한 번 기울였다.


"첩자를 보낸 사람의 두목은 카우디라는 드래곤이라고 합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알아낸 건 영양가 있는 건 없다고 하네요.


어차피 여기 갇혀있기 때문에 더 이상 제대로 된 첩보 활동도 하지 못할 테니, 더 이상 문제는 없다고 봐도 될 겁니다."


진심으로 가슴을 펴고 그런 말을 한 젤리를 보고 피건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비하의 의미가 담긴 한숨일 수도 있고, 자기가 갖고 온 가방을 괜히 가져온 게 아니라는 안도의 한숨도 섞여 있었다.


젤리가 알아낸 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드래곤의 수장 따위야 분명히 있을 것이다. 첩보가 왔다는 것은, 우두머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식으로 아타무스가 잡혔을 때, 아타무스가 대장이라면 분명히 타도니아 쪽에서 일련의 움직임이 보일 것이다. 아니라면, 아타무스는 대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건 간에, 대장의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대장의 이름이 카우디건, 동건이건, 미라텔이건 뭐건 이름 안에는 아무런 정보가 들어가있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어떤 비늘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마법에 약하고 어떤 마법에 강한지, 칼로 목을 칠 수 있는지 아니면 다른 특별한 수단이 필요한 것인지 따위이다.


그러면, 이 조교에 실패해 놓고서 자기가 성공했다고 철석같이 믿는 이 젤리를 어떻게 잘 포장해서 아타무스를 고문해야 할까. 그래도 나름대로 손님이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 말로 다뤄야 할 텐데.


"왜요? 혹시 탐탁치 않은 부분이 있나요?"


"음, 뭐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혹시 알아낸 정보는 그게 다입니까?"


"예? 네."


"아, 그럴 수 있죠. 원래 고문을 하려고 했는데, 조교를 하려고 했던 거군요. 뭐, 그 조교도 과연 제대로 된 건지는 확실히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만, 젤리 양은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습니다. 바로 고문의 기본에 관해서입니다.


고문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고문을 하기 위해서, 정보를 얻는 거죠."


사실이 그랬다. 피건제가 그저께부터 어제까지 놀러다닌 것이 아니다. 그 시간동안 이 남자는 아타무스에 관해서 조사했다. 알아낸 게 얼마나 통할지는 그도 반신반의 하는 부분이지만, 그러면 짧은 시간 내에 효율적인 고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피건제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젤리는 고개만 갸웃거렸다. 정보를 얻기 위해 고문을 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라니, 고문의 정의와 완전히 반대되는 논지를 펼치는 피건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젤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던 피건제는 상관 없이 고문실의 안쪽 방, 아타무스가 있는 곳의 방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아, 혹시 정보를 얻어내고 나서도 계속 괴롭혔나요?"


"계속 전동 딜도를 보지에 박아뒀으니까 한 스무 번 정도는 가지 않았을까요?"


건제는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인정할만하다고 평가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큰 가방을 들고 피건제는 아타무스랑 같이 있는 방에 들어가기 전에, 젤리에게 들어와도 된다고 손짓했다.



10막

아타무스의 입장에서는 자기를 이틀 동안 끈덕지게 괴롭힌 여자와, 지금 명목상 자신의 주인인 노란 머리의 남자가 서로 뭔가를 이야기하는 걸 봤다. 그러고 문을 열고 자신이 있는 감옥으로 들어왔다.


그녀도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자신에 대한 질문이 이걸로 끝날 리는 없다. 젤리는 자신을 성적으로 굴복시켰다는 사실에 만족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금발의 남자, 피건제는 젤리 보다 적어도 한 수 위인 듯 했다.


그것 말고는 아타무스가 더 이상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미 몸은 몇 번이나 절정에 달해,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사고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음순은 충혈되고, 정신적으로 피페해진지 오래 돼었는데도 유두는 펄펄대는 기운으로 서 있었다.


"왜요. 다 말하지 않았어요? 보스의 이름은 카우디고 있는 곳은 타도니아라고. 이제 그 곳으로 대규모 군대를 편성해서 보내면 드래곤 따위야 순식간에.."


강제로 입을 막힌 것도 아닌데 아타무스는 입을 다물었다. 피건제의 무표정한 얼굴에 절로 긴장감이 생긴 것이다.


"딱 세 시간동안만 괴롭힐 겁니다. 그 때까지 버티거나, 제 정액을 삼키거나, 정보를 말한다면 중간에 괴롭히는 걸 그만두겠습니다."


"저기, 정보라면 이미 말했는데요."


피건제는 아타무스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저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 가장 많이 들어있던 건 또 하나의 철가방이었다. 그 철가방 옆에는 물풍선이 같이 장착되어 있었고, 피건제는 그 물풍선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몸에다 던졌다.


아야, 라던가 으악, 같은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타무스는 의외로 잘 버텼다. 웬만해서 쓸데 없는 소리를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분석은 놓치지 않으려고,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액체는 끈적거리는 느낌이 들었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색깔은 얇게 펴져 있어서 어떤 색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노란색이면 꿀일 것이고, 아니라면 다른 단물일 것이다.


피건제 역시 아무런 말도 없이 철가방을 열었다.


"히익!"


아타무스는 침묵을 끝까지 지킬 수 없었다. 철가방 안에 나온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였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의 몸에 뿌린 단내나는 액체의 정체는 몰라도 그것의 역할은 벌레를 부르는 것이란 것을.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날벌레들은 정처 없이 어딘가를 돌아다니다가, 뭔가에 홀린 듯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관심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그래도 궁금할 수 있으니까 말해 두겠습니다. 카람 왕국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딴 페인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특별히 주문해서 만들어낸 인공 생명체에요.


인공이라 해야 할까. 그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여러 벌레들을 교접시켜서 아종을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지만, 단 것을 주로 좋아해서 물어 뜯는다 하더라고요. 저도 몇 번이나 다른 사람을 상대로 시험해봤는데, 아주 평판이 좋습니다."


평판이 좋다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콧물을 쏙 빼놓았다는 이야기이리라. 피건제가 설명을 끝마치기도 전에 벌레들은 그녀의 몸으로 날아들었다.


"으으읍!"


벌레들은 그녀의 몸을 기어다니며, 몸에 묻은 물과 같이 피부를 뜯어냈다. 뜯어냈다, 라고 표현해 봐야 각질을 제거하는 정도 밖에 안 되겠지만, 한 번에 수 백번은 물어뜯기니 간지러움과 고통은 그대로 전해졌다.


모든 벌레들이 몸을 물어뜯으려 공간을 찾아 들어갔다. 어떤 벌레는 코로, 어떤 벌레는 귀로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항문과 질 속으로도 벌레는 탐험을 계속했다. 아타무스가 할 수 있는 일은, 눈과 입 만이라도 벌레가 들어가지 않도록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무는 것 뿐이었다. 고통에 찬 신음을 참는 것 따위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 생각해 보니 지금 팔이 묶여있기 때문에 제 자지를 빠는 일은 불가능하겠네요. 구속구는 풀어드릴게요."


피건제는 그런 중요한 사실이 이제서야 기억났다는 듯, 일회용 라텍스 장갑-벌레가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도록-을 끼고 아타무스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벌레들이 자신을 물어뜯을 때 부터 다리의 힘이 풀려있던 아타무스는 그대로 철푸덕, 하고 넘어졌다.


"건제 씨,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젤리조차 피건제에게 그런 말을 했지만, 남자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듯 아타무스를 내려다 보았다. 그녀는 그나마 작동하는 머리로서 최대의 선택을 했다. 벌레가 최대한 덜 물어뜯게 몸을 웅크린 뒤, 한 손으로는 음순과 항문을 동시에 가리고, 다른 팔로는 양쪽 귀를 어설프게나마 막았다. 수치심 같은 게 아니라, 구멍 안으로 벌레가 들어오면 진짜로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때요, 젤리 씨. 세 시간. 참을 수 있을 것 같나요? 이제 한 2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피건제는 젤리에게 그렇게 물어보면서 자기가 가져온 가방 안을 뒤적였다. 안타깝게도 그녀를 고문할 수 있는 것은 벌레가 전부가 아니었다. 몇 가지 더 매력적인 도구가 있었다. 보온병과 칼이었다.


"저 같으면, 절대 못 버틸 것 같은데요."


젤리는 사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피건제는 그런 말에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이건 그냥 기본 중에 기본적인 교육만 일단 시켜놓는 거에요. 저희 집에 있는 모든 작품들은 다 이런 과정을 거치죠. 모든 각질을 없애야 하기 때문에. 각질을 없애는 데에는 10분이면 충분하지만, 만약 경우에 따라 굳은살까지 연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면 한 시간 정도 걸려요."


"그럼, 세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글쎼요. 지인의 말에 따르면 모든 피부가 갉아먹히게 되고, 근육이 드러난다던데, 지금까지 그래본 적은 딱 한 번 정도 밖에 없네요."


"으읍! 읍!"


이미 귓속에는 벌레가 몇 마리 들어갔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타무스는 피건제와 젤리가 하는 대화를 어설프게나마 들었다.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예민해진 청력 탓에 세 시간을 버티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 들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타무스는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찾아냈다. 이런 짓을 세 시간동안 견딜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간지러워서 고통스러운 정도지만, 벌레가 진피를 갉아먹기 시작한다면 중간에 미쳐버리고 말 것이리라.


그러기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설령 자신에게 이런 벌레를 선물해준 남자의 음경이라도 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했고, 그러고 싶었다. 보이지도 않지만 피건제의 음경을 쥐고 흔들어서 좆물을 짜내고, 바로 이 지옥에서 해방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길은 금세 무뎌졌다. 피건제는 미친듯이 허우적대는 아타무스의 손목을 어렵지 않게 잡았다.


"하프 연주 실력은 첩자로 오기 전부터, 그러니까 타도니아에 있을 적부터 익혀 오던 거죠?"


아타무스는 피건제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굳이 지금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지, 머리가 안 돌아갔다.


"으윽!"


왜 그랬는지는, 금세 밝혀졌다. 피건제는 칼로 그녀의 손등을 후벼팠다. 단순히 찌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손목을 통과해서 각 손가락으로 가는 모든 신경을 끊어버리려는 듯, 칼을 요리조리 움직어서 그녀의 오른손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술리시나와 동행하면서 배운 의학 기술이 없었다면 조금 더 오래 걸렸겠지만, 지금의 그는 더 깔끔하게 손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처음에는 고통에 몸부림치듯 힘이 확 들어간 채로 곧게 펴 있었으나, 곧이어 축 늘어졌다.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바닥은 여전히 고통에 차 있으며, 벌레가 환부를 건드리는 통에 지옥불을 걷는 듯 했으나, 손가락만큼은 감각이 없었다.


"더 이상 하프 연주는 못하겠네요."


더 이상 지성체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신음소리를 내는 여성을 그대로 놔두고, 건제는 무심하게 말했다.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 보온병의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 마자 치이익, 하는 불길한 소리가 났다. 젤리가 물었다.


"뭐에요, 그거?"


"쇳물. 녹는 점은 철 보다는 낮지만, 아주 뜨거워요. 아, 이렇게 떠들고 있다간 붓기도 전에 굳어버리겠네."


불행히도 아타무스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물론 듣거나 말거나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피건제는 아타무스의 손바닥과 손등에 난 구멍에다 그 쇳물을 부었다.


"아아악!"


쇳물 물방울 하나가 닿자마자, 입을 꽉 깨무는 것도 잊고 아타무스는 몸부림쳤다. 손가락에는 여전히 힘이 들어가지 않지만, 상처에는 감각이 있었다. 환부를 뜯어먹는 벌레, 잘려진 혈관과 신경 하나하나에 쇳물이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굳었다. 억지로 용접시킨 것만 같은 그런 모양새. 볼 수는 없었지만, 끔찍한 고통으로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입을 벌리고, 그 안으로 벌레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만은 여전히 감고 있었다.


이제 아타무스에게는 이성이란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좆, 자지, 자지! 어디 있어, 빨리!'


성욕에 매몰된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했다. 오른손은 이제 찔려서 못 쓴다. 그렇다면 왼손이나 입으로라도 피건제의 자지를 애무해 정액을 뽑아내야 이 지옥이 멈출 것이다.


"아 맞다, 그랬었죠. 정액을 먹으면 이 고문을 끝내 주겠다고."


오른손이 망가지고도 왼손으로 허우적대는 꼴을 보고 피건제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대충 눈치챘다.


'뭐, 상관 없으려나.'


생각했다. 사실 아타무스가 자신의 자지에서 정액을 뽑는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시도할 기회 자체는 있는 게 맞겠다, 그리고 그게 더 재미있겠다 싶어서 그녀가 왼손을 허우적대는 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잡았다!'


드디어 아타무스는 피건제의 발목을 잡았다. 아직도 눈을 감고 있기에 감각으로밖에 판단할 수 없었지만, 복사뼈 같은 게 만져지는 걸 보니, 다리는 확실했다.


발목부터 잡고 올라가다보면 자지가 나올 것이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왼손을 점점 올렸다. 발목에서부터 정강이, 정강이에서 무릎, 무릎에서, 허벅지, 허벅지에서..


'어?'


"아, 생각해보니, 한 손만으로는 바지를 벗기기 어렵겠네요. 날씨가 차가워서 내키지는 않지만, 벗는 것 까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피건제는 바지를 내렸다. 그런 피건제를 보자마자 뒤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그의 사타구니를 보고 충격에 빠진 젤리가 뒤쪽으로 주저앉으면서 나는 소리였다. 젤리의 얼굴은 벌써 사색이 된채,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거, 건제 씨.. 저, 저거.."


"아, 이거요?"


슬쩍 자신의 사타구니를 봤다. 그러고 보니 이걸, 젤리에게도 말해준 적이 없었다.


"값 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쾌감보다, 열심히 공부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때의 쾌감이 더 큰 법이죠. 그거랑 비슷한 겁니다.


제가 원하는 건 제 자지와 성욕의 만족이 아닌, 제가 다루는 예술작품의 고통이기 때문에, 그걸 방해하는 현자 타임 따위는 없는 게 더 낫죠. 상대방을 고문하다가 오히려 내가 성욕의 노예로 매몰된다면 그것보다 꼴사나운 일은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잘라버린 겁니다. 제 자지를 제 스스로."


그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 건 젤리 뿐만이 아니었다. 아타무스 역시 얼마 안되는 정신력을 붙잡고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제서야 자신의 손 안에 있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더 이상 눈을 감을 수는 없어서 눈을 떴고, 피건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고환은 없었고, 음경은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대신 옆에는 자그맣게 오줌이 나오는 구멍이 인공적으로 뚫려져 있었다. 아타무스가 본 건 거기까지였다. 벌레가 눈알을 파먹으러 다가오기 시작했고, 더 이상 눈을 뜨고 있다간 먹물까지 빨아먹힐 게 분명했다.


그 때, 아타무스의 정신은 맑아졌다. 확실히 깨달았다. 이 사람은 절대로 질리지 않는다. 현자타임이나 권태기에 빠지지 않는다. 내가 파멸할 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아까 말했던, 정액을 뽑아내면 고문을 끝내겠다고 한 약속조차도 자신을 절망 속으로 빠뜨리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그 생각까지 가자, 아타무스의 정신이 꺾였다. 웅크리고 있던 자세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벌레가 자신의 몸을 무자비하게 물어뜯도록 놔두고, 무릎을 꿇으며 이마를 피건제의 발등 앞에 떨궜다.


"두 달 뒤에, 으늠디 왕국으로 쳐들어올 계획입니다! 가장 조용한 국가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외적의 침입이 가장 적은 나라라 판단해서, 군대도 없을 것 같기 때문에, 그리고, 그리고,


아, 맞다. 지금 전 세게에는 저희 같은 첩자가 100명 정도, 아니, 그러니까 정확히 저를 포함해서 87명 흩어져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명단을 뽑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우선은!"


사실 아무런 보장도 없었다. 자신이 정보를 토해낸다고 해서 고문이 멈출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정보를 뽑아낸 첩자의 말로가 대부분 그렇듯 무참히 죽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런데도 이미 그녀의 머릿속은 그걸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더 이상 정보를 말하지 않고는 못 베기게 됐다는 표현이 차라리 더 정확하리라.


"감사합니다."


피건제는 마음 속으로, 이제 이 지겨운 일도 겨우 끝났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딘가 마음 속에서 만족감이 몰려왔다.


'말로는 질린다, 현자타임 왔다, 그렇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마음속까지의 취향이 완전히 사그라들지는 않는 모양이네.'


당연히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아직까지 노력한 것의 반도 쓰지 못했으니까. 발로 아타무스의 머리통을 짓밟고 말했다.


"그래도 제가 노력해서 준비한 게 아직 남아있으니까, 그것만 마지막으로 합시다. 손이 망가져도 염력 마법 같은걸로 하프 연주는 할 수 있으니까요. 전 당신이 앞으로 그런 걸 못했으면 좋겠어요. 요컨대 간단한 뇌 수술이에요. 다시는 음악을 할 수 없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고를 하는 능력을 없애드리겠습니다."


아타무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이 살짝 굳었다. 그게 진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튕겨오던 하프를, 음악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다는 공포심이 마음 속으로부터 솟아나기 시작했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혹시 깜빡하고 말하지 못한 게 있는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아, 죄, 죄송합니다! 더 말할게요. 다 말할게요! 뭘 원하시나요, 제발,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펜과 종이만 주시면 진짜 원하는 정보를 다 적어드릴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더 이상 그런 감정, 조차 들 수 없도록 뇌를 살짝 만질 거니까요. 다 끝나고 나면 눈물이나 공허감 같은 것도 싹 없어질 겁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만들고 난 다음에 정보를 빼내는 게 간편할 것 같고요."


마지막의 간청이 통하지 않았다. 아타무스는 확실히 깨달았다. 이 사람에게 잡힌 시점에서부터, 이렇게 되는 건 확정이었구나. 마음이 텅 빈 껍데기인 채로, 앞으로 언제 죽을지 몰라하면서 살게 되겠구나. 납득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죽었다고 생각하자. 지금부터 감정이 거세된 아타무스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기로 하자.


모든 것을 버린, 정신 승리조차도 하지 못하는 완전한 패배.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아타무스는 자신의 마지막 눈물에 작별을 고했다. 그대로 자신을 기절시키는 피건제의 전기 도구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11막 (Epilogue)

아타무스는 쓰러져 있었다. 진짜로 감정 절제 수술을 한다면 5시간은 훌쩍 넘는 작업일 것이다. 지금 막 점심 식사 시간이니까, 식사를 잠깐 거르고 수술 작업에 들어가면, 가한 안에 정보를 캐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 한 가지 남은 게 있었다 .지금 피건제의 콧구멍을 찌르고 있는 암모니아 냄새. 바로 젤리의 사타구니에서 나는 냄새였다.


'역시.'


피건제는 자신이 마스터 클럽에서 빠진 이유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곳에 있는 자들은 사디스트나 마조히스트나 전부 자신의 성욕에 매몰된 사람들 뿐이었다. 그곳의 터줏대감 격인 에메랄드마저 상대방의 파멸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르가즘을 위해 주인님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가짜라고 생각했다.


건제 스스로는 그게 제일 싫었고, 마침 현자타임도 왔길래 마스터 클럽을 박차고 나간 것이다. 조교 실력은 있었기에 대놓고 나가라는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어쨋거나 괄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마스터 클럽 자체에 미련 따위는 진작에 없어지고도 남았다.


젤리는 어리기에 조금 다를 줄 알았더니, 결국 이렇게, 조교 한 번 하는 거 보고 오줌이나 지리는 건가,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아까 했던 이야기까지만 하고 돌려보내자고 생각했다.


"아까 했던 얘기 이어서 할게요. 그래서 저는 제 좆을 잘랐죠. 혹시 저처럼 되고 싶다면, 여자같은 경우는 달군 철봉을 질 속에다 넣고 몇 번 휘저으면 될 것 같은데요. 그러면 더 이상 성욕에 매몰되서 상대방을 조교하는 데 실패하는 일은 없을 거에요."


말로만 하는 말이었다. 지금 오줌이나 지리는 그녀가 실제로 그런 일은 할 수 없을 테니까. 피건제는 그렇게 말하며, 벌레를 퇴치하는 스프레이를 아타무스에게 뿌리고, 그녀를 수술실로 데려갈 채비를 했다.


그 때 뒤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피건제를 웃음짓게 만들었다.


"철봉 주세요." 



완결!

아, 그리고 그동안 소설을 이어나가는 데에 급급해서 글을 적는 걸 까먹고 있었습니다만,

피드백이나 비평 같은 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야설을 쓴 적도 없고, 료나 소설 역시 처음이기에...